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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북권 여행

[북촌] 한국 최초의 선교사 주문모 신부가 미사를 열었던 천주교 가회동성당

by 휴식같은 친구 2026.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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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계동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외국인 신부인 주문모 신부가 조선 땅에서의 첫 미사를 집전한 곳이자, 마지막 조선 왕실이 세례를 받은 역사적인 장소라고 합니다.


100여 년 동안 천주교를 탄압했던 조선 왕실의 마지막 왕족인 의친왕 이강(황손)은 스지가 대삼제 아들이 이 성당 인근 구역인 안국동 별궁에서 본당 박병헌 신부로부터 ‘비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같은 해 8월 14일에는 의친왕비 김숙이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1795년 4월 5일 부활대축일에 주문모 신부는 계동 최인길의 집에서 첫 미사를 열었고, 주 신부의 존재가 알려져 체포망이 내려지자 주 신부는 강완숙의 집으로 피신하였으나 최인길, 윤유일, 지황은 포도청에 체포되어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주문모 신부는 강완숙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활동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강완숙과 함께 순교했고, 2014년 주문모 신부, 최인길, 윤유일, 지황, 강완숙 등 5명은 모두 복자로 시복 되었습니다.

1949년 한국 천주교 초기 신앙의 중심지였던 이 지역에 천주교 가회동성당이 설립되었고, 2014년에 역사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사랑, 대청마루를 가진 한국식 성당과 양옥이 어우러진 구조로 새롭게 건립되었습니다. 

이때 부활절에 서울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에 의해 축성되었다고 합니다.


성당 1층에는 한국 천주교회와 가회동 성당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2017년 김태희와 비가 결혼했던 성당으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천주교 가회동성당은 안국역 2번 출구에서 북촌로를 따라 500여 미터 올라가면 우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회동성당 모습

표지석이 없으면 이곳이 성당인지 모르고 자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성당은 2014년에 건립되었고, 한옥과 사양식 건물이 혼재된 형태입니다.

 

천주교 가회동성당 내부 모습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 신부 대한민국 천주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중국 소주 출신으로, 북경 교구 소속의 신부였는데요.
당시 천주교 탄압이 심했던 조선 교우들이 북경 교구에 신부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요청하자, 조선인과 외모가 비슷하여 활동하기 유리하다는 점 등이 고려되어 파견되었다고 합니다.

1794년에 엄격한 감시를 뚫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밀입국, 서울 북촌의 강완숙 집을 거점으로 삼아 비밀리에 전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입국 당시 약 4,000명이었던 조선의 천주교 신자 수는 그의 활동 6년 만에 10,000명을 넘어설 정도로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신앙 공동체인 명도회를 조직해 체계적인 교리 전파에 힘썼고, 당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양반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남녀 차별 없이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며 평등 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한옥으로 이루어진 천주교 성당이라 이색적입니다.

 

 

1801년, 천주교 탄압 사건인 신유박해가 발생하자, 정부는 주문모 신부를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주 신부는 자신 때문에 많은 조선 교우들이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자수를 선택했습니다.

그해 5월, 군문효수형(군대 앞에서 목을 치는 형벌)을 선고받고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매우 당당했고, 형집행 중에도 평화로운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오직 사랑과 평등의 가치를 전하려 했던 주문모 신부.

그의 숭고한 발자취는 오늘날 우리에게 종교를 넘어선 깊은 울림과 인간 존중의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한국교회의 첫 사제 순교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인 역사적 인물입니다.
충남 당진 솔뫼의 신앙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5세에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했는데요.

1845년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아 조선 최초의 신부가 되었고, 귀국 후 탄압 속에서도 비밀리에 전교 활동을 펼치고 외국 선교사들의 입국 통로를 개척했습니다.

하지만 입국 1년 만에 체포되어 1846년 새남터에서 2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했습니다. 
그는 신앙심뿐만 아니라 근대적 지리학과 외국어에 능통했던 선구자였으며, 그가 남긴 '조선전도'는 독도를 '우산(Ousan)'으로 표기해 서구 사회에 알린 소중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그의 삶은 짧았지만 평등과 사랑의 가치를 실천한 숭고한 여정이었습니다.

 

솔뫼성지, 김대건 신부 생가 및 기념관과 기념성당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새남터 순교성지와 새남터 기념성당

 

마리아상

 

그리고 십자가가 있는 성당건물 내부에 대성당이 있습니다.

옥상에 오르면 하늘정원이 있는데, 북촌 한옥마을의 기와지붕들 곡선을 파도처럼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입구 전면에 위피한 한옥 사랑채인 가회동성당의 은선재

 

전형적인 'ㄱ'자형 한옥 구조로, 정갈한 기와지붕과 나무 기둥, 대청마루가 조화를 이루는데요.

북촌 한옥마을의 전통적인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성당 전체가 마을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완충 역할을 합니다.

 

착함을 숨기고 덕을 쌓는 집이라는 뜻이 담겨 있고, 누구나 들어와 쉴 수 있는 환대와 소통의 공간이자, 과거 주문모 신부가 비밀리에 첫 미사를 봉헌했던 장소로 추정되는 역사적인 곳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이곳 가회동성당에서 동쪽 언덕을 넘어가면 조선시대 우물터인 석정보름우물이 있는데요.

주문모 신부가 첫 미사를 봉헌할 때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집니다.

 

북촌 계동길의 조선시대 우물터, 주문모 신부가 세례를 준 ‘석정보름우물’

 

한옥 앞에 있는 현대식 석조 건물인 본당

 

가회동 성당 본당(성전 건물)은 지상 3층 규모로, 한국의 전통미와 가톨릭의 영성이 조화를 이룬 공간인데요.
3층에 주성전인 대성당이 있고, 1층엔 역사전시실이 있습니다.

대성당에는 2013년에 독일의 토마스 얀에서 제작한 파이프 오르간이 성당 내에 처음으로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이번엔 천주교 가회동 성당의 바깥에서만 구경하고 왔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역사전시실과 은선재, 하늘정원까지 올라서 북촌 풍경을 구경해야겠습니다.

 

 

가회동성당 서울 종로구 북촌로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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