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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여행

보길도 윤선도 원림(부용동) - 윤선도문학관/세연정/낙서재/곡수당/동천석실

by 휴식같은 친구 202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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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윤선도 원림(부용동) - 윤선도문학관/세연정/낙서재/곡수당/동천석실

 

 

해남 땅끝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노화도 동천진항까지 30여 분만에 도착했습니다.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가 개통이 된 후 해남 땅끝항에서 보길도 가는 배는 사라지고 노화도 동천항까지 가는 배만 있습니다.

 

보길도 가는 방법, 땅끝선착장(갈두항/땅끝항) 시간표 및 보길도 배시간 요금

 

보길도 가는 방법해남 땅끝항과 완도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고 가면 되는 것이죠.

 

보길도는 예전에 방문을 시도했으나 관광객이 많아 포기하고 이번이 첫 방문이라 기대되는 여행지였는데요.

보길도여행의 핵심은 역시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탐방하는데 주목적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윤선도 원림으로 향했습니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의 세연정 모습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에 조선시대 고산 윤선도와 관련된 유적지로 명승 34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입니다.

 

병자호란 때 인조 임금의 항복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여 은거를 결심한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던 중 보길도의 수려한 경관에 매료되어 머물렀던 곳이 윤선도 원림인데요.

지금까지 보길도는 윤선도의 유배지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그동안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네요.

 

 

병자호란은 청나라가 신하의 예를 갖추라는 요구에 조선에서 거부하자 20만 대군을 끌고 쳐들어온 사건이죠.

조선은 남한산성까지 밀리며 항전했으나 결국 항복하고 말았고, 인조가 송파구 삼전도라는 데에서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어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합니다. 

 

1637년부터 1671년 죽을 때까지 일곱 번을 드나들며 글을 쓰며 생활했는데요.

햇수로는 13년 동안 살았던 윤선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는 곳입니다.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과 닮았다 하여 부용동이라 이름 짓고, 낙서재, 세연정, 곡수당, 동천석실 등 25개소의 정자와 대를 만들고, 어부사시사, 오우가, 산중신곡 등 불후의 명작들을 남긴 곳입니다.

 

전복의 고장 노화읍에 도착했습니다.

노화도(노화읍) 동천항에서 내려 곧바로 보길도로 이동하면 됩니다.

 

보길도로 들어가는 보길대교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다리로 2008년에 개통됐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땅끝항에서 보길도에 이르는 배가 다녔지만, 다리가 개통된 이후에는 노화도 동천항에 내리고 있습니다.

 

보길도에 들어서서 우측으로 3~4분 정도 들어가면 보길도 윤선도 원림이 나옵니다.

정확히 말하면 고산 윤선도 문학관과 세연정을 구경하는 곳입니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 ~ 18:00

입장료(관람료) 성인 2,000원, 학생 및 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윤선도 원림에 있는 윤선도 문학관

 

고산 윤선도는 벼슬을 버리고 해남의 해남 윤씨가 터를 내리고 있는 곳에 내려와 주로 생활했습니다.

효종 임금이 하사한 수원집을 배로 옮겨 다시 지은 곳이 녹우당이고요.

 

윤선도는 녹우당과 보길도를 오가며 노후를 보내면서 문학활동을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해남 윤선도유적지 녹우당에는 땅끝순례문학관,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녹우당 등이 있는 윤선도 유적지입니다.

 

[해남여행] 해남 땅끝순례문학관에서 문학기행

해남 남도여행, 고산 윤선도 유적지와 녹우당

 

윤선도 부용동 원림이야기

 

고산은 한눈에 반해 버린 보길도의 이곳을 부용동이라 이름한 이유는 '지형이 마치 연꽃 봉오리가 터져 피는 듯하여 부용이라 이름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고산은 누구인가?

윤선도 문학관은 보길도와 윤선도의 인연, 고산 윤선도의 생애, 숫자로 만나는 윤선도 순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보길도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유배지가 아니라 제주도로 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 어쩔 수 없이 내리다보니 보길도의 매력에 빠져서입니다.

 

 

보길도 여행을 하면서 작은 섬이지만 유독 많은 높은 산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마도 그런 보길도의 매력을 당시에도 고산이 느꼈나 봅니다. ㅎㅎ

 

부용동 원림은 한국전통 조경사에 전무후무한 독창적인 조경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려 했던 고산이 최소한의 개입으로 물과 바위 등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대자연을 한껏 품어 이루어낸 장엄한 원림에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풍류공간인 세연정, 삶의 공간인 낙서재와 곡수당, 부박한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비상하고자 한 공간인 동천석실 등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세연정에 담은 세연의 의미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상쾌해지시라.'

 

신어부사시사

 

세연정의 건축적 의미

 

개울에 보를 막아 물을 대는 원리로 계담과 방지 사이에 판석보로 막아 조성되었는데요.

물과 바위와 송죽과 정자가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세연지 중앙의 누각은 온돌방을 두고 사방으로 개방된 정자가 되어 주변의 풍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습니다.

세연정 앞 동대와 서대, 서쪽 산 중턱의 옥소대까지 끌어들여 거대하고 입체적인 무대를 만들어낸 고산은 섬세하고 기발한 조경기법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학창시설 교과서에 나오고 시험문제에 꼭 나오는 필수 문제였던 '어부사시사'

조선시대 송강 정철의 가사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거작입니다.

 

어부사시사는 고산 자신이 지은 사연에서 드러나듯 보길도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부 생활의 흥취를 통해 자연과 하나되어 살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작품입니다.

고산이 65세 되던 1651년(효종 2년) 부용동에서 지은 것입니다.

 

윤선도 문학과에서 나오면 세연정으로 가는 길이 있고요.

고산 윤선도 부용동 공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럼 보길도 윤선도 부용동 원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세연정 앞에 있는 1) 세연지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판석으로 만든 보(길이 11m, 너비 2.5m의 돌다리)를 설치하여 둑을 조성하고 자연적으로 수위조절이 되도록 조성한 연못입니다.

 

2) 세연정 모습입니다.

 

1637년 세연지 가에 단을 조성하여 지은 3칸짜리 정자인데요.

사방으로 개방된 정자가 되어 주변의 풍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는 말이 정말 정확한 표현인 듯합니다.

 

보길도 가볼만한 곳, 세연정 (in 윤선도 부용동 원림)

 

3) 낙서재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하던 곳으로, 석실과 마주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무민당 등 건물 4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소실되고 집터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낙서재와 곡수당은 가지 않아서 사진은 완도군 문화관광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4) 곡수당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지은 집입니다.

윤선도의 아들이 조성한 초당, 석정, 석가산, 연못, 화계, 다리 등의 다채로운 조원이 베풀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5) 동천석실

 

곡수당 건너 산 중턱 절벽 위에 지은 1칸짜리 집으로, 풍경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고산은 여기서 독서하며 사색을 즐겼다고 합니다.

 

동천석실은 산 중턱에 있어서 무더운 날씨에 오르지는 못하고 입구 먼발치에서 사진만 찍고 나왔습니다.

 

[보길도 여행] 동천석실 (in 윤선도 부용동 원림) 

 

 

그 외에도 소은병, 오운대, 독등대, 상춘대, 언선대 등 그가 섬 안의 바위와 산봉우리에 붙인 이름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어부사시사 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며, 특히 보를 막아 연못을 조성하는 등 기발한 안목 등 윤선도의 뛰어난 안목을 엿볼 수 있는 유적지가 보길도 윤선도 원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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