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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근대문화유산 탐방, 양림역사문화마을 풍경 (이장우가옥)

by 휴식같은 친구 2025.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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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근대문화유산 탐방, 양림역사문화마을 풍경 (이장우가옥)

 

 

광주 양림역사문화마을은 100여년 전 광주 최초로 서양 근대문물을 받아들인 통로이자 희생과 나눔공동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양림역사문화마을은 광주의 근대문화유산을 탐방할 수 있는 곳이랍니다.

 

숙소에서 나와 양림역사마을과 펭귄마을을 둘러보러 이동했는데요.

겨울의 아침시간이라 인적은 없고 추워서 구경하기가 쉽지는 않았네요...ㅠㅠ

 

아무튼 양림역사문화마을에는 서양식 근대건축물과 한옥이 어우러진 역사와 문화의 공간인데요.

그 마을 풍경을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양림역사문화마을 입구에 공영주차장이 있습니다.

 

2시간은 무료, 이후 추가 10분당 500원입니다.

양림역사문화마을과 펭귄마을을 모두 둘러보는데 천천히 다녀도 1시간이면 충분하고,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기에 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양림역사문화마을에서 볼거리

근대와 현대의 다양한 매력이 있는 곳인데요.

 

광주의 의료와 교육을 발전시킨 우일선 선교사의 사택

조선 상류층 가옥의 풍채가 전 해지는 이장우 가옥

민주화의 어머니이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신 조아라 여사를 기리는 조아라기념관

농촌을 살리기 위해 애쓴 농촌지도자 어비슨의 기념관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다 순교한 오웬을 기리는 오웬기념각

정율성 업적과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정율성 거리

주민들과 예술 가들이 폐품을 모아 예술작품으로 꾸며낸 펭귄마을

 

양림역사문화마을 안내도

 

전 이장우가옥과 펭귄마을만 돌고 왔는데, 양림동 전체를 다 구경하고 사직공원 전망타워까지 모두 구경하려면 2시간 정도는 소요되겠더군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탐방객 쉼터

 

양림역사문화마을은 광주 도심에 있는 양림동에 위치하는데요.

양림이라는 말은 광주천변에 버드나무숲이 있는 마을이란 의미의 양촌과 유림에서 한 자씩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역사문화마을은  근래에 와서 기독교유적과 전통문화유산이 양림동 인근에 몰려 있어서 지은 것이며, 일제강점기에 선교사들이 교회를 열고 학교와 병원을 세워 광주의 예루살렘, 서양촌이란 별칭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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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에 근대문화유산이 들어서게 된 것은 1904년 망 미국 선교사 배유지(Eugene Bell, 1868~1925)와 오웬(Clement C. Owen, 1867~1909)이 목포를 통해 광주로 들어와 양림리 동산에 자리잡은 것이 시초입니다.

선교사들이 양림동에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제중원 등을 지으면서 오늘날 양림동 역사문화마을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죠.

 

또한 양림동에는 선교유적 외에도 이장우 가옥이나 최승효 가옥으로 명명된 전통가옥, 정엄 정려비와 정엄이 길렀던 개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개 석상 등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시인 김현승, 작곡가 정율성과 같은 문화예술인이 이 지역에 살았으나 신시가지가 생기고 아파트가 들어서며 양림동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가, 최근 그 가치를 인정받아 재조명받고 있는 곳입니다.

 

담벼락의 주인공은 이곳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운 서서평입니다.

 

서서평(1890~1934,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Elisabeth Johanna Shepping))은 독일출신 미국 선교사로 32살 처녀의 몸으로 조선에 온 그녀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광주선교부 제중원의 간호사로 시작해 54세 죽을 때까지 22년 동안 일제점령기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던 광주의 궁핍한 지역을 중심으로 제주와 추자도 등에서 간호선교사로 활동했습니다.

 

미혼모, 고아, 한센인, 노숙인 등 가난하고 병약한 많은 사람을 보살펴 ‘나환자의 어머니’라 불릴 정도였는데요.

급여 대부분을 빈민과 병자, 여성을 위해 사용했으며, 입양하여 키운 고아가 14명, 오갈 곳 없는 과부를 가족처럼 품어 집에서 같이 지낸 사람이 38명이라고 합니다.

 

임종 때에는 자신의 시신을 의학용으로 기부하는 등 모든 것을 주고 떠난 그녀의 머리맡에 한 마디 글씨가 써져 있었습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

 

서서평은 광주 최초로 시민사회장으로 장례를 했습니다.

 

광주 정씨 정엄 선생의 효자비와 충견상

 

양촌공 정엄은 정만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남원부사와 나주목사, 예조판서와 8도 관찰사를 역임하며 선정을 베푼 관리인데요.

부모님을 모시는데 지극정성으로 효자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사자모양의 석상은 양천이 기르던 개의 모습이라고 하는데요.

당시 이 개는 통신연락을 하던 충견으로 엄동설한에 임신한 개를 급한 일로 한양으로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9마리의 새끼를 낳고 한 마리씩 주인이 살고 있는 곳까지 나르고 마지막 새끼를 나르다 그만 지쳐 죽었다고 하네요.

 

자신의 실수로 개가 죽었다고 자책하며 개의 조각을 만들어 추모했고, 양촌공 효자비가 세워질 때 충견상도 옮겨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읽어보니 무척이나 슬픈 내용이네요. ㅠㅠ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정우 가옥이 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문간채로 구성된 근대한옥입니다.

 

제법 넓은 가옥이고, 원래 일본식 정원이었으나 2009년엔 광주 비엔날레의 특별전시장소로 활용되면서 한국식 정원으로 다시 조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부호였단 정낙교의 아들 정병호가 1899년 안채와 1935년 문간채를 건축, 동신대와 동신중고교 설립자 동강 이장우 박사가 1959년에 매입한 것입니다.

매입 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까지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좌측 안쪽에 자리한 안채 모습

 

이장우 가옥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근대 초기 전통 상류 가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양림문화샘터

 

양림로터리에 세워져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어느 가게 앞모습

 

좌측으로 들어서면 펭귄마을로 갈 수 있습니다.

 

양림동 행정복지센터

 

행정복지센터 옆에는 광주 남구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버드나무

 

조선 중기부터 휘늘어진 버드나무가 무성하다고 하여 양림으로 불렸으나 일제강점기에 강을 공사하면서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현재의 이 버드나무는 1943년 학강초등학교 개교 시에 심었던 것인데 2015년 태풍으로 뿌리까지 뽑힌 것을 주민들이 양림동의 상징인 버드나무가 사라진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이곳에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버드나무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펭귄마을이 있습니다.

 

펭귄마을은 양림동 주민센터 뒤에 펭귄 모양의 이정표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들어가면 70·80년대 마을이 전시장으로 변모한 곳인데요.

무릎이 불편한 어르신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펭귄 같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마을이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왠지 서글퍼지네요.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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