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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살아있는 유산, 제주해녀의 삶 - 해녀박물관

by 휴식같은 친구 202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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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산, 제주해녀의 삶 - 해녀박물관

 

 

이번 제주여행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제주편'을 읽고 다녀왔는데, 덕분에 책에 소개된 곳을 여러 군데 구경하고 왔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곳은 제주의 살아있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해녀의 삶을 담은 해녀박물관입니다.

 

제주여행 도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제주편'

 

 

1960년대에 26,000여명에 이르렀던 해녀는 현재 4,500여명에 불과하며, 앞으로 계속해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책에 의하면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에 해녀가 가장 많았으며, 지금도 제주해녀 중 열 중 하나는 하도리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하도리 해변 일대에는 수많은 불턱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도리 세화 해변에 해녀박물관을 만들어 역사적 현장에 해녀문화의 가치와 보전을 위해 2006년에 해녀박물관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제주해녀는 잠녀, 잠수라고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아주 희귀한 직업군으로 주목받았고, 제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 왔으며, 일제강점기엔 일제의 수탈에 맞서 전국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주 해녀의 삶을 담은 해녀박물관 전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주 해녀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 ~ 18:00(마감 1시간 전 매표마감)

(어린이 해녀관은 09:00 ~ 17:00)

휴무일(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과 추석연휴

입장료(관람료) 25세~64세 1,100원, 13~24세 500원, 그 외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제주 해녀박물관은 구좌읍 하도리, 세화해변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주해녀문화는 능력위주의 공동체를 구성해 민주적 의사를 결정했으며, 물질 수익으로 마을과 학교 등 사회에 공헌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해녀박물관 앞 제주 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

 

제주의 3대 항일운동이라고 하면 법정사 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 해녀항일운동을 말합니다.

해녀항일운동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제주항일기념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제주항일기념관

 

 

제주의 해녀들은 예로부터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었으며, 1900년대에는 판로가 확대되면서 수탈과 노동력 착취의 폐단이 확대되었습니다,.

이에 제주도 해녀들은 1920년에 제주도 해녀어업조합을 조직하였으나, 조합장을 제주도사가 겸업함으로써 어용조합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1930~1931년 성산포와 하도리에서 경매가격을 하향 책정하는 횡포가 발생하자 1931년 공동투쟁을 모색, 1932년 1월 세화리 장날을 이용해 시위가 전개되었지만, 일제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해녀항일운동은 연인원 17,310명, 238회의 집회 및 시위를 일으켰습니다.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탑

 

1932년 1월 구좌면과 성산면, 우도면 일대에서 일어난 해녀들의 항일운동 정신을 기리고자 1998년 이곳 구좌읍 상도리 연두망 동산에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을 건립했습니다.

 

해녀박물관 모습

 

1층으로 들어서면 해녀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전시실. 해녀의 생활

 

제주 해녀의 집과 살림살이를 통해 1960~1970년대 해녀와 제주도 어촌마을의 생활상을 재현했습니다.

해녀의 집, 제주의 세시풍속, 해녀의 생활도구, 음식문화, 해녀의 신앙 등 해녀의 생활을 전시한 공간입니다.

 

해녀의 집과 살림살이

 

제주의 초가는 비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 흙, 나무, 띠를 이용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전시되고 있는 이곳엔 실제 1920~2008년에 이남숙 해녀가 사용했던 생활용품들이라고 합니다.

 

제주의 장독대

 

제주여성의 옷과 갈옷

그리고 애기구덕과 차롱, 물허벅과 지세항아리

 

굴묵

제주 전통 가옥은 취사와 난방이 분리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굴묵은 난방을 위한 시설로 육지의 아궁이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2전시장. 해녀의 일터

 

제주해녀들의 바다 일터와 역사, 공동체를 알 수 있는 전시장으로 언 몸을 녹이고 물소중이를 갈아입는 불턱을 중심으로 테왁망사리, 눈, 빗창 등의 작업도구, 물소중이와 고무옷을 비교하여 전시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녀의 역사, 제주해녀항일운동, 해녀공동체에 관한 각종 문서 등과 사회공익에 헌신한 해녀들의 사진과 영상자료를 살펴볼 수 있답니다.

 

불턱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입니다.

