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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여행

수원 화성행궁

by 휴식같은 친구 2021.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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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

 

 

오랜만에 수원 화성과 화성행궁을 보기 위해 수원에 들렀습니다.

전에는 화성박물관이 있는 걸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되어 미리 박물관 견학부터 했습니다.

 

수원 화성박물관과 용주사 기획전시

 

수원화성은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9월에 완공된 수원의 읍성입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화산 아래에 있던 관청과 민가를 팔달산 아래로 이전시키고, 이곳에 화성행궁과 함께 수원화성을 축성한 것이죠.

 

그리고 화성행궁휴양이나 피난, 능행을 위해 도성을 떠났을 때 임시로 생활하던 곳으로, 평상시에는 수원부 유수가 집무하는 관아로 활용하였고, 현륭원 천봉 이후 정조가 머물면서 12년간 13차례에 걸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 화성행궁 이야기입니다.

 

화성행궁 현판 모습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는 아버지 장현세자(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현재의 융릉)으로 옮기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화성행궁을 세웠습니다

행궁은 수원 화성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 행궁 중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최고로 꼽힙니다.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의 동북각루(화홍문)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에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사라지고 말았는데요.

1996년 1단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2003년에 공개되었고, 지금은 2단계 복원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고 합니다.

 

화성행궁광장 길 건너에는 여민각이라는 범종이 있습니다.

 

여민각이란 이름은 정조가 백성과 함께하다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인데요.

매년 1월 1일 0시, 새해가 밝은 시간에 보신각에서 종을 치듯 이곳에서도 타종행사가 있나 봅니다.

  

화성행궁광장 모습

포근한 봄 날씨를 즐기기 위해 많은 분들이 야외활동을 하고 있네요.

 

행궁광장 북쪽에는 수원시립 아이파크미술관이, 남쪽엔 수원문화회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성행궁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입장마감은 30분 전)

휴무일 없음

야간개장 5월 중순~10월 수~일요일 18:00~21:30(30분 전 마감)

관람료(입장료) 어른 1,500원, 청소년 및 군인 1,000원, 어린이 700원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한복착용자/6세 이하, 65세 이상 무료입장)

 

수원화성/화성행궁/수원화성박물관/수원박물관 통합관람권은 각각 3,500원, 2,000원, 800원입니다.
(현재 코로나로 인해 화성박물관 무료입장이 진행 중이며, 통합관람권은 발행하지 않고 있음)

 

주차장 주차요금 1회 3시간 주차료 2,000원, 1일 주차료 10,000원

주말과 휴일엔 팔달구청과 뒤편 공터가 무료 주차장으로 개방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화성행궁 홍살문

 

수령이 350년 넘은 느티나무가 신풍루 앞에서 오랜 세월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침 신풍루 앞에서 조선시대 화성을 지키던 장용영 군사들의 수문장 교대의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화성행궁 신풍루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조선 정조 13년(1789)에 수원읍의 관청 건물을 세우면서 그 정문으로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진남루라 부르다가 1795년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면서 이름을 신풍루로 바꿨습니다.

 

신풍루는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인 풍패에서 따온 이름으로 제왕의 고향 풍패지향으로서 화성을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정조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합니다.


건물은 2층의 누각 구조로 아래층은 출입문으로 쓰고, 위층에는 큰 북을 두어 군사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신호를 보내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문루 좌우에는 행랑을 두었고, 양쪽 끝에는 군영을 배치해서 경호 체제를 갖췄으며,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때 신풍루에서 수원 주민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는 행사를 베풀었는데, 당시의 행사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오래된 고목인데 생명력이 대단해 보입니다.

 

입구에 있는 대장금 드라마 조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화성행궁은 한류의 중심지이기도 한데요.

대장금과 이산, 왕의 남자, 구르마 그린 달빛 등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는 곳입니다.

 

신풍루를 지나면 좌익문이 나옵니다.

 

내삼문을 바로 앞에서 도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으로 1790년 3칸 규모로 완공하였습니다.

행궁의 본전인 봉수당에 이르는 두 번째 문으로 중양문 앞에 있는데, 문의 이름인 ‘좌익’은 '곁에서 돕는다'는 뜻이며, 편액은 정조의 명으로 정동준이 썼다고 합니다.

남쪽 행각의 끝은 외정리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좌익문 뒤에 있는 중양문 

 

궁궐에 설치하는 삼문 중,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바로 앞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으로 가운데의 정문과 좌우의 우협문, 좌협문으로 이루어지며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문 좌우로 긴 행각을 설치하였습니다.

 

봉수당이 바로 나옵니다.

 

봉수당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입니다.

조선 정조 13년(1789)에 고을 수령이 나랏일을 살피는 동헌으로 지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장남헌이었으나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계기로 봉수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는데요.

