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충사는 사라봉아래, 사라봉공원에 있는 자리하고 있는 사당인데요.
한말 의병들과 항일 투장가 그리고 김만덕의 넋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1976년 도민들의 성금으로 세운 것입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을 기리고, 제주 도민들의 강인한 정신과 애국심을 되새기는 장소로 인정받고 있는데요.
모충사란 이름은 사찰이름이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순국한 열사들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사모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충사에는 김만덕 묘를 비롯해 김만덕할망기념탑, 제주의병 항쟁기념탑과 순국지사조봉호기념비가 있습니다.
사라봉공원에 있는 모충사
사라봉공원은 건입동 사라봉에 조성된 공원입니다.
국립제주박물관, 제주시 청소년수련관, 제주시 평생학습관, 제주 국민체육센터, 우당도서관, 모충사(김만덕 기념비, 의병항쟁 기념탑, 조봉호 기념비), 보림사, 별도봉, 사라봉, 사라사, 산지등대, 사라봉 팔각정 전망대, 사라봉 봉화대, 사라봉 축구장과 궁도장 등 사라봉공원에는 볼거리와 즐길거리, 역사적인 명소들이 가득합니다.
모충사 입구 정면에 있는 의병항쟁기념탑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순국지사조봉호기념비, 오른쪽에는 김만덕할망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는 김만덕 묘가 있습니다.
아울러 입구 오른쪽에는 제주시 타임캡슐이 있고, 이곳을 돌아볼 수 있는 숲길이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는 곳입니다.
2001년에 세워진 제주시 타임캡슐
20세기의 문화유산 자료를 수장하여 1천년 후인 2001년 1월 1일에 개봉하도록 했습니다.
제주도의 모든 분야를 5개 분야 590개 품목으로 나누어 수장했는데요.
타임캡슐은 제주를 대표하는 돌하르방 모양을, 매설지 조형물은 외부로부터 공격을 막는 방사탑 모형으로 꾸몄습니다.
세 개의 탑 아래에 조성된 산책로
가장 좌측에 있는 순국지사 조봉호기념비로 이동했습니다.
단정하게 조성된 모충사 정원
순국지사 조봉호기념비
조봉호는 1884년 제주 한림읍 귀덕리에서 부농 조만형의 장남으로 태어나 19세 때부터 경신, 숭실학교 등에서 수학하고 기독교에 귀의한 후 1912년 애월읍 금성리에 교회를 건립하고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독립희생회를 조직, 4550여명으로부터 헌금 일만원을 모아 상해로 송금했는데, 이것이 바각되어 60여 명이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조봉호는 모든 책임을 홀로 감당하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 중 1920년에 37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조봉호는 생명과 재간 모든 것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했으나, 유해도 유가족에게 인계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잠든 묘도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1977년 도민의 이름으로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하였습니다.
순국지사 조봉호기념비에서 바라본 한라산 백록담 주변의 설경
중간에 있는 기념탑은 제주의병항쟁 기념탑입니다.
제주의병항쟁은 1909년 2월 25일, 의병장 고사훈, 이중심과 격문 작성자로 창의 실질적 역할을 담당한 김석윤 그리고 김만석, 노상옥, 김재돌, 양남석, 조병생, 양담평, 한영근 등 10여 명의 발의로 시작되었습니다.
제주의병항쟁은 만여 명의 의병을 규합하여, 1909년 3월 3일 관덕정 광장에 집결하여 일본인 관리들을 축출하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으나, 모병 단계에서 비밀이 탄로 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제주의병항쟁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제주 항일운동사에서 불타는 일본 침략에 항거하는 도민의 주체적 대응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항일 의식이 더욱 고취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이 의병항쟁 기념탑은 바로 이러한 의병 창의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한라산과 모충사 입구 모습
세 번째 기념비는 의녀반수 김만덕 의인묘라고 적힌 김만덕 할망기념탑
김만덕(1739~1812년)은 조선 후기 제주도의 대표적인 여성 사업가이자, 구휼 활동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기적(기녀 신분)에 오르게 되었으나, 23세 무렵 관헌의 허락을 받아 신분을 벗어나 평민(양녀) 신분이 되었습니다.
이후 장사로 큰 부를 이루고, 독신으로 살아갔습니다.
1794년 제주도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김만덕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쌀을 사들여 제주 주민을 구제하는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정조 임금은 김만덕을 가상히 여겨 소원을 물었고, 그녀는 한양 구경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궁궐을 둘러보는 것을 허락하고, 국비로 금강산 여행을 지원하였습니다.
김만덕은 1812년, 74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으며, 그녀의 묘는 애월읍 봉성리에 안장되었습니다.
이후 1977년 시신이 이장되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습니다.
김만덕의 정신은 ‘근검, 절약, 박애정신’으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제주시 동문시장 근처, 건입동 산지천 앞에 김만덕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김만덕 기념관이 있고,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엔 김만덕이 과거 이곳에 객주를 차리고 영업활동을 했던 김만덕 객주가 있습니다.
[제주 박물관] 김만덕 기념관 전시 모습(입장료, 주차장)
제주도민들에게 있어서 김만덕은 제주의 상징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데요.
제주인의 공동체 정신과 나눔을 상징하고,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은 제주 여성의 롤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만덕할망기념탑 아래에 있는 의녀반수 김만덕의 묘
1912년부터 애월읍에 있던 것을 기념탑을 세우면서 1977년 이곳으로 이장된 곳입니다.
"세상에 널리 은혜를 빛내다"라고 적혀 있는 김만덕 묘비
원문의 비문에는 그의 생몰시기, 출신, 성장과정, 재산형성과 진휼과정, 상경과 금강산유람, 용모, 후손 등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마다 한라문화제 때 의녀 김만덕의 훌륭한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이때 제주도 일원에서 사회봉사에 힘쓴 여인을 선정하여 만덕봉사상을 수여하고 있답니다.
모충사 산책로에 조성된 숲
모충사는 한말과 일제강점기 독립을 외치던 사람 그리고 어려운 시절 자신의 재산을 털어 제주도민들을 구휼한 김만덕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사당입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주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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