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휴식같은 여행으로의 초대 ♪♩♬~
서울시 여행

박물관 투어, 볼거리 많은 서울공예박물관

by 휴식같은 친구 2024. 3. 29.
반응형

박물관 투어, 볼거리 많은 서울공예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은 2021년 7월 종로구 안국동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입니다.

 

공예품뿐만 아니라 공예를 둘러싼 지식, 기록, 사람, 환경 등을 공유함으로써 공예가 지닌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박물관입니다.

국가 지정문화재 등을 포함해 현재까지 2만 3257점에 달하는 공예작품을 수집, 소장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북촌, 인사동, 경복궁, 열린송현녹지광장 등이 인접해 있어 다양한 문화적 경험이 가능한 장소인데요.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시 들러 서울공예박물관 전시공간을 둘러봤습니다.

 

아이와 함께 박물관 투어 하기에 좋은 서울공예박물관 전시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서울공예박물관 전경

 

서울공예박물관이 있던 자리는 조선시대엔 왕족들이 거주했고, 조선말에는 안동별궁 건물들이 있던 곳입니다.

이후 풍문여고가 있던 자리로 교사를 리모델링하고 안내동과 한옥을 신축해 전체 7개동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안동별궁(정식명칭은 안국동별궁)은 1881년 고종이 원자(이후 순종)의 왕세자 책봉과 가례소를 만들기 위해 지은 별궁입니다.

고종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왕실 의례를 행하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제법 큰 규모로 지었다고 합니다.

 

1882년 순종과 순명효황후의 가례가 열렸고, 1906년 황태자 이척의 가례가 열렸습니다.

 

 

 

1910년 이후에 잠시 상궁들이 모여 살기도 했는데요.

1937년 명성황후의 먼 일족이자 휘문의숙의 설립자 민영휘의 아내 안유풍이 당시 돈 30만환으로 부지 4천여평과 함께 부속 건물을 매입한 뒤, 이 자리에 경성휘문소학교를 세웠습니다.

 

7년 뒤 증손자 민덕기가 폐교된 다른 여학교의 학생들을 모아 증조모의 이름 '풍' 자와 휘문의 '문'을 따 풍문여학교로 개편했고, 8.15 광복 후 풍문여자중학교와 풍문여자고등학교로 나누었습니다.

 

1992년 풍문여중은 폐교되었고, 풍문여고는 계속 그 자리에 있다가 2017년 강남구 자곡로로 이전한 뒤 풍문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후 서울시에서 부지를 매입해 서울공예박물관이 들어 선 것입니다.

 

풍문여고가 들어선 뒤에도 한동안 건물들이 남아 있다가 학교 건물 신축을 위해 정화당과 경연당, 현광루 등을 해체해 다른 곳에 매각했다고 합니다.

정화당은 우이동으로 옮겨가서 요정 선운각으로 변한 후 현재 메리츠화재 연수원으로 존속 중이고, 현광루와 경연당은 풍문학원 이사장 별장과 골프장으로 옮겨졌다가 문화재청에서 매입 후 충남 부여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내에 있습니다.

 

정상루는 존재를 확인할 수 없고 남이섬 정관루가 정상루 건물을 옮겨왔을 것이란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나무위키 인용)

 

2020년 발굴조사에서 경연당과 정화당 유구가 확인되어 지하에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공예박물관 옆에는 100여년 동안 비밀의 공간이었던 열린송현녹지광장이 있는데요.

튤립과 유채 등의 씨앗과 모종들이 심어지면서 봄맞이 채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모처럼 봄 날씨~ 봄맞이를 마친 열린송현녹지광장

 

서울공예박물관 안내도

 

서울공예박물관은 예전 풍문여고 교사 5개동을 리모델링했고, 안내동과 한옥 한 동을 신축해 총 7개 동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전시관은 전시 1동과 2동, 3동 등 3개로 이루어져 있고, 안내동, 서울공예박물관 어린이박물관(교육동), 관리동, 공예별당 등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서울공예박물관 전경

좌측은 전시 1동, 그 뒤에 전시 2동이 있고, 중간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안내동, 우측은 전시 3동입니다.

 

안내동에는 안내데스크, 박물관 카페와 가게가 있습니다.

전시 1동 1층은 특별전시공간과 도서실이, 2층엔 상설전시실이, 3층엔 기획전시실이 있고,

전시 2동 1층은 지역공예실이, 2층엔 상설전시실이, 3층엔 공예 아카이브실이 있습니다.

 

전시 3동 1층에는 안내데스크와 사랑방이, 2층에는 자수 전시를 하는 상설전시실, 3층엔 보자기를 전시하는 상설전시실이, 4층에는 수장고와 보존과학실이 있습니다.

교육동이자 어린이박물관 1층엔 안내데스크와 강당이, 2~3층엔 어린이박물관, 4층엔 교육실과 카페가, 옥탑에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어린이박물관은 온라인 예약으로 운영)

 

 

 

서울공예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10:00~18:00(30분 전 입장마감)

아카이브실, 보이는 수장고와 보존과학실은 화~금요일만 운영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없음(인근 유료주차장 이용)

 

서울공예박물관 안내동

박물관 가게와 박물관 카페 그리고 안내데스크가 있습니다.