궁궐에서는 대비나 상왕이 머무는 건물에 목숨 수 자나 길 장 자를 붙이는 전통이 있어, 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며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봉수당은 정면 7칸으로 일반 동헌과 마찬가지로 대청과 방을 둔 구조이나, 마당 한가운데에는 왕이 지나는 길인 어로를 두었고 건물 앞에는 넓은 기단인 월대를 갖추었습니다.

어로와 월대는 일반 동헌에는 없고 임금이 머무는 공간에만 설치하는 시설이랍니다.

 

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참배하러 왔을 때 앉는 의자와 일월오봉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봉수당에서의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을 연출한 공간입니다.

정조가 어머니에게 예를 드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 33년.

33년 만에 현륭원(융릉)에 가서 사도세자를 만났다고 전해집니다. 

 

봉수당 가장 우측에 있는 정조의 침소인데요.

화성행궁 행차 시 신하를 접견하고 쉬던 장소입니다.

 

원래는 유여택이 신하를 접견하고 쉬던 장소였으나, 관람의 편의를 위해 봉수당에 설치했다고 합니다.

정조 뒤에 있는 병풍은 당대의 최고 화가인 김홍도가 정조를 위해 주자의 시시를 그림으로 그려 진상한 것이라고 하며, 정조는 이를 극찬하며 항상 곁에 두고 보았다고 합니다.

 

봉수당 앞, 왕이 지나가는 어로와 넓은 기단인 월대 모습

 

봉수당 우측으로 이동하니 노래당이 나옵니다.

 

노래당은 낙남헌에 잇대어서 지은 화성행궁의 별당인데요.

조선 정조 18년(1794)에 행궁을 증축하며 낙남헌과 함께 지었습니다.

 

정조는 화성에서 노년을 보내기 위해 ‘늙음이 찾아온다’라는 뜻을 지닌 노래당을 짓고, 그 뜻을 종종 신하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노래당은 아들의 나이가 15세가 되면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에서 내려와 지내려 했던 정조의 뜻이 담긴 건축물입니다.

출입문은 길이 젊음을 보존한다는 의미로 난로문이라 이름 지었고, 노래당은 건물의 원형이 잘 남아 있습니다.

 

노래당 우측으로 나오면 낙남헌이 있습니다.

 

낙남헌은 화성행궁에서 공식 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하는 건물인데요.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부하들 덕분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낙양의 남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본떠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정조는 1795년 을묘원행 당시 낙남헌에서 수원의 백성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무과 시험을 치르고 상을 내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던 곳입니다.
낙남헌 건물은 벽이 없는 개방된 구조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데요.

연회를 베푸는 건물답게 건물 앞에는 넓은 월대를 두어 격식을 높였습니다.

 

월대로 오르는 계단 양 옆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고, 낙남헌은 궁궐 전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건물로 화성행궁 건물 중 원형이 잘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원군청으로 사용되었고, 신풍국민학교 교무실로도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낙남헌 우측으로 더 이동하면 수원 화령전이 있습니다.

 

화령전은 정조의 어진, 즉 초상화를 모시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정전인 운한각을 중심으로 이안청, 복도각, 재실, 전사청과 향대청을 갖추고 내삼문과 외삼문까지 갖추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이 2개월에 걸쳐 완공했고,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된 상태입니다.

 

정조는 1800년 6월 28일에 49세 나이로 승하하였습니다.

정조의 무덤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 가까이에 조성하기로 결정하자 당시 나라 일을 보던 정순왕후는 현륭원 재실에 모시고 있던 정조 어진을 화성행궁으로 옮기고 별도로 어진을 봉안할 전각을 짓도록 명령했습니다.

 

이 명에 따라 순조 1년인 1801년 4월 29일 화성행궁 옆에 화령전을 완성하고 현륭원 재실과 창덕궁 주합루에 모셔져 있던 어진을 옮겨와서 봉안했다고 합니다.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향을 보관하는 향대청과 제례에 올릴 그릇 등을 보관하는 전대청입니다.

 

 

정조의 아들인 순조는 1804년에 처음으로 화성에 내려와서 현륭원과 건릉에서 제사를 올리고, 화령전에서 술잔을 올리는 작헌례를 올렸습니다.

재위 기간 동안 총 10차례 화령전에서 작헌례를 올렸던 순조를 본받아 헌종, 철종, 고종도 화성에 내려올 때마다 작헌례를 올렸다고 합니다.

 

향대청과 전사청 뒤에 있는 어정

화령전 제사에 사용하는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입니다.

 

보물 제2035호인 화령전 정전인 운한각

 

운한각은 정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건물인데요.

보통 어진을 모시는 공간은 화려하게 치장하지만 검소한 생활을 강조한 정조의 뜻을 받들어 소박하게 만들고, 학문을 좋아하던 왕을 기리기 위해 익실에 서책을 봉안했다고 합니다.

 

순조는 1804년에 처음 화령전에 와서 작헌례를 올렸는데요.

이때 건물 이름을 운한각이라 짓고 현판의 글씨를 직접 써서 내렸습니다.

