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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여행

[남도답사 일번지) 다산 정약용의 첫 유배지, 강진 사의재

by 휴식같은 친구 2020. 8. 24.

[남도답사 일번지) 다산 정약용의 첫 유배지, 강진 사의재

 

 

강진군을 보통 남도답사 일번지라고 합니다.

남도답사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다산 정약용, 고산 윤선도인데요.

 

이번에 남도답사 다운 남도답사지인 강진 사의재에 대해서 적어볼까 합니다.

사의재는 한자가 발명된 이래 최고의 사상가(위당 정인보의 평가)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에서 내리 18년(1801~1818)을 살았습니다.

 

이곳 강진의 사의재는 다산이 처음 유배지로 도착해서 만 4년을 기거했던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사의재는 유배당한 다산을 위해 주막집 할머니의 배려로 기거하면서 교육을 실시한 곳인데요.

맑은 생각,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을 일컫는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란 의미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사의재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의재 입구인 청조루 모습

 

강진읍 옛 객관 남쪽에 있는 누각으로 1490년대에 지어진 것입니다.

강진만의 푸른 물을 굽어보고 노 젓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고, 영랑생가와는 300여 미터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강진 가볼만한 곳, 영랑생가(영랑 김윤식 생가)

 

청조루에는 여러 편의 시가 남아있는데 다산 정약용이 유배시절 탐진 풍속을 노래한 탐진촌요에서 사라진 안타까움을 읊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사의재에는 최근 다양한 공간들이 복원됐는데요.

청조루를 비롯하여 차 체험관, 동문점방, 한옥체험관, 저잣거리, 사의재, 주막, 동천정, 다산강학당, 동문샘, 카페 청 등이 있습니다.

 

사의재 관람안내

 

사의재 관람요금 무료

관람시간 24시간

휴무일 없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사의재 저잣거리에 있는 구멍가게

아침 일찍 방문해서인지 가게는 문이 닫혀있습니다.

 

조선시대 문예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조(1752~1800)는 정약용을 극진히 신임하였습니다.

하지만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정조가 세상을 뜨자 당파싸움으로 치열했던 조정에서 천주교 신앙문제를 표면적으로 내세워 피비린내 나는 정적 제거에 나섭니다.

 

사의재 저잣거리의 약방

 

이때부터 정약용 일가는 끔찍한 수난의 역사를 마주하게 되는데요.

그의 형 정약종과 형수와 매형인 이승훈, 조카들까지 한꺼번에 몰살당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의 또 다른 형인 정약전과 머나먼 귀양길에 오릅니다.

 

이때 강진으로 유배되면서 처음으로 머문 곳이 바로 사의재이고, 이곳에서 다산은 실학사상을 고취한 성지이기도 합니다.

 

강진 사의재 저잣거리 모습

저잣거리는 2018년에 꾸며졌는데 이후부터 관광객이 더 많이 찾아들고 있다고 합니다.

 

강진군은 오랜 고증을 거쳐 다산의 손때와 눈물과 애환과 좌절과 꿈이 숨쉬듯 생생한 이곳 동문 안쪽 우물가 주막집터를 원형 그대로 2007년에 복원한 곳입니다.

 

사의재에서 생활하면서 사의재에 대한 이름을 적게 된 이유를 사의재기에 적어 놓았습니다.

 

위 사진은 강진읍성 동문에 있는 샘이라 하여 동문샘이라는 곳입니다.

동문샘은 마을 주민이 상을 당하거나 어린 아기가 출생했을 때 반드시 물이 하늘색으로 변하였다가 다시 맑은 물로 된다고 합니다.

 

사의재 앞, 자젓거리 앞에는 고문도구가 있는데요.

당시 강진읍성의 관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관리사무소 앞에 있는 목민루

시간에 맞춰 '땡큐 주모~'라는 마당극을 펼치는가 봅니다.

방문 당시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연기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의재 한옥체험관

 

한옥체험관은 3개의 동으로 안채 1동과 사랑채 1동으로 건축하였습니다.

사의재가 전통주막으로써의 음식과 숙박 제공이라는 본래의 특성 중 숙박기능이 없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한옥체험관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한옥체험의 경우는 연중무휴이며, 일반인 관람시간은 오전 9시 ~ 오후 6시까지입니다.

한옥숙박은 하루밤에 4~12만원으로 형성되어 있으니 이곳에서 묵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옥숙박은 15:00~다음날 11:00까지입니다.

 

사의재 앞의 동천정

 

사의재는 동천정을 포함하여 모두 갈대로 엮은 초가 이엉이 특색이며, 전통방식의 소박한 나무다리와 수 공간을 가로질러 주막채로 향하는 길, 고즈넉한 옛 모습의 토석벽과 동네어귀에서 집안이 보일 듯 말 듯 집집마다 둘러쳐진 낮은 돌담길, 전통적인 연못 등을 조성하여 이곳을 찾는 이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입니다.

동천정의 현판은 “동문샘의 정자”라는 뜻으로 다산선생의 제자인 황상의 글씨체를 집자했다고.

 

다산 정약용이 머문 사의재 모습입니다.

 

다산이 유배 왔을 때 사려 깊은 주막 할머니는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였고, 다산은 자신 스스로 편찬한 '아학편'을 주교재로 교육을 베풀고,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을 이곳에서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다산은 주막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방 한칸이 문을 열어놓은 공간으로 보이네요.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남도의 끝자락 강진은 탐진강 푸른물과 월출산 깊은 골짜기마다 다산의 실학정신과 영랑의 시혼이 빛나는 고장입니다.

정약용의 남도유배길은 65.7km로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거리인데 가깝다면 종종 시간을 내서 걷고 싶은 길이네요.

 

다산 정약용 실학의 4대 성지

사의재, 보은산방, 이학래의 집, 다산초당

 

사의재 맞은편에는 주막이 있습니다.

전(파전, 바지락 전, 굴전) 및 아욱된장국, 주물럭 등 다양한 안주류와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아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한 조선실학의 대가로 거듭나게 해 준 공로가 커서 당시 주막인 동문매반가를 재현한 곳입니다. 

 

다산 정약용에게 흔쾌히 방을 내주었던 주모 할머니 상이 사의재 옆에 세워져 있습니다.

 

사의재는 조선시대 개혁정신의 상징이자 실학의 정점이었던 고독한 선각자가 유배생활을 시작했던 슬픈 곳이지만, 동시에 다산 실학의 장엄한 성지이기도 합니다.

 

남도답사의 일번지, 강진여행을 하면 꼭 들러서 관람하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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