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은 조선후기 궁궐로 광해군 재위 때 지어 인조부터 철종 대까지 왕이 거동할 때 머무르던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함께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하나로 유일하게 정궁(법궁)으로 사용한 적이 없는 궁궐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정궁과 별궁 중 유일하게 원형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궁궐이라 경희궁이라기보다는 경희궁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현재는 경희궁 전체의 원형이 크게 훼손된 가운데 숭정전과 자정전, 태령전 등 3개의 전각만 복원된 상태입니다.
(경복궁은 그래도 임진왜란 때 10% 정도는 남아 있어 중건함)
조선후기에 정궁이었던 창덕궁에 이은 제2의 궁궐 체제로 운영했던 곳이며 많은 왕이 경희궁에서 제법 많은 시간 동안 거처하면서 창덕궁의 기능 일부를 수행했던 곳입니다.
당시 창덕궁과 창경궁은 경복궁 동쪽에 있어 동궐이라 불렀고, 경희궁은 서쪽에 있어서 서궐이라 불렀습니다.
오랜만에 경희궁을 찾아 복원한 전각 등을 구경하고 왔네요.
조선시대부터 헐리기 시작한 경희궁은 일제강점기엔 남은 전각마저 철거되어 학교가 들어섰던 경희궁 풍경을 담았습니다,

경희궁 흥화문
경희궁 창건 당시 창경궁의 제도를 따라서 규모를 작게 하여 정문도 단층으로 세웠습니다.
경희궁 정문으로 원래 지금의 구세군회관 빌딩 자리에서 동쪽인 종로를 향하게 지었습니다.
(지금은 흥화문터 표지석만 있고, 금천을 지나는 금천교는 서울역사발굴관 앞에 재현되어 있음)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도로가 확장되면서 흥화문은 원래 위치로부터 뒤로 옮겨지고, 문의 방향도 도로와 나란히 남향으로 바뀌었습니다.
1932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찰인 박문사로 옮겨 정문으로 사용했고, 광복 이후엔 박문사 터에 차례로 들어선 영빈관과 신라호텔 정문으로 쓰다가, 1988년 옛 개양문이 있던 이 자리로 옮겨진 것입니다.
원래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5개로 정문인 흥화문, 동쪽에 홍원문, 서쪽에 숭의문, 남쪽에 개양문, 북쪽에 무덕문 등이 있었다고 하고요.
경희궁 근처 얕은 고개를 야주개(경희궁을 야주개 대궐이라고도 불렀음)라 불렀는데, 이는 흥화문의 현판 글씨가 명필이라 밤에도 빛나 그 광채가 고개까지 훤하게 비추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대강당 이름이 야주개홀이라고 합니다.


경희궁 주차장과 주차장 진입로 모습
아래쪽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있고, 과거엔 이곳 역시 경희궁 부지였습니다.
경희궁(경덕궁)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 ~ 18:00
휴무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공휴일이 월요일인 경우 정상개방)
관람료(입장료) 무료
주차장 입구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이용(기본 1시간 1,000원, 이후 5분당 400원)
관람 소요시간 20~30분

경희궁으로 가는 길
1617년(광해군 9) 당시 광해군은 창덕궁을 흉궁이라고 꺼려 길지에 새 궁을 세우고자 하여 인왕산 아래에 인경궁을 창건하였다가 다시 정원군의 옛 집에 왕기가 서렸다는 술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궁을 세우고 경덕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이 궁에 들지 못한 채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나고, 결국 왕위는 정원군의 장남에게 이어졌으니 그가 곧 인조입니다.
인조가 즉위하였을 때 창덕궁과 창경궁은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으로 모두 불타 버렸기 때문에, 인조는 즉위 후 경덕궁에서 정사를 보았습니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복구된 뒤에도 경덕궁에는 여러 왕들이 머물렀고, 이따금 왕의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하였습니다.
제19대 숙종이 회상전에서 태어났고, 융복전에서 승하했고, 제20대 경종 또한 경덕궁에서 태어났고, 제21대 영조는 여기서 승하하는 등 정조, 순종, 현종 등과 인연이 깊은 궁궐입니다.

1620년 창건 때 정전, 동궁, 침전, 제별당, 나인입주처 등 1,500칸에 달하는 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1829년(순조 29) 큰 불이 나 회상전, 융복전, 흥정당, 정시각, 집경당, 사현각 등 궁내 주요 전각의 절반 가량이 타서 재건했고, 이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의 많은 전각들을 해체(5개만 남기고)했다고 합니다.
1907년에는 경희궁지에 통감부 중학이 세워졌고, 일제강점기인 1910년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남아있던 전각들도 모두 헐려 궁궐로서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남아 있던 5채 모두 매각됐고, 흥화문은 수십 년이 지나 되돌아온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이곳은 경성중학교 대신 서울중고등학교로 사용되면서 주변 대지 일부가 매각되어 궁터가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1980년 서울고가 서초구로 이전한 후 민간에 매각되었다가 1984년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하고 발굴조사를 실시했는데요.
그땐 이미 서울시에서 서울시교육청,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이 지어진 상태라 경희궁 터는 상당량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서울중고등학교가 있던 부지

경희궁에는 다음과 같은 전각들이 있었습니다.
정전인 숭정전, 후전인 자정전, 주변에 수어소인 태령전, 흥정당, 존헌각, 석음각 등이 있었고 회상잔, 융복전, 동서에 별실, 죽정, 장락전, 광명전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중 현재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 등 3채의 전각만 복원된 상태입니다.

