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의 집, 딜쿠샤 저택
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 고종의 국장, 3.1운동 독립선언서와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AP통신사의 한국 특파원으로 처음 보도한 미국인 기자입니다.
딜쿠샤(Dilkusha)는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1923년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집을 지은 것이고, 1926년 화재로 1930년에 다시 지어졌다고 합니다.
딜쿠샤라는 말은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의미로 앨버트 테일러 아내인 메리 린리 테일러가 지은 것입니다.
3.1운동 독립선언서를 세상에 알린 역사적인 집인 딜쿠샤가 세상에 알려진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었습니다.
2005년 앨버트 테일러 아들인 브루스 테일러가 어린 시절 살았던 딜쿠샤를 찾으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이후 서울시는 2016년 딜쿠샤를 복원하기로 하고 등록문화유산에 등재한 뒤, 복원공사를 한 후 2021년 3.1절을 기해 개방되었습니다.
복원된 딜쿠샤 모습
딜쿠샤는 테일러 부부가 떠난 후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잃었는데요.
1963년 국가소유가 되었으나 방치되어 일반인들이 들어가 살면서 곳곳에 금이 가고 누수가 발생해 훼손이 심했다고 합니다.
복원된 딜쿠샤 전시관의 내부 1, 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거주할 때의 모습을 당시 사진 6장을 토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앨버트 테일러는 AP통신사를 통해 3.1 운동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고, 항일 독립운동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 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후,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당할 때까지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아내와 함께 살았습니다.
앨버트 테일러는 1948년 미국에서 사망하였고,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아내 메리가 한국에 데리고 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안치했습니다.
딜쿠샤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30분 전 입장마감)
(딜쿠샤 계단은 3~11월 06:00~22:00, 12~2월은 07:00~21:00까지 개방)
휴무일(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없음(입구나 아래 유료주차장 이용)
딜쿠샤 앞에 있는 480년 된 은행나무 보호수
앨버트 테일러는 당시 아무것도 없는 언덕 위에 이 은행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에 딜쿠샤를 지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딜쿠샤가 생각나 미국에서도 언덕 위 집을 찾곤 했다네요.
이 은행나무가 있는 자리는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을 거둔 도원수 권율장군(1537~1599)의 집터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딜쿠샤 모습
딜쿠샤의 연혁
1917.9 테일러 부부 결혼 후 한국입국
1923~1924 딜쿠샤 완공
1926.7 딜쿠샤 벼락으로 화재 발생
1930.9 딜쿠샤 재건
1942년 일제가 테일러 부부를 추방함
1959년 자유당 조경규 의원 딜쿠샤 매입
1963년 조경규 의원 재산 몰수로 국유화
2005년 서일대 교수 김익상, 부루스 테일러의 의뢰를 받아 딜쿠샤 찾아냄
2006.2 브루스 T.테일러 66년 만에 딜쿠샤 방문
2016~2018년 제니퍼 테일러의 딜쿠샤 관련 유물 기증
2017.8 앨버트 테일러 가옥, 딜쿠샤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2018~2020년 복원공사 완료
2021.3 전시관 개관
딜쿠샤가 방치되었을 땐 이곳은 귀신나오는 집으로 알려져 있었고, 1층과 2층, 심지어 지하에 거실을 나누어 무려 15가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딜쿠샤 정초석
딜쿠샤 1923 시편 127편 1절의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딜쿠샤를 지을 때 테일러 부부는 마을사람들의 항의와 무당의 저주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은행나무와 샘골이 있던 땅을 신성하게 여겼는데, 이곳에 집을 지으려고 했기 때문이라네요.
앨버트 W. 테일러의 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는 미국이 운산 금광의 채굴권을 획득한 후 조선에 들어온 최초의 광산 기술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앨버트와 그의 동생 윌리엄은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이듬해인 1897년 조선에 입국하였고, 앨버트는 운산 금광과 직산 금광에서 감독관과 총관리인으로 일한 후 1936년부터는 음첨골 금광을 경영하였습니다.
