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과 정원이 예쁜 사찰(절), 남양주 운악산 봉선사
서울 근교 걷기 좋은 숲길, 광릉숲길과 광릉 국립수목원을 걷고 나와 광릉에 들렀는데 아쉽게도 관람시간이 마감되어 관람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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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숲길 입구에 자리한 운악산 봉선사는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운악산에 있는 고려 전기 969년(광종 20)에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입니다.
6.25 전쟁 때 봉선사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고 말았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1959년부터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운악산 봉선사는 규모도 크고 부지가 넓은 가운데 정원이 예쁘고 초입의 연꽃단지가 있어 봉선사 연꽃축제도 열리는 곳인데요.
연꽃단지와 작은 호수공원, 잔디광장 등 드넓은 봉선사를 보니 경기도의 대표적인 사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원과 연꽃이 예쁜 운악산 봉선사 풍경을 담았습니다.
운악산 봉선사 입구
봉선사 주차장
무척 넓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주차요금은 무료이며 하절기엔 06:00~19:00, 동절기엔 07:00~18:00까지 주차할 수 있습니다.
광릉숲길을 걷거나 광릉 국립수목원 현장발권으로 방문하시는 분들도 주로 주차하고 이동을 합니다.
운악산 봉선사 앞에서 출발하는 광릉숲길
서울 근교 걷기 좋은 숲길, 광릉숲길 (광릉숲 둘레길)
봉선사는 고려 광종 20년(969)에 법인국사 탄준이 운악산 기슭에 창건하면서 운악사라 칭했습니다.
조선 세종 때에 이전의 7종을 선교양종으로 통합할 때 이 절을 혁파하였다가, 1469년(예종 1)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가 세조를 추모하여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의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봉선사 현판은 예종이 직접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550년(명종 5)에 이 절은 선교양종 중 교종의 수사찰로 지정되어 전국의 승려 및 신도에 대한 교학진흥의 중추적 기관이 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고, 이듬해인 1593년에 주지 낭혜가 중창했습니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으로 다시 소실된 것을 1637년에 주지 계민이 중창하였으며, 1749년(영조 25)에는 재점이 중수하였습니다.
1551년(명종 6)에는 교종의 수사찰로 지정되어 여기서 승과시를 치르기도 하고, 전국 승려와 신도에 대한 교학진흥의 중추적 기관 역할을 하였던 곳입니다.
1790년(정조 14)에는 5규정소 설치 시 함경도 일원을 관찰하는 사찰이었으며, 1902년엔 16개 중법산 가운데 하나로 경기도의 전 사찰을 관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6.25 전쟁으로 다시 법당 등 14동 150칸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지금의 봉선사는 1959년부터 불당 등이 하나씩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봉선사, 부평리 3.1운동 만세 시위지
봉선사 승려들이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선언문을 제작한 곳입니다.
1919년 3월 29일, 봉선사 태허, 지월, 완수 스님과 약종상이었던 김석로가 봉선사에서 조선독립단 임시사무소를 설치하고 시위 전개와 방침을 논의한 후 선언문 200여장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선언문을 진접읍 일대에 배포하고 30~31일에 광릉천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봉선사 가는 길은 진입로도 아름답습니다.
봉선사 연꽃단지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이렇게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는 사찰도 흔치 않을 듯합니다.
경기도의 대표적 고찰인 봉선사에서는 매년 8월에 봉선사 연꽃축제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봉선사 스님과 함께하는 힐링 토크콘서트&차담, 버스킹 공연, 글짓기, 그림그리기 대회, 연꽃 군락지 관람, 전통등 전시 등이 열립니다.
봉선사 연꽃단지 잔디광장
봉선사 연꽃단지 앞에 있는 카페 파드마
봉선사 진입로에는 여러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춘원 이광수 선생의 기념비도 이곳에 있더군요.
왼쪽 사진의 우측 첫 번째 비석이 그것입니다.
