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 한옥마을/한옥거리 유래에는 정세권이 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익선동은 개화기 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한옥건물이 올망졸망 좁은 골목을 이루고 있는 곳인데요.
북촌한옥마을과는 다르게 서민들을 위한 작은 한옥으로 지어진 특징이 있는 곳이죠.
오래도록 개발이 되지 않아 낙후지역으로 버려지다시피 했던 곳이 뉴트로(신복고주의)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트렌드에 따라 2~3년 사이에 서울에서 가장 핫플레이스가 된 곳입니다.
'익선동 한옥마을'로 들어서면 다른 시대로 순간이동~ 짠!
회사가 익선동에 있어서 10년 넘게 지켜봤는데 이렇게 핫플레이스로 뜨는 데는 순식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각종 식당과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좁은 골목에 줄을 서서 진풍경이 벌어지면서 유명 맛집들이 입점을 많이 했는데요.
익선동 한옥마을이 있게 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일제강점기의 건축가인 정세권입니다.
익선동 한옥거리의 유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연히 종로3가역 6번 출구 앞 건물에 붙여진 익선동 유래를 접했습니다.
익선동은 운니동, 와룡동, 돈의동, 경운동, 낙원 등으로 둘러싸인 동네인데요.
조선 전기에는 한성부 중부 정선방 관할지역이었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 개편으로 돈령동, 한동, 익동, 누동, 궁동, 이동 등이 합해져 익선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1936년에 종로구 익선정이 되었고,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정'이 '동'으로 바뀌어 익선동이란 이름을 찾았습니다.
익선이란 지명은 중부 정선방에 있던 익랑골에서 연유한다고 하네요.
1920년대 청계천 이남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종로 진출을 본격화하자 당시 도시개발업자였던 정세권이 이 일대 토지를 사들여 서민들을 위한 대규모 한옥단지를 만들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 일본인으로부터 종로를 지키고자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건축왕 정세권(1888~1965)은 부동산 개발업자로 북촌과 익선동, 봉익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행당동 등 경성 전역에 한옥 대단지를 건설하였습니다.
정세권은 1888년 경남 고성출신으로 12세에 진주 백일장에서 장원, 진주사범학교 3년 과정을 1년 만에 수료하였습니다.
1905년 참봉에 제수되었고, 1910년에 하이면 면장을, 1919년 경성으로 이주하여 1920년에 건양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도시개발업자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경술국치 이후 경성은 일본인과 지방에서 몰려드는 조선인으로 만원을 이루게 됩니다.
1920년대로 접어들면서 청계천 남쪽이 급증한 일본인들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일제는 도시계획을 공표하고 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주요 통치 기관들을 청계천 이북으로 이전하며 일본인의 경성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됩니다.
그에 비해 조선의 서민들은 터전인 북촌에서 쫓겨나 점점 빈민으로 전락해 갔습니다.
1920년대 경성의 인구 급증에 대한 정세권의 해법은 큰 대지의 한옥을 철거하고 작은 한옥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본인은 한옥 대신 일본 집을 지으라는 압박을 가하였지만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하네요.
전통한옥은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그곳을 둘러싸는 형식의 건축물로 넓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정세권은 이를 보완하여 좁은 부지에 서민용 주택에 적합한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바로 도시형 근대한옥이 등장한 것이죠.
정세권은 주택건설뿐만 아니라 빈민층을 위하여 연세 또는 월세로 주택을 판매하는 제도를 마련하기도 하고, 건양사에서 중개업까지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1920년대 초 이때 만들어진 익선동 한옥마을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근대적 한옥마을입니다.
조선 왕조 종친인 이해승의 소유였던 누동궁 역시 정세권에 의해 쪼개지고, 68채의 한옥단지로 개발되었습니다.
중산층 이하 서민을 위한 한옥 집단지구였던 익선동의 북촌한옥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아담한 크기의 한옥마을입니다.
정세권은 단순히 서민들의 집을 짓는데 머물지 않고, 공기순환과 온도, 습도조절, 유지비, 생활비 등과 같은 주거환경 개선과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정세권 선생이 공들여 지은 한옥들이 쇠락하고 주변지역이 개발되면서 재개발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운명을 바꾼 것이 바로 뉴트로 감성, 한옥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찾아온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레트로 풍의 식당과 카페를 열면서 익선동 한옥거리를 바꿔 놓았고, 이를 본 서울시는 2014년에 익선동 재개발 계획을 철회하고, 2015년엔 오히려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건축왕 정세권은 식민지 치하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민족운동에 재정적인 기여도 하였고, 춘원 이광수에게 가회동 집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하고 조선어학회 회관을 지어 기증도 하였습니다.
익선동은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를 잡았는데요.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잡지에도 많이 실리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 덕분에 외국인들에게도 서울여행 시 꼭 들러야 하는 필수코스가 되었습니다.
민족자본가 정세권의 민족운동 참여로 실제 고문을 받고, 뚝섬의 토지 35,000여 평을 강탈당하는 등 일제의 방해와 탄압으로 그의 사업이 내리막을 걷게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행당동에 거주하였고, 한국전쟁 당시 비행기 폭격으로 다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1950년대 말 고향인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로 혼자 낙향하였고, 1965년 9월 14일에 돌아가셨습니다.
벽면에 붙여진 정세권과 옛날 익선동 모습
익선동은 여러 매체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는 커져만 갔고, 지금은 온갖 맛집과 카페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수공예를 하는 젊은 장인들과 아름다운 옷을 파는 상점들이 생기면서 지나가면서 구경하는 볼거리 천국이 되었습니다.
[종로 익선동맛집]가성비 좋은 종로스테이크에서의 와인을 곁들인 식사
종로3가 익선동 맛집, 종로할머니칼국수 줄 서서 먹을만 하네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익선동
오래된 한옥거리에 맛집과 카페를 찾는 즐거움도 있지만, 익선동 유래를 알면 더욱더 의미 있는 시간까지 더해질 것 같습니다.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등과 같이 한때 핫플레이스로 뜨다가 순식간에 식는 곳이 아닌 오랫동안 사랑받는 익선동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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