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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여행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동북각루)와 화홍문

by 휴식같은 친구 2021.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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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방화수류정(동북각루)와 화홍문

 

 

수원화성동서양 군사시설 이론이 잘 반영되어 있으면서 방어 기능이 뛰어나 '성곽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우아하고 장엄한 건축의 걸작입니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축성에 관한 모든 기록을 '화성성역의궤'는 2007년에 조선왕조 의궤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수원화성 5.7km를 전부 돌면 좋겠지만, 의외로 화성이 넓어서 많은 곳을 둘러보기엔 시간이 부족하더군요.

화성박물관에서 수원 화성과 화성행궁에 대해서 이해하고, 화성행궁을 관람했습니다.

 

수원 화성박물관과 용주사 기획전시

수원 화성행궁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각, 화성행궁에서 나와 화성어차를 타고 싶어서 연무대로 이동하던 중 야경이 예쁜 화홍문과 방화수류정(동북각루)를 만나 멈췄습니다.

결국은 오후 5시까지 운행하는 화성어차는 티지를 못했습니다.

 

수원화성 화홍문과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모습

 

수원 시내 한복판을 광범위하게 점하고 있는 수원화성은 우리나라 성곽의 백미로 꼽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성곽의 장점만을 흡수해 완벽하게 건설된 도시성곽이며 세계 최초의 계획된 신도시라고 합니다.

 

 

수원화성의 시작은 정조의 효성에서 시작했습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는 조선 왕조에서 가장 불행하게 삶을 마친 사람 중 한 명이죠.

영조의 둘째 아들이었던 사도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당파 싸움에 희생되어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아들인 정조는 11살이었습니다.

 

영조의 뒤를 이어 조선 22대 왕위에 오른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은묘'에서 '영우원'으로 격상하였고, 몇 년 뒤에는 서울시 휘경동에 있던 무덤을 명당이라고 하는 수원의 화산(현재 화성)으로 옮겼습니다.

무덤 이름도 ‘영우원’에서 다시 ‘현륭원’으로 바꾸며, 한단계 격상시켰고, 그 뒤 사도세자에게 장조라는 임금의 칭호를 주고 무덤 이름을 ‘융릉’으로 높였습니다.

 

사도 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옮기면서 오랫동안 이곳에 살던 백성들은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산 백성들이 옮겨 갈 도시를 지어야 했고, 팔달산 아래 신도시 화성이 건설된 것입니다.

 

 수원 화성의 설계는 정약용이 했지만, 공사 책임자는 영의정 채제공이었습니다.

1794년 1월에 시작하여 2년 9개월 만인 1796년 9월에 끝났는데, 이는 정약용이 설계한 첨단기술과 일꾼들에게도 품삯을 주어 열심히 일하게 한 덕이라고 합니다.

 

 

수원화성의 주요 건축물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수원화성은 동쪽 창룡문, 서쪽 화서문, 남쪽 팔달문, 북쪽 장안문의 4개 출입문이 있었는데, 장안문이 정문입니다.

그리고 수원화성을 가로지르는 수원천의 북쪽과 남쪽에 세워진 2개의 수문은 북수문인 화홍문, 남수문입니다.

 

화홍문과 인근의 방화수류정(동북각루), 용연은 뛰어난 건축미로 수원화성의 손꼽히는 절경이고, 수원 야경에서도 멋진 분위기를 선사하는 야경명소입니다.

 

아울러 수원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동장대(연무대)와 서장대(화성장대)가 있는데요.

사방이 탁 트여 수원 시내를 조망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아울러 독특한 건축미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공심돈은 군사가 안으로 들어가 적을 살필 수 있게 만든 건축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서북공심돈(보물 1710호)과 동북공심돈이 있는데 서북공심돈은 축조 당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수원화성은 총 5.7km로 성곽을 따라 둘레길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효심과 애민정신이 지극했던 정조의 숨결을 따라, 토목건축의 백미를 보여준 정약용의 빼어난 과학성을 생각하며 둘러보면 좋습니다.

