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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여행

[조선왕릉] 파주 삼릉(공릉, 순릉, 영릉), 한명회의 권세를 느끼다

by 휴식같은 친구 2021.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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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파주 삼릉(공릉, 순릉, 영릉), 한명회의 권세를 느끼다

 

 

지난 주말에는 파주와 고양에 있는 역사적인 인물의 묘를 구경하러 다녀왔습니다.

처음으로 들린 곳은 파주 삼릉.

 

조선 제8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의 능인 공릉, 제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능인 순릉, 추존 진종과 효순소황후의 능인 영릉 등 세 개의 조선왕릉이 있는 곳이죠.

파주 삼릉은 실제 조선을 다스리던 왕의 능은 없는 곳이기도 하고, 한명회의 두 딸이 묻혀 있어 그의 당시 권세를 느끼기에 부족함에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비교적 포근한 날씨에 관람로를 따라 산책하며 즐기기에 좋은 곳인데요.

공릉, 순릉, 영릉 등 파주 삼릉에는 어떤 사연들이 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파주삼릉 관람안내

 

관람시간 : 2~5, 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1월 09:00~17:30

(입장 마감시간은 종료 1시간 전까지, 관람 소요시간 1시간~1시간 30분)

휴무일 : 매주 월요일

관람료 : 25~64세 1,000원, 그 외 무료관람

주차장 : 무료

 

파주삼릉은 공릉, 순릉, 영릉 등 세 개의 조선왕릉이 있는 곳입니다.

 

처음 예종의 첫 번째 왕비인 장순왕후가 왕세자빈 신분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묘가 조성되었고, 1470년(성종 1)에 공릉이라 하였습니다.

 

 

이후 성종의 첫 번째 왕비인 공혜왕후의 순릉이 조성되었고, 영조 대에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묘가 조성되고, 1776년(정조 즉위)에 진종으로 추존되고 효순소황후와 함께 묻어 영릉이라 하였습니다.

 

공릉의 장순왕후와 순릉의 공혜왕후는 자매 사이로 한명회의 딸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넓은 잔디광장이 펼쳐집니다.

포근한 겨울 날씨에 가족단위의 나들이객들이 제법 많이 찾고 있었습니다.

 

파주 삼릉 역사문화관은 새로 조성 중에 있습니다.

조선왕릉과 파주 삼릉에 관한 전시가 이루어질 모양입니다.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는데, 파주 삼릉도 이곳에 포함이 됩니다.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40기 분포도와 조선왕릉의 구성과 계보, 그리고 조선왕릉의 배치도와 관람에 대한 정보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총정리(세계유산, 기록유산, 무형문화유산)

조선왕릉 총정리 (분포, 구성, 관람안내)

조선왕릉과 조선왕 계보(조선왕 순서) 알아보기

 

파주삼릉 입구에 있는 계수나무

 

계수나무 아래서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 모습을 보름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설의 나무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만나는 계수나무는 일본에서 수입하여 정원수로 심은 평범한 나무일뿐이라고 합니다.

처음 수입할 때 일본 이름으로 계수를 그대로 따왔을 뿐만 아니라 달나라 옥토끼와는 관련이 없다고 하네요.

계수나무는 잎이 완전한 하트모양인 것이 특징입니다.

 

파주삼릉 재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향을 지낼 때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입니다.

이 재실은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황후의 능 재실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본적인 재실의 구성은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그 외 부속공간인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파주 삼릉 관람로 모습

 

좌측은 공릉, 우측은 순릉과 영릉으로 가는데요.

관람순서는 공릉, 순릉, 영릉 순으로 하시면 됩니다.

 

전통놀이 체험공간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네요.

 

파주 삼릉의 첫 번째 능은 공릉

조선 제8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 한씨의 능입니다.

 

장순왕후는 한명회의 셋째 딸로 1460년(세조 6)에 왕세자빈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17세에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세조는 왕세자빈에게 장순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1462년(세조 8) 현재의 자리에 묘가 조성되었습니다.

이후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1470년 왕후로 추존되었고 능의 이름이 공릉이 되었습니다.

 

공릉은 처음 세자빈으로 조성되어 병풍석, 난간석, 망주석, 무인석이 없이 조성된 특징이 있습니다.

 

입구 쪽에서 바라본 공릉 모습

분봉이 확연히 드러나고, 다른 왕릉보다 분봉이 상당히 커 보입니다.

 

흔히 조선왕릉에서 볼 수 있는 병풍석, 망주석, 무석인 등의 석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장순왕후가 예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왕세자빈 상태에서 조성한 능이라 그렇답니다.

 

홍살문 쪽에서 바라본 공릉

좌측은 수라간, 중앙은 정자각, 우측은 비각, 그리고 그 아래 수복방이 있습니다.

