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선사람들, 자기 삶을 고백하다(정우봉) 후기
조선시대의 기록물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은 세분화되고 체계화된 많은 양의 자료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매우 세세하고 정확한 기록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까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많은 문화재들이 무단 반출되거나 사라진 역사를 가지고 있던 와중이라 우리 민족의 기록에 대한 열정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매우 뛰어나다고 볼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유산은 이런 조정과 관공서의 자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닌가 봅니다.
왕실 사람들과 일반 사대부, 서얼, 여성, 하급병사, 공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의 인물들이 각기 살아갔던 이야기를 담은 기록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읽은 '조선사람들, 자기 삶을 고백하다'라는 책은 정식적인 공공기관의 기록물이 아닌 개인의 사적인, 요즘말로 말하면 조선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기나 수필들을 엮은 책인데요.
조선시대 그들은 어떤 생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생생한 면모들을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정우봉 선생이 지은 '조선사람들, 자기 삶을 고백하다' 후기입니다.
조선 사람들, 자기 삶을 고백하다
출판일 2021년 8월 23일
저자 정우봉 교수
쪽수 331쪽
출판사 세창출판사
정가 18,000원
이 책을 알고 읽게 된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8월 초에 세창출판사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 책을 출판하게 되는데, 소현세자의 며느리이면서 경안군의 부인, 임창군의 어머니이기도 한 분성군부인 허씨가 남긴 수필 '건거지'에 관한 챕터가 나오는데, 제 블로그에 있는 사진을 사용했으면 하는 제안이었습니다.
제의를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으므로 흔쾌히 허락했고, 무사히 책이 출판되어 세창출판사에서 보내줘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책에는 제가 찍은 사진 한 장도 당당하게 기록이 되어 있답니다.
이번에 실린 사진은 금년 1월에 최영장군 묘를 다녀오면서 입구에 있던 소현세자의 아들과 손자인 경안군과 임창군의 묘에 대한 이야기를 작성한 글이었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SNS와 블로그 등을 통해 자기에 관한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자서전, 일기, 수필, 낙서 등등
조선시대에도 신분에 관계없이 다양한 글들을 써 왔고, 그 내용들이 내려오고 있는데요.
최근 들어 조선시대의 생활사, 문화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고문서나 자서전, 일기 등을 통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역사기록 등에서 찾기 어려운 매우 다채로운 삶의 모습들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조선사람들, 자기 삶을 고백하다는 왕실부터 양반, 서얼, 여성, 병사, 공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으로 살아왔던 삶의 구체적 면모를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자서전이나 일기는 왜곡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진실을 담은 기록이며 위대한 사람에 대한 기록 대신 소외된 인물들을 조명하며, 다종다양한 개인들의 일상과 욕망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다양한 기록물들이 내려오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세종대왕의 한글이 또 자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글이 없었다면, 기록분야는 양반들의 전유물이 되었을 테니깐요.
지은이 정우봉 교수는 교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문학과 고전 산문, 비평사, 동아시아 문화교류 등에 관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사람들, 자기 삶을 고백하다' 차례
1. 남평조씨의 최초의 한글일기 '병자일기'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여인이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과 직후의 생활과 감정을 기록한 일기로 한글 일기문화를 선도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큽니다.
2. 하루를 내내 굶으니, 하급병사의 한글일기 '난리가'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당시 난을 진압하기 위해 참전했던 훈련도감 소속의 한 마병의 한글일기입니다.
무능한 지휘관의 부정적 형태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했고, 하급병사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군영생활, 전투상황과 활약상의 생생한 표현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병인양요의 기억, 나주임씨의 한글일기 '병인양란록'
프랑스인 신부 처형사건으로 통상과 개국을 요구하며 전쟁을 일으켰던 병인양요 당시, 여흥 민씨 집안에 시집온 나주 임씨는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피란생활, 강화도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수난의 실상을 생동감있게 표현했습니다.
4. 나처럼 기구한 운명이 또 있을까, 분성군부인 허씨의 한글일기 '건거지'
인조의 맏아들이었던 소현세자(1612~1645), 그의 아들은 경안군, 며느리는 분성군부인 허씨의 일기인 건거지에 대한 글입니다.
분성군부인의 건거지 이야기는 아래쪽에 별도로 정리했습니다.
5. 미치광이 같았다, 심노승의 유배일기 '남천일록'
심노승(1762~1837)은 자기의 삶을 스스로 기록하는 데이 특별한 관심을 가진 인물로, 유배일기 남천일록과 자서전 자저기년, 자저실기 등을 남겼습니다.