 

서울공예박물관 전시 1동

 

전시 1동 1층 로비

공예박물관 곳곳에 공예작가가 만든 작품을 내외부 공간에 설치하고 있습니다.

 

공예도서실

 

전시 1동 2층으로 올라가면 상설진시실이 있으며, 이곳에선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장인들은 국가의 체계적인 관리 아래 국가 행사에 대규모로 동원되어 공예품을 제작했고, 왕실뿐 아니라 민간에서 필요한 의식주와 관련된 다양한 일상용품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장인이 새긴 왕실의 특별한 이름

 

조선시대에는 왕비, 왕세자, 왕세손 등을 책봉하거나 특별한 이름을 올릴 때 그 사실이 담긴 기록물인 어책이 제작되었습니다.

왕과 왕비는 옥으로 만들어 옥책, 왕세자와 후궁은 대나무로 만들어 죽책이라고 합니다.

 

견양, 왕실 공예의 표본

 

견양이란 국가의례나 왕실 생활물품 제작을 위해 규정된 치수와 특정한 양식을 그림이나 견본 등의 형태로 제시한 것을 말합니다.

일정 수준의 품질과 예술성을 담보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화각함

소뿔을 얇게 갈아 투명하게 만든 네모 각지에 불로장생과 부귀를 상징하는 각종 동식물 문양을 그린 후 이를 함 표면에 붙여 장식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복식

 

당시 사람의 위계와 신분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공예품입니다.

복식을 포함한 왕실 공예품을 제작하던 관부는 상의원이었습니다.

 

분청사기의 다양한 문양


분청사기는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제작된 자기입니다.

흙에 백토를 발라 문양을 장식한 것이 특징이랍니다.

 

조선시대 각종 노리개

 

사대부의 공간과 가구

 

조선시대에는 가구 하나를 제작함에 있어서도 소목장을 집으로 불러 가옥과 방의 규모, 재력, 용도, 주인의 취향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만들도록 하는 주문제작 방식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공예, 근대의 문을 열다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은 밀려드는 서구 제도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사회전반에 근대화의 흐름과 함께 전통방식의 수공예가 쇠퇴하고 공예가 산업기술로 인식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의 공예

 

고종황제는 자주적인 강대국을 만들기 위해 외국에 사절단을 보내 선진문물을 견학하게 했습니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독립관을 설치해 도자기와 나전칠기, 비단, 금속공예품 등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미술품 제작소, 경성과 인천

 

대한제국 황실의 후원으로 설립된 한성미술품제작소(1908~1913)의 후신으로 지금의 광화문 네거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운영주체가 바뀌면서 이왕직미술품제작소(1913~1922), 주식회사 조선미술품제작소(1922~1936)로 상호를 변경하여 30여년을 전통에 기반한 공예품을 제작하여 오늘날 근대 공예의 산질로 평가되는 곳입니다.

 

비원자기

고전의 모방과 창작

 

근대화 시기의 공예 작가들

 

공예에 담긴 근대

가옥구조와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서구식 디자인 개념이 도입되었고, 도안의 사용은 규격화된 공예품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전시 1, 2관 뒤편에 있는 서울공예박물관 어린이박물관

 

강당과 어린이박물관, 카페, 전망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 후에만 관람할 수 있는 곳입니다.


어린이박물관 공예마을은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체험형 전시 및 창작공간이며, 2층과 3층에 5개의 공방(가구공방, 철물공방, 그릇공방, 모두공방, 옷공방)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서울공예박물관 전시 2동으로 이동했습니다.

 

자연에서 공예로

 

인류 역사는 공예 발전의 역사입니다.

인류는 돌, 흙, 나무 등 자연 소재를 가공하는 도구를 발명하고 기술을 개발해 환경의 제약을 극복해 왔는데요.

아울러 일상생활을 편리하고 아름답게 꾸리며 문명의 토대를 세웠습니다.

 

또한 신소재와 기술들을 다른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는 가운데 우리 공예의 특성이 확립되었으며, 공예의 전통을 만든 장인들의 손에서 광석은 금속공예로, 흙은 토기를 거쳐 도자기로, 나무와 전복은 나전칠기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영국사 터에서 발굴된 금속 유물들

 

고려시대 영국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에 1573년 조선의 유학자 조광조를 기르는 도봉서원이 세워졌습니다.
2012년 서원 터를 발굴하던 중 땅에서 총 79점의 영국사 금속공예품들이 출토되었는데요.

 

 

 

대부분 11~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시대의 세련된 금속제작 기술을 보여주며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불교에서 유교로의 변화를 상징합니다.

 

청자의 빛깔은 태토의 철분 함유량, 가마 안에서 흙 속의 철분이 산소와 만나거나 태워져 사라지는 현상들에 의애 푸르거나 누렇게 보이는 등 다양하게 생깁니다.
 
