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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여행

[영월 가볼만한 곳] 방랑시인 김삿갓, 영월 김삿갓 유적지

by 휴식같은 친구 2023.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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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가볼만한 곳] 방랑시인 김삿갓, 영월 김삿갓 유적지

 

 

영월군에는 이색적인 이름으로 바꾼 면이름이 몇 군데 있는데요.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수주면을 무릉도원면으로, 한반도지형이 있는 서면을 한반도면으로, 김삿갓 유적지가 있는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는 영월의 인지도를 높여 관광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진 정책으로 농산물 판매량 증가 등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김삿갓면에 있는 김삿갓(김병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김병연은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더 많이 알려진 조선후기 시인이자 서예가로 호는 난고, 본관은 안동, 별호는 김삿갓(또는 김립)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경기도 양주 출신이지만, 어렸을 때 영월에 정착했고, 20세 이후부터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전남 화순에서 죽은 후 이곳 영월 김삿갓 유적지에 묘가 있습니다.

 

난고 김병연, 김삿갓의 생애와 김삿갓 유적지를 둘러봤는데요.

김삿갓 주거지와 김삿갓 묘가 있는 곳이며, 인근에 김삿갓 문학관과 김삿갓 계곡이 있어 피서지로 사랑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김삿갓 유적지는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의 김삿갓로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강원도 영월군과 충북 단양군의 경계와 가까운 곳이며, 인근에 경북 영주시가 있는 3도 접경지역입니다.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린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입구에 돌탑과 '시선 김삿갓 유적지'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습니다.

 

김삿갓 유적지 진입로

김삿갓 유적지 내로 흐르는 곡동천입니다.

 

 

김삿갓유적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

휴무일 없음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주차공간 2~3대, 김삿갓 문학과 주차 후 도보이동)

소요시간 유적지 일대 20분 내외, 김삿갓 주거지 다녀오는데 1시간 내외

 

김삿갓 계곡 일대에 있는 김삿갓 유적지

김삿갓 계곡과 김삿갓 묘역, 김삿갓 생가와 김삿갓문학관

 

김삿갓의 시 세계, 영월 난고 김삿갓 문학관

영월 계곡, 김삿갓 계곡

 

시선 김삿갓 난고 선생 유적비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1807~1863)은 경기도 양주출생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에 특출나며 시 짓는 능력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20세에 과거 예비고사격인 백일장에 참가했는데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1811년(순조 11)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 때 가산군수였던 정시는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했지만, 선천방어사였던 김익순은 국가안보의 중책을 맡은 무관이었지만 반란군이 쳐들어오자 즉석에서 항복해 이듬해 난이 평정된 후 처형당한 사건을 논하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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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은 글을 통해 '정시를 천고의 빛나는 충신, 김익순을 백번 죽어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라며 탄핵하는 글로 장원을 차지했습니다.

기뻐하며 집으로 와 어머니께 말하자 기뻐하기는커녕 눈물을 흘리며 집안의 숨은 내력을 알려주시는데, 그렇게 비판했던 김익순이 바로 김병연의 할아버지였던 것.

 

역적의 자손인데다 조부를 욕하는 시를 적어 장원을 차지한 김병연은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죄인이라 하여 삿갓을 쓰고 스스로 김삿갓이라 부르며 유랑생활을 하며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술을 좋아하고 금강산을 특히 좋아했던 그는 전라도, 충청도, 평안도 등 삼천리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서민 속에 섞여 상류사회를 풍자하는 시를 짓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으며 살다가 1863년 3월 29일, 57세의 나이로 전라도 동복땅(화순)에서 세상을 떠났고 차남인 익균이 이곳 영월 김삿갓 묘역에 모셔온 것입니다.

김병연은 한때 도산서원 아랫마을과 황해도 곡산 등지에서 훈장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반역자는 삼대를 멸하는 풍토에서 어머니와 김병연 등 3형제가 도망쳐 숨어 살았던 것은 조선후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1800~1863)가 극에 달해 가문의 빛을 본 케이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방랑시인 김삿갓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생활시인이었고 문학적으로도 모든 욕망을 초월한 선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삿갓의 시

 

조부 김익순의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자 노목 김성수의 도움으로 어머니와 3형제는 황해도 곡산, 경기도 광주, 이천, 가평, 평창 등에서 전전하다가 영월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김삿갓 주거니는 영월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 곳을 택했고,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쳤습니다.

 

자신의 

 

김삿갓 계곡으로 흘러 들어가는 곡동천

 

김삿갓 유적지에서 계곡 너머 언덕에 김삿갓 묘역입니다.

 

김삿갓 주거지 가는 길

 

김삿갓 유적지에서 도보로 1.8km 가야 하는데, 비가 와서 포기~

 

마대산 등산안내

 

김삿갓 주거지 가는 입구에 있는 돌탑

 

김삿갓의 시비들

 

김삿갓 주거지는 1982년에 발견되었고, 2002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매년 10월 중순 김삿갓 묘역이 있는 김삿갓면 노루목 마을에서는 추모제, 추모살풀이춤, 백일장 등의 문화행사와 관광객들이 참여하는 체험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김삿갓 묘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김삿갓 묘역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 곳인가 봅니다.

 

김삿갓 묘역

 

김삿갓은 22세에 집을 나서 죽을 때까지 전국을 방랑하며 많은 시를 남겼는데요.

서민들의 애환을 시로 읊어 조선시대 서민문학의 큰 틀을 마련했습니다.

작품으로 김립시집이 있습니다.

 

2003년 10월 난고 김삿갓 문학관이 개관되어 선생의 문학세계를 한 곳에 연구적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김삿갓의 시 세계, 영월 난고 김삿갓 문학관

 

김병연은 전남 화순군 동복에서 작고한 후 그곳에 묘를 썼다가 3년 후 둘째 아들 익균이 이곳에 옮겨 모신 것입니다.

김병연의 묘소는 116년이 지난 1982년에야 확인되었고, 묘소 주변으로 시비공원을 조성한 것이라 합니다.

 

1978년 그의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우고, 1987년에는 영월에 시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김삿갓을 상징하는 지팡이?

 

김삿갓 유적지와 주거지가 있는 마대산 전망

 

김삿갓 계곡

 

 

방랑시인 김삿갓,

본의 아니게 홍경래에 투항한 할아버지 김익순을 실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스스로 인생 자체를 통째로 방랑생활을 한 풍운아로 살았는데요.

멸족에서 폐족으로, 멸문지화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벼슬이 제한적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그가 잘 하는 시를 쓰기 위해 방랑을 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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