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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조선 6대왕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릉, 사릉과 사릉역사문화관

by 휴식같은 친구 202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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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조선 6대왕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릉, 사릉과 사릉역사문화관

 

 

대한제국 1, 2대 황제였던 고종과 순종의 조선왕릉인 홍유릉을 관람하고, 가까이에 또 다른 조선왕릉인 사릉이 있어 찾았습니다.

 

(조선 26대, 27대 왕) 대한제국 1, 2대 황제 고종과 순조의 황제릉, 홍유릉

[조선왕릉] 영원과 회인원, 덕혜옹주와 의친왕 묘(in 홍유릉)

 

남양주 사릉은 비운의 조선 임금인 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입니다.

 

단종은 삼촌 세조에 의해 쫓겨나 1457년(세조 3)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둔 뒤 시신은 영월 동강에 버려졌습니다.
충성심 강한 영월 호장 엄흥도(산악인 엄홍길의 조상이라고 함)가 시신을 거두어 동을지산 기슭에 암매장한 뒤 59년이 지난 1516년(중종 11)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묘를 찾아 봉분을 갖추게 되었는데요.

그 뒤 1580년(선조 13)에 상석, 표석, 장명등, 망주석을 세웠고, 1698년(숙종 24) 단종의 신위를 모심과 동시에 이곳의 능호를 장릉이라 했습니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된 후 군부인으로 신분이 낮아져 정업원으로 터전을 옮겼는데요.

정업원 뒷산 봉우리에 올라 영월 방향의 동쪽을 바라보며 단종을 그리워하며 한 많은 삶을 살았던 왕비입니다.

 

1521년(중종 16) 8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 단종의 곁이 아닌 이곳 남양주 사릉에 묻혔습니다.

남양주 사릉 풍경을 담았습니다.

 

남양주 사릉은 남양주 진건읍 사능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홍유릉에서 직선거리로 1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입니다.

 

남양주 사릉은 정순왕후의 능 하나만 있고, 한쪽에 작은 사릉역사역사문화관이 있습니다.

 

 

남양주 사릉 관람안내

 

관람시간 2~5월/9~10월 06:00~18;00, 6~8월 06:00~18:30, 11~1월 06:30~17:30

(매표 및 입장가능 시간은 1시간 전까지)

휴무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관람료) 만 25~64세 1,000원, 그 외 무료

주차장 무료

관람 소요시간 20~ 30분, 

 

정순왕후(1440~1521)는 여랑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1454년(단종 2)에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다음 해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자 의덕왕대비가 되었습니다.

 

 1457년(세조 3)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었고, 정순왕후는 군부인으로 낮아졌습니다.

궁을 나온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에 있는 정업원에서 한 많은 여생을 보내다가 1521년(종종 16) 8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업원은 왕실 여인들이 출가하여 수도하던 절을 말함)

 

정순왕후가 죽자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의 시댁인 해주 정씨에서 저신들의 집안 묘역에 정순왕후의 묘를 모셨다고 합니다.

 

이후 1521년(숙종 24)에야 단종이 왕의로 복위됨에 따라 정순왕후도 왕비로 복원되었고 무덤도 능으로 높아져 사릉이라 하였습니다.

단종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해서 사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때 주변의 해주 정씨들의 묘를 옮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숙종은 그대로 주어 현재 사릉 우측에 해주 정씨 묘역이 함께 있습니다.

 

사릉 홍살문

 

정순왕후는 정업원에서 시녀들과 살면서 염색일을 하며 어렵게 살았다고 합니다.

세조는 말년에 이런 궁핍한 생활을 면할 수 있게 집과 식량을 주겠다고 했지만 거부했다고 합니다.

 

 

세조는 피부병으로 꽤나 고생한 것으로 역사에 남아 있는데요.

문종의 비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 단종의 목숨까지 빼앗은 세조에게 호통을 치며 목을 조르고 침을 뱉았는데, 그 이후보터 피부병이 생겨 고생했다고 전해집니다.

 

제를 올리는 정자각

제수진설도와 기신제(7월 17일)

원래 일반 무덤으로 있던 것을 왕릉으로 소성하다 보니 봉분이 정자각에서 바로 보이는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사릉 입구 모습

 

정순왕후의 사릉 묘역

 

병풍석과 난간석, 무석인 등의 석물은 생략하고 문석인, 장명등, 망주석, 석양, 석호를 배치하여 간소하게 조성된 모습입니다.

 

사릉의 비각

단종비 정순왕후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 비석이 있는 건물입니다.

 

사릉에서 내려와 좌측으로 이동하면 사릉역사문화관이 있습니다.

 

눈이 쌓여있는 들판

그 위로 단종의 누나인 경혜공주의 시댁인 해주 정씨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사릉 재실

 

재실도 아담한 크기로 지어져 있습니다.

 

재실을 지나면 작은 사릉역사문화관이 있는데요.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야기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단종을 향한 정순왕후의 그리움, 남양주 사릉

 

14세에 단종과 결혼, 15세에 헤어져 죽을 때까지 단종을 보지도 못하고 그리워하다가 세상을 뜬 정순왕후를 삶을 생각하니 정말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남양주 사릉의 능역구성

정순왕후의 사릉과 우측 산에 있는 해주 정씨 가문의 묘진산군부인 묘소 터가 있습니다.

진산군부인은 11대 왕 중종과 숙의 홍씨의 아들 혜안군 이회의 첫째 부인입니다.

 

조선왕릉은 남한의 18개 지역 40기가 있으며, 북한의 2기를 제외한 40기 모두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이야기

 

단종의 영월 장릉

 

아버지 문종은 병약함으로 인해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나 단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요.

문종은 그런 단종을 걱정해 대신들에게 잘 봐달라는 유언까지 남겼지만,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이런 대신들을 죽이고 단종의 왕위를 빼앗았죠.

 

 

1457년 단종복위운동이 발각되면서 노산군으로 신분이 강등되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된 뒤에도 단종을 다시 왕으로 모시려는 움직임이 계속되자, 결국 1457년 17세의 나이로 영월 관풍헌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정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선 부모, 형제, 가족도 모두 살육하는 비정한 왕족들의 세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릉과 장릉의 추봉 이야기

 

남양주 사릉과 영월 장릉은 노산군으로 강등된 지 240여년이 지난 1698년 숙종이 이들의 신분을 회복시킴에 따라 왕릉으로 추봉(죽은 뒤에 직위를 올림) 되었습니다.

1457년 단종이 죽었을 때에는 임시로 몰래 시신을 묻었다가 60년이 지난 후에야 봉분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숙종대에 단종으로 신분이 회복되고 단종의 능을 도성으로 옮기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오래된 무덤을 파헤치는 일이 미안하다 하여 그대로 두고 조선왕릉으로 격을 높였다고 합니다.

 

조선왕릉 분포도

조선왕릉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글로 확인해보세요.

 

조선왕릉 총정리 (분포, 구성, 관람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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