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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북촌한옥마을 나들이, 가회동 백인제 가옥

by 휴식같은 친구 2024.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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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한옥마을 나들이, 가회동 백인제 가옥

 

 

북촌한옥마을, 가회동에 있는 백인제 가옥은 북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위치한 한옥으로 백병원을 설립한 백인제 박사가 거주하던 한옥이라 백인제 가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한옥이며, 우리 전통양식 외에 근대적 변화를 수용한 한옥이라 여러가지로 북촌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2009년 백인제 박사의 부인으로부터 서울시가 매입하여 민속문화재로 지정하고 2015년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백인제 가옥은 5~6년 전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오랜만에 북촌에서 점심식사 후 인근에 백인제 가옥이 있어 잠시 둘러봤습니다.

 

포근한 봄날씨에 평일이라 찾는 이가 별로 없어 여유롭게 가옥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북촌한옥마을을 대표하는 근대 한옥 건축물, 백인제 가옥을 구경해 보세요.

 

가회동 백인제 가옥이 있는 골목길 모습

평일이라 한가한 골목 풍경입니다.

 

백인제 가옥 입구

 

전통적인 한옥에서 벗어나 근대 한옥의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강점기의 한옥양식을 띠고 있습니다.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이 있으며, 가장 놓은 곳에는 아담한 별당채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도 근대적 변화를 수용해 건축 규모나 역사적 가치를 보유한 북촌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백인제 가옥 관람안내

(서울시 민속문화제 22호)

 

관람시간 09:00~18:00(30분 전 입장마감)

(8월 한 달 동안은 금/토 20:00까지 야간개장함)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입장료) 무료

주차장 없음, 인근 유료주차장 이용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백인제 가옥이 시작되는데요.

높다란 대문은 조선 사대부가의 솟을대문 형식을 그대로 채택했습니다.

 

 

백인제 가옥은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주변 가옥 12채를 사들여 970평(건평 47.53평)의 대지에 1907년 경성박람회 때 처음 소개된 압록강 흑송을 자재로 이용해 건축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한상룡은 이완용의 외조카로 친일파라고 해서 왠지 찜찜한 기분은 있음)

 

한상룡과 한성은행, 최선익 등의 소유를 거쳐 백인제 가옥의 마지막 소유주는 1944년부터 거주한 외과의사 백인제 박사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 문화재 이름을 부여한 것입니다.

 

 

 

한성은행이 소유하던 시절에는 천도교 단체가 가옥을 임차하여 지방에서 상경한 교도들의 숙소 겸 화합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소유자인 최선익은 개성출신 청년부호로 1932년 27살의 나이에 중앙일보(1933년에 조선중앙일보로 개칭)를 인수하여 민족운동가인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등 민족 언론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1944년에는 당시 국내 의술계의 일인자였던 백인제 박사가 소유했으며, 2009년에 백인제 아내의 소유로 있던 것을 서울시에서 매입한 후 2015년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의 담장엔 봄이 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나무에는 새싹이 소탐스럽게 올라오고 있네요.

 

대문에 딸린 행랑채에는 백인제 가옥에 대한 영상실과 전시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영상실

 

백인제 가옥과 북촌, 백인제 가옥의 역사, 뱅인제 가옥의 특징 등이 적혀 있습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작은 문(일각대문)이 있습니다.

두 개의 대문을 통해야 가옥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네요.

 

백인제 가옥 사랑채

 

백인제 가옥은 사랑채와 안채, 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입구에서 들어서면 사랑채가 정면으로 보이고, 사랑채 뒤쪽으로 돌아가면 안채와 별채를 볼 수 있는데요.

 

사랑채는 백인제 가옥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교활동을 위해 사랑채와 사랑채 정원의 면적이 절반을 차지할 만큼 집주인의 사교활동을 위해 이렇게 큰 규모로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랑채와 안채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음)

 

 

 

백인제 가옥의 특징이라면 사랑채와 안채가 확연히 분리되는 전통 한옥과 달리 사랑채와 안채 두 공간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고, 당시 2층 한옥이 없던 시절에 안채의 일부를 2층으로 지은 점입니다.

 

아울러 본체 전체영역에 유리문을 달았고, 사랑채 앞으로 넓은 정원을 조성한 것도 한옥에 적용한 근대적인 요소입니다.

 

'ㄱ' 자 형식으로 지어진 사랑채 모습

건립 당시부터 한상룡을 비롯한 여러 소유자들이 사회적 활동의 배경으로 삼은 곳이겠죠.

 

사랑채 내부의 사랑방 모습

 

바깥주인이 주로 거처하는 방으로 손님을 맞이하거나 서재의 기능을 했던 공간입니다.

널찍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사회적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방은 4면이 마루로 둘러싸여 있고, 사랑대청은 전통적인 한옥의 우물마루 대신 장마루를 깔았습니다.

 

작은 사랑방

아들이 거주하던 방이라고 하며, 사랑방과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사랑방 뒤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보다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랑채 정원

백인제 가옥 전체에서 사랑채와 사랑채 정원이 절반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원에서 바라본 사랑채 모습

 

사랑채에서는 조선총독부 총독들과 권력가들은 물론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2세도 연회를 즐긴 곳으로 알려진 곳인데요.
이런 이유로 서울시장 공관 후보지에서 제외되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사랑채는 영화 암살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대궐같은 강인국의 저택으로 나온 곳이 바로 이 사랑채라고 합니다.

 

사랑채 뒤쪽으로 돌아가면서 관람하면 되는데요.

백인제 가옥의 2층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안채에 해당됩니다.

 

백인제 가옥 안채 뒤 

 

한옥에 근대적인 유리창문을 갖추어 놓으니 현대적이면서도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안채의 윗방에 해당하며, 안방 바로 옆에 붙어있는 작은 방입니다.

 

백인제 가옥 뒤에는 영춘화로 보이는 꽃이 피기 시작하네요.

 

남쪽엔 매화와 산수유 축제가 열리며 꽃소식이 넘쳐나는데, 서울은 아직 겨울같은 풍경입니다.

이날 봄꽃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ㅎㅎ

 

장독대도 정겹습니다.

 

전통한옥의 부엌

 

음식도 만들고 난방의 기능을 담당했던 곳입니다.

우리의 구들장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했다고 합니다.

 

백인제 가옥 별채(별당채)

 

별채는 백인제 가옥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북촌이 내여다 보이는 풍광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별채는 사무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네요.

 

안채 앞에 있는 작은 방

 

사랑채에서 뒤로 돌아 나오면 사랑채와 나란히 안채 공간이 나타나며, 부속채와 중문채가 안채를 감싸 안은 모습입니다.

안채 마당은 'ㅁ'자 모양으로 폐쇄적인 공간을 띠고 있습니다.

 

안채의 2층 건물이 가운데 튀어나온 모습

 

벽면에 그려진 태극마크

 

안채 내부, 대청

 발 밑에 깔려 있는 마루는 우물 정(井) 자를 닮았다고 해서 우물마루라고 불리며, 우리나라의 전통 마루형식입니다.

 

안방

 

안채의 끝에 위치한 할머니방

 

백인제 가옥의 특징인 사랑채와 안방을 내부에서 오가는 복도 모습

 

백인제 가옥은 우리의 전통한옥에 근대적인 변화를 수용한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한옥 모습을 보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진하게 드네요.

 

조선시대 최고 권력가나 재력가의 대형 한옥 중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곳은 백인제 가옥과 윤보선 가옥 두 채뿐이라고 합니다.

윤보선 가옥은 개방되어 있지 않아 구경할 수 있는 곳은 이곳, 백인제 가옥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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