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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경복궁 칠궁 관람 / 칠궁예약

by 휴식같은 친구 2020.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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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궁 관람, 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후궁 신주를 모신 곳 

 

 

2018년에 청와대 옆 비밀의 궁궐인 칠궁을 시민에 개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제야 칠궁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시범개방이라 예약에 의해서만 한시적으로 개방을 했는데 이젠 정기적으로 입장시간을 정해서 관람할 수 있게 바뀌었습니다.

 

청와대 옆 비밀의 궁궐인 칠궁, 시민에 개방

 

지난 명절에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칠궁을 다녀왔습니다.

조선시대 5대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외에 또 다른 궁이라고 표현하는 곳인데요.

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명의 후궁의 신주를 모신 곳입니다.

 

경종이 어머니인 장희빈을 비롯하여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 등의 신주가 모셔진 경복궁 칠궁 이야기입니다.

 

칠궁은 청와대 옆에 바로 붙어 있고, 1968년 1.21 사태(김신조 등의 침투) 이후 청와대 경비강화를 위해 관람이 금지되었다가 50년 만에 개방을 하였습니다.

 

 

(1.21사태 :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침투한 사건으로 당시 치열한 총격전으로  김신조가 생포됨)

 

청와대 사랑채에서 바라본 사랑채 앞 공원과 길 건너 칠궁 모습

한옥들이 들어 선 곳이 바로 칠궁입니다.

 

칠궁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효자동 삼거리에 있는 무궁화동산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무궁화동산 내 칠궁 안내 부스에서 접수하시면 됩니다.

 

청와대 무궁화 동산

 

칠궁 관람안내

 

관람일 : 매주 화 ~ 토요일 (주 5일)

관람시간 : 09:20, 10:20, 11:20, 13:20, 14:20, 15:20, 16:20(7회)

관람요금 : 무료

관람방법 : 관람시간 10분 전에 현장접수

(10인 이상의 단체는 사전 예약 필수, 당일 예약 불가)

관람인원 : 매 회에 50명 선착순

관람 소요시간 : 50분(해설 30분, 자유관람 20분)

준비물 : 신분증 필수(아동은 보호자 동반)

 

오후 1시 10분 정도 가서 접수하고 특별관람증으로 목에 착용하면 됩니다.

 

죽은 사람의 혼백이라는 말을 하는데요.

혼은 정신을, 백은 육체를 말한다고 합니다.

 

육체는 묘를 만들어 안치하고, 정신은 신주를 모셔 제사를 지내는 것이죠.

왕의 어머니가 된 후궁들은 종묘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요.

 

 

영조는 이런 어머니 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해 1725년(영조 1)에 이곳을 짓고 숙빈묘라 하였습니다.

이후 1744년(영조 20)에 상서로움을 기른다는 의미의 육상이라는 묘호를 올리고, 1753년(영조 29)에 궁으로 승격하여 육상궁이 되었습니다.

 

영조는 재위기간 동안 200회 넘게 이곳을 방문했는데요.

후궁출신이라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어머니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효의 발로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칠궁 안내소에서 길을 대각선으로 건너면 칠궁이 나옵니다.

바로 옆이 청와대 건물이라 청와대 쪽 사진은 찍지 말라는 안내도 있습니다.

 

칠궁(七宮)은 근래에 와서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시대 왕을 낳은 일곱 후궁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입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육상궁 외에도 왕을 낳은 후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 여럿 있었는데요.

고종과 순종 때 자경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의 진주를 이곳으로 옮겼고, 1929년에 덕안궁을 옮겨와서 육상궁에 일곱 분의 신주를 모시게 된 것입니다.

 

송죽재와 풍월헌, 칠궁의 재실입니다.

제례를 준비하던 곳이죠. 

앞쪽 건물에는 풍월헌과 송죽재라는 두 개의 현판이 동서로 걸려있고, 뒤편 건물에는 삼랑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영조는 육상궁에 거동하며 예를 올린 후에 삼락당과 풍월헌에서 신하를 접견했다고 합니다.

1772년(영조 48)에 육상궁에 예를 올리고 시보책을 풍월헌에 모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육상궁과 연호궁의 삼문 모습

 

송죽재와 풍월헌, 그리고 우측이 삼락당 건물입니다.

 

영조가 육상궁에 행차할 때 머물렀던 재실인 풍월헌, 고종 19(1882)년의 화재 당시 영조의 어진을 옮겨 모셨던 송죽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송죽정의 뒤의 이름이 송죽재입니다.

 

육상궁과 연호궁으로 들어가는 삼문

동쪽으로 들어가서 서쪽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중문 모습입니다.

 

한 건물에 두 후궁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육상궁영조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주입니다.

연호궁추존 왕 진종의 어머니이며,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의 사당입니다.

 

영조는 1724년에 즉위한 뒤 현재의 위치인 경복궁 북쪽에 사당을 짓고 신주를 모셨습니다.

1744년에 육상이라는 묘호를 올리고, 1753년에 묘에서 궁으로 격상시켜 육상궁이 되면서 현재와 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882년 화재 때 냉천정에 모셨던 영조의 어진은 송죽정으로 옮겨 모셨으나, 사당 내 숙빈 최씨의 신주와 옥책, 은인 등은 모두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한 건물에 두 개의 사당이 있어서 현판도 연호궁 현판 안쪽에 육상궁 현판이 따로 있습니다.

