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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산리고분군의 부여 백제왕릉원과 부여 나성

by 휴식같은 친구 2021.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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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산리고분군의 부여 백제왕릉원과 부여 나성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에서 공주와 부여에 있는 백제역사 유적지구를 모두 돌아보기엔 애초에 불가능했나 봅니다.

서울에서 마음먹고 와야 하는 곳이라 이왕 온 김에 가능하면 모두를 보려고 했지만, 시간이 부족하네요.

더욱이 동절기엔 대부분 관람시간이 오후 5시, 입장 마감은 1시간 빠른 오후 4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계획했던 국립부여박물관은 아예 가보지를 못했고, 능산리고분군에 있는 부여왕릉원과 백제 부여나성은 입장시간이 지나 밖에서만 잠시 바라보고 왔습니다.

 

능산리 고분군은 사적 14호로 지정된 백제 사비시대 7개의 고분이 있는 곳이며, 백제 부여 나성은 백제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8.4km의 성입니다.

능산리고분군을 부여왕릉원 혹은 백제왕릉원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관람시간이 지나 부여왕릉원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바깥에서나마 조금은 볼 수 있었습니다.

능산리 고분군(부여왕릉원) 입장료 등 관람정보와 백제왕릉원과 부여 나성 풍경을 담았습니다.

 

부여왕릉원 매표소

 

능산리고분군(부여 백제왕릉원) 동쪽에 무료주차장이 있고, 그 앞에 부여 숭목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후 4시 반 정도 도착했는데, 마감 1시간 전부터 입장이 불가능해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부여왕릉원(능산리고분군) 관람안내

 

관람시간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1시간 전 입장마감)

휴무일 없음

입장료(관람료) 성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400원

주차장 무료

 

부여왕릉원의 단풍도 예쁘게 피었습니다.

 

그냥 가기엔 아쉽고, 부여왕릉원 주차장 앞에 부여 숭목전이 있길래 잠시 구경했습니다.

 

백제는 온조왕이 건국한 이래 31명이 통치하였습니다.

도읍의 위치와 시기에 따라 한성백제, 웅진백제, 사비백제로 구분되는데요.

이 중 사비백제시대는 성왕이 도읍을 부여로 천도한 538년부터 멸망한 660년, 의자왕까지의 시기입니다.

 

 

부여 숭목전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비롯하여 사비백제의 성왕, 위덕왕, 해왕, 법왕, 무왕, 의자왕 등 6명의 위폐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곳입니다. 

 

사비백제 왕족의 무덤인 능산리고분군(부여 백제왕릉원)에서 매년 대왕제를 지냈는데 별도의 제례공간이 없어 아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2016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19년에 준공해서 백제문화제 기간에 제례를 거행하고 있답니다.

 

숭목전

 

숭목전 옆으로 부여왕릉원 입구로 올라가면 백제왕릉원이 있습니다.

직접 들어가지 못해서 사진은 부여군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백제 부여왕릉원은 사비시대(538~660)의 백제왕릉묘역으로 동쪽 나성의 바깥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7기의 고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도 각기 고분이 분포하고 있어 크게 3개의 무덤군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중앙구역에 위치한 무덤들이 그 크기나 위치로 보아 사비시대 역대 왕들의 왕릉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왼쪽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무덤 2기가 보이는데요.

이곳은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의자왕단’이라는 곳입니다.

의자왕의 무덤은 중국에 있었는데, 2000년에 능산리 고분군으로 혼을 옮겨 오는 의식을 치르고 이곳에 의자왕의 가묘가 조성된 것이라네요.

우리나라 최초로 타국에서 유명을 달리 한 왕으로, 시신은 없고 뼛가루만 묻혀 있다고 합니다.

 

7기 고분 중 동하총인 1호분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교류를 증명해 주는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이래 여러 차례 조사되었으나 부장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옻칠과 금박으로 장식된 관의 파편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최근 나성과 능산리 왕릉묘역 사이의 계곡에서 이곳에 안장된 역대 왕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절터가 조사되었는데, 그곳에서 백제 금속공예의 진수를 말해주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제287호)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제288호)이 출토되었습니다.

 

이곳의 왕릉은 공주 송산리고분군과 다르게 모두 굴식돌방무덤 형태라고 합니다.

 

차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하면 도로에서 부여왕릉원과 백제 나성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타납니다.

잠시 내려 주위 부여왕릉원과 나성을 볼 수 있었네요.

 

좌측 성이 부여 나성이고, 중간 평평한 지대가 부여 능산리사지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이 출토된 곳입니다.

 

백제왕릉원 서쪽 아래에 자리한 1호분(동하총) 모형이라고 하는 듯합니다.

 

부여 능산리사지 모습(사적 434)

 

능산리사지는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때의 절터로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일탑 일금당 전형적인 백제 가람 형식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백제 금동 대향로, 백제 창왕명 사리감이 출토되었답니다.

 

능산리사지 서쪽엔 부여 나성이 있습니다.

 

백제의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해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긴 538년경 쌓은 둘레 8.4㎞의 성으로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부여 시가지 외곽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안쪽의 작은 성과 그 바깥의 도시까지 감싼 바깥쪽의 긴 성벽이 있는데 바깥쪽 성벽을 바로 나성(또는 나곽)이라고 한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평양성백제 나성과 함께 가장 오래된 나성 중의 하나이며, 고려시대엔 거란족 침입 시기인 11세기에 개경이 나성이 축조된 적이 있습니다.

 

성벽은 부소산성의 동문이 있던 자리에서 시작하여 금강변까지 흙으로 쌓아 만든 것으로, 지금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현재는 청산성 동쪽에 20m 정도와, 석목리에서 동문 다리까지, 그리고 필서봉에서 염창리까지 희미하게 그 형적이 남아 있다고 하네요.

 

 

성의 바깥쪽 벽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안쪽 벽은 완만하여, 성 위에서 말을 달릴 만한 길이 있고 곳곳에 초소가 있습니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필서봉에는 횃불을 올리던 봉수터와 건물터가 남아있고, 성 안에는 백제의 왕궁을 비롯하여 관청, 민가, 절, 상가 및 방어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나성의 전체적인 구조는 남쪽과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또 물길도 파놓아서 자연적인 2중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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