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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조선 최고의 정원, 창덕궁 후원의 겨울이야기

by 휴식같은 친구 2017.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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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전각을 관람하고, 예약한 창덕궁 후원을 다녀왔습니다.


창덕궁 전각은 여러 번 관람한 적이 있지만, 후원은 이번에 처음으로 관람했습니다.


창덕궁 후원비원, 복원, 금원이라는 이칭이 있는데요. 

비원은 1905년 이후부터 나타난 명칭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에 딸린 북쪽의 정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창덕궁 안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원으로 조선왕궁의 놀이와 잔치장소로 활용된 공간이죠.


자연의 구릉과 계곡, 폭포와 숲에 최소한의 인공을 가해 가다듬고 여기에 연못, 화계, 취병(꽃나무와 가지를 틀어서 문이나 병풍처럼 만든것)을 가꾸어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우리 전통정원을 대표합니다.


원래는 창경궁의 후원과 연결되어 구분이 없었으나 일제가 조선 말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개조하면서 두 궁궐의 후원에 담장을 쌓아 지금처럼 분리되었습니다.




1405년 창덕궁이 이궁으로 창건되고 이듬해에 후원 북동쪽에 해온정을 짓고, 그 앞에 못을 팠으며, 후원 북쪽에는 인소전을 지었습니다. 이후 인소전은 문소전으로 개명하고 태조와 신의왕후의 신주를 모셨습니다.


1459년 세조가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후원에 새로운 못을 파고 열무정을 지었습니다. 부용지 주변인데 네 곳의 샘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사정기비가 서 있고, 세조 때 만든 샘 하나가 있습니다.


이후 1463년에 동쪽과 북쪽의 민가 131가구를 철거하고 후원을 크게 확장하였습니다.


(부용지와 부용정 모습)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20년간 폐허로 방치되다가 1610년 창덕궁을 복구하면서 광해군은 후원에 책방을 만들고 별전과 소전을 짓고 기이한 꽃과 이상한 수목, 괴석을 배치했다고 합니다. 이때 영화당이 지어졌습니다.


그 이후 여러 건물들이 지어지고 1777년에 왕의 영정과 글씨, 보책, 인장 등을 두는 규장각을 짓고 1792년에 택수재를 헐고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부용정으로 바꾸었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궁궐 정원 가운데 가장 넓고 경치가 아름다워 왕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곳입니다. 그래서 한때 100여개 이상의 누각과 정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누각 18채와 정자 22채만 남아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을 관람하려면 전각과 달리 미리 예약(창덕궁 홈페이지)해야 합니다.


보통 한국어와 영어, 일어, 중국어로 해설관람으로 진행(자유관람 불가, 90분 소요)하는데 내국인은 한국어 관람시간만 예약이 가능하고, 매 타임당 50명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그나마 여유가 있지만 주말예약은 부지런해야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후원예약은 관람일 기준 6일 전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며, 예약취소가 있는 경우에는 당일에 구매해서 입장이 가능합니다.



후원관람 시간입니다. 참고해서 예약하시면 됩니다.


후원 관람요금(입장료)7~ 18세는 2,500원, 19~24세는 5,000원, 64세까지는 8,000원, 65세 이상은 5,000원입니다.

후원 입장료에는 창덕궁 전각관람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애인과 유공자 등은 무료입장(예약은 필수)이 가능하고, 종로구민은 50% 할인이 됩니다.



창덕궁 후원 관람코스약 2.1km로 90분(혹한기(12-2월)나 혹서기(7-8월)에는 70여분) 정도 소요됩니다.


후원입구 - 부용지 - 불로문, 애련지 - 존덕정과 폄우사 - 옥류천 - 연경당 순으로 합니다.


 우리는 혹한기라 후원입구 - 부용지 - 애련지 - 관람지 - 연경당 -향나무길 순으로 돌았네요.



후원입구는 성적각 일원에서 창경궁과 경계를 이루는 담을 따라 올라가면 왕실정원의 초입부에 당도합니다.


우리가 머뭇거리다가 3~4분 정도 늦었는데, 벌써 해설사와 관람객들은 후원으로 들어섰네요.ㅠㅠ



부용지와 부용정, 주합루, 영화당



부용지(부용정, 보물 1763호)는 후원의 첫번째 중심정원으로 휴식 뿐만 아니라 학문과 교육도 했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입니다.

300평 규모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건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부용지 앞에 정자로 자리잡고 있는 부용정 모습입니다.


어찌나 추운지 후원의 모든 못은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여름에 부용정에 앉아 부용지를 바라보며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면 정말 멋있을 것 같네요.



부용지의 돌에 새겨진 물고기 문양인데, 부용지의 많은 돌에 새겨진 유일한 물고기라고 합니다.



부용지 앞 높은 곳에 자리한 어수문과 주합루 모습입니다.


