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호국성지, 상주 임란북천전적지
상주여행 이튿날, 숙소에서 나와 임진왜란 당시 호국성지라고 하는 상주 임란북천전적지에 잠시 들렀습니다.
시골에서 예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종종 지나치기만 하다가 직접 들린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상주 임란북천전적지는 1592년(임진왜란) 때 조선 중앙군과 왜병의 선봉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장소로 900여 명이 순국한 호국성지입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일을 순찰사로 임명하여 상주 북방 북천에 진을 치고, 고니시가 이끄는 왜병 1만 7천여 명에 대항하였으나 패한 곳이죠.
당시 순국한 9위를 배향하고 있는 임란북천전적지 풍경과 태평루에서 바라본 상주 풍경을 담았습니다.
상주 임란 북천전적지는 상주시 만산동, 상주 이마트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북천변 자산 기슭에 있습니다.
1988년에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됐고, 1990년부터 사적 정화작업을 실시하여 상산관 등을 이곳으로 옮기고 충렬사를 건립하여 윤섬, 권길, 김종무, 이경류, 박호, 김준신, 김일, 박걸 및 이름 없는 용사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상주 임란 북촌전적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
휴무일 없음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무료
임란북천전적지 안내도
입구 정문으로 들어서면 좌측에 상산관이 있고, 위쪽에 태평루가 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당과 전시관, 비각, 재실 등의 충렬사가 있고 그 아래에 전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상산관
상산관은 조선시대 상주목의 객사인데요.
객사는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인 전패를 모시고 있으면서 중앙 관리의 숙소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상산관은 원래 지금의 왕산 역사공원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상주읍성과 함께 대부분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 초창된 것으로 조선시대인 1526년(중종 21)에 불탔으나 개축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는데 1606년에 재건하였습니다.
1639년(인조 14) 봄에 지금의 상주경찰서 자리로 옮겨 세웠고, 1940년에는 상주여중으로 옮겨 교실로 사용했고, 1991년에 이곳 임란북천전적지로 옮겨 지은 것입니다.
상산관은 임란북천전적지외에도 상주 태평성대 경상감영공원에도 똑같은 모습의 상산관이 건축되어 있습니다.
임란북천전적지 태평루
태평루는 조선시대 1808년(순조 8) 상주목사 정동교가 건립한 것으로 조선시대에 성행한 다포식 팔작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왕산을 중심으로 쌓은 상주읍성 관아문의 내삼문 밖에 있으면서 동헌의 문루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1920년 상주향교 동편에 있는 동산으로 옮겼고, 1960년 향교 서재부근으로 옮겨 남산중학교 교사로 사용하다가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태평루에서 바라본 상산관과 북천과 북천교
북천은 27km 길이의 상주시 일대를 흐르는 강으로 상주시 모서면과 내서면 경계에 있는 백학산(610m)에서 발원하여 내서면과 상주읍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있습니다.
상류 및 중류에는 좁은 곡간평지를 형성하나 하류에는 남천(150km)과 더불어 넓은 상주평야를 형성하며, 상주 시가지는 북천과 남천 사이에 전개된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상주 시내 풍경
임란북천전전지 순국비
안쪽으로 들어가면 충렬사가 있습니다.
임란북천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중앙관군과 의병들이 뜻을 모아 왜군의 선봉주력부대에 대항하여 최초로 접전을 벌인 전투라는 데 큰 의미가 있는 곳인데요.
충렬사는 윤섬, 권길, 김종무, 이경류, 박호, 김준신, 김일, 박걸 및 이름 없는 900여 명의 용사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한 후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이를 막기 위해 조정에서는 순변사 이일(1538~1601)을 지휘관으로 하여 중앙군을 급파했습니다.
이일은 1592년 4월 17일 순변사에 임명되었으나 이끌고 갈 병사들이 없었기에 3일이 지난 20일경에야 서울에서 출발할 수 있었고, 출발 당시 6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이일은 일본군이 상주에 진격해 오기 하루 전인 4월 23일 상주읍성에 도착, 성을 사수해야 할 목사 김해는 일본군의 침공 보고를 받고 전세가 크게 불리함을 알고는 산속으로 피신한 상태였습니다.
상주판관 권길과 상주호장 박걸은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고, 이일은 도착하자마자 권길에게 병사소집 명령을 내렸고, 권길과 박걸은 동분서주하여 그 다음날 800여 명의 병사들을 소집했으나 대부분 농민으로 구성된 비정규군이었습니다.
이일은 부산성과 동래성이 함락되고 그 이후에 양산, 밀양, 청도, 대구, 선산에서 지휘관들이 성을 비우고 퇴각한 사실 등 병력규모와 전황을 파악한 후 상주성을 포기하고, 북천 언덕 위에 부대를 배치한 다음 전투태세를 갖추었습니다.
이곳 임란 북천 전적지는 순변사 이일이 인솔해 간 중앙군과 상주 의병 800여 명 등 900여 명이 일본군 제1군 17,000여 명과 싸우다 순절한 호국성지입니다.
(다음백과 인용)
충렬사 외삼문을 통해 들어가면 좌측에 재실, 우측에 전시실, 정면에 비각과 내삼문이 있습니다.
임란기념관
18세기 말기의 고지도인 해동도
상주 임란북천전적지 개관 개요와 임진왜란에 대한 설명
상주 북천 전투 이야기
상주 전투 참여인물
상주전투 당시의 유적 및 유물
비각은 임진왜란 때 이곳 분천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3층신(종사관 윤섬, 박호, 이경류)과 2의사(의병장 김준신, 김일)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충신의사단비 복제본과 상주목판관으로 봉직 중 순국한 권길의 충절을 새겨둔 판관권길사의비가 보호되고 있습니다.
충렬사 모습
충렬사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풍렬사 사당이 있습니다.
임란북천 전투에서 희생당한 8인과 무명용사들의 위패
충렬사에서 바라본 북천 풍경
임란북천 순국비
상산관 앞 소나무
침천정
조선시대 1577년(선조 10)에 상주목사 정곤수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고 연당이라 이름지어 선비들이 시를 쓰거나 휴식을 하던 관청 건물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2년(광해군 4)에 상주목사 한솔이 중건, 1693년(숙종 19)에 목사 이항이 연지를 홍백연당으로 고치고 이향정이라 불렀습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상주읍성이 헐릴 때 유지 몇 명이 정자를 사서 이곳에 옮겨 침정전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침정전과 대나무
조선시대 객사였던 상산관
가운데에 본관을 두고 양쪽에 동익헌과 서익헌이 붙어 있습니다.
상산관에서는 삼백 차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더군요.
상주 옹기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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