 

공릉의 정자각

 

정자각은 능 제향을 올리는 정자 모양으로 지은 집인데요.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십니다.

 

정자각 옆에서 바라본 공릉의 봉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공릉 정자각에서 바라본 공릉

 

제향 지낼 때의 진설도와 기신제 이야기

 

공릉 입구 홍살문이 있는 공릉 공간 모습

 

공릉 장순왕후의 비각

비각은 신도비를 말하는데,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해 둔 비석을 말합니다.

 

이어서 두 번째 조선왕릉은 순릉입니다.

성종의 비 공혜왕후 한씨(1456~1474)의 능입니다.

 

공혜왕후는 한명회의 넷째 딸로, 1467년(세조 13) 세조의 손자 자을산군(후 성종)과 혼인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나 1472년(성종 5)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앞서 봤던 공릉의 장순왕후가 한명회의 셋째 딸이니, 이곳 공혜왕후는 장순왕후의 바로 아래 여동생의 묘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한명회(1415~1487)는 풍운아 수양대군의 야망을 눈여겨보고, 왕권 탈취의 모든 단계를 진두지휘한 인물로 수양대군의 책사입니다.

 

조카인 단종을 쫓아내고 수양대군을 왕위에 앉히면서 세조 대부터 성종 대까지 3대에 걸쳐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한명회는 두 딸을 세조의 아들인 예종과 제조의 손자인 성종에게 시집보내며, 외척으로서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성종의 비 공혜왕후는 이곳에 혼자 잠들어 있고, 성종과 계비인 정현왕후가 서울 선정릉에 함께 묻혀 있습니다.

 

파주 순릉의 정자각

 

순릉에 세워져 있는 병풍석, 난간석, 망주석, 무인석 등 각종 비석들은 조선왕릉의 형식을 갖추어 있는 형태입니다.

 

순릉은 파주 삼릉에 있는 3기의 능 중 유일하게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공혜왕후가 세상을 떠날 때의 신분이 왕비였기 때문인데요.

능 주변에 난간석, 병풍석, 무석인 등의 석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순릉 공혜왕후 한씨의 비각

 

우측으로 돌아서 걷다 보면 이윽고 세 번째 왕릉인 영릉이 나타납니다.

 

영릉은 조선왕릉 이름 중에 세 곳의 같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파주 삼릉의 영릉은 永陵이며, 여주의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능인 英陵, 같은 지역의 효종과 인선왕후가 묻힌 營凌이 그것입니다.

한자가 다르니 착오가 없으시기를...

 

영상 10도까지 올라가는 날씨인데도 그동안 얼은 개울의 얼음이 단단히 얼어 있습니다.

서울보다 파주가 다소 춥고, 산에 있어서 녹지 않고 있나 봅니다.

 

파주삼릉의 영릉은 추존 진종과 효순소황후의 능입니다.

 

진종소황제는 제21대 영조와 정빈 이씨의 첫째 아들(둘째 아들은 사도세자)로 1725년(영조 1) 왕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러나 1728년 10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 시호를 효장세자라 하였습니다.

 

 

1776년(영조 52) 영조는 세손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였고, 정조가 즉위한 후 진종으로 추존된 것입니다.

 

효순소황후는 풍릉대원군 조문명의 딸로 1727년(영조 3)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1751년(영조 27)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조가 즉위한 후 효순왕후로 추존되었고, 1908년에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황후로 추존되었습니다.

 

영릉 입구 홍살문에서 보이는 진종과 효순소황후의 쌍릉

영릉도 공릉과 같이 왕세자로 세상을 떠나 병풍석, 난간석, 망주석, 무인석 등 석물이 세워져 있지 않은 쌍릉입니다.

 

왕이 제사를 지냈던 영릉 정자각

 

정자각 옆에서는 왕릉의 봉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정자각 내부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영릉 정자각 우측에는 하나만 있어야 할 비각은 두 채, 표석은 세 개나 있습니다. 

효장세자가 묻히면서, 왕으로 추존되면서 그리고 황제로 추존되면서 각각 세워진 것입니다.

 

영릉 1비문은 효장세자의 비문

6세에 세자로 책봉되나 10세에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왕자입니다.

 

효순현빈 조씨는 효장세자 아홉 살 때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1751년에 세상을 떠나 효장세자와 함께 장사지냈다고 적혀 있습니다.

 

영릉 2비문과 영릉 3비문

 

영릉 2비문은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진종과 효순왕후로 추존하면서 세운 비문이며,

영릉 3비문은 1908년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항후로 추존되면서 세워진 비문입니다.

 

 

파주 삼릉은 공릉과 순릉, 즉 한명회의 세째와 네째 딸이 묻힌 곳이라 흥미롭고, 당시 한명회의 권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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