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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산책] 조선 시대 비단의 시작점, 고즈넉한 역사의 숨결 '선잠단지'

by 휴식같은 친구 2026.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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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길상사를 찾았다가 성북동의 골목산책을 했는데요.

돌담 너머로 정갈하게 관리된 터를 만났습니다.

 

바로 조선시대 왕비가 직접 누에치기를 했던 선잠단지(사적 83호)인데요.

조선시대 종묘와 사직단은 익숙하게 들어 봤지만, 선잠단은 다소 생소한 단어입니다.

 

선잠은 조선시대 역대 왕비가 누에를 길러 명주를 생산하기 위하여 단을 쌓고 제사 지내던 곳(선잠제, 매년 3월)을 말하는데요.

누에치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비 서릉씨를 참신해 누에농사 풍년을 빌었다는 데에서 유래합니다.

백성들에게 양잠을 장려하고 누에치기의 풍년을 기원했던 것입니다.

 

양잠은 상고시대부터 시작했지만, 선잠단을 쌓은 것은 고려시대부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왕비가 후원에서 뽕잎을 따며 양잠의 모범을 보이는 친잠례가 이루어지고, 선잠단지를 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네요.

 

성북동 산책 중에 만난 선잠단지

 

성북 초등학교 옆에 있는데요.

선잠단지 서쪽, 초등학교 앞에 성북 선잠박물관도 있는데, 존재를 몰라서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선잠단지 구성

 

선잠단의 크기는 사방 2장 3척(6.9m), 높이 2척 7촌(81cm)이며, 제단을 둘러싼 상단과 하단 담장의 둘레는 가각 25보입니다.

그리고 4방향으로 나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단을 쌓고 선잠례 의례를 행하는 제단이 있고, 그 아래에 낮은 담장으로 둘러친 공간에 신하들이 다니고 제관이 의례를 행하고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는 상유와 하유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잠단지 남쪽과 북쪽 출입문은 홍살문이 있고, 제단 좌측 위에는 제사에 쓰인 물품을 태워 마무리하는 예감이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선잠단지는 성종 2년(1471)에 쌓은 것을 재현한 것인데요.

본래 선잠단 영역은 왼쪽 도로까지 포함된 범위라 조선 초기 선잠단 원형으로 복원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선잠단지 모습

단을 쌓은 방법은 사직단과 같게 했고, 다만 선잠단 남쪽에 한 단 낮은 댓돌을 두고 그 앞에 뽕나무를 심은 차이가 있다네요.

 

세종은 양잠을 크게 장려하였다고 전해지는데, 각 도마다 좋은 장소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하였고 한 곳 이상의 잠실을 지어 누에를 키우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잠실도회를 설치하면서 잠실지역은 뽕잎을 먹여 누에를 치는 단지가 만들어졌던 곳으로 잠실이라는 지역명도 양잠업과 관계된 지명이라고 합니다.

 

조선 초기부터 시행된 선잠제는 1908년(융희 3) 일제가 조선의 국가제사를 축소하고 선잠단의 신위를 사직단에서 배향하게 하면서 중단되었습니다.

당시 농사를 처음 가르쳤다는 신농씨이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선농단도 사직단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선잠단지는 사유지로 팔렸다가 해방 후 도로신설로 인해 축소된 상태로 정비된 것입니다.

현재의 선잠단지는 2016년 복원사업을 위한 발굴조사로 선잠단 제단의 위치와 유구를 확인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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