심노승은 노론 시파로 벽파 공격의 선봉에 나섰던 심낙수의 장남으로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유배를 떠나 6년 의 유배기록인 남찬일록을 남겼습니다.
심노승의 기록은 자신이 겪은 행적을 평범하기 나열하는 것에서 벗어나 내면과 심리를 일기처럼 매우 솔직하게 기록(감추고 싶은 비밀이나 단점까지)한 부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6. 오갈 곳 없는 신세, 이학규의 문집 '낙하생고'
이학교(1770~1834)는 다산 정약용과 더불어 남인계 실학파 문인이며, 신유박해에 연유되어 24년 간의 오랜 유배생활을 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반겨주는 이는 낯선 며느리와 손자들 뿐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거나 일상의 비속하고 누추한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냅니다.
7. 서얼 지식인의 삶, 이덕무의 '간서치전'과 이기원의 '자찬연보'
이덕무(1741~1793)와 이기원(1745~?)은 18세기 후반 서얼 출신의 이름난 문인입니다,
이들은 서얼출신의 반쪽 양반으로서 권력에서 소외된 채 살아간 자기 고백적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8. 표류하는 생사의 갈림길, 장한철의 생사의 기록 '표해록'
조선시대 표해록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최부(1454~4504)의 표해록으로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에서까지 읽힌 기행문학의 수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장한철(1744~)의 표해록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표해록 중 하나로 제주도에서 살던 장한철은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려고 뱃길에 올랐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했던 이야기를 적은 글입니다.
이 표해록은 자신이 표류 중 보고 들은 것을 사실에 충실히 전달하려고 한 부분, 고난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돋보이는 글입니다.
9. 추억 속 그대모습 그립고 또 그리워라, 임재당의 한글일기 '갑진일록'
임재당(1686~1726)은 전남 보성의 양반 가문으로 아내의 죽음과 그 이후 작가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일기를 남겼습니다.
아내의 죽음 이후의 심리, 감정, 태도가 어떠한가를 솔직하고 진솔하게 탄탄이 기록한 일기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거의 유일한 자료라고 합니다.
10. 만나서 사랑하고 미워하며, 지규식의 '하재일기'
지규식(1851~?)은 궁중에 그릇을 조달하는 공인으로 1891년부터 1911년까지 쓴 일기로 20년 7개월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일기입니다.
두 여성과의 사랑에 관한 기록은 내밀한 사생활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서술했으며, 만남-갈등-화해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과 심리상태를 생생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다시, 네 번째 글인 분성군부인 허씨의 건거지로 돌아왔습니다.
위에 올라간 사진이 예전 경안군과 임창군 묘에 들러 찍었던 사진입니다.
이렇게 책에 제가 찍은 사진이 올라가니 기분이 썩 좋습니다.ㅎㅎ
소현세자는 그의 아버지인 인조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의 세자였습니다.
청나라의 침입으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는데, 귀국하니 청나라에 우호적으로 바뀐 세자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나 봅니다.
당시 세자였던 소현세자가 죽고, 적장자인 그의 아들 대신 소현세자의 동생인 봉림대군을 세자에 책봉했습니다.
당시 소현세자의 아들은 각각 12, 8, 4세였다고 합니다.
왕실의 적장자로 살아남으면 항상 죽음에 직면했던 역사가 있듯이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첫째와 둘째는 제주도 유배에서 죽고 셋째인 경안군만 살아남았습니다.
분성군부인 허씨는 경안군과 결혼 후 두 아들을 낳았고, 경안군이 22살의 나이에 세상을 떴고, 두 아들에 의지하다 역시 역모에 연루돼 제주도 유배를 다시 떠나게 됩니다.
건거지는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된 두 아들을 따라가 같이 유배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로 70세의 나이에 회상록의 형태로 서술한 작품입니다.
소현세자의 아들 셋째 아들인 경안군 묘와 경안군의 아들인 임창군의 묘가 있는 사진 모습입니다.
분성군부인 허씨는 유배생활에서 풀린 지 30년이 지난 후 건거지를 썼습니다.
그 연유로 30여년 전에 임창군을 왕위로 세우려던 흉서사건에 휘말려 제주도로 유배되었을 때의 수난과 고초의 기록을 넘어 후손들에게 경계의 말을 전하고자 한 의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그의 아들, 손자들까지 갖은 고초를 당하게 되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나라도 지키지 못한 치욕의 인조가 다소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조선사람들, 자기 삶을 고백하다'는 우연히 제가 찍은 사진이 올라가서 읽게 되었는데요.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저로서는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독서의 시간이 된 책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조선의 역사를 벗어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느끼는 바는 지금이나 예나 모두 똑같다는 생각도 들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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