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영원과 회인원, 덕혜옹주와 의친왕 묘(in 홍유릉)
대한제국 1, 2대 황제인 고종과 순종의 능인 홍유릉을 관람하고, 홍릉 옆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조선 26대, 27대 왕) 대한제국 1, 2대 황제 고종과 순조의 황제릉, 홍유릉
홍유과 유릉 주변에는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황태자비 이씨의 영원, 황세손 이구의 회인원, 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묘, 고종의 딸 덕혜옹주의 묘 그리고 고종의 후궁과 의친왕의 후실들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고종은 명성황후 사이에 순종이 있고, 순종은 순명황후와 순정황후가 있었고요.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사이에는 의민황태자(영친왕, 영원)가 있었고, 원손 이진과 황세손 이구(회인원)이 있습니다.
또한 고종황제와 귀인 장씨 사이에는 의친왕(의친왕 묘)이 있었고,
복녕당 귀인 양씨 사이에서는 덕혜옹주(덕혜옹주 묘)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홍릉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면 홍유릉 외의 무덤을 관람할 수 있고 둘레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눈이 쌓여 있어서 설경을 보는 재미도 있었네요.
홍유릉 둘레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우측에는 조선왕릉 양묘장과 논이 있습니다.
논 너머에 덕혜옹주와 의친왕 묘가 있습니다.
영원, 회인원, 덕혜옹주 묘, 의친왕 묘 관람안내
관람시간 2~5월/9~10월 06:00~18;00, 6~8월 06:00~18:30, 11~1월 06:30~17:30
휴무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무료
관람 소요시간 1시간 내외
홍유릉은 유료관람이지만, 영원 등은 무료관람이며, 홍유릉을 관람하지 않고 영원 등을 관람하려면 주차장에서 둘레길을 따라 들어오면 됩니다.
먼저 영원과 회인원에 들렀습니다.
영원과 회인원 지도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사이에는 의민황태자(영친왕)가 있었고, 원손 이진과 황세손 이구가 있는데, 이들의 묘가 각각 영원과 회인원입니다.
영원과 회인원 재실
영원
대한제국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영친왕비)의 원입니다.
왕의 아들은 대군 혹은 군의 호칭이 주어지는데, 황제의 아들은 왕이란 호칭이 주어집니다.
의민황태자(영친왕, 1897~1970)는 고종과 순헌황귀비 엄씨의 아들로 덕수궁에서 태어났고, 1900년 영친왕, 1907년 황태자로 책봉되었지만 그 해 12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에서 철저한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1920년 일본 왕족인 나시모토 노미야 마사코와 정략결혼을 하여 이진과 이구를 낳았으나 이진은 1922년 덕수궁에서 죽었습니다.
1926년 순종의 승하 후 이왕이 되었고 이론 육군사관학교 교수부장, 육군 중장으로 근무하다가 해방 후 귀국을 원했으나 무산됐습니다.
1963년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 병상에 있는 상태로 귀국했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1970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원의 정자각
의민황태자는 황태자의 예우로 시호를 의민, 원호를 영원으로 하였습니다.
영원은 조선왕릉 형식으로 조성됐지만 수라간과 수복방은 없습니다.
의민황태자비(영친왕비(일본인), 1901~1989)는 1963년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 귀국 후 사회복지법인 명휘원을 설립했고, 열악했던 장애인의 복지와 자립을 위한 삶을 살다가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89세로 눈을 감았습니다.
영원 정자각 내부
영원 입구
영원 비각
언덕 위에 조성한 영원(영친왕 무덤)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영원 모습
조선왕릉 형식을 따라 조성한 모습이며, 다소 좁은 구역에 만들어졌습니다.
봉분은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 설치되었습니다.
의민황태자의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원은 청량리에 위치한 영휘원에 있고, 의민황태자의 장남인 이진의 원은 청량리 승인원에 있다고 합니다.
영원에서 바라본 정자각
영원 옆에는 의친왕의 아들인 황세손 이구의 묘, 회인원이 있습니다.
이구(1931~2005) 황세손은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의 둘째로 태어났으며, 광복 후 귀국이 무산되어 일본에 있다가 1953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습니다.