 

하도리에서 정달리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걷다보면 이런 불턱을 수십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도리에 해녀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둥글게 돌담을 에워싼 형태로 가운데 불을 피워 몸을 덥혔는데, 이곳에서 물질에 대한 지식, 물질 요령, 바다밭의 위치 파악 등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 및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하며 해녀 간 상호협조를 재확인하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주해녀의 물옷과 물질도구

전통해녀옷 물소중이와 개량해녀옷 고무옷

 

해녀의 물질도구

 

제주해녀 항일운동과 해녀대표 5인, 고문헌 속의 해녀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비석은 목사허공명휼민청정비(복제품)라고 하는데요.

해녀들이 미역을 캐고 내는 수세를 폐지(1814)하는 등 청렴한 행정을 베푼 제주목사 허면(1814~1815 재임)을 기리며 백성들이 세운 공덕비입니다.

 

 

조선시대 해녀는 진상이나 공물로 1년에 적게는 7필, 많게는 28필에 달하는 전복과 미역을 책임졌으며 19세기 후반에야 폐지되면서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해녀공동체

 

물질작업은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해서 함부로 바다에 뛰어들어 혼자서 물질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정해 놓은 규약과 법에 따라 행동한다고 합니다.

또 물질할 때는 역시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작업에 임하게 되며,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공동으로 위험상황에 대처할 수 있죠.

 

해녀들은 그 집단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이미 구한말부터 '계'의 형태로 자생적인 공동체가 이루어졌으며, 이후 출가 해녀의 권익보호를 목적으로 어업공동체가 조직되었습니다.

 

해녀공로비

 

제주해녀들은 예전부터 물질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마을 안길을 정비하거나 학교건물을 신축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1950년 화재로 성산읍 온평학교의 전교실이 소실되자 온평리 해녀들은 마을의 한쪽 바다를 ‘학교바당’으로 삼아 미역을 채취한 수입금 전부를 학교건립자금을 헌납하여 1951~1958년에 걸쳐 학교를 재건하였습니다.

 

2층에서 바라본 세화해수욕장 풍경

비가 오니 더욱 운치가 있습니다.

 

옥상 장독대에도 정겹게 다가옵니다.

 

잠시 3층 옥상으로 올라가면 전망대와 갤러리가 있습니다.

 

당시 전시는 2월까지 바닷속 해녀와 태왁망사리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해녀박물관에서 어린이 대상으로 말랑말랑 바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제주도내 12개 초등학교 266명이 참가했는데요.

이곳에 전시된 작품은 하도초등학교 3~4학년들이 바닷속에서 물질하는 해녀와 바닷속 생태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세화해수욕장 풍경입니다.

 

제주 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 풍경

 

3전시장. 해녀의 생애

 

첫 물질부터 상군해녀가 되기까지의 모습, 출가물질 경험담, 물질에 대한 회고 등 해녀들이 전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물질하며 틈틈이 만든 해녀들의 솜씨와 자랑스러운 해녀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고, 마지막에는 해녀작업장 창문 너머 힘차게 물질하는 해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테우

 

테우(터배, 떼배)는 선사시대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강 유역에서 부족간의 물자이동이 이용해 온 원시배를 말합니다.

이 배는 제주연안에서 고기잡이, 해조류 채취뿐만 아니라 해녀들의 이동수단으로 사용했던 전통배로 제주인들의 삶의 산물이며 해양문화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

 

 

이곳에 전시된 테우는 1997년 10월 제주에서 일본 나가사키까지 한일 고대뱃길탐험을 진행했던 천년 2호입니다.

 

내려가는 곳에 걸린 대형 걸개그림

해녀가 엄청난 크기의 문어를 잡은 모습입니다.

 

해녀들의 물질 이야기

 

제주에서 여성을 태어나 첫 물질을 시작하여 상군해녀가 되기까지의 회고담, 돈을 벌기 위해 가야만 했던 바깥물질, 생사를 넘나드는 물질 경험담 등 해녀들이 직접 전하는 생생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닷속으로

 

살아있는 유산, 제주 해녀

2016년 11월 30일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해녀작업장

 

1층에 있는 어린이 해녀관

 

 

제주해녀박물관은 4년 전에 우연히 구경하고 온 곳인데요.

그때의 관람 소감은 왠지 해녀들의 슬픈 자화상 생각만 났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느낀 점은 그 힘들고 슬픈 자화상 뒤엔  해녀공동체로 제주의 삶을 지탱해 왔고, 제주 항일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는 자랑스러움에 고개가 숙연해졌습니다.

 

제주의 멋진 바다와 신나는 관광지도 좋지만, 제주의 역사를 아는 것도 또 다른 보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중심이 바로 제주해녀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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