춘원 이광수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하기 전 4년 동안 남양주 사능 부근 작은 집에서 산적이 있는데, 그때 한해 겨울을 주지스님인 운허 스님과의 연(동갑, 8촌)으로 봉선사에서 지낸 것이라 합니다.
당시 이광수는 친일 이력 때문에 해방 이후 갈 곳이 없어 거둬준 것이라고.
기념비는 이광수의 전처인 허영숙이 세운 것으로 홀로 자녀들을 키우고 말년인 1971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였는데 납북된 이광수의 생사를 알기 어렵게 되자 추모비 건립을 추진한 것입니다.
이 기념비는 경기도에 소재한 대표적인 친일 잔재물로 꼽히고 있어 향후 청산 대상이 될 지, 보존 대상이 될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네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인 봉선사 신도회와 운허기념 사업회
봉선사 앞 공원 모습
봉선사 호수정원 앞에 있는 미륵암
봉선사 호수정원
봉선사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500여년 전 세조의 비 정희왕후는 먼저 세상을 뜬 세조의 위업을 기리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절을 중창하고 절 이름도 운악사에서 봉선사로 고쳤습니다.
이때 절 입구 양지바른 곳에 느티나무를 심은 것이 바로 이 나무라고 합니다.
옛날엔 절에 느티나무를 심는 것이 당연시되었는데, 이 느티나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6.25 전쟁을 겪으면서도 굳건하게 살아남았습니다.
봉선사 입구에 있는 한옥카페, 봉향각
봉선사 일대 모습
봉선사 대종(동종)
임진왜란 이전에 만든 동종 중에서 몇 개 남지 않은 것으로, 예종 원년(1469)에 왕실의 명령에 따라 만들었습니다.
조선왕조 전기 동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봉선사 청풍루
6.25로 전소되기 전에는 천왕문과 해탈문 및 소설루가 있던 자리에 모든 신도들이 '조약돌 모으기 운동'이라는 불사를 전개하여 1985년에 낙성을 보았다고 합니다.
봉선사에 있는 성모 마리아 관음상
어디서 봤다 싶었는데 성북동 길상사에 있던 성모마리아상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를 뛰어넘는 교류를 했는데, 법정스님이 최종태 교수가 제작한 성모마리아상을 2000년에 길상사에 세웠고, 이후 최종태 교수가 2017년에 이곳 봉선사에도 세웠다고 합니다.
최종태 교수는 성모상 조각으로 유명한데, 가톨릭에 입문하기 전 오랜 기간 불교 공부에 매진하면서 이미 그의 예술성 속에 조각적 본성으로서 불상조각이 깊이 자리 잡았다고 전해집니다.
게시판에는 '화엄종주 월운당 해룡 대강백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그립습니다 월운 큰스님'이라고 적혀 있네요.
월운 스님은 2023년 6월 16일에 94세의 일기로 열반한 스님으로 24세에 범어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1959년 운허스님께 입실해 월운이라는 당호를 받았습니다.
1973년 어린이 숲속 학교를 전국에서 처음 개설해 어린이 포교에 앞장섰으며, 1976년부터 1994년 10월까지 봉선사 본사 주지를 역임했습니다.
총 36년이 걸린 팔만대장경을 한글대장경으로 318권 번역, 완간 작업을 주도하는 등 불교경전의 한글화에 평생을 바친 스님이며, 그런 공로로 2001년 한글학회 외솔상과 2005년 대통령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봉선사 청풍루의 설법전
설법전 옆에 있는 단풍나무
밤이 되면 연등에 불이 들어와 멋진 풍경을 만들 것 같습니다.
판사관무헌
어실각으로 인해 봉선사 주지는 조선왕실로부터 봉향판사의 작위를 수여받았으며, 이곳에 머물랐다고 합니다.
6.25로 소실되었던 것을 1998년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습니다.
봉선사라는 현판이 걸린 전각
대웅전(큰법당) 앞
큰법당 앞 봉선사 5층 석탑
1975년에 운허가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한 석탑입니다.
봉선사 대웅전인 큰법당
큰법당은 대웅전과 같은 법당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글현판을 단 곳입니다.
