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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관청인 의정부 터(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by 휴식같은 친구 2024.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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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관청인 의정부 터(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조선시대 의정부는 백관의 통솔과 여러 정사를 총괄하던 최고의 관청(행정기관)이었습니다.

육조 판서와 함께 나라의 중요한 일을 논의하고 결정했던 것입니다.

 

1400년(정종 2) 세제(왕위를 물려받을 왕의 동생)였던 정안군(이방원, 후의 태종)의 주도 하에 과거 고려시대의 국정의 최고 의결기관이면서 집행기관이었던 도평의사사의 과중한 권력을 약화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개편한 것입니다.

 

이후 조선시대 대부분을 의정부를 통해 운영되다가 1895년(고종 32) 조선말기에 내각으로 개편되었고, 1896년에 잠깐 의정부로 환원되었다가 1907년에 다시 내각으로 개편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의정부가 있던 자리(의정부 터)는 광화문 앞 동편 첫머리, 현재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옆인데요.

의정부지는 1990년대까지 여러 행정 관청이 자리했고, 1997년부터는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으로 사용 돼왔습니다.

 

2013년부터 의정부지 유적을 확인한 후 2016년부터 8년간의 발굴과 정비사업을 실시했고 지난 9월 12일에 개방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방문한 후 잠시 의정부 터인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을 걸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바라본 의정부역사유적광장 모습

이곳 의정부터는 물론 광화문광장과 경복궁 일대를 조망하는 전망대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광화문광장과 경복궁 전망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옥상정원 전망대

 

사진에서 보듯 의정부 터는 좌측부터 우측까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좌측은 행랑지역, 가운데는 의정부 본연의 건물이, 우측에는 연못과 정자 등 후원 역할을 하던 공간이 있었습니다.

 

의정부 역사유적광장 좌측 건물지, 내행랑과 우물

 

이곳은 의정부 안마당을 둘러싸는 내행랑과 우물이 있던 곳인데요.

행랑은 대문의 양쪽에 붙어 있는 복도형태의 긴 건물로 방이나 창고로 쓰이던 곳이었습니다.

 

남북방향과 동서방향으로 10칸씩 기둥자리가 발굴되어 ㄴ자 형태였습니다.

 

내행랑의 남쪽 바깥마당에서는 안지름이 1.1m인 돌로 쌓은 원형우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우물 안에서 유물도 발견되었는데 경기도청이 들어선 시기까지도 우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운데 건물지, 협선당-정본당-석획당

 

의정부의 중심건물이 있던 곳으로 한 단 높인 정본당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대칭되게 협선당과 석획당을 배치하여 세 건물이 나란히 있는 구조입니다.

 

우측 건물지, 연지와 정자

 

연못과 정자는 대부분 중앙관아 후원에 두었으며, 의정부에서도 정본당과 석획당 뒤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연못의 크기는 남북으로 22.4m, 동서로 19.4m로 넓은 편입니다.

정자는 연못의 남쪽 석축과 맞닿아 있습니다.

 

광화문이 보이는 의정부 터, 의정부 역사유적광장 모습

 

의정부는 임진왜란 때 화재로 건물이 훼손됐다가 흥선대원군 집권 후 1895년 경복궁과 함께 재건됐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훼손되고야 말았죠.

 

현재 의정부 역사유적광장은 문헌자료들을 통해 실제 건물지를 확인했고, 2020년에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유산인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광화문의 고층빌딩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내행랑과 우물이 있던 곳

육조거리의 관아는 모두 행랑을 두었고, 의정부가 중건될 당시에는 외삼문과 외행랑, 중문과 내행랑이 전부 갖춰졌다고 합니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형이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협선당과 정본당, 석획당 건물지

 

정본당은 조선시대 의정부를 대표하는 정1품 관리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집무실로 쓰였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협선당은 찬성(종1품)과 참찬(정2품)이 사용되던 공간이며, 석획당은 여러 재상들이 사무를 보던 공간이었습니다.

 

석획당 건물지

 

조선시대 의정부는 고려시대 도평의사사를 개편해 출범시켰지만, 태종 14년(1414)에는 의정부의 권한이 너무 강대하고 육조의 업무량이 과다하여 업무의 정체되는 폐해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이에 하륜의 건의로 의정부의 업무를 육조에 이양하고 기구를 축소시켜 권한을 줄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의정부는 외교문서를 점검, 사형수 재심사와 조사를 하는 유명무실한 최고 행정관청으로 전락되어 넓은 청사는 빈집이나 다름없던 시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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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2년이 지난 세종 18년(1426)에 의정부 기능을 다시 강화하면서 영의정이 현재의 국무총리격이 되어 좌의정, 우의정, 좌찬성, 우찬성, 좌참찬, 우참찬이 두어지는 직제가 마련되었고, 명실공히 최고의 행정기관이 되었습니다.

 

세조 1년(1455)에 의정부의 서사를 폐지시켜 그 지위를 격하시키는 등 의정부의 역할이 자주 변경되어 왔습니다.

조선말에 와서 고종 32년(1895), 의정부의 명칭을 일시 내각이라 하다가 광무 원년(1897)에 의정부로 환원, 1907년에 다시 내각으로 전환하면서 의정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한편 의정부 청사는 태종이 개경으로부터 환도하여 창덕궁에 들자 의정부와의 거리가 멀어 의정부 조방을 창덕궁 진선문 밖에 지은 바 있고, 성종 때에는 창경궁에도 의정부 조방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상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정본당 건물지

 

연지와 정자 터

 

연지에는 연꽃이 무성했고, 비상시에는 불을 끄는 방화수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추정하고 있는데, 처음으로 지어졌을 때와 도종 대에 중건할 때의 것이 뒤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의정부 터 우물지 모습

 

서울 도심 빌딩숲과 광화문광장에 위치하여 이렇게 넓은 잔디광장으로 있어도 좋겠지만, 옛 의정부의 건물들을 작게 나마 하나씩 복원해 나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서울 고궁과 한옥밀집단지에는 외국인이 무척 많이 보이는데요.

그만큼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이고, 이들이 한국을 즐기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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