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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제주 정의현의 중심, 성읍마을(성읍민속마을)

by 휴식같은 친구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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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민속마을 체험, 성읍민속마을

 

 

비가 조금씩 내리고 바람이 세찬 제주도 날씨에 어딜 돌아다니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상상초월의 바람은 겨울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데요.

이런 날씨에 제주 전통가옥을 볼 수 있는 제주 성읍마을을 찾았습니다.

 

성읍민속마을은 제주에 오면 매번 지나치기만 했던 곳인데요.

수학여행 때나 제주여행 초기에 이곳에 왔을 때 호객행위로 전통가옥과 똥돼지를 보여주며 건강식품을 팔던 안좋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성읍민속마을 바깥에 있는 상점들의 호객행위로 읍성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우연히 성읍마을이 이런 곳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제주도 전통가옥과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알게 되어 이번에 방문했는데, 과거의 선입관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주 성읍마을(옛 명칭은 성읍민속마을)정의현의 고을로 읍성 안에 관청건물을 비롯하여 정의읍성, 객사, 정의 향교, 느티나무와 팽나무, 돌하르방, 마을의 민가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제주도 민속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여행지입니다.

 

성읍마을 주차장에서 바라본 읍성마을의 남문 모습

 

조선시대 초기 제주에는 한라산 북쪽 한 곳에만 관아가 있어 남쪽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관아를 찾는데 불편이 많았습니다.

이에 태종 16년(1416) 한라산 남쪽 36km 떨어진 곳에 동서로 나누어 동쪽에는 정의현, 서쪽에는 대정현을 설치하고 조선 후기까지 유지했습니다.

 

그 중 정의현은 성산 고성리에 읍치를 두었으나 큰 마을과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라서 세종 5년(1423)에 현재의 위치인 성읍리로 이전한 것으로 600여년간 정의현의 중심이 된 곳입니다.

 

성읍마을 주차장 안쪽에 자리한 상가

 

 

제주 성읍마을 관람안내

 

관람시간 제한없음(해설사 운영시각은 10:00~17:00)

휴무일 없음

입장료 무료

주차장 무료

소요시간 30분~1시간

 

성읍마을은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므로 에티켓을 지키며 관람해야 하고, 생활지역이기에 시간제한 없이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곳엔 여러가지 체험을 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대부분 체험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관람하다가 잠시 몸을 녹인 성읍마을에 자리한 빽다방입니다.

초가지붕의 카페라니, 왠지 운치있어 보입니다.

 

성읍민속마을 카페, 빽다방 서귀포 성읍마을점

 

강아지가 우리를 반기고 있네요.

성읍마을에서는 신석기 생활유적이 발견되어 신석기시대부터 이곳에서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성읍마을 정의읍성 남문

 

정의현 읍성의 규모는 동서 160m, 남북 140m, 둘레 1,200m이며 높이는 약 3m 정도입니다.

남동서 세 군데에 성문이 있고 방어시설로 바깥쪽에 돌출된 ㄱ자 모양의 옹성과 성문을 두고 있습니다.

 

 

정의읍성은 세종 5년(1432)에 축조되었고, 현재는 성벽 일부와 남문과 서문만이 복원되어 있을 뿐입니다.

정의읍성을 쌓을 당시 성읍리는 진사리라고도 불렸으며, 정의읍성도 ‘진사성’이라 불렸습니다.

 

출처 : 성읍마을 홈페이지

제주 성읍마을 안내도

 

곳곳을 돌아다니려면 시간이 제법 소요됩니다.

성읍마을 주요 가볼만한 곳(코스)으로는 남문 - 고형오 고택 - 정의현 객사 - 느티나무 & 팽나무 군락 - 근민헌 - 정의향교 - 고창환 고택 - 서문 - 동문 - 한봉일 고택 순으로 둘러보면 좋겠습니다.

 

정의읍성 남문 앞의 돌하르방

 

121~160cm의 키로 남문 앞 좌우에 2기씩 세워져 있습니다.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고 주술적, 종교적 의미와 도읍지의 경계를 정확히 알려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데요.

 

 

둥글넓적하고 단순한 생김새가 서로 닮은 이 돌하르방들은 제주목이나 대정고을의 돌하르방들과는 뚜렷이 다른데, 성읍마을에서는 예로부터 돌하르방을 ‘벅수머리’ 또는 ‘무성목’으로 불러왔으며, 모두 원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균 크기와 단순함은 대정고을 것과 엇비슷하지만, 표정만은 무뚝뚝한 제주목 돌하르방 쪽에 가깝습니다.

 

성읍마을 모습

 

우측에 대장금 촬영지가 보입니다.

 

말방아

 

제주도 농촌지역에서 곡식을 찧거나 빻을 때 사용하는 도구로 육지의 연자방아와 비슷하나 말의 힘을 이용해서 말방아라고 부른답니다.

제주도의 말방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방아의 분포비율이 월등히 높아 30가구 정도가 예라고 하는 접을 조직해 하나를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고평오 고택

 

고평오 고택은 18세기말에 지어진 고택으로 마당을 중심으로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가 마주하고 서 있고, 마당 동쪽에 모커리(사이에 있는 집채)가 있는 형태입니다.

 

밖거리는 정의 고을 당시 면사무소가 표선리로 옮겨지던 근래까지 관원들이 숙식하던 곳이라 합니다.

 

제주도의 건물 규모와 채의 수는 경제적 형편과 가족 상황에 따라 다른데요.

살림이 어렵거나 식구가 단출한 경우에는 ‘안거리’(안채) 한 곳에 살았으며, 좀 여유가 있으면 안거리 맞은편에 ‘밖거리’(바깥채)를 마주보게 지었다고 합니다.