1963년 부모님과 함께 귀국 후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며 서울대와 연세대 출강하였고,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명예총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2005년 7월 16일 일본에서 7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 영원 경내에 원을 조성했습니다.
영원과 회인원을 관람하고 다시 나와 홍유릉 둘레길을 따라 걷습니다.
덕혜옹주 묘와 의친왕 묘로 가는 길
길에는 조선의 27왕(대한제국 2대왕 포함)의 조선왕릉과 덕혜옹주의 삶, 의친왕의 삶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 황실 가계도
고종은 명성황후 사이에 순종이 있고, 순종은 순명황후와 순정황후가 있었고요.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사이에는 의민황태자(영친왕, 영원)가 있었고, 원손 이진과 황세손 이구(회인원)이 있습니다.
또한 고종황제와 귀인 장씨 사이에는 의친왕(의친왕 묘)이 있었고,
복녕당 귀인 양씨 사이에서는 덕혜옹주(덕혜옹주 묘)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고종에게는 모두 9남 5녀가 있었으나 많은 자녀가 어려서 사망해 어른으로 성장한 후손은 순종,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 등 3남 1녀뿐이었습니다.
덕혜옹주(1912~1989)는 고종황제와 귀인 양씨의 딸로 덕수궁에서 태어났습니다.
고종의 지극한 사랑은 역사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5살에 덕수궁 즉조당에 세워진 유치원에 다녔며 복녕당 아기씨로 불렸고, 1919년 아버지 고종이 세상을 떠난 후 1921년 덕혜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옹주란 후궁의 딸을 일컫는 말)
황실의 보물이었던 덕혜옹주는 고종이 세상을 떠난 후 관심이 지대해져 국내언론에 자주 보도되었고, 일본식 교육과 의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 잃은 백성들의 큰 위안거리가 되어 자주 보도되었다고 합니다.
1912년 덕혜옹주의 100일 사진
1916년 덕수궁 준명당 유치원에 입학한 덕혜옹주(가운데)
1925년 일본유학 송별기
1922년 일출심상소학교를 다니다가 192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일본유학길에 올랐으며, 영친왕 부부의 처소에 머물렀습니다.
1925년 학습원 여자 중등고에 입학했으며 당시 독살당하지 않기 위해 보온병에 물을 넣어 다니는 모습은 영화 덕혜옹주를 통해 보았습니다.
1926년 순종 서거소식에 눈물을 흘리며 보냈고, 설상가상 3년 뒤인 1929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조현병이 나타났고, 1931년에 대마도 번왕의 아들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1925년 경성일출심상소학교에서의 덕혜옹주 작품
1930년 모친 영면 1주기 행사 참여 귀국 모습
덕혜옹주는 결혼 이듬해 딸 마사에를 낳았고,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광복에 기뻐한 것도 잠시, 귀국을 하려고 했으나 이승만 정부에서는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귀국에 부담을 느껴 귀국을 막아 좌절하고 맙니다.
이로 인해 극심한 조현병 증세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1946년 도쿄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1955년 이혼하게 됐습니다.
설상가상 딸 마사에는 1956년 유서를 남기고 실종됐다가 자살했다고 알려졌습니다.
1931년 덕혜옹주의 결혼사진
1934년 딸 마사에
1962년 1월 26일 서울신문 김을한 기자의 노력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 귀국했으나 조현병에 실어증까지 겹친 병세로 병원과 창덕궁을 오가며 치료하다가 1989년 4월 21일 창덕궁 수강재에서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남편인 다케유키가 창덕궁 낙선재를 찾았으나 만나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1962년 38년 만에 환국하는 모습
덕혜옹주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주관으로 장례식이 치러졌고, 영원 동쪽 언덕에 묘를 조성했습니다.
1925년부터 1962년까지 37년 동안 그렇게 애타게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제의 반대로 가지 못했고, 해방이 되어서도 이승만 정부의 반대로 또 좌절해야 했던 덕혜옹주.
강제로 일본에 살면서 한글교육과 강제노동으로 징용된 조국의 백성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대한제국의 민족 주체성을 잃지 않았고, 어머니의 죽음에도 가지 못하며 극도의 불안과 실망으로 정신병까지 얻어 살아야만 했던 그녀가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남양주 홍유릉과 덕혜옹주묘를 보고 와서 덕혜옹주의 삶을 다시 보고 싶어 2016년에 개봉했던 손혜진 주연의 영화 덕혜옹주를 다시 보며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의친왕(1877~1955)은 고종과 귀인 장씨의 아들로 태어났고, 1892년 의화군으로, 1900년 의친왕에 봉해졌습니다.
