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0대 임금(왕), 경종의 조선왕릉, 서울 의릉
지난주에는 남양주 홍유릉에 이어 석관동에 있는 서울 의릉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요즘 조선왕릉 관람을 자주 하게 되는데요.
조선왕릉은 남한에 18개 지역 40기가 존재하는데, 이곳 모두를 들러볼 생각에 찾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울 의릉을 다녀오니 개인적으로 양주 온릉을 제외한 모든 조선왕릉을 다녀오게 되었고, 블로그로 적지 못한 곳은 서울 선정릉과 화성 융건릉, 남양주 광릉, 영월 장릉 등입니다.
금년엔 나머지 조선왕릉을 모두 방문하여 조선왕릉 전체에 대한 글을 적었으면 하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서울 의릉은 조선 20대 임금인 경종과 그의 비 선의왕후가 잠든 조선왕릉입니다.
서울 의릉의 정자각과 비각
그리고 앞에 있는 왕릉은 선의왕후, 뒤에 있는 왕릉은 경종의 왕릉으로 동원상하릉(같은 지역 위 아래에 자리한 무덤)입니다.
서울 의릉 주차장
주차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국예술종합학교로 갈 수 있습니다.
의릉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와 출입구를 같이 사용하고 있더군요.
한예종은 서초구 예술의 전당과 대학로 그리고 이곳 석관동 캠퍼스 등 세 곳의 캠퍼스를 갖추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국립대학입니다.
서울 의릉 관람안내
관람시간 2~5월/9~10월 06:00~18;00, 6~8월 06:00~18:30, 11~1월 06:30~17:30
(매표 및 입장가능 시간은 1시간 전까지)
휴무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관람료) 만 25~64세 1,000원, 그 외 무료
주차장 무료
관람 소요시간 10분(의룽 숲길 30분)
서울 의릉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의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입니다.
의릉은 조선 20대 왕 경종(1688~1724, 재위 1720~1724)과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1705~1730)의 능입니다.
경종의 첫 번째 비인 단의왕후의 능은 구리 동구름, 혜릉입니다.
단의왕후는 경종이 세자로 있을 때 후사 없이 사망했습니다.
구리 동구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입구 쪽에는 서울 의릉 역사문화관을 건축 중입니다.
서울 의릉
경종은 숙종과 옥산부대빈 장씨(희빈 장씨)의 아들로, 1680년(숙종 16)에 왕세자가 되었고, 1717년(숙종 43)에 숙종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봤으며, 1720년 왕위에 올랐습니다.
경종이 재위할 때에는 노론과 소론의 권력다툼이 극심한 시기였으며, 신축, 임인옥사 등 주 차례의 옥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 와중에 경종은 자식은 없고 병약하여 이복동생인 연잉군(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하고 재위한 지 4년(1724)만인 3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울 의릉 홍살문
선의왕후는 어유구의 딸로 1718년(숙종 44)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습니다.
1730년(영조 6)에 26세의 일기로 후사 없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의릉 정자각
의릉은 1724년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현재의 자리에 조성했고, 6년 뒤 선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경종의 능 아래에 능을 조성했습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희릉
경종은 병약하여 4년 만에 세상을 떠나 우리 역사에 주요 임금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왕입니다.
그러나 경종의 어머니인 옥산부대인 장희빈은 드라마로도 여러 번 나와 너무나 많이 알려진 인물입니다.
폐비 장희빈의 소생이라는 이유로 송시열 등이 속한 서인 세력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종은 세자로 책봉되었고, 이로 인해 송시열은 사사되었고 서인 세력이 한 때 실각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희빈 장씨가 있을 때에는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총명한 세자였다고 합니다.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노론과 서론으로 분파되면서 숙빈 최씨는 노론의 지지를 받았고 세자였던 경종은 소론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장희빈이 폐출되어 사사되면서 경종은 내성적으로 변했고, 숙종으로부터 견제와 미움을 받아 심한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의릉 입구
1717년 숙종의 주도하에 경종이 대리청정(실정을 트집 잡아 세자를 연잉군으로 교체하고자 하는 속셈으로) 할 무렵 숙종은 노론의 이이명을 불러 세자를 연잉군으로 교체할 것을 부탁하자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인 대립은 극에 달했습니다.
왕도 세자를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었나 봅니다.
대리청정을 맡은 경종은 매우 신중한 처세로 숙종과 노론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숙종 사망까지 버텼으며 결국 조선 20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병약하기도 했고 노론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다 보니 왕권을 제대로 구가할 수 없었죠.
노론과 소론의 대립으로 정국이 극도로 혼란스러웠고, 어머니의 죽음 등으로 화병증세를 보인 것이 경종의 생을 빨리 제촉한 셈이 된 것입니다.
세간에는 게장을 먹여 독살했다는 추측이 있기도 했습니다.
의릉은 동원상하릉의 독특한 형태로 같은 능역에 위쪽은 경종의 왕릉을, 아래쪽은 선의왕후의 왕릉을 조성했습니다.
동원상하릉으로 조성한 이유는 능역의 폭이 좁아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맥이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풍수지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서울 의릉 비각
아래 선의왕후릉과 위의 경종의 왕릉
선의왕후의 능침에는 곡장이 없고, 봉분 주변에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혼유석 등의 석물을 갖추었습니다.
경종의 능침에는 곡장이 둘러쳐져 있고, 봉분 주변에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혼유석 등의 석물을 갖추었습니다.
의릉 서쪽으로 이동하면 구. 중앙정보부(안기부) 강당과 회의실이 있습니다.
당시 과감한 실험정신으로 심미성 높은 건물을 설계하던 건축가 나상진이 설계했다고 합니다.
왼쪽이 1962년 건축한 중앙정보부 강당이고, 오른쪽은 1972년에 건축한 회의실입니다.
이곳 중앙정보부는 1972년 7월 4일, 남한과 북한의 합의에 따른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건물이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서울 의릉 숲길의 소나무 사이사이엔 눈이 내려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의릉 숲길은 의릉 주변으로 개방되어 있으나 천장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통제되어 있었습니다.
특이하게 생긴 향나무
어머니 희빈 장씨의 욕심이 아니었다면 경종의 삶은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정상적인 왕가의 세자로 성장하면서 어렸을 때의 총명함이 왕 재위기간에도 이어졌을 것이고,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의 대립 또한 이렇게 극심하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되어 더 오랫동안 왕위를 유지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희빈 장씨(장희빈)의 묘는 고양 서오릉, 대빈묘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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