 

 

연호궁은 정빈 이씨의 사당으로 정조는 영조의 명에 따라 효장세자의 뒤를 계승하여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즉위 직후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하고, 1778년(정조2) 정빈 이씨의 사당을 북부 순화방에 세웠습니다.

 

연호궁은 1870년에 육상궁 안의 별묘로 옮겼는데, 현재와 같이 한 건물 안에 숙빈 최씨와 합사된 내력은 분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안청

이안청은 신주를 임시로 모시던 곳으로 육상궁와 연호궁 앞 동서로 대칭되게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당으로 이동하면서 초가정 하나가 보이고, 그 아래쪽에 우물이 있는데 냉천이라고 합니다.

냉천은 제사 때 이곳의 물을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냉천에서 흐르는 물은 수로를 따라 냉천정 앞 연못으로 흘러듭니다.

 

냉천 북쪽 석축에는 영조가 냉천과 냉천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냉천정

영조가 어머니의 제사를 준비하고 휴식을 취한 장소인데요.

건립기록이 전해지지는 않으나, 숙빈묘라는 명칭으로 육상궁이 처음 건립된 영조 때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조의 어진을 모신 곳이라 봉안각이라 하였으나 순조 이후 냉천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냉천정이란 당호는 옆에 냉천이라는 우물이 있어 붙은 것입니다.

 

서쪽 두 칸은 온돌방, 동쪽 한 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습니다. 

 

냥천에서 흘러 들어온 물이 모인 네모난 연못을 자연이라고 합니다.

화강암의 장대석을 쌓아 만들었는데, 남쪽에 자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연못의 이름이 자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당으로 들어가는 삼문입니다.

 

이곳에는 5분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

 

덕안궁

덕안궁은 영친왕의 어머니이며, 고종의 후궁인 순헌 귀비 엄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입니다.

 

 

1897년 고종이 경운궁(덕수궁) 안에 엄씨가 거처할 곳을 짓고 경선궁이라 하였다가, 1911년 엄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덕안궁으로 개칭하였습니다.

1913년 태평로에 사당을 지어 모시다가 1929년에 육상궁 안으로 모셨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4분의 신위가 모셔진 세 개의 건물이 나옵니다.

좌측부터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경우궁인데요.

 

가운데 장희빈의 사당이 다른 곳과 약간 다릅니다.

기둥이 원형이며 계단이 두 개, 그리고 창호가 아래쪽에 다른 곳보다 높이 있는 등 조금 더 화려한 것이 특징입니다.

 

가장 우측에 있는 경우궁과 선희궁

육상궁이 연호궁과 함께 쓰는 것처럼 한 건물에 두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한 건물에 있는 관계로 현판도 경우궁 안쪽에 선희궁이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선희궁은 추존 왕 장조(사도세자)의 어머니이며,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를 모신 사당입니다.

 

영조는 1765년(영조 41)에 순화방에 사당을 세우고 의열묘라 하였습니다.

정조는 1788년(정조 12)에 묘호를 선희궁으로 개칭하고, 1870년에 육상궁 안으로 모셨다가 1897년(고종 34)에 원래 있던 순화방으로 옮겼습니다.

1908년 다시 육상궁으로 옮겨서 현재는 경우궁과 같은 건물에 있습니다.

 

 

경우궁은 순조의 어머니이며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입니다.

 

1824년(순조 24)에 양덕방 계동에 사당을 세워 경우궁이라 하였고, 이듬해 신주를 모셨습니다.

1884년 갑신정변 때 고종이 이곳에 머물렀고, 1886년에 인왕동으로 옮겨 짓습니다.

1908년에 신주를 육상궁 안으로 다시 옮겨서 현재는 선희궁과 한 건물에 있습니다.

 

가운데 건물은 대빈궁으로 경종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입니다.

 

경종은 1722년(경종 2)에 희빈 장씨의 사당을 경행방 교동에 건립하였고, 1870년(고종 7)에 육상궁 안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1887년(고종 24)에 원래대로 경행방으로 옮겼다가, 1908년에 다시 육상궁 안으로 옮겼습니다.

 

저경궁

저경궁은 추존 왕인 원종의 어머니이자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입니다.

 

영조는 1743년(영조 19) 인빈 김씨의 사당을 원종의 옛집이었던 송현방에 마련하였습니다.

이후 종실인 이증의 집으로 옮겨 모셨다가 1755년(영조 31)에 다시 송현방으로 옮기면서 자경궁이라 개칭합니다.

1870년(고종 7)에 순조의 어머니, , 수빈 박씨의 사당인 경우궁 안 별묘에 모셨다가 1908년에 육상궁 안으로 모셨습니다.

 

칠궁은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와 더불어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당을 어떻게 짓고 운영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매년 10월 넷째 주 월요일에 칠궁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경복궁의 또 다른 별궁인 칠궁은 이렇게 왕을 낳은 후궁 일곱 분을 모신 사당인데요.

종묘에 들어가지 못한 안타까움을 효자 영조에 의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각박한 세상에 영조의 효 정신을 한번쯤 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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