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경복궁 나들이 (경복궁 관람정보 및 코스안내)
지난 추석연휴 마지막날에 경복궁을 찾았습니다.
연휴가 길어서 시골에서 하루빨리 상경했고, 서울 고궁이 명절연휴를 맞아 무료개방을 한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경복궁을 관람하고 싶었거든요.
무던히도 더웠던 여름날씨는 추석까지도 불볕더위를 이어가고 있었고,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시원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으로 행하게 했고, 그 위에서 바라본 광화문광장과 경복궁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광화문 앞 동편에 새로 오픈한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까지 관람 후 경복궁으로 향했습니다.
광화문광장과 경복궁 전망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옥상정원 전망대
경복궁은 여러 번 방문했지만, 워낙 넓다 보니 전체를 구경한 적은 없었는데요.
이번엔 더위에도 불구하고 칠궁을 제외한 경복궁 전 구역을 돌아다니며 사진에 담았습니다.
의정부 터,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 바라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경복궁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열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한양천도와 함께 경복궁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3년차인 1394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9월에 대부분의 전각을 완성했습니다.
조선시대 정궁에 해당되며, 북쪽에 있어 북궐로도 불렀습니다.
경복궁의 이름은 시경의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의미로 지었으며,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으나 임금이 거주한 기간은 별궁이었던 창덕궁에 비해 훨씬 짧았습니다.
정종 때 개성으로 잠시 천도했다가, 태종 때 다시 경복궁으로 왔으며 세종, 문종, 단종이 주로 이곳에 기거했습니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경복궁을 기피해 창덕궁에 기거하면서 임금이 살지 않는 궁이 되었고, 이후 1543년(중종 38) 동궁에서 일어난 화재와 1553년(명종 8)에 일어난 내전일곽의 화재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이듬해 복구되었습니다.
38년 뒤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불탄 후 270여 년간 폐허상태로 있다가 1865년(고종 2) 대규모 재건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868년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왔으나, 1876년에 일어난 대규모 화재로 다시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888년 재차 옮기는 등 여러 차례의 피해와 복구가 거듭되었습니다.
1904년 이곳에 통감부가 들어섰고 1917년 11월에 일어난 창덕궁의 대규모 화재 뒤 이를 복구하기 위해 1918~20년 원래 있던 건물을 해체했습니다.
또 이곳에서 나온 건축자재의 방매와 국립중앙박물관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건립 등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경복궁 복원공사가 진행되었고,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였으며 흥례문 일원, 침전 권역, 건청궁과 태원전, 그리고 광화문 등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음백과 인용)
광화문 앞의 월대
임금이 백성을 만나고 외국 사신을 만나는 장소였으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됐던 곳인데요.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오랜 기간 복원 작업을 거치는 산고 끝에 2023년 10월에 개방한 곳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율곡로가 광화문 앞을 일직선으로 지나가다가 월대가 복원되면서 U자 형으로 돌아가는 기형적인 도로구조가 되었습니다.
문화유산의 복원이라는 점에서 불편해진 교통체계는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광화문
경복궁 정문으로 1395년 건립 당시에는 남문으로 불리다가 1426년(세종 8)에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빛이 널리 비춘다는 의미의 광화문으로 명명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865년(고종 2)에 중건하면서 다시 지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면서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이전되었고, 6.25 전쟁 당시에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1686년에 남아있던 석축을 이전해 복원했으나 목조가 아닌 콘크리트 문루로 복원했고, 위치도 달랐습니다.
1996년 조선총독부가 철거되었고 광화문도 철거되어 현재 모습으로 2010년에 복원되었습니다.
광화문은 3개의 아치형 문을 낸 석축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문루를 올렸습니다.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용마루와 추녀마루에 회반죽을 발라 양성바름을 하였고, 망새와 용두, 잡상 등을 설치하여 지붕 위를 장식하였습니다.
가운데 아치문 천정에는 주작을 그려 넣었으며, 광화문 정면 좌우에는 상상의 동물이자 영물인 해태상을 설치했습니다.
광화문 앞으로는 궐외각사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육조의 관아들이 늘어서 있었고 이를 육조거리라고 불렀습니다.
