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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충주 가볼만한 곳, 천년고찰 충주 미륵대원지

by 휴식같은 친구 2022.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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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가볼만한 곳, 천년고찰 충주 미륵대원지

 

 

오랜만에 비가 내리는 날씨, 숙소에서 나와 충주 미륵대원지로 향했습니다.

 

충주 미륵대원지(사적 317호)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고려시대 미륵리사가 있던 절터로 석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석굴사원터입니다.

거대한 돌을 이용해 석굴을 쌓은 후 불상을 모셨고, 위에 목조건물이 있었던 자취가 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고 있습니다.

 

미륵대원지에는 석불입상과 5층 석탑 등 보물들과 석등과 당간지주 등의 중요 문화재들이 남아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함을 슬퍼해 금강산으로 갔는데, 도중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도록 돌에 마애불을 만들었고, 마의태자는 이곳에서 석굴을 지어 북쪽을 향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충주 가볼만한 곳, 천년 고찰 충주 미륵대원지 모습을 담았습니다.

 

충주 미륵대원지의 원래 이름은 중원 미륵리사지라고 불리다가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습니다.

미륵대원지 아래에 미륵세계사라는 작은 사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미륵대원지는 하늘재, 계림재, 새재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짜기 북쪽 기슭에 북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창건 연대나 내력, 가원의 정확한 명칭 등은 알 수 없으나, '미륵당초'라고 적힌 기와가 나와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미륵대원지 주변 약도

 

좌측에 이륵리 원터가 있고, 하늘재 입구, 미륵리 삼층석탑과 불두가 있습니다.

우측에 미륵대원지와 세계사라는 작은 사찰이 자리하고 있고요.

 

바로 들어가지 않고 아래쪽 길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안개 낀 주변의 산세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충주 미륵리 원터

 

미륵대원지 창건과 더불어 지리적 중요성이 큰 이곳에 원을 별도로 세우고 운영했던 것으로 보이는 곳입니다.

이 원터는 고려초기 충주와 문경을 잇는 계립령로(하늘재)에 위치하며 충주를 넘어가면 문경 관음리에 절터가 있는데 이 또한 원의 기능을 갖춘 것으로 추측한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조령(문경새재)이 개통되면서 미륵리의 원은 기능을 상실해 갔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륵리 원을 따라 올라가 봤습니다.

 

200여 미터 올라가면 하늘재와 연결되는 길이 있고, 미륵대원지 삼층석탑과 미륵리 불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충주 미륵대원지 위에 대광사라는 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형태는 회(回) 자 구조로 가운데에 말을 묶어두는 마방을 두고 주변에 여행자와 관리인이 기거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을 축으로 남한강 중.상류지역에 위치한 중원은 넓은 들 가운데라는 사전적 의미와 나라의 중심, 천하의 중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의 일대는 고구려의 국원성이 있던 자리이며, 이후 신라 진흥왕 때 영호를 확장시키면서 국원소경이 설치되었고, 경덕왕 때에 이르러 중원경이라 불리다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충주로 개명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명의 변화에서 보듯 그만큼 앞다퉈 차지하려던 땅이며, 월악산 지릅재와 하늘재로 이어지는 게립령과 남한강 수운을 통해 문화와 문물이 교류하는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충주 미륵리 원터 모습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이며 하늘과 잇닿은 2천년 숲길, 남북을 잇는 요충지였던 계립령로(하늘재) 입구입니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높이 525m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삼국시대(156년) 때 신라의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빼앗긴 하늘재를 다시 찾기 위해 끈질긴 전쟁을 벌였으며,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을 피해 몽진할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교통의 요지이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이었으나 조선 태종 때 새재길이 열리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었습니다.

 

하늘재 탐방로 안내

하늘재까지는 2km 거리입니다.

 

하늘재로 향하는 산에서 비가 오니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작은 폭포 같습니다.

 

하늘재 위쪽을 보면 삼층석탑이 바로 보입니다.

 

미륵리 삼층석탑

탑 기단부에 다람쥐 한 마리가 놀고 있더나 다가가니 더망가네요.ㅎㅎ

 

미륵리 3층 석탑은 고려시대 초기의 일반 석탑 양식으로 높직한 2층 기단 위에 3층의 몸돌 부분을 형성하고 그 위에 노반을 얹고 있는 모습입니다.

