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한국을 사랑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
사울하늘이 쾌청하던 날, 집에서 걸어 한강을 건너왔습니다.
양화대교를 건너면 양화철교 북단에 자리한 절두산 순교성지와 순교박물관이 있고, 그 옆에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했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은 복음의 씨앗으로 우리나라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의 무덤인데요.
15개국 417명의 외국인이 잠들어 있는 곳이죠.
이곳은 최초로 1890년 J.W 헤론이 묻히면서 외국인 묘지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였다는 양화진에 이 땅의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모습을 담으며 잠시나마 그들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은 양화철교 북단 망원 한강공원과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와 꾸르실료회관 등이 있어 천주교 성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언더우드와 헐버트, 베델 등 우리 역사의 낯익은 외국인들이 묻혀있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관람안내
관람시간 09:30~17:00
해설시간 월~토 10:00, 11:30, 14:00, 15:30(신정과 명절연휴, 성탄절은 없음)
관람료(입장료) 무료
주차장 내부에 주차장은 있으나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야 할 듯합니다.
양화진 주차장이 있는데 5분당 100원, 1시간에 1,200원입니다.
양화진공원 모습
이 양화진 일대는 조선시대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였다고 합니다.
양화진의 깊은 강물엔 대규모 선박들이 하역할 수 있어서 제물포로 들어오는 전국 각지의 생산물이 양화진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인 영조 30년(1754)에는 양화진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어 군사적 주둔지로서 군진이 설치되어 양화진이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양화진 공원에 있는 양화진 옛터
이곳을 양화진공원을 조성하면서 군진의 옛터를 장대석으로 구획해 놓은 것이랍니다.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을 응징하기 위해 프랑스 군함 세 척이 1866년 양화진에 침범했다가 강화도에서 폐퇴하는 병인양요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대원군의 척화의지는 강화되었고, 천주교도들에 대한 박해도 극심해지죠.
대원군은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기점으로 더럽혀진 한강을 사교 등의 피로 씻는다 하여 양화진 앞 강물을 천주교도들의 피로 물들였습니다.
또한 양화진은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이 처형당한 곳이라고도 합니다.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
특이한 꽃 발견
원래 하얀색과 분홍색이 피는 꽃으로 보이는데 한 꽃에서 흰색과 분홍색이 혼합된 꽃이네요.ㅎㅎ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안내도
A묘역부터 I묘역까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머나먼 이국에 와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이곳에 묻혀 있을까요?
믿음이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뭔가가 있나 봅니다.
배재학당을 통해 교육과 선교에 헌신한 D.A 벙커의 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1886년에 한국에 왔고, 육영공원이 문을 닫자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으로 옮겼습니다.
배재에서 토론수업을 도입했고, 물리학, 화학, 수학, 정치학 등 새로운 교과도 채택하며 근대식 교육을 선도한 인물입니다.
6명의 셔우드 홀 가족이 묻혀있는 묘지
캐나다 출신으로 의사가 되어 뉴욕 빈민가에서 의료봉사를 실시하다가 조선선교를 준비하던 로제타를 만나 서울에서 결혼합니다.
평양에서 의료봉사하며 교회를 개척하고, 청일전쟁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다 전염병에 걸려 한국에 온 지 3년 만에 소천했습니다.
로제타는 남편 사후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평양에 기홀병원을 설립하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를 육성하기도 했습니다.
아펜젤러 가족의 묘
아펜젤러는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감리교의 초석을 놓은 분입니다.
1885년 한국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는 학교를 열었고, 고종은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습니다.
아펜젤러는 서재필, 윤치호 등 독립운동가를 초빙해 특강하는 등 민주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85년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를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이화여대의 초석을 다진 스승들의 묘
이화학당에서 헌신한 다섯 분의 스승이 모셔져 있네요.
제이콥슨의 묘
미국 북장로교가 파견한 첫 서양의료 간호선교사입니다.
제중원에서 근무하며 콜레라에 맞서 열성적으로 치료에 임했고, 세브란스병원 의학당에서 간호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캠벨 선교사는 1897년 44세에 한국에 들어와서 베화학당을 세우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헌신했습니다.
헐버트는 한국의 은인,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으로 칭송받는 인물입니다.
23세 때 국립 육영공원의 영어교사로 와서 5년을 근무 후 돌아갔다가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주로 문서선교를 했는데 한국을 알리는 창구가 되었고 한국 YMCA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고종황제의 밀사도 하였고, 헤이그에서의 만민평화회의 한국독립을 알리는 외교적 통로로도 활용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이네요.
한국 기독교 선교의 개척자인 언더우드 가족의 묘
1885년 26세의 나이에 한국에 들어와 기독교 전파가 불법인 시대에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언더우드는 초대 성경번역위원장을 맡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책임을 다 했고 영한사전, 한영사전, 한국어 문법서들을 직접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세웠고, 구세학당(경신중고교)와 연희전문학교(연세대)를 설립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훌륭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있지만 이 정도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기독교, 감리교,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먼 이국땅에서 선교만을 위해 노력한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을만한 것 같습니다.
최근 종교지도자들이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극우 성향을 보이는 등 종교의 이단, 이질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순수한 믿음으로 종교가 재정립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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