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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제주 박물관] 김만덕 기념관 전시 모습(입장료, 주차장)

by 휴식같은 친구 2023.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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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박물관] 김만덕 기념관 전시 모습(입장료, 주차장)

 

 

거상 김만덕은 제주도 출신으로 어려서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기생의 몸종으로 의탁했다가 20세에 제주목사에게 찾아가 부득이 기녀가 된 사정과 양인으로 환속시켜 줄 것으로 요청했습니다.

 

제주도 특산품을 육지에 팔고 미곡을 사들여 제주에 팔며 상인으로서 부를 축적했는데, 1790년(정조 14)에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자 자신의 재산으로 곡물을 사들여 구호를 한 의인입니다.

 

김만덕의 나눔과 봉사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주도에 김만덕 기념관이 들어섰고,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나눔문화전시공간이 되었습니다.

 

제주를 살린 빛, 김만덕의 정신을 기리고 이어받기 위한 김만덕 전시관의 입장료, 주차장 등 관람정보와 전시모습을 담았습니다.

 

김만덕 기념관은 산지천 하류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지천 주변 올레길 18코스에 해당하는 부분을 걸었는데, 산짓물공원과 산지천갤러리, 제주책방으로 사용 중인 고씨주택과 복수구광장 등 볼거리가 많이 있으니 구경하고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산지천 산책로의 글귀 너머에 김만덕 기념관이 있습니다.

 

김만덕 기념관 앞 만덕동산

 

 

김만덕 기념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과 추석연휴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제주시 임항로 77 또는 산짓물 공영주차장 건입동 1328-6)

 

김만덕 기념관 관람코스

1층 나눔문화관 상징조형물 - 3층 상설전시장 - 2층 나눔실천관 - 1층 나눔문화관

 

김만덕 기념관에서는 팝업카드와 종이극장 만들기 체험이 있고, 1, 2층에서는 청년 작가전이 6월 23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김만덕 동상

 

1, 2층에 걸쳐 세워져 있는 김만덕 상징조형물 '은광연세'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진다는 의미로 추사 김정희의 글씨인데요.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 왔을 때,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어도 김만덕의 선행이 칭송받자 그의 선행을 기려 3대 손인 김종주에게 써준 글씨라고 합니다.

 

먼저, 3층 상설전시실, 은혜로운 빛을 만나다로 올라갑니다.

 

 

의인 김만덕의 생애를 살펴보는데요.

김만덕은 실존 인물로 당대 유명인이었음을 소개하여 역사적 사실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도전과 나눔이라는 김만덕 정신과 나눔에 대한 포상으로 정조를 만나 금강산을 유람한 김만덕의 비범함을 볼 수 있습니다.

 

김만덕 기념관 상설전시장 입구에는 정조의 특명으로 지어 올린 만덕전이 있습니다.

 

김만덕은 조선시대의 엄격한 신분제도를 넘고 여성의 몸으로 상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이루었으며, 굶주리는 제주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은 의인이었습니다.

 

이런 김만덕의 나눔정신에 감동한 정조 임금은 김만덕의 삶을 널리 알려 자신의 개혁의지를 밝히고자 신하들에게 김만덕 전기를 집필하라고 했습니다.

 

김만덕에 대해 나온 자료들로 오원집, 추재집, 고식, 운곡집, 금대시문초, 이향견문록, 이면승의 감은편 등에 나와 있네요.

 

정조대왕의 기록

 

채제공과 정약용, 박제가의 기록들

김만덕이 조선시대에 얼마나 인정받는 의인이었는지를 당대의 대학자들의 기록에서 알 수 있네요.

 

상설전시실에서 바라본 산지천 풍경

 

제주 산지천 풍경(산지천 갤러리, 고씨주택/제주책방, 산짓물공원)

 

김만덕의 생애

 

김만덕은 김해 김씨로 구좌읍 동복리에서 태어났는데요.

아버지는 전라와 나주를 오가며 제주의 미역, 전복, 귤 등을 팔고, 육지의 쌀을 제주에 가지고 와서 파는 상인이었습니다.

아버지 김응렬은 김만덕이 11세 되던 해에 나주에서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사망하였고, 이듬해에 어머니도 그 충격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외삼촌 집에서 살았던 김만덕은 퇴기 월중선에게서 성장하게 되며 어린 나이에 기적에 오르게 되었는데요.

20세가 되자 제주 목사를 찾아가 부모를 잃고 가난으로 부득이 기녀가 된 사연과 양인으로 환속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제주목사의 배려로 양인으로 신분을 회복한 김만덕은 포구가 지닌 상업적 중요성을 미리 읽고 건입포구에서 물산객주를 차려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객주의 종류

객주는 조선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온 상인들의 거처를 제공하며 물건을 맡아 팔거나 흥정을 붙여주던 상인이나 집을 말합니다.