경복궁은 정궁이라 조선시대 궁궐 중 으뜸으로 다른 궁궐에 비해 전체모습이 정연한 비례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궁궐 내부는 정문인 광화문으로부터 홍례문과 근정문과 향오문을 일직선 상에 배치했고, 사이 공간은 정사를 보고 의식을 행하는 업무공간으로, 향오문 뒤에는 제반시설이 자리한 후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대지 주위를 담장으로 둘러싸고 동문 건춘문, 서문 영추문, 남문 광화문, 북문 신무문 등 4개의 문을 만들었습니다.
경복궁 건물배치도
광화문 → 흥례문 → 근정문 → 근정전 / 계조당 → 사정문 →경회루 / (서)천추전 / 사정전 / 만춘전(동) / 자선당 → 향오문 → (서)경성전 / 강녕전 / (동)연생전 → 양의문 → (서)함원전/흠경각 / 교태전 / (동)원길헌 → 자경전/정연루 → 향원정 → 태원전 / 건청궁 / 녹산 → 신무문 → 칠궁
칠궁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복궁 전각들을 둘러보고 포스트 또한 이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
광화문 안 동쪽에는 경복궁 매표소가 있습니다.
경복궁 관람안내
관람시간 : 3~5월/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2월 09:00~17:00
(입장마감은 마감 1시간 전)
관람요금 : 대인(25~64세) 3,000원, 그 외는 무료
(한복입은 사람은 무료입장)
설 명절에는 무료개방이라 우리는 무료입장을 했네요.
휴무일 : 매주 화요일
주차장 : 기본 1시간 3,000원, 초과 10분당 800원
광화문 안 서쪽에는 500년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역사, 문화의 정수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박물관인 국립고궁박물관이 있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와 여러 능, 원에 수장되어 온 조선시대 왕실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곳입니다.
경복궁 두 번째 문인 흥례문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으로 예를 널리 편다는 의미로 홍례문이었으나 청 건륭제 이름인 홍력에서 홍자를 피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이 흥례문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근정문,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영제교
경복궁 안에 경회루 연못에서 흘러나와 근정문과 홍례문 사이를 통과하여 동십자각 옆의 수구로 나아가 삼청동천과 합류하는 물줄기에 있던 다리이며, 금천교라고도 불렀습니다.
경복궁 건설 당시에 만들어졌고, 세종 대에 영제교라고 명명했습니다.
근정문(보물) 및 행각
영제교인 금천교를 지나면 경복궁 3개의 대문 중 마지막 문인 근정문으로 근정전에 들어서는 문이며, 문 양 옆에는 문관과 무관의 전용출입문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867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진 것입니다.
광화문, 흥례문, 금천교와 함께 일직선 상에 놓여 있고 좌우로 일화문과 월화문이 있습니다.
조선의 정전인 경복궁 근정전(국보)
경복궁의 으뜸 전각인 법전,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잘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며, 궐 안에서 가장 장엄한 중심건물로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외국사절의 접견 등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던 곳입니다.
근정전 역시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1867년 경복궁 중건 당시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경복궁의 대부분의 건물은 훼철되거나 경매로 팔려나갔으나, 근정전은 철거되지 않고 자리를 지켰으며 6.25 전쟁 중에도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근정전 앞 품계석
조선시대 문무백관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정1품에서 종9품까지 궁궐의 정전 앞마당에 정렬한 24개의 돌입니다.
1품에서 3품까지는 정, 종으로 구분하여 6개가 세워져서 문무백과 12개 품계석이 세워졌고, 4품에서 9품까지는 정, 종을 구분하지 않고 6개씩 12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은 현존하는 국내 최대의 목조건물이며, 조선의 가장 큰 궁궐의 정전이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장식이 화려하며 다소 지나치게 치장한 듯한 감이 있기는 하나 조선 말기 건축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 건축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표본적 건물입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근정전 내부는 관람할 수가 없네요.
웅장한 근정전 옆모습
근정전은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인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의 건물로 화려한데요.
지붕은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 모습입니다.
근정전 뒷모습
근정전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 계조당이 있습니다.
왕세자의 공간인 경복궁 동쪽에 자리잡은 동궁 권역의 일부로 세종을 대리하여 정무를 맡았던 세자(문종)가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1395년(태조 4)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동궁은 경복궁 밖에 위치했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경 훼철되었다가 2018년부터 복원사업이 추진돼 2023년 9월 20일 복원된 계조당 권역이 공개되었습니다.