 

북수문인 화홍문

화성의 북쪽 성벽이 수원천과 만나는 곳에 설치한 수문입니다.

 

7개 칸의 홍예문 위로 돌다리를 놓고 그 위에 누각을 지었는데, 화홍문이라는 별칭으로 더욱더 알려진 곳이죠.

누각은 원래 적의 동태를 살피는 곳이지만, 평소에는 주변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사용했습니다.

 

화홍문은 헌종 14년(1848)에 수문과 누각을 다시 지으면서 형태가 약간 달라졌고, 1932년엔 홍수로 무너진 누각을 다시 지었고, 2016년에 화성성역의궤를 참고하여 창문을 복원했습니다.

 

화홍문 바로 우측 언덕 위에 있는 건물은 동북각루, 방화수류정이라는 건물입니다.

감시용 시설로 용두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 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수원화성의 북문이면서 정문인 장안문으로 가는 성곽길 모습입니다.

 

이곳이 바로 장안문입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누문. 수원성의 북문이며, 하나의 홍예문 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바깥쪽에 둥근 옹)을 갖춘 대문입니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 수,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 시안시)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보통 성은 남쪽을 정문으로 사용하는데, 수원 화성은 한양에서 내려오는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기 때문에 북문인 장안문을 정문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장안문은 서울의 국보 제1호 숭례문보다도 큰 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이라고 합니다.

 

화홍문과 동북각루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고 평화로운 마음이 드네요.

 

북암문, 화성의 북쪽에 낸 비상출입문입니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물을 말합니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습니다.

북암문을 통해 나가면 용연이 나옵니다.

 

동북각루로 올라왔습니다.

 

별칭으로 방화수류정이라고 하는데요.

정조는 이를 현륭원에 있는 화산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방화수류정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조는 이곳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는 시를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방화수류정에서 성벽 위에 있는 건물은 동북공심돈이라고 합니다.

안에서 적의 동향을 살피는 건축물로 수원 화성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1796년(정조 20) 높이 5.42m, 둘레 38m 규모로 완성됐으며, 한국전쟁 과정에서 완파된 뒤 1975년 복원됐습니다.

 

 

동북공심돈 성 안쪽에 동장대라고 하는 연무대가 있습니다.

. 연무대는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과 북쪽 수문인 '화홍문 사이의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방이 트여 있어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좋은 군사요충지입니다.

소문난 활터로 지금은 국궁체험장(10발에 2,000원)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방화수류장에서 내려다본 용연

 

방화수류정 밖 용머리바위 아래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살려 연못을 파고 작은 섬을 만들어 용연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냈고, 용연은 남쪽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방화수류정과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특히 수원 야경명소로 많이 알려진 곳이기도 하고요.

 

풍경이 정말 멋지긴 하네요~

 

용연 가운데에 동그랗게 만든 정원도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어 보입니다.

 

북암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왔습니다.

국내는 물론 외국의 성들의 장점만 모아서 만들었다는 수원화성의 축성된 모습입니다.

 

좀 더 위쪽은 커다란 돌로 성을 쌓은 모습이네요.

 

포근한 날씨에 코로나는 잊힌 것인지 정말 많은 분들이 나들이 나와 있습니다.

 

용연에서 바라본 동북공심돈

 

용연을 가까이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방화수류정은 수원의 야경 명소이기도 합니다.

위 사진은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라 수원 관광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야경사진입니다.

나중엔 저녁에 이곳을 방문해야 겠습니다.

 

 

수원화성 전체를 걸어보고 싶었지만, 다리 아프다는 딸아이 덕분에 방화수류정 일대만 돌다가 내려왔습니다.

나중에 기회 되면 전체 성곽을 따라 걸어보고 싶네요.

 

수원 화성 하면 정조대왕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정약용 또한 잊을 수는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정조와 정약용을 생각하면서 수원 화성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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