운한은 많은 서적을 탐구한 학자를 지칭하는 ‘운한소회’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정조를 상징하는 말로도 종종 쓰였다고 하네요.

 

현재 운한각에 봉안되어 있는 어진은 2004년에 다시 그린 표준영정입니다.

원래 모셔져 있던 정조 어진은 1908년에 서울로 옮겨졌으나 1954년 부산 피난처에서 소실되고 말았다고.

 

운한각과 아름다운 향나무가 잘 어울리네요.

 

향대청 지붕 위로 보이는 곳은 화성장대인 서장대입니다.

올라가 보고 싶지만, 다리 아파서 다음 기회로....ㅎㅎ

 

화령전에서 나와 낙남헌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낙남헌 뒤에 있는 득중정입니다.

 

득중정은 활을 쏘는 정자로서 조선 정조 14년(1790)에 지었습니다.

본래 낙남헌 터에 있었으며 1794년에 건물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임금이 활을 쏘는 어사대를 특별히 마련했습니다. 

 

정조는 수원에 올 때면 득중정에서 활을 쏘았다고 합니다.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때 신하들과 활을 쏘고 매화포를 구경한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화성행궁에서 일을 보던 신하들이 사용하는 거처인 듯합니다.

 

이곳은 장락당

 

장락당은 조선 정조 19년(1795)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열면서 혜경궁 홍씨가 머물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입니다.

정조는 중국 한나라의 고조가 어머니를 위해 장락궁을 지은 것을 본받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장락당을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고, 장락당과 봉수당은 연결되어 있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장락당은 임금이 화성에 내려오면 머무는 처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정조는 장락당과 복내당 사이의 담장에 다복문과 장복문이라는 두 개의 문을 내었는데, 이를 통해 어머니의 복을 기원하는 정조의 효심을 확인할 수 있다네요.

 

복내당

 

복내당은 수원읍 고을 수령과 가족이 거처하는 건물입니다.

조선 정조 18년(1794) 화성행궁에 장락당을 만들기 전까지는 왕의 숙소로도 쓰였는데요.

정조가 건물의 이름을 직접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는데, 복내란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조가 쓴 현판은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


복내당은 처음에는 역 'ㄱ'자 모양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1794년에 북쪽으로 온돌방 4칸 반을 추가하면서 ㄷ자 모양으로 확장되었고, 서쪽으로 서별당이 들어서고, 동남쪽으로도 행각이 늘어나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경기도립병원이 들어서면서 철거되어 화성행궁을 복원할 때 다시 지었습니다.

 

유여택

 

유여택은 수원읍을 옮긴 이듬해인 조선 정조 14년(1790)에 지은 건물로, 화성 축성을 시작하던 1794년 가을에 증축되었습니다.

유여택이란 '시경'에서 주나라의 기산을 가리켜 ‘하늘이 산을 만들고 주시어 거처하게 하였다’라는 고사를 인용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정조는 유여택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무사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는데요.

1800년 정조가 승하한 뒤에는 화령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현륭원 재실과 창덕궁 주합루에 있던 정조의 초상화를 모시는 공간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외정리소

 

외정리소는 화성에서 거행되는 국왕의 행차나 행사에 드는 모든 비용 문제를 총괄하는 곳입니다.

조선 정조 19년(1795)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에서 치를 때 행사준비를 담당한 임시기관으로 만들었습니다.

 

화성 성역이 끝난 후에는 행사 준비뿐 아니라 화성행궁의 수리와 군사들의 식량과 말먹이까지 관장하였는데, 1796년에 유여택 동쪽의 빈의문 밖에 건물을 짓고, 대문에 외정리아문이란 현판을 걸었습니다.

 

외정리소에 보관되고 있는 북

 

비장청

 

비장청은 고을 수령을 보좌하는 비장들이 근무하는 건물입니다.

조선 정조 19년(1795)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를 때 비장은 음식을 차리는 일을 비롯해서 행사의 모든 절차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서리청

서리청은 화성유수부 관청의 여러 사무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들이 근무하는 건물입니다.

 

화성행궁에서 나와 좌측으로 가면 화성어차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습니다.

 

화성어차는 지금은 연무대에서만 탑승할 수 있더군요.

화성어차를 타러 연무대로 갔는데 오후 5시 마감이라 시간이 늦어 이날은 타질 못했습니다.

 

 

화성행궁에 있는 건물들을 대부분 담으려고 했는데 빠진 것도 있네요.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대문 상부에 지은 다락집인 경룡관, 화성행궁 후원에 세운 정자인 미로한정, 관청에서 제사나 행사를 준비하는 집사들이 근무하는 건물인 집사청, 신풍루 좌우에 있는 군영인 북군영과 남군영 등이 있습니다.

 

 

화성행궁은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묻어나는 곳입니다.

가장 돋보이는 규모, 격식을 갖춘 행궁으로 경복궁 만큼 아름다운 궁궐로도 손꼽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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