계조당 위쪽은 동궁일원입니다.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과 고목이 보이네요.
세자는 떠오르는 해와 같아서 세자궁을 동쪽에 세워 동궁이라 부릅니다.
자선당은 세자가 거처하는 곳이며, 비현각은 공부를 하며 정무를 보던 외전입니다.
남쪽의 춘방 터에는 세자 교육을 담당했던 시강원이, 계방 터에는 경호와 의전을 담당하던 관청이 있었습니다.
자선당은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불탔고, 기단석만 반환됐다고 합니다.
경복궁 건춘문
경복궁의 동쪽 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건물이며, 경복궁 중건 당시인 1865년(고종 2)에 세웠습니다.
일본인들에 의하여 조선총독부청사가 세워진 뒤로는 광화문을 대신하여 경복궁의 정문으로 사용됐는데, 원래는 문반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이었습니다.
조선왕조와 함께 했을 오래된 은행나무
경복궁 자선당
좌측이 자선당, 우측이 비현각입니다.
비현각과 자선당
경복궁 동궁에 부속된 전각이며, 세자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던 곳입니다.
비현각은 세종 때 당시 왕세자였던 문종의 업무 공간으로 건립되었으며, 세자의 거처인 동궁의 자선당 우측(동편)에 위치합니다.
자선당은 세자와 세자빈이 거처했던 동궁으로 세자를 동궁마마라고 불렀습니다.
비현각과 자선당 모두 1999년 경복궁 재건사업이 진행되면서 복원된 것입니다.
다시 근정전 서쪽으로 이동하면 수정전(보물)이 있습니다.
근정전의 서쪽, 경회루의 남쪽에 있는 전각으로 옛 집현전 자리에 세워진 임금의 편전으로 정사를 잘 수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육신 등 집현전 학자들이 주도했던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세조에 의해 폐쇄되었고,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며 집현전의 전각은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지금의 경복궁 수정전은 1867년(고종 4)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새로 지어진 전각이며, 중건 당시에는 수정전 주변으로 200여칸의 행각이 둘러싸고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었고 현재는 수정전 건물 한 채만이 남아있습니다.
경회루 앞에 있는 풍기대(보물)
대 위에 구멍을 뚫고 깃대를 꽂고, 그 위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 관측기구입니다.
18세기 유물로 탁자 모양의 돌 위에 긴 팔각기둥을 세우고 넝쿨무늬를 새겨놓았습니다.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경회루(국보)와 경회지
그리고 북쪽에 있는 정자인 하향정
조선후기 연회 장소로 이용된 궁궐의 누정건물로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건물입니다.
근정전 서북쪽에 있는 방형 연못 안에 세운 이 건물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초창 당시 규모가 작은 누각이었으나 1412년(태종 12)에 연못을 확장하고 큰 규모로 중건하였고, 1473년(성종 4), 1474∼1475년·1506년(연산군 12)에 수리공사가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려 1867년(고종 4)에 재건했습니다.
다시 근정전 뒤쪽으로 돌아와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사정문
사정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입니다.
경복궁 사정전(보물)
사정전은 정도전이 지은 이름으로, 임금이 평상시에 머물면서 정사를 펼치던 경복궁의 편전입니다.
매일 아침 업무보고와 회의,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이 일어나는 곳으로 임금이 정사에 임할 때 깊이 생각해서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입니다.
경복궁 창건 당시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후 경복궁 중건 당시 다시 지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개최된 조선물산공진회 당시 사정전은 박애관이라는 이름의 전시관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으며, 이후 6.25 전쟁 때 사정전의 부속 건물인 경복궁 만춘전이 폭격으로 파괴되었으나 1988년에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사정전 내부 모습
사정전 서쪽에 있는 천추전
천추전은 임금의 편전인 사정전의 서편에 위치하는 편전으로 왕과 신하들이 학문을 토론하는 장소입니다.
난방시설이 없는 사정전과 달리 온돌이 설치되어 있어 가을과 겨울에 임금이 이곳을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천추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던 것을 고종대에 중건한 것으로, 6.25 전쟁 때 소실된 만춘전과는 달리 천추전은 중건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사정전 동쪽에 있는 만춘전
만춘전은 창건 당시에는 없었으나 세종 연간에 만들어져 사정전을 보좌하던 곳이고, 천추전과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6.25 전쟁 등으로 소실된 후 1988년에 복원된 전각입니다.