 

며느리를 맞이하면 아들 내외에게 안거리를 물려주고 부모는 밖거리로 나가 따로 살거나 아들 내외를 밖거리에 기거하게 해서 제주도의 밖거리에는 ‘정지’(부엌)가 별도로 꾸며졌으며, 구조는 안거리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더러는 안거리와 밖거리 사이 마당 좌우에 ‘모거리’(안채와 바깥채에 대하여 모로 배치한 건물)를 두는데, 여기는 대개 외양간이거나 헛간, 연자매를 두었습니다.

입구 쪽에 ‘이문간’(대문간)을 세우면서, 좌우에 외양간이나 헛간을 두기도 했고, 난방을 위해 외벽과 방 사이에 ‘굴목’이라는 불을 때는 별도의 좁은 공간을 둔 것도 큰 특징입니다.

 

원님물통

 

대장간집인 고상은 가옥 바로 앞에 있는 우물로 생산량은 많지 않고 물이 깨끗해 일반인들 사용은 금지되고 원님만 사용했다고 하여 지어진 명칭입니다.

용천수가 아닌 봉천수이며 남문 가까이 있어 남문물이라고도 불립니다.

 

익살스럽게 재현해 놓은 똥돼지 모습

통시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초가구경하는 집

 

노다리 방죽

관청에 원정, 소지 등을 들인 사람들이 거간과 만나 의논하던 곳이며, 관속들이 쉬던 곳이라고 합니다.

사각형의 물통으로 예전에는 창포를 심어 길렀고 여자들이 머리를 감을 때 사용했습니다.

 

제주 성읍마을 객주집

 

넓은 집터에 안거리, 밖거리, 모커리, 창고, 이문간(대문간) 등 5채의 건물이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로 배치된 집입니다.

18세기말에 지어졌고 정의 고을 중심에 있는 제주 농가의 구조를 갖춘 객주입니다.

 

정의현 객사

 

지방관이 임금에게 정기적으로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를 올리는 곳이기도 하고, 중앙 관리가 내려왔을 때 머무는 숙소로서의 기능을 하는 곳입니다.

영빈관의 기능과 경로잔치, 연회를 베푸는 곳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정의현 객사 모습

객사 건물은 전국적으로 일(一)자 형태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익사의 지붕은 정청보다 한 단 낮게 만든 구조입니다.

 

성읍마을 느티나무와 팽나무군

 

이곳의 느티나무는 키가 30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는 5m에 이르고 수령은 1,000년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팽나무는 키가 24~3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2.4~4.5m에 이르고 수령이 600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성읍마을의 느티나무와 팽나무군은 천연기념물 16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성읍마을에서는 봄에 이 느티나무에 싹이 트는 것으로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고 하는데요.

동쪽에 먼저 잎이 싹트면 정의고을(지금의 제주 성읍마을) 동쪽지방에, 서쪽부터 돋아나면 정의고을 서쪽지방에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그냥 보기에도 나무가 무척 오래되어 보이긴 합니다.

 

마방터

 

성읍민속마을 중앙에 해당하는 길

 

일관헌은 느티나무 맞은편에 있는데 정의현감의 집무장소이며, 현재의 군청과도 같은 건물입니다.

사진엔 담지 못했네요.

세종 5년(1423) 정의 현청이 성읍리로 옮겨오면서 정의읍성과 함께 지어졌으며, 1975년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전통 활쏘기 체험하는 곳

 

딸아이가 심심해해서 체험을 하나 시켜 주고 싶었는데요.

곳곳에 체험시설은 있으나 겨울이라 체험을 운영하는 곳은 하나도 없더라고요.ㅠㅠ

 

고창환 고택

 

정의향교와 이웃해 있고, 19세기 초에 지은 집입니다.

20세기 초에 여인숙으로 사용한 적이 있어 여관집으로 불리기도 했다네요.

 

제주 성읍마을 주춧돌 및 기타 부재들

1423년 정의현의 읍치를 이곳으로 옮긴 이후 방치된 것들을 이곳에 모아두고 있습니다.

 

정의 향교

 

1408년(태종 8)에 서흥동인 홍로현에 세워졌다가 1420년에는 고성리로, 이후 1423년에 성읍리인 진사리 서성 밖에 건립된 이후 1849년(헌종 15)에 현 위치에 세워졌습니다.

 

 

대부분의 향교들이 남쪽을 향한 반면 정의 향교는 동쪽을 향하고 있고, 내부는 닫혀 있어 보지는 못했지만 명륜당과 대성전이 좌우로 나란히 있는 것도 특이점입니다.

 

정의현 포도대

 

이쪽은 성읍민속마을 정의읍성 서문입니다.

 

제주도 전통가옥

성읍민속마을 동문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제주도 무형문화재 3호 오메기술 기능보유자인 강경순의 오메기술 술다끄는집입니다.

 

꽃나린 공방

해녀인형, 제주캔들 체험을 하는 공간인 듯...

 

집 처마에 내려오는 짚풀이 이색적인 가옥입니다.

 

성읍민속마을 정의읍성 동문

 

읍성 모습

 

동문에 자리한 정의골 돌하르방

동백꽃이 떨어져 있어서 예쁘네요.

 

121~160cm의 키로 동문 앞 좌우에 2기씩 세워져 있는데요.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고 주술적, 종교적 의미와 도읍지의 경계를 정확히 알려주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한봉일 고택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동문 안쪽에 성벽을 끼고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읍민속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긴 했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수박 겉핣기식으로 구경했습니다.

지금까지 호객행위로 성읍민속마늘에 대한 선입관이 있었는데, 다음엔 포근하고 따뜻한 날 방문해서 체험도 하고 자세히 구경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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