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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상상의 정원전이 열리는 덕수궁과 덕수궁 돌담길 가을풍경

by 휴식같은 친구 2021.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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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정원전이 열리는 덕수궁과 덕수궁 돌담길 가을풍경

 

 

덕수궁은 임진왜란으로 한양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선조는 월산대군의 후손과 왕족 등이 살던 고택들을 수용하여 행궁으로 사용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을 재건하여 어가를 옮기면서 별궁인 경운궁이 되었고, 19세기 중반까지는 별 역할이 없다가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경운궁을 대한제국의 으뜸 궁궐이 되며 많은 전각들이 세워졌습니다.

 

1907년 고종이 퇴위하면서 선황제의 거처가 되어 덕수궁으로 바꾸었고,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궁의 면적이 축소되었으며 이후에도 줄어들어 현재는 과거의 1/3 면적만 남았다고 합니다.

 

덕수궁은 임진왜란과 구한말이라는 어려운 시절에 으뜸 궁궐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상징적인 조선궁궐이었습니다.

어제 근처에 볼일이 있어 방문했다가 덕수궁을 다녀왔는데, 곳곳에 덕수궁 2021 프로젝트로 상상의 정원 전시까지 열리고 있어서 볼거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덕수궁은 현재 궁궐의 정전과 같은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형식의 월대를 재현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대한문 앞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대한제국기 황궁 정문으로서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해 진행된다고 합니다.

 

대한문은 원래 궁궐의 정문은 남쪽으로 난 인화문이었는데, 환구단 건립 등으로 경운궁의 동쪽이 새로운 도심이 되자 동문인 대안문을 정문으로 삼았습니다.

1906년에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0년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서쪽으로 물러 앉게 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습니다.

 

 

덕수궁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21:00(입장마감은 20:00)

중명전은 09:30~17:30, 고종의 터는 09:30~18:00(동절기는 17:30까지)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관람요금) 25세~64세 1000원, 그외 무료

주차장 없음(서울시립미술관 주차장 이용, 10분 600원)

 

덕수궁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아직 푸릇푸릇한 나무도 있고,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나무도 있습니다.

 

대한문을 지나 건너게 되는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 복원한 것입니다.

 

덕수궁 연지 쪽 풍경은 온전한 가을 풍경 모습입니다.

 

덕수궁의 배치도

 

덕수궁은 1880년대 들어서서 각국 외교사절의 공관과 선교사들의 주택이 밀집되어 있어서 경운궁의 확장이 어려웠고, 미국과 영국, 러시아 영사관 사이로 궁역을 확장하다 보니 대지 모양이 불규칙한 모습입니다.

 

관람순서는 함녕전과 덕홍전, 중화전과 석조전, 준명당과 즉조당, 정관헌과 연지 순으로 돌았네요.

 

덕수궁 광명문

 

고종이 기거하던 함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대한제국 시기에 건립되었습니다.

1919년 고종이 함녕전에서 승하하자 국장 때 고종의 관은 이 광명문을 통해 나갔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광명문 좌우의 행각이 철거되었고, 1930년대 중화문 서쪽으로 옮겨졌다가 2018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함녕전으로 들어가는 전각

 

함녕전 앞마당 모습

 

덕수궁 함녕전

 

함녕전은 고종이 거처하던 침전으로 승하할 때까지 기거하던 곳입니다.

1904년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은 건물이며, 대청마루 옆 온돌방을 들였고, 사방 툇간에 방을 두른 형태입니다.

내부는 천장에 샹들리에를 설치하여 사양풍으로 장식했습니다.

 

함녕전 안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요.

내부에는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 전으로 이용배와 성종상의 '몽유원림'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상영되고 있더군요.

 

 

함녕전에서 일제에 의해 고립된 삶을 살았던 고종의 의원과 와유를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함녕전 좌측에 있는 덕홍전

 

함녕전을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할 때 일반 빈객들을 접견하기 위하여 1906년 건립한 후 1911년에 개조한 전각으로 주로 황제가 외국 사신이나 대신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쓰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덕홍전 주위에는 행각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행각 일부만 함녕전 남행각에 연접되어 있습니다.

 

덕홍전 내부는 상상의 정원 행사로 이예승의 '그림자 정원, 흐리게 중첩된 경물'이라는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6개 채널로 증강현실을 구현한 작품인데, 21세기 가상정원을 만들었네요.