향오문
향오는 오복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으로 오복은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을 일컫는 말인데요.
임금의 처소인 강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경복궁 강녕전
강녕전은 경복궁의 내전이자 왕의 침실로 강녕은 오복의 하나로 임금으로서 해야 할 이상적인 정치이념을 궁궐 건축에 반영한 유가의 사상을 보여주는데요.
강녕전은 임금의 높은 신분을 상징하므로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는 특징이 있습니다.
경복궁 화재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95년에 다시 지어진 건축물입니다.
강녕전 마루와 강녕전 침실
강녕전 서쪽에 있는 경성전, 강녕전 동쪽에 있는연생전
두 곳 모두 임금의 보조침소로 1995년에 복원된 건물입니다.
경성전과 연생전 모두 정도전이 지었으며, 강녕전 서쪽에 위치한 경성전과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연생은 생명의 기운을 맞이한다라는 뜻으로 '봄'을 의미하고, 경성전의 이름은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기뻐한다라는 뜻으로 '가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경성전과 연성전 뒤쪽에 각각 웅지당과 연길당이 대칭으로 있습니다.
양의문
양의는 음양을 의미하며, 교태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입니다.
경복궁 교태전
경복궁 강녕전 뒤편에 위치한 왕비의 침전으로, 왕비가 일상을 보내던 공간입니다.
'교태'는 주역의 64괘 중 11괘인 태괘의 천지교태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화합하여 만물이 생성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종대에 지어진 전각으로, 조선 초기에는 왕비의 침전이 아닌 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의하고 연회를 베푸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경복궁 화재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고, 1867년(고종 4)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교태전도 새로 지어졌으며 이때부터 교태전이 왕비의 침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의 내전을 복구하기 위해 교태전을 해체하여 창덕궁 대조전의 부재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교태전 및 침전 권역 복원은 1995년에 완공된 것입니다.
교태전 서쪽에는 함홍각이, 동쪽에는 원길헌 전각이 이어져 있습니다.
함홍각은 교태전 서쪽에 위치한 부속 전각으로 역사와 건물의 구조는 원길헌과 동일합니다.
다만 원길헌과 달리 북쪽에도 행각을 두었으며 남쪽 행각과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원길헌은 동쪽에 위치한 부속 전각으로, 조선 초기엔 없었고 1867년(고종 4년) 경복궁 중건 당시 처음 지어진 것입니다.
아울러 교태전 서쪽에 앞뒤로 흠경각과 함원전이 있습니다.
흠경각은 농업발전을 위해 천체의 운행을 이해하고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고자 했던 왕의 고민과 노력이 깃들여 있는 곳으로 옥루기륜, 양부일구 등의 시간 측정기구와 천문관측기구인 간의를 만들어 설치한 장소입니다.
한마디로 과학도구를 갖다 놓은 곳입니다.
함원전은 세종 때 건립된 건축물로 불사를 행하던 건물인데요.
조선은 유교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세종 등 여러 왕비가 불교를 심취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교태전 뒤 아미산 굴뚝(보물)
교태전 뒤편 언덕에 계단식 정원을 만들고 가운데에 육각형 굴뚝 4개를 나란히 세운 것입니다.
흙을 구워 만든 연한 주황색 전벽돌 몸체 위에 기와지붕을 얹고 그 위에 4개씩의 작은 굴뚝을 모았습니다.
굴뚝에는 여러가지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요.
봉황(왕비), 박쥐(부귀), 매화와 국화(군자의 심성), 학, 사슴, 불로초, 소나무, 대나무, 돌(장수) 등입니다.
계단식 정원은 산을, 돌함지 따위는 호수를, 굴뚝 무늬는 동식물들의 생태계를 상징하며 아미산 정원은 신선이 사는 자연의 세계를 상징한다네요.
교태전에서 나와 동쪽 위로 가면 자경전이 있고, 그사이엔 고목과 넓은 공터가 있네요.
자경전 아래에는 생물방과 내소주방, 외소주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와 궁중의 잔치음식 등을 장만하던 경복궁의 부엌으로 흔히 수라간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내소주방은 왕과 왕비 등이 먹는 아침 수라와 낮것상이라고도 하는 점심 수라, 저녁 수라 등 일상식을 만들던 공간이고,
외소주방은 연회음식을 장만하던 공간으로, 정월, 단오, 추석, 동지 등의 명절과 궁 안 왕족 및 궁 밖 종친의 생일, 왕족의 관례나 가례 때 올리는 잔칫상을 준비했던 곳입니다.
