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릉] 고양 공양왕릉
고려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34대(1345~1394) 왕입니다.
고양에는 공양왕과 그의 부인 순비 노씨 왕비의 무덤인 공양왕릉이 있습니다.
말이 왕이지 이성계가 억지로 세운 왕으로 왕위에 오른지 4년 만인 1392년에 공양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원주, 삼척으로 옮겨진 후 1394년(조선 태조 3)에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 1416년(조선 태종 16)에 다시 왕으로 복권되어 왕릉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과 고양군지에는 공양왕릉이 고양지역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왕, 대한민국 사적 191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양 공양왕릉 이야기를 스케치했습니다.
고양시 원당동에 있는 공양왕릉 모습
공양왕릉은 주차장과 입장료 없이 상시 개방되어 있어 언제나 관람이 가능합니다.
고려시대 왕은 총 34대까지 있었는데, 그중 34대 왕이 공양왕입니다.
수많은 고려왕릉은 개성이 수도로 있었던 이유로 대부분 개성과 개풍군이 있는 북한에 있으며, 남한에는 강화 천도기에 만들어진 5기의 고려왕릉이 있습니다.
능의 소재가 분명한 것은 태조의 능인 현릉을 비롯한 19릉이라고 합니다.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강화도 고려궁지)하면서 1270년 개경으로 환도하기까지의 38년 동안 왕릉은 강화도에 축조되었습니다.
[강화도 역사기행]몽골침략과 병인양요의 아픈역사를 간직한 '고려궁지' 답사
21대 희종과 성평왕후의 석릉, 22대 강종의 비 원덕왕후의 능인 곤릉, 23대 고종의 능인 홍릉, 24대 원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인 가릉 등 고려왕릉이 강화도에 있고, 마지막 왕인 공양왕은 이곳 고양시 원당동에 있습니다.
폐위되어 살해당한 32, 33대 왕인 우왕과 창왕은 능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양왕릉은 2개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한 쌍릉이며 왕과 왕비의 봉분 앞에 각각의 묘표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고려의 공양왕과 순비 노씨라는 글자 등이 남아 있는데, 비석과 석물의 모습으로 보아 조선 초에 처음 능을 만들 때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고려 34대왕 공양왕은 이름이 왕요, 신종의 7대손으로 정원부원군 왕균과 국대비 왕씨의 아들인데요.
1389년 이성계와 심덕부 등에 의해 창왕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고, 이성계 일파의 압력으로 32대 왕 우왕을 강릉에서, 33대왕 창왕을 강화도에서 각각 살해하였습니다.
1391년 정몽주를 살해한 뒤, 정세는 이성계의 독무대가 되었습니다.
이에 정도전, 조준, 남은 등은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고 공양왕은 폐위되면서 고려왕조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원조로 방치되었다가 간성군으로 추방되면서 공양군으로 강등되었습니다.
1394년 참척으로 옮겨졌다가 그곳에서 살해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두 봉분의 가운데에는 조선 고종 때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표석이 있습니다.
어느쪽이 공양왕의 능인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상석과 팔각 모양의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수(돌짐승, 삽살개-후반부 내용 참고)가 있는데, 조선왕릉에 비해 석물의 규모가 작은 것이 특징입니다.
매년 가을 고양시민과 유림, 후손들이 함께 공양왕릉 추향제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공양왕릉은 고양뿐만 아니라 그의 유배지이며 사사지였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도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무덤이 두 곳에 존재하는 것은 고려 왕실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삼척 공양왕릉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고양 공양왕릉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삼척 공양왕릉은 구전되어 오는 것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고양 공양왕릉에 그의 시신이 묻어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마도 공양왕의 왕자와 시녀 또는 그가 타던 말 무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 이야기
"공양왕은 왕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려 왕가의 운명이 기울어가던 1392년 어느 날 고양 견달산 기슭에서 헉헉거리며 쫓기는 한 사나이, 결국 군사들에게 잡혀 다시 개성으로 끌려간다.
이성계는 고려 우왕과 창왕을 죽이고, 20대 신종의 6대손인 왕요를 찾아 왕위를 맡겼습니다.
45세였던 왕요는 '나는 평생동안 먹는 것, 입는 것이 풍족했고, 시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 나이에 왜 내가 이런 일을 맡아야 한단 말인가?'
결국 왕요 공양왕은 2년 8개월 만에 고려가 아닌 조선의 왕 이성계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주고, 공양왕은 이성계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을 예감하고 밤을 틈타 송도 개성의 궁을 탈출해 무작정 남쪽으로 향했다.
사방이 캄캄해졌을 때, 산 저쪽에 불빛이 보여 가보니 절이 있다..
문을 두드리니 한 스님이 나와 왕의 행색을 보고 갑자기 눈물을 주르르 흘렀다.
'어찌하여 천하의 주인이 집도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셨는지요?'
하지만 쫓기는 임금을 숨겨 주었다가는 자칫 화를 입을 수도 있어 스님은 공양왕에게 '저희 절은 위험하니 동쪽으로 10리 정도 떨어져 있는 누각에 가 계시면 저희들이 매일 수라를 갖다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하였고, 공양왕은 그 누각으로 가 연명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식사리의 명칭이 유래하게 되었다고.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공양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그 후 왕이 평소 귀여워하던 청삽살개가 어느 연못 앞에서 자꾸 짖다 돌연 물속으로 빠져 죽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못의 물을 퍼내 보니 옥새를 품은 왕과 왕비가 죽어 있었다.
비통에 잠긴 친족들은 연못 뒤에 조그마한 봉분을 만들어 왕의 시신을 안장하였다.
그 후 이곳은 왕릉골이라 불리게 되었고, 이 왕릉에는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개 모양의 석상이 있습니다.
이는 죽음으로 왕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려준 충견 삽살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공양왕릉 우측 옆에 있는 무덤의 비석이 예사롭지 않게 오래되어 보입니다.
공양왕릉 뒤로는 공양왕의 외손들인 정씨, 신씨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서 멸망해 가는 고려 왕이 되고 싶지 않았다는 공양왕.
결국 이성계에 의해 앉혀지고, 이성계에 의해 쫓겨나고 사사된 그의 마음이 어떤 상태였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근처에 세종대왕의 14번째 왕자인 수춘군의 묘역과 세종대왕의 후궁이었던 혜빈 양씨의 신단이 있는 모양입니다.
자세한 위치 표시가 없어 그냥 나왔는데 기회되면 다시 둘러보고 싶네요.
본의 아니게 되고 싶지 않던 고려의 마지막 왕이 되고, 멸망하는 고려의 모습을 보면서 쓸쓸히 살해된 그의 인생, 왠지 씁쓸하고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고려왕릉은 처음으로 견학하게 됐는데요.
나중에 강화도에 있는 고려왕릉을 찾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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