 

덕홍전 뒤편에는 김아연의 '가든카펫'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핑크뮬리가 아닌 그린뮬리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식물과 가운데에는 석조전 접견실 카펫 문양과 덕수궁 전통 단청문양을 조화롭게 구현한 모습입니다.

 

전각들 공간에도 상상의 정원으로 전시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광명문 앞 덕수궁 풍경

 

중화전 행각

 

1902년 덕수궁의 중심건물(정전)인 중화전을 건립할 때에는 128칸의 행각이었습니다.

1904년 대화재로 많은 전각들이 불탄 후 다시 108칸으로 지었는데요.

 

 

1910년 국권 상실 후 전각들이 다시 훼손되면서 중화전 행각들도 이때 대부분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위 행각은 1905년에 중건된 행각의 일부라고 합니다.

 

중화전 행각에선 권혜원의 '나무를 상상하는 방법'이란 전시가 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 근처의 은행나무는 이렇게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네요.

 

중화문(중화전과 함께 보물 819호 지정)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빨갛게 수를 놓은 단풍나무

 

덕수궁 중화전(보물 819호)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으나, 협소하여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었습니다.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있으며, 중화전의 정문으로 중화문이 있습니다. 특히 중화전은 중화문과 더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본래는 2층으로 된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 4월 화재로 소실된 후 1906년 단층 건물로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화전 내부 모습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조례, 외국 사신접견 등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입니다.

정전 내부에는 집속의 집이라는 닫집이 있는데, 그곳에 어좌가 있고, 그 뒤로는 세 번 꺾인다 하여 삼절곡병이라고 하는 병풍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월오악도가 배치되어 있고, 오악이란 우리나라 지계와 생물계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왕의 권한이 미치는 모든 곳과 모든 것들이 왕 아래에서 번창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화전 천장에는 용 한 쌍이 새겨져 있습니다.

덕수궁이 대한제국의 황제의 황궁임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중화전에서 본 월대가 있는 마당과 중화문 모습

 

다시 돌담길이 있는 좌측으로 이동하니 윤석남의 '눈물이 비처럼, 빛처럼 : 1930년대 어느날'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의 가을 풍경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모습

 

덕수궁 석조전 앞의 정원

 

등나무가 있는 벤치 풍경이 무척 평화스러워 보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정문 모습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1938년에 일본이 덕수궁 석조전 서관을 미술관 용도로 건립하였던 것을 1946년 해방 이후, 이왕가 미술관은 덕수궁미술관으로, 총독부박물관은 국립박물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1969년 경복궁에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이 1973년 덕수궁미술관으로 이전하였고, 1986년 과천관으로 본관을 옮긴 이후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재개관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전 뒤편에 중명전이 있는데 이곳은 가지를 못했네요.

 

1897년 황실의 도서와 보물을 보관하는 용도의 황실 도서관으로 계획되어 1899년 준공되었는데요.

한성부 건축기사로 초빙된 미국인 다이(J. H. Dye)의 설계로 1층 서양식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1901년 11월 화재로 전소되어 이듬해 회랑이 있는 2층 건물로 재건축되었고, 처음에는 수옥헌이라 불렸으나, 1906년경부터 중명전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1904년 4월 고종이 이곳으로 이어하면서 편전 겸 폐현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이듬해인 1905년 이곳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입니다.

 

이후 중명전은 외국인클럽 등 민간 영역에서 활용되면서 내외부가 많이 변형되었는데, 2009년까지 문화재청에서는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실내를 전시장으로 개비하여 2010년부터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덕수궁 석조전

 

조선시대 궁중건물 중 대표적인 유럽풍의 석조 건축물로 영국인 하딩이 설계하였고, 1900년 기공되어 1910년에 준공되었습니다.

고종은 고관대신과 외국 사절들을 만나는 용도로 석조전을 사용하였는데요.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기 이전까지는 현대미술품을 진열하였으며, 1946년~1947년까지 미.소 공동위원회가 사용하였고, 1948년~1950년에는 유엔 한국위원단이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하다가 2009년 문화재청에서 석조전을 1910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 공사를 진행하여 2014년에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석조전 모습

건물의 전면과 동서 양면에 베란다를 설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석조전의 옆모습

18세기 신고전주의 유럽 궁전 건축양식을 따른 것으로 당시 건축된 서양식 건물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건물입니다.

 

국립현대박물관 덕수궁관과 석조전이 통할 수 있게 연결되어 한 몸임을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석조전 앞에 설치된 서영식 분수와 해시계 모습

 

앙부일구(해시계)는 보물 845호로 지정된 것으로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하고 있오, 이를 복제한 작품입니다.