생물방은 생과, 숙실과, 조과, 차, 화채, 죽 등 임금의 별식과 휴식을 준비하던 공간입니다.
경복궁 자경전(보물)
경복궁의 대비전으로 신정왕후 조씨가 거처하였던 전각으로 동쪽 누마루는 청연루입니다.
신정왕후는 1863년 철종이 승하하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고종)을 즉위하게 하여 대왕대비로서 수렴청정하였고, 흥선대원군에게 정책결정권을 주어 대원군의 집정을 이루게 한 인물입니다.
자경이라는 명칭은 1777년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세운 창덕궁 자경전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경(어머니)이 복을 누리다.'라는 뜻입니다.
자경전 뒤쪽에도 굴뚝이 있는데요.
자경전 십장생 굴뚝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향원정과 건청궁, 신무문으로 가는 길
국립민속박물관 출구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인의 생활문화, 일상, 일생 등 3개의 상설전시실과 야외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1945년 한국 민속학의 선구자인 송석하의 수장품을 중심으로 서울시 중구 예장동 2번지에 국립민족박물관으로 처음 창립되었고, 1966년에 경복궁 내 수정전에 한국민속관을 열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건물은 1966년 국립중앙박물관 설계경기 공모전에서 특선 당선작으로, 1972년부터 1986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1993년 국립민속박물관이 옮겨와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면 계단은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를 형상화했고, 건물 중앙은 법주사 팔상전, 오른쪽은 금산사 미륵전, 왼쪽은 화엄사 각황전을 본떠서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멋스러운 소나무
경복궁 향원정(보물)
경복궁 건청궁 남쪽에 위치한 누각으로, 전각의 명칭인 '향원'은 '향기가 멀리간다'라는 뜻으로, 현판의 글씨는 고종이 직접 썼다고 합니다.
향원정은 1885년(고종 22) 즈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오늘날까지 잘 남아있습니다.
향원정의 연못을 건너는 다리인 취향교는 6.25 전쟁 당시 훼손된 것을 1953년에 복원하였으나, 그 위치와 형태가 다르게 복원되어 2021년 향원정 보수공사를 하면서 취향교를 원래의 위치에 본래 모습으로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향원정은 고종이 휴식을 취했던 공간으로 경복궁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대표 건물인데요.
심미성과 비례감이 뛰어나며 주변의 풍경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아름다운 모습의 향원정입니다.
건청궁 정문
함광문
곤녕합으로 들어가는 남쪽 문입니다.
건청궁의 옥호루와 녹금당
건청궁은 경복궁 안에 있는 궁궐로 1873년 고종이 사비를 들여 창건한 곳이라고 하는데요.
당시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을 종식하고 친정을 선언한 시기로 고종이 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독립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곳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887년 국내 최초로 전기가 가설된 곳이며,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당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1909년에 완전히 헐렸다가 2007년 복원되었습니다.
옥호루는 1873년 어진 등을 보관할 목적으로 지었다가 1895년 을미사변이 있을 때까지 고종과 명성황후가 기거했던 곳입니다.
아울러 녹금당은 녹색의 거문고란 의미이며, 복수당 아래에 있는 건물입니다.
건청궁 장안당
고종의 처소(사랑채)로 향원정 북쪽 경복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전각인데요.
건물 구조가 검소하고 품위가 있는 곳입니다.
자선당 유구로 가는 문이자 녹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녹산은 경복궁 동북쪽에 있는 작은 산으로 ‘사슴이 사는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경복궁에서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자연과 궁궐이 어우러진 조경미를 보여주는 곳이랍니다.
자선당 기단과 주춧돌
자선당은 왕세자 및 세자비의 거처로 어진 성품을 기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 9년(1427) 근정전 동쪽에 건립된 이후 여러번의 화재로 준건을 거듭하다 고종 25년(1888)에 이곳에 중건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014년에 일본은 자선당을 철거해 일본으로 가져갔고, 사설미술관으로 사용하다가 관동대지진으로 건물이 모두 소실되고 주춧돌만 남았다고 합니다.
