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휴식같은 여행으로의 초대
충청남도.대전시.세종시

[공세리성당] 130년 역사의 우리나라 가장 아름다운 성당

by 휴식같은 친구 2026. 6. 7.
반응형

지난 주말엔 오랜만에 평택 나들이를 다녀왔는데요.

평택호에서 아산만방조제인 서해로만 건너면 아산시이고, 그곳 언덕에 우뚝 서 있는 곳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면서, 대전교구 최초의 성당 공세리성당이 있어 잠시 들렀습니다.

 

공세리성당은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의 상당으로 박해기 이후 충청도에서 설립된 최초의 성당입니다.

1890년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했고, 1895년 공세리 이 자리에 자리를 잡으면서 1899년에 한옥식 성당을 준공했고, 1922년에 드비즈 신부는 옛 공세창 자리를 확보해 성당을 신축한 것입니다.

 

드비즈 신부는 이명래 고약으로 알려진 원 개발자로, 자신만의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 주었고, 당시 도와주었던 이명래(요한)에게 전수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함으로써 이명래 고약의 발원지이기도 합니다.

 

공세리성당 본관 모습

 

1890년에 시작된 공세리 성지성당은 400여년 된 다수의 국가보호수(6그루)가 있고, 근대 고딕식 조적조 종교건물로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높은 언덕에 있어 수려한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져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세리성당이 자리한 곳은 성종 9년(1478)부터 영조 38년(1762)까지 약 300여년 동안 세곡 저장시설인 공세 창고지였다고 합니다.

 

아울러 공세리 성당에는 180~~1893년 신유박해와 병인박해 때 이 지역에서 순교한 32위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순교성지이기도 합니다.

 

 

 

공세리성당 입구 마을회관에 있는 꿈꾸는 팽나무도서관

 

천주교 순례길

 

공세리성당에서 솔뫼성지, 솔모미성지에서 해미성지, 솔뫼성지에서 신리성지와 여사울성지, 홍주성지에서 홍성성당까지의 4개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이고, 

신리성지는 내포지방의 중심에 자리한 성당으로 손자선 성인의 생가이며,

여사울성지는 충청도 지역교회 창설의 요람으로 이존창의 생가터이고,

한티고개는 천주교 신자들이 압송되던 길이며,.

해미성지는 천주교 박해기에 순교한 분들을 위한 순례지이며.

홍주성지는 전국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이 탄생한 성지이고,

홍성성당은 예산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된 성당입니다.

 

솔뫼성지, 김대건 신부 생가 및 기념관과 기념성당

 

공세리성당 안내지도

 

 

좌측에 사제관과 수녀원, 교육관, 요셉관이 있고,

우측에 성체조배실이

정면 안쪽에 순교자 현양탑, 본당, 베니딕토관, 박물관 등이 있습니다.

 

공세리성당 입구에 있는 2개의 카페

 

공세리커피와 성당길커피향이라는 카페가 있는데요.

두 곳 모두 매력있는 카페로 보였는데, 공세리커피에서 팥빙수를 먹었습니다.

 

아산 공세리성당 카페, 공세리커피

 

공세리성당 입구

 

마을 주차장에 주차해도 되고, 성당 안쪽으로 들어오면 무료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2018년에 공세리성당을 찾은 적이 있는데요.

그땐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가했었는데, 지금은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었고, 주변 환경도 조금 변해 있었습니다.

 

길이 예쁜 공세리성당 진입로

 

30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

고목의 풍채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입구 좌측에 있는 사제관과 수녀원, 교육관, 요셉관

 

공세리성당 본관으로 가는 길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예수

 

성체조배실 앞에서 바라본 공세리 마을풍경

 

성모상

 

공세리성당 본관과 보호수

 

1784년 교회 창설 이래 지속적으로 교세를 확장해 가던 천주교회는 병인박해 때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후 1886년, 조불수호조약에 의해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이 재개되면서 회복하기 시작했는데요. 

가장 큰 교세를 형성했던 충청도 지역에는 1890년에 간양골과 양촌에 파스키에(P.Pasquier, 주약슬) 신부와 퀴를리에(J.Curlier, 남일량) 신부가 파견되었다고 합니다. 


박해 후, 충청도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간양골 본당과 양촌 본당은 흩어진 신자들을 모아들이는 한편, 와해한 신앙 공동체 재건의 발판이 되었구요.
박해로 인해 은밀하게 순회하던 천주교회가 가시적인 곳에 정주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교회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표현대로 아담하면서도 예쁜 모습의 성당입니다.

 

1895년, 제2대 주임으로 파견된 드비즈 신부(E.Devise, 성일론)는 간양골 대신 공세리로 부임했습니다. 
공세리는 충청도 지역의 세곡을 수납하던 공세곶창, 공진창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하네요. 

드비즈 신부는 이곳에 이미 마련해 둔 한옥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사용했고, 본당의 공세리 이전으로 아산만에서 삽교천, 곡교천, 안성천으로 이어지는 경기도 남부와 충청도 지역 전교 활동의 거점이 되었던 곳입니다.

 

본관 옆 고해소

 

드비즈 신부는 이듬해 명동으로 전임되었다가 1년 만인 1897년에 재부임했습니다. 
곧이어 공세창 언덕 일대를 매입하고, 1899년 8월에 성벽 주변에 한옥 사제관과 성당을 건립했습니다. 

1905년에는 조성학당을 세워 지역의 아동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의료 지식과 약품을 이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으며. 특히 종기 치료에 유용한 고약이 유명했습니다.

 

공세리성당 본관 내부 모습

 

신자들이 증가하자 1920년부터 터 닦기 공사를 시작했고, 2년 만인 1922년에 충청도에서는 처음으로 서양식 성당이 완공되었습니다.
드비즈 신부가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고딕식의 성당과 사제관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1922년 10월 8일, 드브레(E.Devered, 유세준)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가졌고, 성당의 수호자는 성 베네딕도(St. Benedictus)입니다.

(이상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본관 옆 보호수

 

이 느티나무는 400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박물관과 베네딕토관

 

베네딕토관

 

천주교 관련 기념품들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공세리성당 박물관

 

박물관은 10:00 ~ 16:00까지 오픈하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박물관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찍지 못했습니다.

 

1890년 한국 천주교회에서 9번째이자 대전교구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공세리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태동부터 박해와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의 모습까지 전시하고 있습니다.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의 교우촌생활, 신유 병인박해 때 순교자들,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성직자들의 활동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공세리성당 옆모습

 

공세리성당 십자가의 길

 

 

 

 

 

 

 

공세리성당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