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1908~1932)는 1932년 4월 백범 김구의 지시를 받아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장절 및 전승기념식에서 폭탄을 던져 성공시킨 우리 민족의 영웅입니다.
24살의 젊은 나이에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던진 의인으로서 역사적인 존경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는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의거와 함께 ‘한국 독립운동의 2대 쾌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매헌 윤봉길은 예산 덕산온천 인근에서 태어나 자랐고,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23세까지 살며 농촌계몽운공을 펼치던 곳입니다.
이러한 윤봉길 의사의 넋을 위로하고 기리기 위해 그가 살았던 곳을 1972년 사적으로 지정했고, 윤봉길의사 유적지를 조성해 성역화한 곳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봉안한 충의사, 4세까지 살았던 생가인 광현당, 중국 망명 전 23살까지 살았던 저한당, 윤봉길 의사의 유품을 전시라고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 상하이 의거를 기리는 의거기념탑, 농촌부흥운동을 한 부흥원 등이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 유적지
너른 주차장에서 곧바로 오르면 충의사가 있습니다.
윤봉길의사 유적(충의사 및 윤봉길의사기념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
휴무일(휴관일) 매주 월요일, 설과 추석 당일(휴관일이 휴일이면 다음날)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소요시간 기념관 30분, 유적지 1시간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이곳 윤봉길의사 유적 외에도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서초구 양재시민의숲역 앞에 있습니다.
사단법인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며, 예산의 윤봉길 의사유적은 예산군에서 운영하는 것입니다.

윤봉길의사 유적지 안내도
주차장 위쪽에 삼문과 충의사가 있고,
왼쪽에는 사적비와 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의사어록탑이 있으며,
아래쪽 도로 건너에는 저한당과 의거기념탑, 윤봉길의사동상이 있고,
그 아래 도중도교를 지나면 광현당, 유허비, 부흥원 등이 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른 것이라서 충의사와 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의사어록탑만 구경하고 나머지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충의사 올라가는 길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현 광현당)에서 윤황과 김원상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18년 11세에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식민지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이듬해 자퇴했습니다.
13세에 한문공부를 시작한 후 성주록 오치서숙에서 수학했고, 이때부터 한학과 더불어 신학문과 민족문제, 농촌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0세에는 야학과 교재로 3권의 농민독본을 저술하여 농본국가의 당위성을 강조했고, 부흥원 설립 및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문맹 퇴치운동과 농민운동에 전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감시 속에 농촌계몽운동만으로는 식민지의 삶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독립운동의 길을 찾아 1930년 3월 고향을 떠났습니다.
1931년 상하이에 도착,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된 이후, 1932년 4월 29일 일본 국왕의 생일인 천장절과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을 겸한 기념식장에서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로 인해 상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을 비롯한 여러 명의 일본인 수괴를 죽이고, 부상 입힌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죠.
그해 12월 19일 25세의 나이로 일본 가나자와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1946년 일봉산,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환국하여 현재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묘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이봉창/윤봉길/백정기/안중근), 임정요인 묘역

충의사 홍살문
조선시대 궁이나 관아, 능원묘 등을 비롯해 열녀나 충을 실천한 사람의 집이나 묘 앞에 설치했던 홍살문인데요.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에도 이렇게 홍살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충의사 삼문

4.29 상해의거 포토존

충의사 삼문

윤봉길 의사의 영정이 있는 충의사 모습
정부에서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65년에 기념탑을 세웠고, 충의사는 1968년에 세운 것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영정
조선시대의 의복을 입은 임금과 양반들 영정은 많이 봤는데, 근대시대의 의상을 입은 앉아있는 영정의 다소 특이하게 다가옵니다.
윤봉길은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다음 해에 3.1 운동이 일어나자 식민지 교육을 받지 못하겠다며 과감히 자퇴를 했습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부분이네요.
그는 1922년 15세에 성주 배씨 배용순과 결혼했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1923년 16세에 오치서숙 춘추 시회에서 장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1926년에 매헌이라는 아호를 얻었습니다.