 

 

중원 미륵사지(충주 미륵대원지)와 2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비보사탑설(도선국사의 이론)에 의해 땅기운이 약한 곳을 보강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층석탑 위에는 미륵리 불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높이 138cm, 최대 너비 118cm의 대형 화강암 불두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미완성의 석불로 고려시대 지발의 불상 양식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다시 미륵대원지로 내려오니 입구에 미륵대원지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당간지주는 깃발을 매다는 경대를 고정하기 위한 장치로 보통 사찰의 입구에 세워 신성함을 표시하는 곳입니다.

충주 미륵대원지의 당간지주는 신라시대보다 폭이 넓고 높이가 낮은 고려시대 양식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미륵대원지 일대 모습

 

작은 냇가에는 돌탑들이 많이 세워져 있습니다.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귀부

 

길이 605cm, 높이 180cm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거북모양 받침입니다.

귀부의 등 가운데에 비좌가 있으나 비를 세울 수 있는 정도는 아니며 수차례 발굴조사에서 비석 조각조차 찾지 못해서 비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미륵대원자 동쪽에 자리한 미륵세계사

 

미륵세계사 대웅전

 

미륵세계사에서 냇가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미륵대원지가 있습니다.

 

충주 미륵대원지

 

충부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95호)

높이 6m 석탑으로 그 자리에 있던 바위로 받침돌과 기단을 만든 후 초층탑신석을 올려놓았습니다.

 

바위 안쪽을 파내어 만든 기단 면석 한 면이 직각을 이루지 못하고 일그러진 모습도 있습니다.

 

충주 미륵대원지 사각석등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특이한 결구수법을 보여주는 석등인데요.

특히 석주형 화사석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일부 석등에서만 채용된 것으로 고려 수도인 개성 일대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

 

전형적인 8각 석등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우수한 석등입니다.

하대석은 사각형, 윗부분은 연꽃을 새겼으며 간주석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8각형의 돌기둥으로 상대석에는 앙련을 조각한 모습입니다.

 

 

고려시대 절터에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팔각석등과 고려시대의 사각석등이 함께 있는 모습은 당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가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이 있는 석굴은 현재 작업 중으로 펜스로 막혀 있습니다.

 

미륵리 석조입상은 펜스로 가려져서 입구에 붙여있는 사진으로 감상해야 할 듯하네요.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미륵대원지 석굴의 본존불에 해당합니다.

높이가 10.6m에 이르는 큰 불상으로 벽면에는 석굴암과 같이 조각상이 희미하게 조각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화재로 인해 부조상의 일부만 남아 있어 원형 확인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해발 378m의 고지대에 위치한 미륵대원지에는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의 인공으로 쌓은 석굴 형식의 불전이 있습니다.

석굴 중앙에는 대좌를 두어 석불입상을 봉안하고, 측면과 후면 석벽의 중앙은 감실처럼 만들어 작은 불상들이 부조되었습니다.

 

석굴 상부는 목조 건물로 지어 천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자취만 남아 있고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여래상의 얼굴과 손은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했으나 다른 부위는 간략하게 조각하여 돌기둥을 보는 듯합니다.

얼굴은 상대적으로 입체적인 편으로 눈은 감고 있는 듯하며 눈썹은 반원형을 그리면서 코로 이어집니다.

 

 

절터를 발굴할 당시에 출토된 기와 중에 미륵이 다수 찍힌 것으로 보아 부처의 명칭은 미륵으로 생각되나 왼손에 보주를 들고 있는 미륵상은 정례가 없어 단정하기 어렵다고 하네요.

 

전체적으로 고려 전기의 거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에서 바라본 미륵대원지 모습

 

세계사 앞에 온달장군 공깃돌 바위(둥근 빨간원)가 있습니다.

 

온달장군의 공깃돌이 왜 여기 있는지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고구려 땅이었던 이곳을 신라에게 빼앗긴 후 온달장군과 연개소문은 하늘재를 차지하기 위해 끈질긴 전쟁을 벌였지마 끝내 차지하지 못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측은하게 여겨 만들어진 설과 고구려 지역민들의 향수가 반영되어 내려오는 전설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미륵세계사 모습

 

미륵세계사 산신각

 

충주 미륵대원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절터이자 석조와 목구조를 결합한 석굴을 금당으로 삼은 유일한 유적입니다,

토함산 석굴암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유일한 석조, 목조 구조의 반축조 석굴사원으로 평가도는 의의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역사여행도 할 겸 다녀오면 좋은 곳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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