경희궁 숭정전 정문인 숭정문
왕의 즉위식이나 조참 등 국가의식을 행하던 곳으로 정사를 드높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617년~1623년(광해군 9~15) 경덕궁(현 경희궁)을 창건할 당시 지어진 건축물로, 조선의 제20대 왕 경종, 제22대왕 정조, 제24대왕 헌종 등이 숭정문에서 즉위식을 가졌습니다.
1829년(순조 29) 대화재로 경희궁의 주요 건물들이 소실되었고, 고종 때 경복궁 중건을 위해 경희궁 대부분의 전각을 헐었을 때도 숭정전, 흥화문, 황학정 등과 함께 숭정문 만은 그 피해를 면했습니다.
그러나 1908년(융희 2) 일제에 의해 숭정문도 결국 훼철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복원되지 못하다가 1980년 경희궁 터가 사적으로 지정되고, 1985년부터 경희궁 터의 발굴 조사 및 복원 사업이 실시되면서 숭정전과 함께 숭정문도 복원되었습니다.

숭정문에서 바라본 경희궁지 모습
모두 궁궐터였지만, 주변은 모두 고층건물로 들어서 있네요.

경희궁 숭정전 앞마당과 품계석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 등 국가 의식을 행하던 곳입니다.
광해군 때에 지어진 본래의 전각은 일본사찰인 대화정 조계사(당시 일본식 사찰)에 매각되었고, 광복 이후 조계사 터에 동국대가 들어서면서 정각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동국대학교 정각원은 경희궁 숭정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829년(순조 29)에는 대화재가 일어나 경희궁의 주요 건물인 회상전, 융복전 등이 소실되었으나, 숭정전만은 그 피해를 면하여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지만 그 자리에 돌아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경희궁 터에 위치한 숭정전은 1995년에 숭정문과 함께 복원된 것입니다.

고종 때 경복궁의 중건에 필요한 자재를 충당하기 위해 경희궁의 전각을 헐어 경복궁 재건에 이용하였는데요.
경희궁의 대부분이 전각이 훼철되었고, 숭정전, 회상전, 흥정당, 흥화문, 황학정 등 몇 개의 전각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황학정은 1890년(고종 27) 회상전의 북쪽에 지었던 정자로, 1923년 민간인에 매각되었다가 현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의 사직공원 뒤편에 옮겨져 있답니다.
1897년 경운궁(오늘날 덕수궁)이 대한제국의 법궁이 되면서, 경운궁 근처에 위치했던 경희궁은 국가의 주요 행사를 치르거나 군사 훈련을 하는 장소 등으로 활용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숭정전은 문과 벽을 제거하여 장대(장수가 올라서서 지위, 명령을 하던 건물)로 개조되었습니다.


숭정전 내부 모습은 조선 5대 궁궐의 정전과 동일하게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가 놓여 있습니다.

숭정전에서 바라본 숭정문 방향 모습


숭정전 양쪽의 회랑

숭정전 뒤쪽엔 경희궁 편전인 자정전으로 이어지는 자정문이 있습니다.
숭정전의 서북쪽 뒤편에 위치하고 있고, 1868년(고종 5) 철거되었다가 1998년 복원되었습니다.

경희궁 자정전
자정전은 경희궁 편전으로 신하들과 함께 정무를 보고 나랏일을 의논하던 곳이며 자정은 '정사를 돕는다'는 뜻입니다.
2단의 돌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 정방형 팔작지붕으로 1620년(광해군 12)에 완공되었다가 고종 때 경복궁 재건 당시 자정전 건물을 사용해서 철거되었던 전각입니다.
2001년 경희궁 정전인 숭정전 북쪽 뒤편에 복원한 것입니다.
이후 숙종 승하 때는 왕가의 관을 보관하는 빈전으로 사용하였고, 조선후기에는 선왕들의 어진과 위패를 임시보관하는 장소였으며, 고종의 어진과 위패가 이곳에 봉안되었습니다.
자정문과 자정전 사이에는 원래 혼령이 드나드는 길인 복도각이 있었으나 현재는 복원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자정전 뒤쪽 담장 모습

경희궁 태령전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내부는 총 10칸의 하나로 뚫려 있는 공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태령은 넉넉하고 편안하다는 뜻으로 지금의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를 모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자정전의 서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임금들의 어진을 봉안하던 곳으로 원래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 않았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후 영조의 어진이 그려지자 1744년(영조 20)에 이곳을 중수하여 보관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 당시 경복궁 전각의 자재로 사용되어 훼손된 것을 지난 20001년에 서궐도안을 참조하여 복원했습니다.

태령전 내부에 봉안되어 있는 영조 어진 모사본
내부는 전부 뚫려 한 공간으로 쓸 수 있게 했습니다.

태령전 정면에는 삼문 형태의 태령문이 위치합니다.

그리고 태령전 뒤쪽에 넓은 암반이 나옵니다.
경희궁 창던 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옆엔 서암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암천으로 불리는 바위 속에 샘이 있어 예로부터 경희궁의 명물이었던 곳입니다,
그 이름으로 인해 광해군이 이 지역에 역희궁을 지었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1708년(숙종 34)에 이름을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있다는 의미로 서암으로 고치고 숙종이 직접 한자를 적어 새겨 두게 했습니다.
당시 숙종이 쓴 사방석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서암에서 바라본 경희궁 모습
경희궁은 보다시피 98% 이상 훼손된 곳으로 전각이 전혀 없었던 궁궐이었습니다.
경희궁지 자체도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 등이 들어서 있어 좁아져 있고, 그 수많은 정각들 중에서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 등만 복원되어 있는 쓸쓸한 궁궐입니다.
원래대로의 경희궁 복원조차 불가능해진 경희궁, 왠지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슬픔이 반영되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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