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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북부.인천시 여행

강화도 사찰, 전등사 (연등 및 영가등, 삼랑성, 정족산사고)

by 휴식같은 친구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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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사찰, 전등사 (연등 및 영가등, 삼랑성, 정족산사고)

 

 

지난 근로자의 날엔 강화도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부처님 오신날도 다가오고 있어서 강화도의 대표적인 사찰 전등사에 들렀습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창건한 1,7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현존 최고의 사찰입니다.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라 불리다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1282년 고려 충렬왕의 비 정화 궁주가 송나라에서 대장경을 인쇄해 오고 옥으로 만든 등잔을 시주, 부처님 말씀 즉 법의 등불이 전해 왔다는 의미로 전등사라 명명했다고 합니다.

(옥등은 전하지 않고 있음)

 

전등사에는 보물인 대웅보전, 약사전, 중국 범종 등 많은 문화유물이 있고,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을 비롯해 조선앙조실록을 보관한 조선시대 4대 사고 중 하나인 정족사고 등 역사적인 유적 및 볼거리가 많이 있는 사찰입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한 강화도 사찰, 전등사의 연등과 영가등, 삼랑성과 정족산사고, 전등사 템플스테이 등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전등사 주차장

전등사는 김포 대명항을 지나 초지대교를 넘어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3년 전에 방문했을 때에는 현재의 위쪽인 삼랑성 동문 쪽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상가들이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입구가 정족산성(삼랑성) 남문 쪽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주차장에서 전등사까지 이동거리가 조금 가까워졌습니다.

 

아울러 2023년 5월부터 전국 사찰 문화재 관람료 폐지로 기존의 입장료 4,000원도 폐지되어 무료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등사 관람안내

 

관람시간 동절기 08:30~18:00, 하절기 08:00~18:30

휴무일 없음

관람료(입장료)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하루 소형 2,000원(09:00~17:30까지 징수)

 

전등사 가는 길

여름이 다가오면서 신록이 무척 싱그러워진 모습입니다.

 

전등사 들어가는 출입구로 바뀐 강화 삼랑성(정족산성) 남문(종해루)

 

삼랑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의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고 하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무려 4,300년이 넘은 산성이란 의미네요.

 

강화도의 성 대부분이 토성인 데 비해 삼랑성은 견고한 석성이며, 성 주위는 약 2㎞, 높이 2.3m∼5.30m입니다.
본래 4개의 성문과 누각이 있었으나 동문과 남문을 제외한 나머지 두 문과 종루는 없어지고 성곽만 남아 있습니다.

 

 

 

전등사는 이 삼랑성 안에 있고, 고려시대에는 임시로 지은궁궐인 가궐이 있었으며 조선 고종 3년(1866)에 프랑스 군대가 침공한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 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동문 안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양헌수 승전비가 있습니다.

 

삼랑성은 강화산성과 더불어 고려~조선시대에 개경과 한양의 외곽을 방어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으며, 예로부터 신성한 곳이라는 인식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5월의 철쭉이 만개한 전등사 입구 풍경

 

전등사의 오래된 역사만큼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들이 많이 있는데요.

위 나무는 700년 이상된 은행나무입니다.

 

전등사 은행나무에는 노승나무와 동자승나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조선시대 배불숭유 정책으로 전등사 은행나무에서 수확량을 2배로 바치라는 말에 축원을 읽었는데, 기도하던 추송스님과 동자승이 사라졌고, 이 은행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하는 전설입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전등사에서도 5월 15일 10:30에 봉축 법요식이 열리고, 저녁 8시에는 점등식과 제등행렬이 진행되네요.

 

초록초록해진 전등사 풍경

 

전등사 대조루

 

전등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누각으로 언제 지어졌는지 확실치 않으나 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의 전등사 시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에는 이미 대조루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의 대조루는 1932년 사찰안의 건물들을 수리하면서 다시 지은 것입니다.

 

전등사 연등

 

전등사에는 연등 외에도 꽃 공양을 받고 있습니다.

 

꽃공양은 3~5만원입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전등사에서는 연등과 영가등 접수를 받고 있습니다.

 

연꽃등과 영가등은 5만원

일년등은 대웅전 30만원, 다른 전각 20만원

관음전 1년 기도 & 인등 30만원

각 전각 인등 1만원

 

전등사 대웅보전(보물 178호)

 

전등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입니다.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보수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웅보전은 절의 중심 건물로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전등사 대웅보전은 조선 광해군 13년(1621)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지붕 처마 무게를 받치는 구조인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짜여 있는 다포양식 건물입니다.

 

 

 

건물 네 모서리 추녀 밑에는 벌거벗은 사람이 조각되어 있는데, 절설에 따르면 절을 짓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막 여인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쁜 짓을 꾸짖어 하루 3번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죄를 씻고,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의미로 추녀 밑에 새겨 추녀를 받치게 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내부 장식과 능숙한 조각솜씨가 돋보이는 조선 중기 사찰 건축물인데요.

천장은 용, 극락조, 연꽃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고, 부처를 모신 불단과 불상 머리 위의 닫집 장식이 특히 화려합니다.

