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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서울 설경, 눈 내린 서울의 탑골공원 설경

by 휴식같은 친구 202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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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설경, 눈 내린 서울의 탑골공원 설경

 

 

지난 목요일,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린 가운데 서울에서도 올 겨울 가장 많은 눈이 내린 것 같습니다.

다만, 날씨가 포근해서 내린 눈은 아침이 되면서 빠르게 녹았는데요.

 

점심시간을 이용해 인근의 탑골공원을 찾았습니다.

평소엔 어르신들이 점령하다시피 하는데 눈 내린 날이라 그런지 탑골공원은 한적했습니다.

 

탑골공원은 1895년 영국인 브라운의 제안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공원으로 조성되어 1920년에 개원한 공원입니다.

처음엔 파고다공원으로 불리다가 1992년부터 탑골공원으로 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실 탑골공원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근대식공원이라고 하는데, 실제 근대식 공원은 탑골공원보다 9년 앞선 인천 자유공원이라고 합니다.

다만, 자유공원은 외국인이 조성한 공원이고, 탑골공원은 외국인이 제안해서 한국인이 조성한 공원입니다.

 

인천 가볼만한 곳, 인천 자유공원

 

 

많이 알려지듯이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1919년 3.1 운동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이 살아 숨 쉬는  유서깊은 곳입니다.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

 

1945년 광복 직후 서예가 김충현이 쓴 현판이었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7년 본인이 직접 슨 현판을 새로 달았다고 합니다.

2001년엔 3.1운동 발상지에 일본군 장교출신이 쓴 현판을 걸 수 없다며 뜯어내고, 2003년에 종로구에서 새로 단 현판입니다.

 

1967년 박정희 정권 당시 대대적인 보수로 원형이 많이훼손됐고, 입장료까지 받았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고려시대 조계종의 본사가 된 사찰인 원각사(흥복사)가 있던 터로 임진왜란 이전까지 보신각 종을 보관했던 곳이며 서울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습니다.

 

고려시대 흥복사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다가 세종이 불교종파를 선교양종으로 통합한 뒤 1457년(세조 3)에 흥복사를 폐한 후 1465년(세조 11)에 다시 지어 원각사라 불렀습니다.

1488년엔 불에 다서 다시 짓고, 1512년(중종 7)에 철거 후 원각사지 십층석탑만 빼고 공터로 남았고 주변에는 민가가 들어섰습니다.

 

탑골공원에는 당시에 지어진 원각사지 10층 석탑(국보 2호)과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보물 3호)가 남아 있고요.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팔각정과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있습니다.

 

탑골공원 설경

 

아침까지만 해도 13vm 눈이 내려 곳곳에 눈꽃이 피어 아름다운 설경을 자랑했는데, 몇 시간이 지나니 많은 눈이 녹아버렸네요.

올겨울 서울엔 포근한 겨울날씨에 자주, 많은 눈이 내렸고 이번 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탑골공원 관람안내

 

관람시간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

휴무일 연중무휴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없음(주변 노상 공영주차장 이용 시 1-분에 1,000원)
 

3.1 운동 기념탑

 

1919년 3월 1일, 4~5천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12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이곳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1919년 3월 1일, 3.1 독립운동 당시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서명한 33인의 민족대표가 낭독하고 배포한 기미독립선언서 내용입니다.

독립선언서 원본은 천안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고, 이곳에 있는 독립선언서는 4배로 확대한 모사본입니다.

 

바닥의 눈은 다 녹았지만, 소나무 위에 앉은 눈은 아름다운 설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탑골공원은 해방 후 수많은 인파가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이 있었는데, 1960년 4.19 혁명 때 이를 께부쉈다고 합니다.

 

탑골공원 화단의 설경

 

소나무에 소복이 가라앉은 하얀 눈이 예쁘네요.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동학과 천도교 지도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손병희 선생은 1861년 청주 출생으로 1882년 동학에 입도하여 최시형의 수제자였고, 동학의 제3대 교조가 되었던 분입니다.

 

1905년 기해교단의 명칭을 천도교로 바꾸었고,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 독입선언을 주도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1920년 병보석으로 출감, 1922년 5월 19일에 상춘원에서 옥고 후유증으로 순국했습니다.

 

탑골공원 팔각정과 원각사 10층석탑이 보입니다.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

 

대원각사비의 앞뒤 모습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는 1471년(성종 2)에 세조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적은 비석입니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세조 11) 흥복사 터에 원각사를 지었습니다.

 

이어 1467년(세조 13)에 13층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개최하고 낙성식을 거행했고, 이런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 위에 연잎을 새겨 몸돌을 세울 자리를 만들었으며, 몸돌은 머릿돌인 이수와 한 돌로 만들었습니다.

대원각사비 높이는 494cm이며, 거북은 화강암으로,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임이 글을 썼고, 서거정이 뒷면의 글을 지었고, 정난종이 그 글을 썼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글씨의 흔적은 잘 안 보임)

연산군 대 궁궐에 인접한 민가를 철거하면서 원각사는 빈 절이 되었고 근대 들어 공원으로 바꾸며 원각사지 10층석탑과 대원각사비만 남아 옛 원각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댁원각사비 옆에는 작은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2001년 탑골공원 성역화사업을 하면서 발견된 우물 중 하나로 직경 1.3m, 깊이 5.2m인 우물입니다.

 

발견 당시 우물 내부는 바닥까지 모래와 미사토로 채워진 걸 보면 일시에 폐기된 것으로 보고 있고, 조선말기(대한제국기)에 조성한 뒤 일제강점기까지 사용된 우물로 보입니다.

 

탑골공원 팔각정

 

팔각정은 1902년(광무 6)에 지은 팔각형 정자로 1919년 3월 1일,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입니다.

 

장대석 기단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 부분은 물익공을 짠 후 기와지붕을 덮었습니다.

전통과 근대의 건축기술을 두루 사용한 심의석(1854~1924)이 주도하여 지은 것입니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있어 탑동공원, 불교의 탑을 의미하는 영어인 파고다공원으로 불리다가 1991년부터 공식적으로 탑골공원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탑골공원 뒤에 있는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 2호)

석탑 보호를 위해 유리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세조가 세운 원각사 터에 남아 있는 높이 12m의 10층 석탑입니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 11)에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 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이며, 이 10층 석탑은 2년 뒤인 1467년에 완성했습니다.

 

세조는 사리분신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했는데, 공사 도중에도 사리분신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은 10층이지만, 당시 사료에는 13층의 탑을 세워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강경을 모셔두었다고 합니다.

 

'亞' 자 모양의 기단은 세 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 오는 과정을 새겼습니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했습니다.

 

법회 장면을 새긴 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 같은 모습입니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당시 흔치 않은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독특한 솜씨와 조각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국보 86호)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소나무 위의 눈

 

나무 가지에 쌓인 눈

 

탑골공원 정원 설경

 

탑골공원의 석재 유구

 

탑골공원 내에서 발견된 석물들로 원각사 탑 주위를 호위하던 신장상이나 보살상 등 원각사지 십층석탑 주변에 있던 석물들입니다.

 

 

탑골공원 입구는 보수성향 노인들의 집회 장소로 많이 사용하고 있고, 공원 내에는 항상 노인들이 몰리는 곳인데요.

그러다 보니 탑골공원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를 가리키는 속어로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평소엔 들어갈 생각도 잘 하지 않은 곳인데 눈이 잔뜩내려 설경을 보러 잠시 들렀는데, 한적하고 눈 구경 잘 하고 나왔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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