주합루(보물 1769호)는 정조 원년에 세워진 2층의 누각으로 아래층에는 왕실 직속의 규장각을, 위층에는 누마루를 만들었는데 왕실도서관이기도 합니다. 규장각은 정조의 개혁정치를 위한 연구기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합루 앞에는 어수문이 있는데,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통치자는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으로 정조의 민본정치철학을 보여주고 있는 곳입니다.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위치합니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숙종 18년에 재건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당 앞의 춘당대마당 모습입니다.

보기 힘든 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과거시험을 치루는 선비들의 모습이 이 마당에서 보여지는것 같습니다.


좌측의 담장은 창경궁 담장인데 일제시대 때 동물원으로 조성하면서 세워진 것이라 합니다.



불로문과 애련지



불로문 모습인데, 조선시대 왕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창덕궁 연경당 입구에 세워진 돌문입니다. 전서체로 불로문이라 적혀 있습니다.



불로문으로 들어오면 앞에 애련지가 펼쳐저 있고,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의두합이라는 건물 앞마당인데 순조의 맏아들인 효명세자는 총명하고 인품이 높아 18세에 순조를 대리하여 정치를 지휘하다 22세로 요절한 왕자입니다.

그 효명세자가 공부방으로 사용하였던 곳이 바로 의두합입니다.



불로문을 지나면 못과 정자가 나옵니다.


1692년 숙종은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긑에 있습니다.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정자를 애련이라 지으면서 연못이 애련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애련지 앞에 세워진 정자는 애련정이라고 합니다.


애련지 서쪽 연경당 사이에 또 하나의 연못이 있었고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후원에 있는 뽕나무(천연기념물 471호) 모습입니다. 


관람지 입구 창경궁과의 경계담장에 있는데, 높이가 12m, 가슴높이 줄기둘레가 228cm이고 나이는 약 40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농사와 함께 누에치기가 중요한 국가기간 산업이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에게 뽕나무 가꾸기를 장려하고 궁궐 안 곳곳에 뽕나무를 심어 왕비가 직접 누에치기 시범을 보이는 '친잠례'를 거행했습니다. 이 뽕나무는 궁궐에서 가장 크고 나이가 많은 것입니다.




존덕정과 폄우사



관람지 모습입니다.

관람지는 한반도처럼 생겼다고 해서 반도지라 불리웠다고 합니다.


후원에는 다양한 정자들이 있는데요. 이 일대는 후원 중에서 가장 늦게 만들어진 곳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관람지에는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인 존덕정,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 서쪽 언덕에 위치한 폄우사, 관람정 맞은 편의 승재정이 있습니다.



관람지에 부채를 펴 놓은 듯한 관람정 모습입니다.

정자가 좀 특이하죠?



겹지붕 모습의 존덕정입니다.



더 가까이에서 보니 지붕이 두개인 정자입니다.


이중지붕의 육각지붕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구조의 정자입니다. 1644년에 지어졌고 당시에는 육모정이라 불렀습니다. 



존덕정 정자의 천정은 우물정자로 구성되어 있고 화려한 무늬로 장식되어 있는데 가운데에 황룡과 청룡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승재정의 천정에는 온통 연꽃무늬로 그려져 있습니다.


승재정과 관람정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존덕정 서쪽 숲속에 자리잡은 폄우사 모습인데요. '폄우'란 어리석음을 고친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옥류천은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이릅니다.

겨울에는 아쉽게도 개방을 하지 않아 볼 수는 없었습니다.


1636년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작은 폭포를 만들었고, 곡선형의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을 벌였다고 합니다.


바위에 새겨진 '옥류천'은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라는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담은 숙종의 작품입니다.



연경당(보물 1770호)



연경당(보물 1770호)은 사대부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 접견실입니다.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에 122칸으로 창건했습니다.

서재인 선향제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레식 차양을 설치해 이국적인 느낌이 듭니다.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연경당은 후원 안에 지어졌으면서 사랑채, 안채, 안행랑채, 바깥행랑채, 반빗간, 서재, 후원과 정자, 연못을 완벽하게 갖춘 목조주택입니다.

사진의 건물은 본 건물에 차양막을 설치한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목조주택 형식을 보여주고 있네요.



방문 사이로 보이는 연경당 모습입니다.



연경당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분...

 



연경당의 화장실 모습입니다. ㅎㅎ


연경당은 궁궐 내에 지어진 유일한 상류층 주택으로서의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연경당을 나와 후원을 거닐다 마지막 코스인 창덕궁 향나무(천연기념물 194호)모습입니다.


높이 6미터,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4.3미터인데 북쪽가지(사진 왼쪽 부분)는 죽고 남쪽가지만 살아 있습니다.

수령이 무려 750여년 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후원은 느긋하고 여유있는 공간이며 스스로 넉넉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우리나라 재표적인 정원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곳입니다.


겨울에 방문해서 아름다운 풍경이 덜하긴 하지만 나름 유익한 관람이 되었네요.


나중에 봄이나 가을에 방문해보고 싶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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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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