청자의 문양은 학과 구름, 능수버들과 오리, 연꽃, 국화, 모란 등의 꽃, 앵무새, 여의두, 번개무늬, 구슬이음무늬, 연리문 등이 있습니다.

 

나전칠기 제작에 사용되는 소목장 도구들

 

나전칠기 제작과정 20단계

 

전시 2동 3층에는 공예 아카이브실이 있습니다.

 

 서울공예박물관이 소장하는 소장품을 기반으로 입수한 유무형의 공예기록과 박물관의 전시, 연구, 교육 등의 활동에서 생산하고 수집한 박물관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공예 아카이브실은 소장 기록물의 보존 및 관리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기록물의 실물열람 및 전시관람이 가능한 개방형 수장공간입니다.

아카이브실은 평일 10:00~18:00까지만 관람이 가능하며, 아카이브실 입장을 위해서는 안내동에서 별도의 출입등록을 해야 합니다.

 

이어서 서울공예박물관 전시 3동으로 이동했습니다.

 

공예품으로써의 자수와 보자기를 전시하고 있고, 4층엔 보이는 수장고와 보존과학실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4층은 화~금요일 평일에만 볼 수 있어, 주말 및 공휴일엔 관람할 수 없습니다.

 

1층 사랑방 공간

 

2층 전시실은 '자수, 꽃이 피다'

 

자수 화조도 병풍

 

우리 전통자수는 삼국시대에 이르러 크게 발전했습니다.

현재 향낭과 자수직물 등의 고려시대 유물이 남아있고 조선시대엔 바느질과 자수를 여성들의 기본 규범으로 강조하면서 조선후기와 근대 자수 유물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자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편하며 일상생활 가장 가까이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이자 공예 기법인 것입니다.

 

'자수, 꽃이 피다' 전시는 서울공예박물관 허동화, 박영숙 컬렉션에서 선정한 자수 병풍을 회화적 관점으로 재조명하고, 일상생활 구석구석을 수놓은 여인들의 마음을 담은 문양의 의미와 자수 기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수 목죽도 병풍

 

자수 연화당초문 현우경 표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에 소망이나 염원을 담을 수 있는 방법 중 자수가 있습니다.

병풍을 비롯하여 몸에 지니고 활용하는 주머니, 안경집, 보자기와 옷, 쓰개, 신발에도 원하는 문양과 글자를 아름답게 수놓았습니다.

 

'자식 많이 낳고 행복해라'

'오래오래 살고, 살 면서 복 많이 받아라'

 

일상에서의 소망을 이렇게 자수로 표현한 작품들입니다.

 

3층 전시실은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

 

궁중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화려한 문양이 있는 보자기부터 민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보자기까지 크기와 소재, 구성방법 등의 차이와 보자기의 다양한 용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수 보자기

 

보자기는 네모난 형태의 직물로 물건을 보관하고 장식하며 간편하게 물건을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틀이 있는 가방에 비해 공간활용이 편하고 재활용이 가능해 자연친화적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보자기 전시 모습

 

보자기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오래전 삼국시대부터 있었습니다.

보자기를 표현하는 글자로 보(褓), 복(袱)이 혼용되다가 20세기부터 '보자(褓子)'에 접미사 '기'가 붙어 보자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수 보자기는 다양한 색의 면이나 견 직물에 수를 놓아 만들었는데요.

보통 한 폭 반 정도(40cm 전후)의 바탕천에 나무와 새 등을 강한 보색 대비로 수놓은 것이 많습니다.

 

 

자수 보자기

 

까치 두루마기

 

바느질을 하고 남은 자투리 천은 바느질 도구나 노리개 같은 장신구를 만드는데 사용했습니다.

남은 천을 알뜰이 이용한다는 면도 있지만, 정성을 모아 복을 구하는 염원을 담고 있어 어린이의 색동저고리 등을 만들며 아이의 장수를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보자기 묶는 방법

 

박물관인 허동화

보자기 할아버지 허동화는 수집가이자 박물관장, 예술가였던 사전가였습니다.

 

1976년 서울 을지로에 한국자수박물관을 개관하였다가 1991년 논현동으로 이전했습니다.
평생 수집한 자수품과 보자기를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박물관을 운영한 허동화는 100여 회의 전기로 우리 직물공예의 우수함을 널리 알였다고 합니다.

 

허동화는 그의 열정적인 수집과 전시활동을 하면서 많은 기증과 후원을 이끌어 내기도 했는데요.
2018년 92세로 일기를 마감한 허동화는 평생 수집한 자수품과 보자기 5천여 점을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하였다고 합니다.

 

4층 은 '보이는 수장고와 보존과학실'

 

평일에만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 보관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보존 처리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직물 자료 수집과 연구

직물 자료 보관과 보존처리

 

보이는 수장고와 보존과학실 복도 모습

 

보이는 수장고

 

 

보존과학실

 

어린이박물관을 제외한 전시 1동에서 전시 3동까지 대략적으로 관람했는데요.

우리나라 전통 공예의 역사와 각종 공예품들을 체계적으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박물관 투어로 서울공예박물관으로 나들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