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휴식같은 여행으로의 초대 ♪♩♬~
서울시 여행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한국을 사랑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

by 휴식같은 친구 2020. 9. 26.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한국을 사랑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

 

 

사울하늘이 쾌청하던 날, 집에서 걸어 한강을 건너왔습니다.

양화대교를 건너면 양화철교 북단에 자리한 절두산 순교성지와 순교박물관이 있고, 그 옆에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했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복음의 씨앗으로 우리나라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의 무덤인데요.

15개국 417명의 외국인이 잠들어 있는 곳이죠.

이곳은 최초로 1890년 J.W 헤론이 묻히면서 외국인 묘지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였다는 양화진에 이 땅의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모습을 담으며 잠시나마 그들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은 양화철교 북단 망원 한강공원과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와 꾸르실료회관 등이 있어 천주교 성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언더우드와 헐버트, 베델 등 우리 역사의 낯익은 외국인들이 묻혀있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관람안내

 

관람시간  09:30~17:00

해설시간 월~토 10:00, 11:30, 14:00, 15:30(신정과 명절연휴, 성탄절은 없음)

관람료(입장료) 무료

주차장 내부에 주차장은 있으나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야 할 듯합니다.

양화진 주차장이 있는데 5분당 100원, 1시간에 1,200원입니다.

 

양화진공원 모습

 

이 양화진 일대는 조선시대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였다고 합니다.

양화진의 깊은 강물엔 대규모 선박들이 하역할 수 있어서 제물포로 들어오는 전국 각지의 생산물이 양화진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인 영조 30년(1754)에는 양화진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어 군사적 주둔지로서 군진이 설치되어 양화진이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양화진 공원에 있는 양화진 옛터

이곳을 양화진공원을 조성하면서 군진의 옛터를 장대석으로 구획해 놓은 것이랍니다.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을 응징하기 위해 프랑스 군함 세 척이 1866년 양화진에 침범했다가 강화도에서 폐퇴하는 병인양요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대원군의 척화의지는 강화되었고, 천주교도들에 대한 박해도 극심해지죠.

 

대원군은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기점으로 더럽혀진 한강을 사교 등의 피로 씻는다 하여 양화진 앞 강물을 천주교도들의 피로 물들였습니다.

 

또한 양화진은 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이 처형당한 곳이라고도 합니다.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

 

특이한 꽃 발견

원래 하얀색과 분홍색이 피는 꽃으로 보이는데 한 꽃에서 흰색과 분홍색이 혼합된 꽃이네요.ㅎㅎ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안내도

A묘역부터 I묘역까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머나먼 이국에 와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이곳에 묻혀 있을까요?

믿음이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뭔가가 있나 봅니다.

 

배재학당을 통해 교육과 선교에 헌신한 D.A 벙커의 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1886년에 한국에 왔고, 육영공원이 문을 닫자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으로 옮겼습니다.

배재에서 토론수업을 도입했고, 물리학, 화학, 수학, 정치학 등 새로운 교과도 채택하며 근대식 교육을 선도한 인물입니다.

 

6명의 셔우드 홀 가족이 묻혀있는 묘지

캐나다 출신으로 의사가 되어 뉴욕 빈민가에서 의료봉사를 실시하다가 조선선교를 준비하던 로제타를 만나 서울에서 결혼합니다.

평양에서 의료봉사하며 교회를 개척하고, 청일전쟁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다 전염병에 걸려 한국에 온 지 3년 만에 소천했습니다.

 

로제타는 남편 사후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평양에 기홀병원을 설립하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를 육성하기도 했습니다.

 

아펜젤러 가족의 묘

아펜젤러는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감리교의 초석을 놓은 분입니다.

 

1885년 한국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는 학교를 열었고, 고종은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습니다.

아펜젤러는 서재필, 윤치호 등 독립운동가를 초빙해 특강하는 등 민주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85년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를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이화여대의 초석을 다진 스승들의 묘

이화학당에서 헌신한 다섯 분의 스승이 모셔져 있네요.

 

제이콥슨의 묘

미국 북장로교가 파견한 첫 서양의료 간호선교사입니다.