 

1434년(세종 16)에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던 해시계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배경으로 한 정원 모습

 

덕수궁 준명당(좌)과 즉조당(우) 모습

 

즉조당15대 광해군과 16대 인조가 즉위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97년 고종의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직후 정전으로 이용하였으며, 이때 즉조전의 이름을 태극전, 중화전으로 불렀습니다.

 

 

이후 1902년 새로운 정전이 세워지자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는데요.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에 소실되었던 즉조당은 그 해에 석어당, 준명당과 함께 건물을 다시 짓고, 1905년 9월 현판을 걸어 완전히 중건하였습니다.

 

이곳은 고종의 후비인 순헌황귀비가 1907년부터 1911년 7월 승하할 때까지 생활하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즉조당에서는 즉조당 재현집기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함께 관람하면 좋겠습니다.

 

준명당은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04년 화재 때에 소실되었으며, 같은 해에 건물을 다시 짓고, 1905년 8월 현판을 걸어 중건했다고 합니다.

 

목조 건물로 즉조당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고종이 신하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으로, 함녕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고종의 침전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1916년 4월에는 덕혜옹주 교육을 위한 유치원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준명당과 즉조당 뒤편에는 굴뚝이 있습니다.

 

단풍나무도 색깔이 빨갛게 잘 익었습니다.

 

덕수궁 석어당

준명당과 즉조당 아래 우측에 자리한 건물입니다.

 

석어당의 창건 연대 역시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같은 해에 건물을 다시 짓고, 1905년 9월 현판을 걸어 완전히 중건하였습니다.

 

덕수궁의 유일한 중층의 목조 건물로 선조가 임진왜란 중 의주로 피난갔다 환도한 후 거처하셨던 곳이자 1608년 2월 승하한 곳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밖에 광해군이 인목왕후를 유폐시켰던 곳,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광해군의 죄를 문책한 곳이기도 하며, 특히 석어당은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으로 소박한 살림집 같은 건물입니다.

 

상상의 정원 행사로 황수로의 '홍도화'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채화라고 해서 생화대신 손으로 만든 가화를 장식했다고 합니다.

생명존중 사상과 왕의 위엄과 길상, 장수를 꿈꾸던 조선왕조의 의미가 담겨있네요.

 

마지막으로 본 덕수궁 정관헌

 

정관헌은 조선 역대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봉안했던 장소로 1900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엔 후원 언덕 위에 있어서 휴식용 건물로 사용했습니다.

 

 

이 전각은 러시아 건축가가 설계한 동서양의 양식을 모두 갖춘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동양식이며, 건물은 차양칸과 난간을 서양식처럼 꾸몄습니다. 또한 난간에는 사슴, 소나무, 당초, 박쥐 등의 전통 문양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정관헌 내부 모습

 

정관헌에서 내려다본 덕수궁 모습

 

고종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교사절과 연회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관헌에서 대한문 방향으로 나오면 연지가 있습니다.

덕수궁에서 한국식 전통정원으로 꾸민 곳입니다.

 

고궁을 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잠시 걸었습니다.

아직 단풍이 절정은 아니지만 가을을 느끼기엔 충분한 풍경입니다.

 

영국 대사관길이 개방된 가을에 걷기 좋은 덕수궁 돌담길

 

‘정동길’이라고도 불리는 덕수궁 돌담길은 대한민국의 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죠.

 

수많은 노래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이곳을 연인이 걷고 나면 얼마 안돼 헤어진다는 소문도 떠돌았는데요.

옛날 이곳에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지만 이런저런 유명세만큼이나 이 길은 아름답습니다.

 

인근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극장을 비롯한 문화시설과 고궁이 위치해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거리입니다.

 

덕수궁 돌담길과 함께 들리면 좋은 서울시립미술관(SeMA)

 

덕수궁 돌담길 너무 예쁘지 않나요?

 

잠시 배가 출출해 서울 2대 디저트 맛집이라는 리에제와플에서 와플을 구입했습니다.

여전히 줄 서서 먹는 맛집이네요.

 

서울 3대 디저트 맛집이라는 덕수궁 리에제와플

 

플레인 와플과 미숫가루를 사서 먹었는데, 맛있네요.

 

아직 덕수궁엔 단풍이 완전히 물들진 않았지만, 10일 정도 지나면 멋진 가을단풍이 장관을 이룰 것 같네요.

가을엔 이별의 덕수궁 담장길이 아닌 사랑의 담장길로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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