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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여행

조선 16대왕 인조와 인열왕후의 조선왕릉, 파주 장릉

by 휴식같은 친구 2022.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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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와 인열왕후의 조선왕릉, 파주 장릉

 

 

조선은 519년 동안 27명의 왕이 조선을 다스렸는데 왕과 왕비가 묻힌 곳을 조선왕릉이라고 하며, 남한에 40기, 북한에 2기( 총 120기가 있는데 능이 42기, 원이 14기, 묘가 64기)의 왕릉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있는 40기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북한에 있는 제릉과 후릉은 아직 등재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고, 원은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후궁의 무덤, 묘는 그 외 왕족과 일반인들의 무덤을 말합니다.

 

조선왕릉 총정리 (분포, 구성, 관람안내)

 

이번 파주 나들이에서 찾은 곳은 조선의 16대 왕인 인조와 인열왕후의 합장릉 파주 장릉을 다녀왔습니다.

 

파주 장릉은 파주시 탄혀면 갈현리에 위치하며 근처에 헤이리 마을과 오두산 등이 있습니다.

 

장릉이란 명칭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릉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구분은 한자로 해야 정확합니다.

 

고려시대의 장릉(長陵)은 고려 17대 왕인 인종이 안장되어 있는 왕릉으로 북한 황해도 개풍군 장릉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의 능인 장릉은 3곳이 있습니다.

 

영월 장릉(莊陵)은 강원도 영월에 위치하며, 조선의 6대 임금인 단종의 단릉(1명)
파주 장릉(長陵)조선 16대 임금 인조와 그의 첫 번째 왕비인 인열왕후를 모신 합장릉(2명이 함께)
김포 장릉(章陵)은 조선의 추존왕 원종(인조의 생부)과 추존왕비 인헌왕후(인조의 생모)를 모신 쌍릉(2명이 따로)입니다.

 

파주 장릉 주차장

 

주차장에서 보이는 파주 장릉

 

파주 장릉 안내도

 

입구에서 거리가 짧아 관람하는데 3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많은 조선왕릉 중 규모가 작은 편입니다.

 

 

파주 장릉 관람안내

 

관람시간 2~5월/9~10월 06:00~18;00, 6~8월 06:00~18:30, 11~1월 06:30~17:30

(매표 및 입장가능 시간은 1시간 전까지)

휴무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관람료) 만 25~64세 1,000원, 그 외 무료

주차장 무료

관람 소요시간30분, 둘레길까지는 1시간

 

 

매표소를 지나 장릉으로 향합니다.

추운 날씨에 관람객은 거의 없네요.

 

파주 장릉 재실

 

간밤에 내린 눈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해 능참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준비를 하던 곳입니다.

 

능참봉의 재실,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그 외 부속공간인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실에서 나와 왕릉으로 향합니다.

 

파주 장릉 입구의 홍살문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으로 붉은 칠을 한 둥근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 놓습니다.
홍문 또는 홍전문이라고도 불립니다.

 

향로와 어로

향로는 제향 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며, 어로는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입니다.

 

 

인조는 추존된 원종과 인헌왕후의 아들로 능양군에 봉해졌다가 19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왕위에 오른 왕입니다.

왕위에 오르면서 이괄의 난을 수습하는 등 반정으로 잡은 왕권을 안정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군제를 정비하여 군사력 강화에 힘썼으나 후금(청나라)을 배척하는 외교정책으로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당해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왕이었습니다.

 

정자각 앞에 있는 두 건물은 수라간(좌)과 수복방입니다.

수라청은 재실에서 준비한 제례음식을 데우고 진설하는 곳이고, 수복방은 능원을 지키는 사람의 공간입니다

 

 

인열왕후 한씨(1594~1636)는 서평부원군 한준경의 딸로 1610년 인조(당시 능양군)와 결혼했고, 소현세자, 효종, 인평대군 등을 낳았으며 42세에 창경궁 여휘당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릉은 1635년(인조 13) 인열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파주 운천리에 조성했는데요.

1649년 인조가 세상을 떠나자 장릉 인열왕후 곁에 쌍릉으로 조성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화재가 자주 일어나고 뱀 피해가 많아져 1731년(영조 7)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합장릉으로 만들었습니다.

 

정자각

정자각은 능 제향을 올리는 정자 모양으로 지은 집으로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 이곳에 모십니다.

 

봉분이 약간 보이는 모습입니다.

파주 장릉은 조선 16대 왕인 인조(1596~1649, 재위 1623~1649)와 인열왕후가 한 무덤에 안장되어 있는 합장릉입니다.

 

정자각에서 본 파주 장릉의 합장릉

 

장릉의 기신제향의 의식을 치르는 왕릉제향은 6월 17일입니다.

 

파주 장릉 입구 모습

 

장릉 비각

비각은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 둔 곳으로 신도비는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장릉 표석은 1731년(영조 7)에 파주 북운천리에 있던 장릉을 현재의 자이로 옮긴 후 세운 표석이라고 합니다.

 

파주 장릉에도 왕릉 숲길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1.7km로 소요시간은 40여분입니다.

 

 

겨울철(12월 1일 ~ 3월 15일)에는 왕릉 숲길은 개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조반정의 명분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외교를 소홀히 하고 친후금 정책을 추진하던 광해군의  중립외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해군의 중립 외교정책이 지금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어서 이 정책을 이어갔다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치욕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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