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은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고 있던 곳이었는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등이 모두 소실되자 1593년(선조 26)부터 이곳을 임시 궁궐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이라 불렀습니다.
1611년(광해군 3)에 경운궁으로 부르며 정식 궁궐이 되었고, 이후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별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897년(광무 1)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확장하면서 전통과 서양식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고,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자 궁의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며 공원화되었다가 해방 후 덕수궁의 복원이 꾸준히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덕수궁에 속해 있지만, 덕수궁 담장 밖에 있는 덕수궁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덕수궁 중명전으로 1905년 일본의 강압 속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했던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던 비운의 장소였던 곳입니다.

덕수궁 담장길을 따라가면 정동길을 만나게 됩니다.
정동길로 들어서면 국립정동극장을 지나면 작은 골목이 나오는 데 그곳에 중명전이 있습니다.

덕수궁 중명전 입구
덕수궁 중명전 관람안내
관람시간 09:30~17:30(17:00까지 입장가능)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입장료) 무료

중명전 일원 모습
좌측 담장 너머에 있는 건물은 예원학교인데, 1910년 당시에는 궁역에 포함되던 곳이었습니다.
그땐 현재의 중명전 외에도 주변에 환벽정, 만희당 등 10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1920년대 이후 중명전 외의 건물들은 사라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덕수궁 중명전은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다’라는 뜻으로 1897년 수옥헌이란 이름의 황실도서관으로 단층 규모로 지어졌는데요.
1901년(광무 5년) 11월에 수옥헌 일곽의 건물 한 채에서 불이 나 소실되고 말았고, 러시아 건축기사인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의 설계 감리 하에 2층 벽돌 건물로 재건했습니다.
중명전이 지어지기 이전인 1880년대에는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등 선교사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였다고 합니다.
1886년(고종 23년)부터는 독신 여성 선교사들의 거처로 변모했고, 1887년(고종 24년)에 알렌이 미국으로 돌아간 후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인 애니 앨러스가 여성 교육기관인 정동여학당(현재의 정신여자고등학교)을 세웠습니다.
정동여학당은 1895년(고종 32년)에 연지동으로 옮겨갔고, 1897년(광무 원년) 대한제국 정부에서 부지를 사서 덕수궁 영역에 포함시켰고, 기존 건물을 없애고 그 자리에 서양식 도서관인 수옥헌을 지었던 것입니다.
미국인 건축기사 다이가 설계감리를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덕수궁 중명전은 1897년 단층으로 지어졌다가 화재로 1901년에 2층으로 다시 지어졌는데요.
도서관으로서 수많은 황실의 서책들과 보물들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하다가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수옥헌은 고종의 집무실 겸 편전으로 사용하며 외국 사절의 알현실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1906년 황태자(순종)와 윤비의 가례가 진행되었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던 비운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동쪽 담장너머론 구 미국 공사관과 대사관저가 있고, 그 밖으로 덕수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2009년 중명전 복원공사 당시 발견된 우물
고종이 이곳에 기거(1904~1907년)했을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일제강점기엔 외국인에게 임대되어 1960년대까지 경성구락부로 사용되었는데요.
1925년 화재로 인해 내부의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최근까지 건물의 용도와 소유주가 수시로 변경되는 등 시련을 겪어왔습니다.
광복 후 국가소유로 관리했다가,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 귀국한 영친왕과 이방자 부부에게 중명전 사용권을 이양하여 영친왕 부부가 소유했으며, 영친왕이 사망한 이후 다시 민간에게 위탁, 매각됐습니다.
1983년에 중명전을 인수하여 서울시 유형문화재 53호로 지정했고, 2003년에 정동극장이 인수했지만, 앞뜰이 주차장으로 쓰이고 건물 지하는 폐건물처럼 방치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6년에 문화재청에서 소유했고, 2007년 2월에 사적 124호 지정으로 덕수궁 궁역으로 재편입, 이후 고증을 통해 대한제국 시기의 모습대로 복원해 2010년 8월에 을사늑약과 관련된 전시관으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중명전 전시관 현관
좌측과 우측에 4개의 방이 있고, 이곳에는 대한제국과 덕수궁, 을사늑약, 헤이그특사 등에 대한 3개의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전시실은 덕수궁과 중명전

대한제국과 덕수궁의 역사

덕수궁 중명전
덕수궁 화재로 중명전은 고종의 편전으로 사용되면서 역사의 중심에 섰습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비운의 장소가 되었고, 일제강점기 이루에는 외국인의 클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영친왕과 간, 정동극장 등의 소유로 바뀌어 왔습니다.

덕수궁과 정동의 변화
정동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이 있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태종이 즉위하면서 현재의 정릉으로 이전했었죠.
개항 이후 정동에는 각국 공사관들이 들어섰고,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정궁으로 정치와 외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25년 3월에 발생한 중명전 화재
주한외국인들의 사교클럽인 서울클럽으로 운영 중 화재가 발생해 건물 외벽만 남기고 내부는 완전히 타버렸다고 합니다.
이때 지붕과 목조바닥을 고치고 1층 입구의 포치 형태를 변경했다고 합니다.

2전시실은 을사늑약의 현장
늑약이란 무력 또는 강압에 의해 억지로 맺은 조약을 의미합니다.
1905년 11월 18일 새벽, 일본의 군대에 둘러싸인 중명전에서는 고종의 승인도 없이 무력에 의해 강업적으로 체결된 사건입니다.

당시 을사늑약 체결당시의 사진은 없으나 현장을 묘사한 삽화는 일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발행된 삽화에는 을사늑약 강제 체결현장에 없었던 고종이 회의장에 앉아있는 것으로 그려졌다고 하네요.

을사늑약 강제 체결일지

을사늑약문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여 일본 정부가 한국의 외국과의 관계 및 시무를 감독, 지휘한다는 내용입니다.
참으로 비극적이고 원통한 조약입니다.

을사늑약 체결의 현장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가운데 이토히로부미
좌측엔 히야시 곤스케, 이완용, 이지용, 권중현, 이근택
우측은 박재순, 한규설, 민영기, 이하영


우리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

한규설, 그날 밤을 회고하다
을사늑약의 체결을 강요한 그날 밤, 참정대신 한규설은 끝까지 조약에 대한 동의를 거부했고 결국 그는 중명전 마루방에 감금되었다고 합니다.

고종, 을사늑약에 반대하다
고종은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기 위해 성언문을 작성, 영국인 기자 더글라스 스토리에게 전달했고, 영국신문 크리블은 보도했습니다.
대한매일신보도 1907년에 이를 보도하여 국내에 알리기도 했습니다.

제3 전시실, 을사늑약 전후의 대한제국

을사늑약 전후의 세계정세
대한제국은 국외중립을 선언했으나 러일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태프트밀약을 맺었고, 영국과 2차 영일동맹을 맺고 한반도에 대한 우위를 인정받았습니다.
러시아와 일본이 포츠머스 조약을 맺음으로 러일전쟁은 끝났고,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인정받고 말았습니다.

을사늑약 무효화를 위한 움직임
을사오적 비판집회, 상인들의 철시운동, 학생들의 수업거부

고종의 친서

대한제국 고종의 황제어새(복제품)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의 최후

헤이그 특사

헤이그, 특사 그 이후

대한제국 특사들의 활동
중명전 전시를 통해 대한제국의 아픈 역사와 고종의 고민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의 평화와 민주주의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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