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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여행] 우암 송시열 암각시문 글씐바위, 풍경까지 예쁘네요

by 휴식같은 친구 2020.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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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여행] 우암 송시열 암각시문 글씐바위, 풍경까지 예쁘네요

 

 

보길도고산 윤선도 유적지가 있어서 유명한 곳인데요.

윤선도 외에도 조선시대 정통 성리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학자의 자취가 남겨 있는 유적지가 있습니다.

 

바로 우암 송시열.

우암 송시열 선생(1607~1689)은 고산 윤선도(1587~1671)와 같은 시기의 사람인데, 윤선도보다 20년 늦게 태어났네요.

우암 송시열이 1689년(숙종 15) 82세의 나이에 제주도로 귀양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상륙하였던 곳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한시를 바위에 새겨놓은 곳이 있습니다.

 

우암 송시열 암각시문 또는 글씐바위라고 합니다.

 

송시열 암각시문(글씐바위)보길도 동쪽 끝 중통리 해안가 절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7세기 말, 80대의 노인의 몸으로 제주도까지 유배를 가야하는 상황이 얼마나 한탄스러웠으면 바위에 시문을 적었을까요?

 

우암 송시열 글씐바위 암각시문에 가기 위해 주차장에 주차하면 되고요.

이곳은 별도로 관리하는 분이 없습니다.

 

 

따라서 입장료나 관람료, 주차요금은 모두 무료이고, 해안 절벽처럼 공원이라서 언제나 방문해서 구경할 수 있는 곳입니다.

 

송시열 글씐바위 암각시문 입구에서 바라본 다도해 모습

건너편 섬은 소안도입니다.

 

소안도는 노화도, 보길도, 횡간도, 자개도 등과 함께 소안군도를 이루고 있는 섬입니다.

 

조그만 숲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글쓴바위가 있기 때문에 가볍게 다녀올 수 있습니다.

 

여름엔 그늘을 만들어줘서 그나마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네요.

 

조금 걸어가나 탁 트인 바다가 보입니다.

우측은 소안도이고, 정면에 보이는 섬은 완도군 완도읍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도 바다에는 어김없이 전복양식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네요.

 

해안으로 나가는 입구에 우암 송시열 암각시문에 대한 내용을 적은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바위에 씌여진 시는 조선 인조~숙종 때의 대 정치가이자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사망하던 해에 쓴 글입니다.

숙종 14년 10월 희빈 장씨가 왕자(훗날 경종)를 출산하자 숙종은 서인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이듬해 정월 원자에 앉히고 종묘사직에 고했는데요.

우암 송시열은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제주도 귀양길에 오르게 됩니다.

 

 

우암을 태운 배가 백도 부근을 지나던 도중 풍랑을 만나 며칠간 머물러 있으면서 바위에 시를 새겨 자신의 심경을 읊은 것이죠.

우암 송시열은 그해 국문을 받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 83세였습니다.

 

결국 고산 윤선도와 우암 송시열은 각각 제주도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상륙하게 되었지만,

윤선도는 병자호란 때 인조의 항복소식을 듣고 은거를 하기 위해 가고, 송시열은 유배를 가다 들리게 된 것이네요.

 

윤선도는 보길도의 매력에 빠져 윤선도 원림을 만들어 보길도의 매력을 더했고, 송시열은 그의 억울한 누명을 하소연하기 위해 바위에 한시를 적게 되어 또 다른 관광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ㅎㅎ

 

송시열의 암각시문을 찾을 생각은 안하고 멋진 다도해 풍경에 빠져 한참을 바다만 바라봤습니다.

풍랑을 만나도 이렇게 먼진 데서 만났네요.

 

문득 이곳을 찾은 이유를 깨닫고 송시열의 암각시문 글씐바위가 어디에 있는지 찾았습니다.

위 사진의 바위에 희미하게 남아 있네요.

 

바위에 조금 까만 부분이 바로 우암 송시열의 암각시문입니다.

 

우암 송시열은 현종 때에는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는 등 사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었으나, 효종비의 상으로 2차 예송에서 서인들이 패하자 파직되고 유배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자 유배에서 복귀되고, 당파싸움이 극에 달하는 시기의 인물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비바람에 깎여나가 다소 희미해져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한자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암 송시열 암각시문 글씐바위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八十三歲翁 蒼波萬里中
一言胡大罪 三黜亦云窮
北極空瞻日 南溟但信風
貂裘舊恩在 感激泣孤衷

 

"여든셋 늙은 몸이 푸른 바다 한가운데 떠있구나.
한 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일까, 세 번이나 쫒겨난 이도 또한 힘들었으리. 
대궐에 계신 님을 속절없이 우러르며 다만 남녘 바다의 순풍만 믿을 밖에
담비갖옷 내리신 옛 은혜 있으니 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당시 이 파란 바다를 보며 얼마나 억울한 생각이 들었을까 생각을 해보게 합니다.

일편단심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했는데, 말 한마디에 망망대해 한가운데 버려진 느낌을 표현한 듯싶네요.

 

송시열 암각시문이 있는 주위가 기암괴석 낭떠러지가 있는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안도 풍경

 

당시에는 불빛도 없는 암흑천지였을 것 같은데 폭풍우가 몰고오는 밤바다가 얼마나 무서웠고, 또 억울했을까요?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쉬었습니다.

송시열을 생각하면 세월이 흘러도 안타깝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ㅎ

 

보길도 여행을 갔으면 암각시문도 그렇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히 예술입니다.

멋진 풍경도 안고 가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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