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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탐라국의 시조/발상지, 삼성혈

by 휴식같은 친구 2022.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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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의 시조/발상지, 삼성혈

 

 

제주 삼상혈탐라왕국의 발상지탐라국의 시조가 땅에서 솟아난 곳입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사적 13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제주 삼성혈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방문한 후 참으로 오랜만에 방문했는데요.

당시에는 제주여행을 하면 용두암과 목석원 등과 함께 필수로 방문하는 여행지였습니다.

 

당시에는 삼성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나치듯 방문한 곳인데, 지금 와서 보니 제주 역사에서 정말 큰 의미를 지닌 역사의 현장이더군요.

이곳 역시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에서 보고 한 번 방문하고 싶어서 오전에 걷고, 오후에 삼성혈을 방문했습니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을 읽고 이번 제주여행에서 참 많은 곳을 방문했습니다.

 

제주여행 도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제주편'

 

기원 전후 고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해상무역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는 탐라국의 시조가 태어나고 발상지였던 삼성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삼성혈은 제주시 이도일동,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삼성혈은 지금으로부터 4,300여년 전 제주도의 개벽시조인 삼을나 삼신인(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이 이곳에서 동시에 태어난 곳입니다.

고을나는 제주 고씨의 시조이며, 양씨, 부씨가 그들의 후손인 것입니다.

 

탐라국의 삼신인은 수렵생활을 하다가 우마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벽랑국 삼공주를 맞이하면서 결혼하고 농경생활이 시작됐으며 이후 탐라왕국으로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삼성혈에는 3개의 지혈이 수백년 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고이는 일이 없고,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쌓이는 일이 없는 성혈입니다.

 

조선 중종 21년(1526) 제주목사 이수동이 처음 표단과 홍문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를 하기 시작한 이래 성역화 작업이 이루어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삼성혈에 왔지만, 기억에 어떤 모습인지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ㅎㅎ

 

홍살문을 지나 삼성혈 입구인 전시문이 있고, 매표소가 순서로 위치합니다.

관람로를 따라가면 모성각과 전시관, 영상관이 있습니다.

 

전시관에서 나와 다시 관람로를 따라 가면 수백년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삼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삼성문과 삼성전이 있으며, 그 뒤에 삼성혈이 있습니다.

그리고 삼성전 옆에는 숭보당과 제기고, 수직사, 전사청, 충무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성혈 정문인 건시문

 

건시문 앞에 있는 돌하르방제주도 민속문화재 2-9, 10호로 지정되었으며, 이곳에 있는 돌하르방 2기는 제주읍성 서문 밖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문헌 기록상 조선 영조 30년(1784)에 제주목사 김몽규가 세웠다고 전해지며, 다른 성문이나 사찰 앞에 설치한 장승과 같이 수호신 역할과 금표적 기능을 가진 것이랍니다.

 

제주도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오리지널 돌하르방은 총 48기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응중석, 우석목, 벅수머리 등으로 불리는 돌하르방은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진 석상으로 제주읍성 동서남 3개의 문 밖에 각 8기씩 24기가 세우져 있었고, 정의현성, 대정현성의 3개의 문 밖에 4기씩 12기(총 24기)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현재 제주도에 남아있는 하르방은 관덕정, 삼성혈, 제주시청, 제주대 박물관 등 제주 시내에 21기, 서귀포시 표선읍 성읍리에 12기, 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리, 안성리, 보성리에 12기 등 모두 45기가 남아 있고,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에 2기가 있어 47기가 잔존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1기는 제주읍성 남문 밖에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사라졌습니다.

 

삼성혈 매표소

 

삼성혈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 ~ 18:00(매표마감 17:30)

휴무일 연중무휴

관람료 성인 4,000원, 청소년 및 군인 2,500원, 어린이/경로/장애인/유공자 1,500원

주차장 주차요금 1시간 30분 무료

관람 소요시간 30분 ~ 1시간

 

 

2003년 이래로 요금인상을 자제하다가 금년 3월부터 2,500원에서 4,000원으로 인상되었습니다.

단체여행객의 경우 의미없이 같이 오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유홍준 교수가 책에서 말했듯이 요즘 국립공원과 박물관 등 대부분 무료로 운영해서 입장료 받는 곳에 대한 반감이 있는데, 무작정 무료보다는 어느 정도의 유료화 정책으로 변경하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무조건 공짜는 좋지 않는다는 것에 공감이 갑니다.

 

삼성혈 경내의 고목들 풍경이 무척 경이롭게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관람로 표시가 있으므로 관람로를 따라 순서대로 이동하면서 구경하면 됩니다.

제주목사로 왔던 이들의 공적비로 보입니다.

 

모성각

 

관람로를 따라 걸어가니 전시관 옆 영상관에서는 삼성혈에 관한 영상이 시작된다고 해서 먼저 들어갔습니다.

 

삼신인의 용출에서 탐라국으로의 발전과정과 삼성혈 관련 유적지를 애니메이션으로 10여분 상영하고 있습니다.

 

삼성혈의 세 구멍에서 탐라국의 시조인 삼신이 나왔으며, 수렵생활을 하던 중 어느 날 벽랑국에서 3공주와 함께 우마와 곡식들이 도착했습니다.