 

전등사에 있는 전등사 목조 석가여래 삼불좌상은 보물 1785호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조선 인조 원년(1623)에 수연을 비롯한 6명의 승려 조각가가 제작한 불상으로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여래, 왼쪽에 약사여래가 모셔져 있습니다.

 

 

 

아울러 묘법연화경 목판(보물 1908호)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널리 익힌 경전인 묘법연화경을 새긴 것으로 전등사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목판은 성달생의 글씨로 세종 25년(1443)에 완주 화암사에서 새긴 것을 중종 38면(1543)에 마니산 정수사에서 복각한 것입니다.

 

전등사 대웅전 앞 느티나무

 

수령이 400년 이상된 느티나무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1615년 충렬왕의 원비 정화궁주가 승려 인기에게 부탁해 송나라의 대장경을 간행하여 이 절에 보관토록 하고 옥등을 시주한 후 전등사라 부르고 있는데, 이때 재건하면서 풍치목으로 심은 나무로 보입니다.

 

느티나무 주변에 화려한 연등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전등사 관음전

 

전등사 약사전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액사여래를 모시는 법당으로 이것 역시 언제 지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광해군 시절에 지어진 대웅전과 건축양식이 비슷해 서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잇습니다. 
대웅전과 같이 다포양식의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약사전 아래에는 어린왕자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세계 최초 발굴기법의 작가인 이영섭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전등사 철종(보물 393호)

 

전등사 철종은 중국 송나라 때 희주 숭명사에서 만든 중국 종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병기를 잡으려고 지금의 인천시 부평 병기창에 갖다 놓은 것을 광복 후에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정사각형 8개를 새겼습니다.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것과 북송 철종 4년(1097)에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폐목된 나무에 새겨진 조각

 

강화 전등사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보물 1886호)

 

강화 전등사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은 전등사 명부전에 모셔진 지장보살 삼존상을 비롯한 총 31구의 불상을 말하며, 지장보살은 저승세계인 명부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입니다.

시왕은 저승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말합니다.

 

강화 전등사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 등은 대웅보전에 모셔져 있는 수연의 석가여래 삼불좌상(보물 1785호)보다 10여년 늦게 제작된 불상으로 수연 작품의 완숙된 조형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전등사 명부전

 

전등사 템플스테이

깨끗한 마음으로 새벽 예불을 모시고 정갈한 음식으로 공양을 한 뒤 도량 청소인 운역을 통해 마음을 닦는 곳입니다.

 

전등사 템플스테이는 힐링형, 문화체험형, 휴식형, 당일형 등 4가지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데요.

1박 2일에 성인은 7~9만원, 초중고교생은 5~7만원, 미취학 어린이는 1만원 등이며, 당일형은 3~5만원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1700여년 역사의 전등사에서 조용한 명상을 즐기며 템플스테이로 마음을 정화시키고 싶어 집니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삼성각과 정존산사고가 있습니다.

 

전등사 삼성각

 

노랗게 핀 죽단화

 

철쭉과 함께 불두화도 피었습니다.

 

정족산사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장사각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이 있던 곳입니다.

 

조선은 초기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등 네 곳에 보관해 왔는데요.

임진왜란 때 모두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본이 묘향산사고로 옮겼다가 마니산사고를 거쳐 현종 1년(1660)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오른편에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습니다.

선원보각은 1931년 이후에 없어졌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1910년 국권침탈 이후 서울로 옮겨졌고 지금은 서울대 규장각에서 보존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두 건물은 1998년 복원한 후 옛 현판인 장사각, 선원보각을 각각 달은 것입니다.

 

정족산사고에서 바라본 영종도 방향 풍경

 

정족산사고 앞에는 스님들 처소가 있습니다.

 

정족산사고에서 내려오면서 바라본 전등사 일대 풍경

 

강화 정족산성진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를 보호할 목적으로 설치한 군사 주둔지 정족진이 있던 곳입니다.

1907년 방화로 소실되었고, 2009년 발굴조사로 11개소의 건물지와 대규모 유구를 발견한 바 있다고 합니다.

 

전등사 팥배나무

 

전등사 대웅전을 바라보이는 곳에 수령 300년 이상된 팥배나무가 있습니다.

늦은 가을에 팥 같이 생긴 빨간 열매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고 합니다.

 

 

 

아울러 이곳은 강화의병 전투지 이기도 한데요.

1908년 10월 강화의병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곳입니다.

 

강화이병은 1907년 8월 9일 강화진위대가 강제로 해산당하자 해산 군인들이 일제히 항거하면서 본격화했습니다.

이능권의 지휘 아래 1908년 10월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일본군 13연대 70여 명과 정족산 잔등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다시 대웅전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풍경

맑은 날엔 영종도 등 서해바다가 잘 보이는 곳입니다.

 

전등사 입구에 있는 찻집, 죽림다원

 

전등사 수미단 앞 항아리단지가 정겹네요.

 

전등사는 1700여년 역사를 담고 있는 강화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사찰입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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