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휴식같은 여행으로의 초대 ♪♩♬~
서울시 강남권 여행

정조가 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현륭원 참배하러 가던 행궁, 용양봉저정 공원

by 휴식같은 친구 2022. 11. 29.
반응형

정조가 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현륭원 참배하러 가던 행궁, 용양봉저정 공원

 

 

조선 22대 왕인 정조(1752~1800, 재위 1776~1800) 임금은 1762년 11살의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폐비 윤씨의 복수를 위해 패륜 정치를 펼친 연산군과는 다르게 화성을 축성하고 현륭원으로 이장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린 효자 왕이었습니다.

 

한강대교 남단 노량진 입구에는 정조대왕이 수원 화산에 있는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갈 때 한강 노들강에 배다리를 놓고 건너가 잠시 쉬어가는 노량행궁으로 쓰던 용양봉저정 공원이 있습니다.

 

13회의 화성능행 중 가장 장엄했던 을묘년의 정조대왕 능행길(1795)인 화성행차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용양봉저정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용양봉저정 공원 모습

 

용양봉저정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장조의 무덤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갈 때 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건너가 잠시 쉬는 행궁이었는데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이 소유한 망해정이라는 정자였다가 정조 13년(1789)에 정조가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왕이 점심을 들었다 하여 주정소라고도 불렀고, 정조가 이곳을 살펴보고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대고 봉황이 나는 것 같아 억만년 가는 국가의 기반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여 용양봉저정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당시 한강에 설치된 배다리는 큰 배 80척과 작은 배 400~500여 척을 징발하여 한강을 건너지르게 한 다음 그 위에 긴 널판 1,000여장을 깔고 양쪽 가에는 난간을 설치하여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화성능행도를 보면 배다리 양쪽 끝과 중앙에 홍살문을 세웠고 한강을 배다리로 건너는 장면이 장관을 이루는 성대한 행렬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양봉저정 앞에 세워진 주교사터 표지석

 

주교사는 임금이 행차할 때 한강에 부교를 놓는 일과 전라도와 충청도 지방의 조운을 맡아보던 관아였습니다.

정조 13년(1789)에 설치되었고, 고종 19년(1882)에 폐지된 후 업무가 금위영으로 이관되었다고 합니다.

 

용양봉저정 일대를 관광명소화하는 작업을 2025년까지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한강대교의 백년다리 설치와 용양봉저정 역사공원과 용봉정 가족공원이 조성된다고 합니다.

 

 

정조 이후에도 많은 왕이 이곳을 이용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유락시설(온천, 욕장, 운동장, 식당 등)인 용봉정으로 쓰이며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행궁 주변 대부분이 사라지고 지금은 용양봉저정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광복 이후 이곳을 국유지로 환원하여 오락시설을 철거하고 원래의 이름으로 고쳤습니다.

 

용양봉저정 정자는 일반 누정과 같이 언덕 위에 북향하여 자리잡아 경관이 수려한 한강을 내려다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당초 노량행궁에는 두세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의 용양봉저정에서 바라보는 한강은?

노들길 고가와 한강대교로 한강전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옛날처럼 다리가 없었다면 한강 전망이 좋았을 것이란 상상만 해 봅니다.

 

용양봉저정 건물은 팔작지붕과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내부는 원래 마루와 온돌방이었으나 지금은 온돌방은 사라지고 정(正) 자 모양의 우물나루만 되어 있습니다.

 

용양봉저정 모습

 

용양봉저정에서 바라본 한강방향

한강이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실내에는 정조대왕의 화성능행에 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내에서 바라본 한강방향 풍경

 

 

13회의 화성능행 중 가장 장엄했던 을묘능행(1795년)을 담은 정조능행도에 나온 용양봉저정 모습

지금은 정자 한 채만 남아있지만, 1791년 준공 당시의 그림으로 봤을 때 부속건물이 제법 많았음을 보여줍니다.

 

1795년 정조의 화성능행 빈차도

 

1700여명의 인물과 800필의 말을 담은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지휘 아래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이명규 등 진경시대의 쟁쟁한 화원들이 그린 그림입니다.

 

1795년 정조대왕의 화성능행길인 화성행차 일정표

 

용양봉저정 뒤뜰 모습

 

 

조선시대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가 화성행차를 하면서 쉬었다 갔을 용양봉저정,

그 옛날 정조의 마음속을 헤아려 보는 시간을 가져 봤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