벽랑국의 왕의 꿈에 탐라국에 삼신이 있으니 세 딸을 시집보내야 살 수 있다고 해서 보낸 것이라고 영상에 나옵니다.

 

도착했던 곳은 온평리에 있는 연혼포라는 해안(삼신인이 이를 발견하고 쾌성을 질렀다 하여 쾌성개, 환성개라고도 부름)이며, 아직도 해안가에 말 발자국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벽랑국은 당시 전남 완도군에 있던 나라라고 합니다.

 

 

삼신인은 벽랑국의 세 공주와 각각 혼인지에서 결혼을 했고, 신방굴에서 신혼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삼신인은 활을 쏘아 세 구역으로 나누어 지금의 일도, 이도, 삼도를 각각 정해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를 기록한 비석이 삼사석이며, 활을 쏜 곳은 사시장올악이라고 합니다.

 

삼성혈 전시관

삼성혈 신화에 대한 모형도와 도지정 문화재인 홍화각, 홍화각기, 급제선생안과 고문서, 제기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관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서 찍지를 못했습니다.

 

삼성혈과 관계된 유적지로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연혼포, 혼인지, 사시장올악, 삼사석 등이 있습니다.

삼성혈 내에 옮겨 놓은 삼사석비가 있으며, 나머지는 온평리 일대에 있습니다.

 

다음날 궁금해서 혼인지와 신방굴은 다녀왔네요.

 

탐라 시조가 결혼한 곳, 혼인지와 신방굴

 

삼성혈 전시관 앞에 있는 삼사석비

 

1735년(영조 11)에 제주목사 김정이 탐라국의 시조인 고, 양, 부 삼신인이 벽랑국의 세 공주를 배필로 맞아 각자 살 땅을 정하려고 화살을 쏘았다는 전설을 적은 비석입니다.

 

삼사석 비석은 화북동 삼사석 옆에 있었으나, 1930년 고한용 등이 비석을 그 자리에 묻고 옆에 새로 만들어 세웠다고 합니다.

묻혀있던 원래의 삼사석비를 1997년에 보수하여 2009년에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관람로를 따라 다시 걸어갑니다.

 

삼성혈 성역 내에는 700여 나무와 43종의 수목이 자라고 있습니다.

500년 이상되는 곰솔과 구실잣밤나무, 녹나무, 팽나무 등 4종의 조종이 455그루나 있다고 합니다.

 

삼성시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삼성전 문인 삼성문

분향하는 곳으로 삼성전과 함께 조선 숙종 24년(1698)에 건립하였습니다.

 

삼성전은 4,300여년 전 탐라를 창시한 삼을나의 위패가 봉안된 묘사로 조선 숙종 24년(1698)에 건립한 후 수차례 중수하였습니다.

신라에 입조했던 삼고씨(성주, 왕자, 도내)가 우측에 배향되었습니다.

편액은 의친왕 이강 공(고종의 5남)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삼성전에서는 매년 춘기대제(4월 10일)와 추기대제(10월 10일)를 후손들이 본향하고 있습니다.

 

제향(제사)에 관한 모든 일을 맡아보는 집인 전사청입니다.

 

전사청, 제사 업무를 맡아보던 건물로 순조 27년(1827)에 건립된 후 몇 차례 이건 및 중수되었습니다.

 

숭보당, 유생들이 학업에 전념하는 건물입니다.

그리고 옆과 뒤쪽에 제사 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전사청 업무를 관장하던 관리들이 머무는 수직사가 있습니다. 

 

삼성전 뒤에 있는 삼성혈을 보러 이동했습니다.

이곳 삼성혈이 바로 탐라를 창시한 삼성시조가 용출한 곳입니다.

 

삼성혈 내부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으며 담장 밖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조선 중종 21년(1526) 제주목사 이수동이 처음 표단과 홍문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가 시작했고요.

이후 역대 제주목사들에 의해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졌고, 현재까지 삼성전에서 매년 춘추 및 건시대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3개의 상석

 

뒤쪽에 조금 높은 곳을 만들어 삼성혈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곳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3개의 구멍, 삼성혈이 보이네요.

 

비가 아무리 와도, 눈이 아무리 내리더라도 물이 차거나 눈이 쌓이지 않는다고 하니 신기하긴 합니다.

 

좀 더 가까이 찍은 모습

 

삼성혈도 있고 삼사석비와 혼인지, 신방굴까지 보니 전설이 실제 있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탐라국은 '섬나라'라는 의미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소국이며, 삼국시대 이래 독립국으로 존재했고, 고려 중기에 군현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조선 초기까지 탐라의 지배층은 성주, 왕자 등의 칭호를 받다가, 1445년(세종 27)에 탐라의 귀족계급은 완전히 평민화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처음엔 백제에 조공을 바쳤고, 백제가 망한 후에는 신라에 조공을 바친 것으로 보이며 이때에도 독자적인 나라를 이루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일본과 왕성한 교류를 했고, 동북아시아에서 상당히 높은 국제적인 위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앞으로 제주의 고대역사인 탐라에 대한 연구조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제주도에 수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제주도의 뿌리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하는 기분이 듭니다.

볼거리 없다고 투덜댔던 어린 시절과 너무나 대비되는 저를 발견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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