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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고양 서오릉 - 경릉(덕종과 소혜왕후), 홍릉(정성왕후), 창릉(8대왕 예종), 대빈묘

by 휴식같은 친구 2023.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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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고양 서오릉 - 경릉(덕종과 소혜왕후), 홍릉(정성왕후), 창릉(8대왕 예종), 대빈묘

 

 

고양 서오릉은 조선왕릉 중 두 번째로 큰 왕릉으로 한양 도성 서쪽에 5개의 왕릉이 있다고 해서 서오릉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5개의 조선왕릉과 2개의 원 그리고 희대의 악녀인 장희빈의 묘 등이 있습니다.

 

조선 19대 왕인 숙종과 두 번째와 세 번째 왕비인 인현왕후와 인원왕후의 능인 명릉과 조선 19대 왕인 숙종의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의 능인 익릉, 그리고 조선 13대 왕인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회빈의 원인 순창원,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아버지(사도세자)는 추존 장조가 되었고, 장조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원인 수경원을 먼저 관람했습니다.

 

[조선왕릉] 고양 서오릉 - 명릉(19대왕 숙종), 익릉(인경왕후), 수경원, 순창원

 

이번엔 서오릉의 두 번째 이야기로 경릉과 홍릉, 창릉과 대빈묘 이야기입니다.

 

순창원에서 나와 서쪽으로 이동하면 경릉이 나옵니다.

경릉은 의경세자로 10대 성종이 왕위에 오르며 추존된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입니다.

 

덕종(1438~1457)은 7대 세조의 맏아들로 1455년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하기 전 20세에 세상을 떠났고, 시호를 의경세자라 하였습니다.
의경세자는 둘째 아들 성종이 임금이 되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소혜왕후 한씨(1437~1504)는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로 1455년에 세자빈으로 책봉되고,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자 인수대비가 되었습니다.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깊어 부녀자들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내훈'을 책으로 펴내고, 한문 불경을 한글로 풀어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경릉의 수복방

 

경릉 정자각

그리고 좌측과 우측에 왕릉이 위치한 동원이강릉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자각에서 볼 때 왼쪽은 왕의 무덤이, 오른쪽엔 왕비의 무덤이 있기 마련인데 경릉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세상을 떠날 당시 신분이 덕종은 왕세자, 소혜왕후는 대왕대비였기 때문에 신분이 높았던 소혜왕후의 무덤이 왼쪽에 놓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덕종의 능은 왕세자묘로 조성되어 간소한 모양이고, 소혜왕후의 능은 왕릉의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경릉 진입로

 

경릉의 비각

 

경릉 표석비문

 

오른쪽에 위치한 덕종의 능

왕세자묘로 조성되어 간소한 모양입니다.

 

오른쪽은 소혜왕후의 능

대왕대비로 세상을 떠나 왕릉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모습입니다.

 

덕종의 묘에서 바라본 소혜왕후의 무덤

 

경릉에서 나와 좌측 산길로 가면 대빈묘가 있습니다.

 

대빈묘는 조선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어머니인 옥산부대빈 장씨(장희빈)의 묘입니다.

 


옥산부대빈 장씨(1659~1701)는 장형의 딸로 1686년에 숙종의 후궁이 되었고, 1688년에 경종을 낳아 희빈이 되었습니다.
1년 후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5년 후 갑술환국 때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왕후를 무고한 죄로 43세에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는 비극의 여인이 됩니다.
경종이 왕위에 오른 후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어 묘를 대빈묘라 하였습니다.

희대의 악녀이면서 비극의 여인이었던 장희빈의 묘는 능도 아니고, 원도 아닌 묘라는 이름을 쓰고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대빈묘는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다가 1969년에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합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서 내리막길로 이동하면 홍릉과 창릉이 있습니다.

 

멀리 홍릉이 보이네요.

 

홍릉은 조선 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입니다.

 

왼쪽에는 능을 지키는 수복들이 근무하는 수복방이 있습니다.

 

정성왕후 서씨(1692~1757)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1704년 숙종의 둘째 아들인 연잉군(영조)과 가례를 올립니다.

경종이 왕위에 오르고 영조가 왕세제가 되면서 왕세제빈이 되었고, 1724년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평생 숙종과 경종의 왕비를 극진히 모시며 내명부를 지키고 소생 없이 66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홍릉 입구

 

홍릉의 기신제인 제향일은 매년 양력 4월 3일입니다.

 

홍릉 비각

 

홍릉 표석 비문

 

숙종의 능인 명릉의 양식에 따라 병풍석을 두지 않고 무덤 앞에는 4각 장명등을 두었는데 석물의 규모는 작은 편입니다.

 

능의 전체적인 배치는 쌍릉형식이나, 능침 왼쪽이 비어있는 것은 영조가 생전에 정성왕후와 함께 묻히려 가묘를 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영조의 능은 구리 동구릉의 원릉에 정순왕후와 함께 묻힘으로써, 홍릉은 정성왕후의 봉분 옆자리가 빈 공간으로 남게 되었네요. 

 

홍릉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창릉으로 이어집니다.

창릉은 서오릉의 영역 안에 최초로 조성된 능입니다.

 

창릉은 조선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입니다.

예종(1450~1469, 재위 1468~1469)은 7대 세조와 정희왕후의 둘째 아들입니다.
세자였던 형인 덕종으로 추존된 의경세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세자로 책봉된 뒤 19세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1년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인순왕후 한씨(?~1498)는 청천부원군 한백륜의 딸로 1468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창릉에는 왼쪽에 수라청이, 오른쪽에 수복방이 각각 있습니다.

수라청은 왕릉 제례음식을 차리거나 태우는 건물이며, 수복방은 능을 지키는 수복들이 근무하던 건물입니다.

 

서오릉에 수라청이 있는 곳은 이곳 창릉이 유일합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보면 좌측이 예종의 무덤, 우측이 인순왕후의 무덤이 있는 동원이강릉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창릉 진입로 모습

 

창릉의 기신제인 제향일은 매년 양력 4월 16일입니다.

 

창릉의 비각

 

창릉 표석 비문

 

우측에 있는 인순왕후의 능

 

좌측에 있는 예종의 능

 

창릉까지 모두 관람함으로써 서오릉에 있는 5개의 조선왕릉과 2개의 원, 1개의 묘까지 모두 관람했습니다.

 

서오릉에는 왕릉 주변을 걸을 수 있는 2개의 산책로가 있습니다.

1.92km 길이의 서어나무길, 1.08km 길이의 소나무길인데요.

 

 

5년 전에 방문했을 때에는 소나무길을 걸었으니, 이번에는 서어나무길을 걸었습니다.

 

고양 서오릉(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서어나무길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산책하기 알맞게 조성된 왕릉숲길

 

곳곳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식재된 소나무 숲이 울창한 모습입니다.

 

서오릉의 5개 왕릉과 2개의 원, 1개의 묘까지 관람하고, 서어나무길을 따라 걸어 나오니 2시간 넘게 소요되었습니다.

서오릉에서 걸은 걸음수만 1만보에 육박하더군요.

 

포근한 봄날씨에 아이와 함께 나들이 하기 좋은 곳, 조선왕릉만큼 좋은 곳은 없어 보이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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