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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여행

양주 조선시대 양주목 관아, 양주관아지

by 휴식같은 친구 2023.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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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조선시대 양주목 관아, 양주관아지

 

 

양주관아지는 1506년(중종 1)부터 1922년까지 412년 동안 양주의 구읍이 있었던 곳으로 한양 동북부의 중심이었던 양주목을 다스리던 조선시대 관청입니다.

 

양주 관아의 건물들은 목사(지방을 다르시던 수령)가 정무를 보단 외동헌(매학당)과 가족들이 생활하던 내동헌(내아)으로 이루어져 있고, 1792년 정조가 양주에 3일간 머무르며 백성을 살피고 사대에서 활을 손 것을 기념한 어사대비가 남아 있습니다.

아울러 임꺽정의 생가지가 있는 불곡산 산림욕장이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조선시대 양주목 관아가 있던 양주관아지 풍경을 담았습니다.

 

양주관아지는 1506년부터 1922년 의정부 시둔면으로 이전될 때까지 양주목을 다스리던 관아가 있던 곳입니다.

조선시대 행정제도에 의해 설치된 것으로 목, 부, 군, 현이 있는데, 가장 큰 단위인 목에 해당되며, 지방관은 목사라 불렀습니다.

 

 

당시 관아에는 31개의 시설에 326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2000년대에 5차례의 발굴조사로 2017년에 동헌부 부속건물인 동행각, 서행각, 내삼문, 사령청, 외삼문, 중렴성문, 외렴성문과 양주목사의 관사였던 내아, 내아삼문 등을 복원했습니다.

 

매학당 동쪽에는 18기의 양주목사 송덕비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양주관아지 외삼문

관아 전면부에 설치된 문으로 2층에는 큰 북을 달아 아침저녁으로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고 합니다.

 

 

양주목 관아, 양주관아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1시간 전 입장마감)

휴무일(휴관일) 없음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관람 소요시간 30여분(불곡산 산림욕장 제외)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우측에 사령들의 집무실로 사용했던 사령청이 있고, 정면에 내삼문과 좌우행각이 있습니다.

사령은 심부름을 하거나 군관이나 포교 밑에 있으면서 죄인에게 곤장을 치는 등의 일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동헌 구역입니다.

 

정면에 매학당, 좌측과 우측에 동행각과 서행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행각과 서행각은 매학당의 보조건물로 군인들과 일꾼들의 대기장소 및 물품보관 창고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양주관아지 매학당

 

양주 목사의 정청 건물로 일반 행정과 재판 등이 행해진 장소입니다.

지방관의 관사인 내아와 구분되어 있고, 동쪽에 있어 동헌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매학당이 있기 전에는 동헌역할을 했던 건물로 과학당이 있었으며, 매당학은 초기 18칸이었다가 후대에 증축하여 27칸 규모로 확장되었습니다.

현재의 매학당은 1996년 원골문화마을 조성계획에 따라 1997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과거의 매학당 터로 추정되며, 2차 발굴고사에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재판이 행해지며 사용되었을 창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매학당 뒤편에는 외렴성문이 있습니다.

어사대 및 금화정이 출입하는 문입니다.

 

그리고 서쪽에 있는 작은 협문은 중렴성문이라고 하는데요.

동헌과 내아를 연결하는 문입니다.

 

양주관아지 동헌 모습

 

동헌에서 나와 서쪽엔 잔디광장이 있고요.

 

그 앞에 내아 영역으로 들어가는 내아삼문이 있습니다.

 

내아는 지방수령이었던 양주목사의 가족들이 거처했던 내아와 항랑채, 내아삼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헌 서쪽에 있어 내동헌 혹은 서헌이라고도 부릅니다.

 

내아 영역은 개방하고 있지 않아 담장 너머로 바라봤습니다.

 

 

'ㅁ' 자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고, 내아 아래쪽에는 행랑채가 있어 주로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이 기거하거나 창고로 이용했습니다.

내아영역은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인들의 주내면사무소로 사용되었고, 내아 전면부 쪽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 죄인이나 포로를 가두고 고문하는 장소로 이용되다가 후대에 이르러 모두 소실되었었다고 합니다.

 

내아 영역에서 바라본 동헌 모습

 

매학당 동쪽에 있는 18기의 양주목사 송덕비와 1기의 유허비

 

1567년(선조 1)의 백인걸 선정비와 1613년(광해군 5)의 정대년 추모비

 

양주관아지 뒤편으로 가면 어사대비가 있습니다.

 

어사대비는 조선 22대 임금이었던 정조가 활을 쐈던 것을 기념해 세운 비입니다.

 

1792년 9월 정조가 광릉에 행차하던 길에 양주목사가 있던 관아에 3일간 머물면서 백성을 시무하여 민정을 살피고 이곳 사대에서 신하들과 활을 쏜 뒤 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어사대비에 대한 만화그림

 

뒤편으로 올라가면 불곡산 산림욕장이 이어집니다.

이곳에서 800미터 정도 가면 임꺽정 생가지가 있다는데, 더워서 포기했습니다.ㅎㅎ

 

불곡산 산림욕장 안내도

불곡산은 양주시 유양동과 백석읍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465m의 산입니다.

 

불곡산 산림욕장 내의 숲 속 놀이시설 모습

 

어사대비 바로 위에 팔각정 모양의 금화정이 있어서 여기까지만 올라왔네요.

금화정은 아름다운 백성의 뜻을 잘 수렴하고 양주목의 단합을 뜻하는 정자입니다.

 

금화정에서 바라본 양주관아지 모습

 

노천광장

 

양주별산대 보존회

 

양주 별산대놀이는 서울의 본산대놀이에서 영향을 받아 대략 200여 년 전에 형성된 중부 지역의 대표적인 산대 탈놀이입니다.

19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현재 유양리 이곳에 전수회관을 두고 있습니다.

 

양주 별산대놀이 전수교육관

 

안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양주향교와 양주 순교성지가 있습니다.

 

[천주교 순교성지] 양주 순교성지

 

양주향교

 

양주 향교 풍경

 

양주관아지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모두 헐려 새로 복원된 곳이라 옛 정취는 없지만, 조선시대 양주 지역의 역사적 상황과 전략적 중요성을 이해하는데 좋은 여행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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