 

 

불상객주(물산객주) 객주의 원래 유형으로, 주업인 위탁매매, 부업인 숙박, 금융, 도매, 창고, 운반 등의 업무

여각 여상의 객주라는 의미로 미곡, 소금, 과채, 시탄(땔나무) 등을 취급하며 창고와 마방이 있었음

만상객주 중국상인을 상대하던 객주, 중국산 고급상품과 약재 등을 취급

보상객주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상대로 하는 객주등짐장수는 무게가 큰 물건을, 봇짐장수는 부피가 작고 값진 특산물 판매

보행객주 일반 보행자에 대한 숙박만을 본업으로 하는 객주

환전객주 대금 등 금융의 주선만을 전문으로 하는 객주

무시객주 언제 어디서나 사용되는 일용품을 다루는 객주(조리, 술, 바가지, 수수비, 삼태기, 절구 등)

 

조선시대의 신분제도

 

12세에 부모를 여의고, 만덕은 여자라는 이유로 기녀 집에 맡겨지게 됩니다.

기녀 명부에 등록되고 23~24세 때 기적에서 벗어났습니다.

제주목사 신광익이 딱하게 여겨 양인 신분으로 되돌려준 것입니다.

 

김만덕의 장사원칙

정직하게 박리다매로 판다는 게 가장 중요한 원칙임을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김만덕은 물산객주를 운영하여 제주 제일의 거상이 됩니다.

 

제주 특산물인 말충, 미역, 전복, 표고, 버섯, 양태, 우황, 약초, 녹용, 귤 등을 수집했다가 육지 상인에게 공급하고, 제주의 양반 부녀자나 기녀들을 대상으로 육지의 옷감, 장신구, 화장품 등을 파는 유통업을 했습니다.

아울러 척박한 제주에서는 귀한 육지의 쌀과 소금을 들여와 시세차익을 남기며 장사했죠.

 

1794년(정조 18) 갑인년에 제주도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백성의 죽은 시신이 더밀 쌓여가자 임금이 곡식을 배에 싣고 가서 구제하기를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정조 19년(1795) 윤 2월 진휼곡 5000석을 실은 배 12척 중 5척이 바다에서 난파되고 이즈음 제주 백성 1/3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노기 만덕은 스스로 그의 재산으로 육지 쌀 3백석을 사들여 제주 사람들을 위해  관가에 날랐고, 저축했던 6백 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온 고을의 백성들이 10일의 목숨을 연장시킨 양이었다고 합니다.

 

김만덕의 이야기가 영상으로 나옵니다.

 

김만덕의 2가지 소원

만덕의 선행이 조정에 알려지자 정조는 상을 내렸으나 김만덕은 이를 사양했습니다.

 

 

정조가 만덕의 소원을 물어보라 하자, 만덕은 서울에 가서 왕궁을 보고, 금강산을 유람하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제주는 출륙금지가 엄했던 시기라 더욱이 여성이었던 만덕이 제주를 벗어나기는 무척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난생처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해남, 강진, 나주, 장성, 정읍, 공주, 천안, 수원을 거쳐 한양까지 가마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한양 궁을 관람하고 꿈에 그리던 금강산 유람까지 다녀오게 되죠.

 

김만덕 기념사업

 

김만덕의 묘소 주변에 자동차 정비공장이 들어서자 김만덕 기념사업회를 조직해 사라봉에 있는 모충사에 1977년 묘를 이장했습니다.

모충사는 한일 의병투쟁가와 김만덕의 넋을 기리고자 도민들의 성금으로 1976년 사라봉 기슭에 세운 사당입니다.

 

[제주오름] 제주 일몰명소, 사라봉(사라오름, 사라봉공원)

 

의녀반수 김만덕 의인 묘

1977년에 건립된 묘탑입니다.

 

김만덕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1980년부터 김만덕상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고, 그런 김만덕을 기리기 위해 만덕제를 매년 봉행되고 있답니다.

 

세상에 나눔의 빛을 밝힌 사람들

김만덕처럼 나눔을 실천한 사람들의 활동내용과 역대 김만덕상 수상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바라본 건입항 포구

1700년대 후반 김만덕이 이 포구에서 객주를 열어 돈을 번 후 제주민들을 살린 곳이네요.

 

2층으로 내려오면 나눔실천관, 은혜로운 빛을 따르다입니다.

 

나눔의 의미와 필요성, 실천방법을 체험으로 배워가는 곳입니다.

나눔기본법에 근거하여 인적나눔, 물적나눔, 생명나눔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나눔이 필요한 이유

 

상부상조의 나눔

두레, 품앗이, 수눔(제주도의 품앗이와 비슷)

 

인적나눔 - 자원봉사란?

 

물적나눔 - 현금기부

 

생명나눔 - 헌혈

 

2층과 1층에서는 봄을 맞아 10명의 청년작가전이  6월 23일까지 전시되고 있습니다.

 

청년작가전 2층 전시 모습

 

1층 청년작가전 전시모습

 

 

 

 

 

1층에 있는 나눔문화관, 은혜로운 빛이 퍼지다

나눔문화활동, 커뮤니티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김만덕 기념관을 관람하고 나와서 제주항 방향의 임항로를 따라 200여 미터 이동하면 김만덕 객주를 재현해 놓은 곳이 있습니다.

이곳까지 관람하면 좋겠네요.

 

[제주여행] 제주도 거상, 김만덕 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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