1893년 김사준의 딸과 결혼했지만 자녀는 없었고, 이후 수관당 정씨와 수인당 김씨 등의 후실을 두었습니다.
1905년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대한제국 육군부장, 대한 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했습니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는 항일독립투사 등과 접촉하녀 1919년 대동단의 전협, 최익환 등과 상해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모의했으며, 그해 11월 만주 안동에서 일본 경찰에 발각당해 강제로 본국으로 송환되기도 했습니다.
의친왕은 일본으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배일정신을 지켰고, 광복 후 평민으로 살다가 1955년 안국동 사동궁에서 7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초장지는 화양리이며, 서삼릉으로 옮겨져 가묘로 있다 1996년 덕혜옹주묘 근처에 의천왕비와 합장으로 안장되었습니다.
1900년경 의친왕 미국 유학 전 모습
1915년경 창덕궁 인정전(맨 왼쪽)
노년의 의친왕
덕혜옹주묘와 의친왕묘가 있는 입구인데 12~2월 겨울기간에는 개방하지 않고 있어서 담벼락 사이로 관람했습니다.
덕혜옹주 묘
일제강점기 치욕의 삶으로 인생이 망가진 덕혜옹주의 삶이었는데, 홀로 눈에 덮힌 덕혜옹주 묘는 더욱 그녀를 슬프게 하고 있는 듯합니다.
일본에서 그렇게 그리던 어머니인 복녕당 귀인 양씨 곁에라도 있으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이나, 그렇지 못해 더욱 슬프게 느껴집니다.
복녕당 귀인 양씨는 덕혜옹주를 일본에 보낸 후 1929년에 유방암으로 사망 후 묘소는 고양 서삼릉 후궁묘역에 있습니다.
묘는 단묘 형태로 대한 덕혜옹주지묘라는 표석이 설치되어 있고, 망주석, 장명등, 상석과 향로석 등이 높여 있습니다.
눈은 감았지만 저승에서라도 고종 아버지와 귀인 양씨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덕혜옹주 묘 옆에 있는 의친왕 묘
의천왕비와 합장으로 안장된 의천왕 묘
표석이 설치되어 있지 않고, 묘소 앞에 상석, 향로석, 망주석, 장명등 등이 높여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한제국 시기의 고종과 순종의 후궁 및 후실의 묘를 향해 이동했습니다.
전통수목 양묘장이 있는데 조선왕릉을 관리하기 위한 소나무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홍유릉 둘레길
저 앞에 5명의 고종의 후궁, 순종의 후실 무덤이 있습니다.
수인당 김씨 묘
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두 번째 후실(김홍인)로 의친왕의 사이에서 이우, 이주, 이곤 등 삼남을 낳았습니다.
첫째 아들 이우는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현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관당 정씨 묘와 삼축당 김씨 묘
수관당 정씨 묘
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첫 번째 후실(김홍인)로 의친왕의 장남 이건을 낳은 어머니입니다.
2009년 서삼릉 경내에 있는 묘를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삼축당 김씨 묘
대한제국 1대 고종황제의 후궁으로 본명은 김옥기의 묘입니다.
1898년 궁녀가 된 후 1911년에 고종의 후궁이 되었고, 순종의 배려로 삼축당이라는 호칭을 닫았습니다.
종로구 사간동에서 살다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8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광화당 이씨 묘
대한제국 1대 고종황제의 후궁으로 본명은 이완덕의 묘입니다.
1898년 궁녀가 된 후 1906년에 고종의 후궁이 되었고, 1914년 고종의 아들 이육을 낳아 광화당에 봉해졌습니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은 후 종로구 사간동에서 살다가 8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한제국 후궁과 후실의 묘를 돌아 나오면 홍유릉 주차장이 나오는데요.
영원길 초입부이기도 합니다.
영원과 회원, 덕혜옹주묘, 영친왕묘, 후궁과 후실의 묘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길입니다.
홍유릉을 관람하러 갔지만,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였던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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