1995년 국내로 들여와 이곳에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청궁 장안당 뒤편에 있는 관문각지
고종 10년(1873)에 건립된 건물이 있던 곳으로 어진을 봉안하던 장소였는데요.
러시아 건축가 세레친 사바틴과 친군영이 공사를 맡아 2층(일부 3층)의 서양식 건물로 지은 최초의 양관으로 불렸던 곳입니다.
집옥재 일원
서쪽에 팔우정, 중간은 집옥재, 동쪽은 협길당이 나란히 있고 전각끼리 복도로 붙어 있습니다.
집옥재는 중국식 전각이나, 좌우의 팔우정과 협길당은 전통 한국양식이라 이채로운 모습이네요.
경복궁 건청궁 서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옥과 같은 귀중한 보물을 모은다는 의미를 담은 고종의 서재로 사용되던 공간이었습니다.
당시 청나라에서 구매한 서양 문물 관련 4만여 권의 서적들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고, 어진을 모시거나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는 장소로도 활용했다고 합니다.
집옥재는 원래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어졌으나, 1891년(고종 28) 고종의 명에 의해 경복궁으로 이전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이후 집옥재는 빈 건물이 되었고, 집옥재의 도서 대부분은 조선총독부 소유로 전환되어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에 소속되었습니다.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으로 나가는 광림문
태원전과 집옥재가 있는 동쪽으로 이어지는 문으로 고종 2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들어진 문입니다.
청와대 방향에 있는 신무문
경복궁 신무문
경복궁의 북문으로 '신령스러운 현무'라는 뜻으로 현무가 북쪽을 관장하는 신령이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신무'라는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던 문이고 1433년 세종의 명으로 건립된 북문입니다.
오늘날의 경복궁 신무문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던 것을 고종대에 중건한 것으로, 중건 당시 원형의 모습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신무문에서 바라본 청와대 모습
청와대가 개방된 이후 예전만큼의 인기는 아닌가 봅니다.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서쪽에 태원전이 있는데, 중간에 유형문이 있습니다.
유형문은 신무문에서 경회루로 나아가는 첫 번째 문입니다.
그리고 서쪽에 일중문이 있습니다.
태원전에서 경회루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는 문으로 1867년(고종 4)에 만들어졌다가,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것을 2005년 복원한 것입니다.
건숙문
태원전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경안문
태원전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입니다.
경복궁 서북쪽 끝에 있는 태원전
태원전은 왕과 왕비, 대비가 죽은 후 발인할 때까지 관을 모시던 곳인 빈전입니다.
빈전은 국상 때 잠깐 사용하는 용도였기에 건물을 따로 짓지 않고, 편전이나 침전의 일부 건물을 활용했다가 1860년대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아예 빈전 전용 건물을 따로 지은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허물고 일본인 관사를 지었고, 1979년 군사정변인 12.12 사태 반란군 지휘부인 30경비단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2005년에 복원, 2009년부터 공개하고 있습니다.
태원전 북서쪽 경복궁 담장 너머엔 효자동 삼거리가 있고, 그 앞에 청와대 영빈관이 있습니다.
영빈관 뒤에 경복궁의 비밀궁궐인 칠궁이 있는데요.
칠궁은 조선의 5대 궁궐 외에 또 다른 궁으로 왕의 어머니가 된 7명의 후궁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사당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경종의 어머니인 장희빈의 신주도 이곳에 있습니다.
청와대 개방으로 더욱 가까워진 칠궁
경복궁 경회루 북쪽, 태원전 남쪽 사이는 녹음으로 우거진 곳이 있는데, 이곳은 숙설소 터라고 합니다.
숙설소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잔치 등 큰 행사가 있을 때 필요한 음식을 조리하고 식자재를 보관하거나 관련자들이 머물기 위해 설치한 주방입니다.
지금은 건물은 없고 터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숙설소 터 서쪽 위에는 회안전 터가 있는데요.
태원전과 함께 장례 등을 위해 지어진 곳으로 1896년에 덕수궁(경운궁)을 지으며 옮겨 간 곳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경복궁을 관람할 땐 근정전과 경회루 위주로 관람한 반면 이번엔 경복궁 칠궁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을 둘러봤습니다.
무척이나 넓고 건물들이 많아 혼동스럽기도 했고, 아직도 복원해야 할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무더운 날씨에 경복궁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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