 

제중원에서 근무하며 콜레라에 맞서 열성적으로 치료에 임했고, 세브란스병원 의학당에서 간호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캠벨 선교사는 1897년 44세에 한국에 들어와서 베화학당을 세우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헌신했습니다.

 

헐버트는 한국의 은인,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으로 칭송받는 인물입니다.

23세 때 국립 육영공원의 영어교사로 와서 5년을 근무 후 돌아갔다가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주로 문서선교를 했는데 한국을 알리는 창구가 되었고 한국 YMCA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고종황제의 밀사도 하였고, 헤이그에서의 만민평화회의 한국독립을 알리는 외교적 통로로도 활용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이네요.

 

 

한국 기독교 선교의 개척자인 언더우드 가족의 묘

 

1885년 26세의 나이에 한국에 들어와 기독교 전파가 불법인 시대에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언더우드는 초대 성경번역위원장을 맡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책임을 다 했고 영한사전, 한영사전, 한국어 문법서들을 직접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세웠고, 구세학당(경신중고교)와 연희전문학교(연세대)를 설립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훌륭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있지만 이 정도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기독교, 감리교,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먼 이국땅에서 선교만을 위해 노력한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을만한 것 같습니다.

 

최근 종교지도자들이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극우 성향을 보이는 등 종교의 이단, 이질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순수한 믿음으로 종교가 재정립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48

    이전 댓글 더보기
  • 자나가다 스쳐 보기만 하고 들어가서 보잔 못했는데
    이렇게 보게 됩니다^^
    기분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답글

  • Favicon of https://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20.09.26 07:53 신고

    많이 듣던 이름인데.. 한번도 못가봤습니다
    답글

  • Favicon of https://balgil.tistory.com BlogIcon @산들바람 2020.09.26 08:11 신고

    양화진에 이런곳이 있는줄은 오늘 알았네요^^
    답글

  • Favicon of https://kangdante.tistory.com BlogIcon kangdante 2020.09.26 08:25 신고

    외국인 선교사 묘원도 있군요
    우리나라에서 순교한 외국 선교사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답글

  • Favicon of https://maru1217.tistory.com BlogIcon 핑크 봉봉 2020.09.26 11:32 신고

    미스터 션샤인에서 봤던 선교사분들이군요~~
    답글

  • 역사적인 곳이네요.

    답글

  • Favicon of https://good-job-today-as-well.tistory.com BlogIcon 하닁SN 2020.09.26 12:29 신고

    양화진 외국인 선교샤의 묘원 예전에 가본 적이 있어요... 그분들의 희생과 사랑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겠어요,,,
    답글

  • Favicon of https://okjeng.tistory.com BlogIcon 달달한 삶 2020.09.26 14:12 신고

    역사적이내요..
    항상 잊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답글

  • Favicon of https://hanatour.shop BlogIcon 유량자 2020.09.26 14:24 신고

    타국에 계셔서 외롭겠지만
    저렇게 잘 꾸며진 것 보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네요
    답글

  • 정말 과거에 외국분들이 한국에 선진 문물을 전달하고,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시다가 운명을 하신 분들이 많죠. 특히, 선교사분들도 많구요. 저도 천주교 신자로써, 가족들과 과거 핍박을 받았던 한국 교인들의 무덤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마음이 찡하더라구요. 우리가 그래도 좋은시대에 태어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감사한 분들입니다.
    답글

    • 저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선구자적인 희생정신이 아무에게나 나오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일부 기독교인들의 행태를 보면 열불이 납니다.