1929년 오치서숙을 졸업한 윤봉길은 농촌 계몽 활동과 농촌 부흥운동, 야학활동, 독서회운동 등을 시작했습니다.
1927년 농민독본 3권을 저술하였고, 1928년 부흥원 설립을 기념하는 공연인 우화 '토끼와 여우'의 공연과 월례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기사년 일기'를 지었고, 이어 위친계 조직, 월진회, 수암 체육회 등을 조직하였습니다.
1930년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丈夫出家生不還)"이라는 글귀를 남기고 집을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후에 이 정보를 일본 경찰이 입수하여 미행, 평안도 선천에서 체포되어 45일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출옥 후에 중국의 만주로 망명했습니다.

1931년 겨울, 중국 상하이에서 채소 장사를 하던 윤봉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를 찾아가 독립운동 참여를 자청했고, 한인애국단에 가입했습니다.
이후 김구는 1932년 4월 29일, 일본 천황 생일(천장절)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식이 열리는 홍커우공원(현 루쉰 공원)을 폭탄으로 공격하기로 계획했고, 윤봉길은 이를 결의했죠.
당시 행사장에는 일본군과 일본인, 외국 사절 등 2만여 명이 모인 상태였고, 윤봉길은 일본인으로 위장해 입장, 수통 폭탄을 먼저 던져 단상에 명중시켰습니다.
이어 도시락 폭탄으로 자폭을 시도했으나 불발되어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나, 그는 **태극기를 꺼내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자! 고 외쳤습니다.

이 폭탄 투척으로 시라카와 요시노리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사망, 가와바타 사다지 일본거류민단장 사망, 시게미쓰 마모루 주중 공사 다리 절단 중상, 노무라 기치사부로, 우에다 겐키치 등 고위 간부 다수에게 중상을 입히는 성과를 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의 심장부를 강타한 의거로서 당시 중국 장제스는 “조선 청년이 4천만 대군도 못한 일을 해냈다”라고 극찬했고, 이를 계기로 중국 국민당은 임시정부를 공식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그해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했으며, 1953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서 받았습니다.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위 소나무가 가득한 곳엔 배용순 여사 묘소가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부인인 배용순 여사는 1922년 16세에 윤봉길 의사와 결혼해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습니다.
1932년 남편 윤봉길이 상하이 의거로 인해 처형당한 후 시부모를 부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20여년간 시부모를 지극히 모셨고, 1982년부터 배용순을 기리기 위한 배용순 효부상이 생겼다고 합니다.
배용순 여사는 1982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받았고, 1985년 장남 윤종이 사망하고 며느리와 손자들과 함께 노년을 보내던 중 1988년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숙환으로 82세에 작고했습니다.
효창공원에서 사회장으로 열결식이 진행된 후 이곳 풍의사 후록에 안장되었습니다.

윤봉길의사 기념관
이곳에서 태어나 농촌 계몽운동을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1932년에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행사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히고 우리나라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보여준 후 일본에서 사형당하기까지 윤 의사의 일생을 표현한 그림, 전시물, 영상, 디오라마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윤 의사가 남긴 뒤 보존되어 보물로 지정된 유품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은 서울에 있고,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예산에 있는 것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일생과 상하이 의거 이야기, 예산 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의사 기념관 옆에 있는 매헌 윤봉길의사 어록탑
윤봉길의사의 어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맹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바라건대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홍커우공원 의거 준비직후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인생은 자유의 세상을 찾는다.
사람에게는 천부의 자유가 있다.
머리에 돌이 눌리우고 목에 쇠사슬이 걸린 사람은 자유를 잃은 사람이다
(농촌계몽활동 당시 지은 시 '자유'의 일부)

시간관계상 여기까지만 관람했는데요.
도로 건너에 4살부터 24살까지 농촌계몽운동을 하며 살았던 저한당과 의거기념탑, 윤봉길의사 동상,
도중도교를 지나면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집인 광현당, 유허비, 농촌계몽운동을 위한 부흥원 등이 있습니다.
내년 4월 29일에는 운봉길 의사를 추모하는 매헌문화재가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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