1970년 운허선사(춘원 이광수 팔촌 동생)가 대웅전을 세우면서 써서 달았다고 합니다.
봉선사 큰법당은 조선 예종 1년(1469)에 세워질 당시 89칸의 절 규모와 함께 서울 이북에서 가장 큰 사찰로 알려졌습니다.
재창은 1637년 계민 선사에 의한 일괄 중수 때이며, 삼창은 1970년 운허스님에 의해 건립된 현 전각으로, 우리나라 처음으로 경전을 한글번역작업을 하신 분이라서 스님의 뜻에 따라 '큰법당'이라 이름하였습니다.
불교 대중화의 뜻을 담은 상징입니다.
큰법당 사방 벽에는 한글 법화경(125매)과 한문 법화경(227매)을 동판에 새겨놓았습니다.
봉선사에는 보물(1792호)로 지정된 봉선사 비로자나 삼신괘불도가 있는데요.
괘불은 절에서 큰 법회를 열 때 그림을 그려서 법당 앞에 건 부처그림을 말하는데요.
조선 영조 11년(1759) 상궁 이성애가 숙종의 후궁인 영빈 김씨의 명복을 빌며 제작한 불화입니다.
큰법당에서 바라본 5층 석탑
큰법당 우측에 있는 지장전
원래는 어실각으로서 세조대왕과 정희왕후의 위패를 모셨던 건물이었으나,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1999년에 복원하여 지금은 지장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큰법당 좌측에 있는 관음전
원래는 노전 스님이 머무는 노전채였던 것이, 6.25 때 전소되었다가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1999년 복원되어 지금은 관음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답게 절에서도 보시할 때 신용카드나 페이 등으로 지불하는 디지털 불전함이 있습니다.
큰법당 위쪽 좌측에 있는 삼성각
월초 화상에 의해 1926년에 건립되어 6.25 때 소실되지 않은 유일한 전각인데요.
산신, 칠성, 독성 세 분의 성인을 모셨다 하여 삼성각이라 부릅니다.
큰법당 뒤에 있는 조사전
1977년 7월, 대시주 정보현행의 도움으로 삼성각과 동일한 규모로 지어서 원래는 '개건당'으로 사용하던 당우입니다.
근래에 들어 그 아래쪽에 새로이 전각을 지어 개건당에 모셔졌던 봉선사의 개산과 중건의 공덕주들을 모시고는, 이곳은 조사전으로 장엄하여 계민선사와 월초스님을 비롯한 근대의 봉선사 조사스님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큰법당 위쪽 우측에 있는 개건각
개건당이란, 봉선사를 창건하여 개산한 개산대공덕주 정희왕후 윤씨와, 중건공덕주인 계민선사와 정문수행을 모시기 위한 당우입니다.
개산과 중건의 머리글을 따서 이름한 것이며, 현재의 조사전 전각이 원래는 개건당이었는데, 이 당우를 신축하여 개건당으로 사용하고 원래의 개건당은 조사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봉안당으로 명하여 납골당으로 사용하고 있다네요.
봉선사 대의왕전
사찰에서는 보통 약사전에 약사불을 모시는데 봉선사에선 정자 형태의 대의왕전에 약사불을 모시고 있는 모습입니다.
약사불은 병을 고쳐주는 부처란 의미로 대의왕불이라고도 부릅니다.
봉선사 경내에도 아담하게 꾸며진 예쁜 정원이 있습니다.
봉선사 경내에서 빠져나와 나른 정원으로 나왔습니다.
봉선사 호수정원
육하당이라고 적힌 전각
대형 부처상
봉선사 호수정원
봉선사는 한 때 경기도는 물론 한양 이북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과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이었습니다.
근대 들어 모두 복원하여 사찰의 분위기인 고즈넉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넓은 정원과 연꽃단지가 있어 산책하기 무척 좋은 사찰이었습니다.
봉선사는 이번에 광릉 국립수목원과 광릉숲길을 방문하기 위해 우연히 들렀는데, 이런 큰 사찰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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