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휴식같은 여행으로의 초대 ♪♩♬~
서울시 여행

서울의 고대역사와 문화, 몽촌역사관

by 휴식같은 친구 2021. 8. 12.
728x90
반응형

서울의 고대역사와 문화, 몽촌역사관

 

 

서울의 시작은 대략적으로 2천년 전이라고 합니다.

서울을 비롯한 한강하류는 비옥한 충적지가 많아 농경이 적합하고 주위에 산과 구릉이 발달해 군사적으로도 유리해 선사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단 곳이죠.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에 한강유역에 큰 나라들이 생겨났는데요.

중 백제국이 세력을 넓히며 한강, 금강, 영산강 유역의 마한 땅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처음에 위례성, 나중에 한성이라고 불러 백제의 수도였던 때를 한성시대라고 부르는데, 이란 백제의 수도였던 서울의 고대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촌역사관입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에 갔다가 몽촌역사관에 들렀습니다.

 

몽촌역사관은 올림픽공원 내에 있기 때문에 올림픽공원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올림픽공원이 무척 넓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해야 합니다.

몽촌역사관과 가장 가까운 곳은 올림픽공원 올림픽수영장이 있는 북 2문으로 가면 됩니다.

 

올림픽공원 출입구는 북1, 2문, 동 1, 2문, 남 1, 2, 3, 4문, 서 1, 2문 등 10곳의 출입구가 있고, 주차장도 11군데나 됩니다.

 

북 2문으로 들어와서 수영장회원 전용주차장에 주차하면 됩니다.

 

올림픽공원 주차장 요금이 제법 비싸졌습니다.

처음 20분은 무료이고, 추가 10분당 600원

1시간 40분 정도 있었는데 4,800원을 내고 나왔네요...ㅜㅜ

 

올림픽수영장 앞 주차장 모습

 

몽촌역사관으로 가는 방법은 올림픽스영장 주차장에서 나와 우측의 작은 다리를 건너 오른쪽 산책길을 따라 4~5분 걸어가면 됩니다.

 

일요일 오후 한적한 올림픽공원 산책로 모습

 

이윽고 몽촌역사관이 나옵니다.

 

몽촌역사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올림픽공원 북2문 P4주차장(10분당 600원)

 

몽촌역사관 잔디마당에 조형물

 

몽촌역사관은 몽촌토성이 고대국가 백제의 왕성이었다는 사실과 서울의 2천년 도시 역사, 한강유역의 고대문화 등을 전시․교육하는 한성백제박물관 소속 어린이대상 박물관으로서, 1992년 1월 개관하였습니다.

 

한성백제박물관 역시 올림픽공원 내에 있으며 올림픽공원 남2문 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성백제박물관 in 올림픽공원



청동기시대 움집, 백제의 도읍이었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삼국시대 고분군 등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서울의 고대 역사와 문화를 몸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및 문화행사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몽촌역사관 전시 모습

 

암사동의 신석기시대 마을을 비롯해 명일동, 가락동, 역삼동의 청동기시대 집자리, 백제의 도읍이었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과 가락동, 방이동의 삼국시대 고분군,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 신라의 이성산성 등의 문화유적과 유물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 입장료, 주차장 그리고 박물관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 선사체험마을, 초등학생 역사견학

 

한강유역의 마을 모습

 

서울의 고대역사와 문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선사, 고대시대의 문화유적과 유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모습

구석기시대의 유적인 금파리 유적과 전곡리 유적, 삼리 유적의 모습도 보입니다.

 

청동기시대 모습

 

한국의 선사시대 고인돌 종류와 분포현황, 청동기시대의 토기

 

조합식비파형동검

황해도 신천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검으로 복제 작품입니다.

 

철기시대의 철기 생산과정, 옷을 만들어 입고 거푸집을 이용한 세형동검 제작 등에 대한 내용입니다.

 

체험전시실인데, 코로나로 운영 중지 상태

 

석촌동 고분군 이야기

1917년경 석촌동고분군에는 290여기가 있었으나 도시개발로 파괴되어 지금은 8기 정도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금귀걸이와 달개장식, 수막새, 유리 구슬, 다량의 동물뼈, 철모 등이 발견되었다고.

 

몽촌토성 전시 모습

 

백제의 한성은 남쪽의 몽촌토성, 북쪽의 풍납토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촌토성은 낮은 구릉에 쌓은 백제시대 토성으로 당시의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름모 모양이며 성벽 길이는 2383m, 동북쪽 바깥의 작은 능선에는 둘레 270m의 외성을 따로 쌓았습니다.

 

동남북에 성문이 하나씩 있고, 사이사이에 은밀한 통로가 있습니다.

각종 토기, 기와류, 철제 무기류, 뼈 갑옷, 중국 동전무늬, 청자조각 등 4~5세기 백제 사람들이 즐겨 쓰던 것들입니다.