또한 동생과 함께 '테일러 상회'를 경영하며 사업가로 자리 잡았으며, 경성에 거주하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서울 구락부와 서울유니온구락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친목을 쌓았습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 곳을 여행하며 한국의 풍경을 경험하기도 했는데요.
무더운 여름이면 강원도 화진포와 원산 살마해변에서 금강산의 매력에 빠지며 휴가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딜쿠샤 1층 거실 모습
이곳에서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디나 파티나 연회, 무도회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거실의 벽난로
미국 및 영국식 주택을 혼용한 딜쿠샤에는 1, 2층 거실은 물론 동서편에 있는 방에도 벽난로가 모두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엔틱식탁, 괘종시계, 코너 벤치, 삼층장, 난로, 벽등 등 집기들 모두 남아있던 6장을 참고하여 배치한 것 같습니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예전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의 언덕이라 한강까지 보였다고 합니다.
1층 동쪽
이곳에도 벽난로가 있습니다.
앨버트 테일러는 미국인 사업가였고, 메리 테일러는 영국인 연극배우였습니다.
1917년 인도에서 결혼했는데, 당시에 신문에 소개될 정도의 이름있는 가문이었답니다.
신혼여행을 겸하여 한국에 입국, 서대문 한옥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방에 있는 건반
딜쿠샤 화재 기사, 테일러 가족사진, 딜쿠샤 사진 등
1층 서쪽 방
이곳에도 벽난로가 있었는데, 그 흔적만 남겨놓고 복원했네요.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한국에 거주하던 적국 국민들을 수용소에 구금했는데요.
앨버트 테일러도 서대문형무소에 구금된 후 추방당하게 된 것입니다.
테일러 부부의 미국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 부부의 온전한 삶이 한국에 있었기 때문.
테일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한국어 능력과 다양한 경험을 소개하며 미군정과 미국 정부에 편지를 보내 한국파견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앨버트는 1948년 6월,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후 2005년 브루스 테일러가 서일대 김익상 교수에게 딜쿠샤를 찾아 달라고 의뢰했고, 2개월 만에 찾았습니다.
브루스는 아내와 딸과 함께 2006년 딜쿠샤를 방문해 자신이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곳임을 확인했고, 한국을 떠난 지 66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딜쿠샤가 보존되며 집 없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2018년까지 1,026건의 자료를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고, 이로 인해 세상에 딜쿠샤가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는 1919년 2월 28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시기에 테일러는 AP통신으로부터 고종의 장례식을 취재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상태.
아들과 아내를 보러 온 테일러는 우연히 침대 속에 감춰져 있던 종이뭉치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독립선언서였던 것입니다.
즉시 관련 기사를 작성해 독립선언서와 함께 동생 윌리엄에게 전달해 일제를 피해 미국에 보내는데 성공, 독립선언서는 해외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층 거실 한쪽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1층 거실과 비슷한 구조, 비슷한 배치의 2층 거실 모습
2층 중앙의 벽난로 모습
이 응접실은 딜쿠샤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딜쿠샤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가족들이 아끼는 물건들과 여가 시간을 즐길 만한 것들이 모두 여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2층 거실 벽난로 모습
딜쿠샤 복원 과정
딜쿠샤 사진들
딜쿠샤 복원, 공동벽 쌓기
자수화조도병풍
당시 딜쿠샤 2층에 있었던 병풍으로, 국가무형문화재 80호인 고 한상수 선생이 전수교육 조교인 김영이 선생에게 제작해 준 것입니다.
2층 화이트색의 복도 모습
앨버트 테일러 가족의 생활공간인 곳입니다.
2층 동편 전시공간 모습
이곳에도 벽난로가 있습니다.
2층 서편 공간
앨버트 테일러의 한국에서의 생활 등을 담은 영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업을 위해 결혼하자마자 한국으로 건너와 사업을 하다 AP통신 기자로 있으면서 독립선언문을 최초로 세계에 알린 사람.
일본으로부터 강제 추방당해서도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사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유해나마 양화진선교사묘원에 안장된 진정 한국을 사랑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이라고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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