 

몽촌토성 재현 모습

 

풍납토성은 평지성으로 둘레가 3.5km 정도였으나 지금은 2km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타원형 또는 배 모양으로 성벽은 고운 모래로 한 층씩 다져 쌓았습니다

 

풍납토성에서 발견된 백제유물은 최고품이었는데 금반지, 백동거울, 옥구슬, 흙을 구워 만든 초석, 상하수도용으로 썼을 토관, 바닥에 까는 벽돌, 얇고 큰 기와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백제의 첫 왕궁은 위례성입니다.

371년 근초고왕이 도읍을 한산으로 옮긴 뒤 한성이란 이름으로 불렸고, 한산은 지금의 남한산이며 몽촌토성도 그 능선의 일부라고 합니다.

 

한성은 남북의 2개의 성, 남쪽의 몽촌토성과 북쪽의 풍납토성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고구려 기록인 삼국사기에는 북성을 공격해 7일 만에 빼앗고 남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몽촌토성은 왕궁과 관청, 왕실 직속 군대 등이 주둔하던 왕성이자 비상시 피난처로 보고 있습니다.

 

371년 백제 근초고왕은 3만 대군으로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했습니다.

이때를 계기로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누린 나라였죠.

 

남쪽으로는 마한 잔여세력을 물리치고 남해안까지 세력을 넓혔으며, 중국 동진과 왜와 교류하여 중국으로부터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왜에게는 학문과 기술을 전해주었던 강국이었습니다.

 

한성시대 마지막 날

 

475년 겨울, 백제 왕도였던 한성은 고구려군에게 정복당합니다.

남성(몽촌토성)에 있던 개로왕은 도망가다 고구려군에 붙잡혀 죽었다고 하는데요.

한성을 빼앗긴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하였고, 이후 한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며 웅진과 사비에서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실제로 백제시대는 기원전 18년부터 멸망한 660년까지 700여 년동안 한성에서 493년(73%)을 백제의 수도로 사용한 곳입니다.

 

촉각 체험물로 있는 백제금동대향로

 

백제는 일찍부터 유교, 도교, 불교 등을 모두 수용하며 건축과 예술방면에서 고유의 양식을 정립했습니다.

 

500년 백제왕도 풍납토성

풍납토성 경당 지역에서는 많은 제사 관련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고구려에 한성을 넘겨주고 지금의 공주인 웅진(475~538)으로 천도하게 됩니다.

한성시대 문화를 그대로 계승하고 중국 남조와 교류하며 다시 국가를 정비하는 기초를 닦았습니다.

 

웅진시대의 대표 유적으로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군, 공산성, 대룡사지 등이 있습니다.

 

왕명(근초고왕)으로 만든 칠지도

 

필지도는 백제 왕이 왜 왕에게 준 일종의 외교문서이자 선물로 4세기 후반 백제와 왜 사이의 교류에 관한 기념물이자 선진문물의 상징입니다.

 

한반도를 가르는 한강유역은 고대국가 백제, 고구려, 신라가 치열하게 충돌한 각축장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백제가 선점(기원전 18~475년)했고, 이후 고구려, 신라 순으로 주인이 바뀐 곳입니다.

 

500여 년을 도읍지로 삼았던 백제가 한성에서 물러난 후 고구려문화(475~551년)가 정착했습니다.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일대 능선에 고구려 군사시설인 보루가 20여기 정도 줄지어 있습니다.

 

이후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551~935년)하면서 신라의 문화가 정착되기도 했습니다.

신라시대에 쌓은 성이 이성산성입니다.

 

백제, 왜에 문화를 전하다

 

한반도의 고대문화는 일본열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불교, 문자, 유교, 건축, 조각, 조선 등 많은 분야에서 선진기술과 다양한 문물을 왜에 전해주었죠.

 

그 중심에 백제가 있었고, 660년 백제 멸망 시에는 많은 백제 사람들이 왜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실제 백제 유적과 유물이 일본에서 많이 별견되기도 했고요.

 

700여 년의 역사에서 한성(493년), 웅진(63년), 사비(122년)로 수도가 바뀌어 갔고, 한때 금마저(익산)을 또 하나의 왕도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에 유네스코는 공주 부여, 익산 세 개 도시의 성곽, 사찰, 고분 등 8개 유적을 백제역사유적지구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미륵반가사유상

일본의 고류지 영보전 내부의 불상을 재현한 모습입니다.

 

국립중앙발물관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 비견되는 백제계 불상입니다.

언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을지 기약 없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몽촌역사관 전시 모습

 

몽촌역사관에서는 증강현실을 이용한 역사체험,

출동! 몽촌토성 꾸러기 수비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적지가 놀이터가 되는 즐거운 역사체험입니다.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일대를 30분 정도 10곳의 방문지에 방문해 증강현실을 이용한 체험과 게임 등을 즐길 수 있습니다.

 

몽촌토성 꾸러기 수비대(올림픽공원 몽촌역사관)

 

728x90
반응형

댓글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