  • Favicon of https://fumikawa.tistory.com BlogIcon 후까 2020.09.26 17:32 신고

    묘지지만 볼거리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일본도 외국인 묘지가 관광지에요
    답글

  • Favicon of https://blime.tistory.com BlogIcon ilime 2020.09.26 17:45 신고

    정말 역사적인 곳이군요.. 처음 알게 된 곳이고 그동안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역사인 것 같습니다. 잘 새겨두고 기억해야겠습니다 :)
    답글

  • Favicon of https://gimpoman.tistory.com BlogIcon 지후니74 2020.09.26 19:08 신고

    의미있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네요
    답글

  • Favicon of https://scoop-8282.tistory.com BlogIcon 오렌지훈 2020.09.26 21:29 신고

    선교사묘원 알고가네요
    잘보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하루보내세요
    답글

  • Favicon of https://peony90.tistory.com BlogIcon 피오니90 2020.09.26 22:10 신고

    의미있는 장소네요
    잘 보고 갑니다^^
    답글

  • Favicon of https://namagong2018.tistory.com BlogIcon sJSfam 2020.09.27 02:41 신고

    자주 갔었어요~ 그리고 많이 울었어요 ^^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오랜만에 보네요~~ ^^
    답글

  • Favicon of https://itsmore.tistory.com BlogIcon 농돌이 2020.09.27 14:47 신고

    순례 가던 곳이네요 ㅎㅎ
    참 세월이 훅 지났습니다
    하늘 이뻐요 오늘,,,!
    답글

  • Favicon of https://yellowkong.tistory.com BlogIcon 노랑킹콩 2020.09.28 01:08 신고

    제가 지난번에 양화진 뱃길탐방 체험 신청하는걸 올렸어서 더 반갑네요! ^^
    저는 가보질 못했는데 휴식님 포스팅을 보니 좋네요 ㅎㅎ
    https://yellowkong.tistory.com/436
    답글

  • Favicon of https://wondangcom.com BlogIcon 파아란기쁨 2020.09.28 12:36 신고

    제가 아는 지인도 타국으로 선교 활동을 하시는 분들 계시는데~
    그분들 보면 정말 믿음이란 것은 무엇도 두렵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인것 같더라구요.
    타국에서 인생을 마감하셨지만 그래도 그 분들은 외롭지 않으셨을것 같아요.^^
    답글

    • 예전에는 외국인들이 복음을 전하려 우리나라에 와서 많은 희생을 했는데 지금은 윌나라 사람들이 오지에가서 고생하시는 모습 대단합니다.

  • Favicon of https://lovelyesther.tistory.com BlogIcon Esther♡ 2020.10.01 17:37 신고

    보니까 절두산 순교성지 쪽에서 쭉 가셨나 보군요.
    저도 두세번 갔던 것 같아요. 2호선 합정역에서 가도 가까워요.^^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일이 생겨 한국의 다른 지역에 가시려고 배를 타고 가시던 중에 선박사고로 자신은 충분히 구조되서 사실 수 있었는데 물에 빠져 위급한 상황인 조선인 학생을 구하시려다가 결국 사망하셨는데 시신을 못 찾아서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님 묘는 가묘로 있어요.
    그리고 제임스 홀, 로제타 셔우드 홀 선교사님의 아들인 셔우드 홀 선교사님도 조선에서 태어나 자라서 유복녀이자 일찍 죽은 여동생처럼 의사가 될 가능성이 없이 사업가가 되려다가 누나처럼 따르던 의사 박에스더가 결핵으로 죽자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의사가 되어 결핵을 치료하고 결핵에 대한 인식을 계몽하는데 힘써 일하시고 역시 의사였던 아내 메리언과 함께 일제가 더욱 잔인하게 물자와 인력을 착출하고 진주만 공습하는 등 식민 통치 막바지에 자신들에게 반(反)하거나 미국 및 동맹국들의 국적인 선교사와 외교관 등을 꼬투리 잡고 추방할 때까지 힘써 일하셨어요. 그리고 생전에 하셨던 한국에서 묻히고 싶다는 말을 따라 부모님과 여동생,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아서 죽은 자신의 쌍둥이 아들이 있는 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히셨고 아내이신 메리언선교사님도 함께 묻히셨어요.
    여기에 일제 시대 술취해서 쓰러진 자신을 노상에서 얼어 죽을 뻔한 것을 지나가던 조선인이 구해준 걸 계기로 은혜갚고자 조선에 와서 일본어 교사로 일하면서 이상재선생의 전도로 회심하고 기독교인으로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을 돕고 일제를 규탄하며 고아들을 돌보던 일본인 소다 가이치 부부도 묻혀있어요. 이 분은 한국에서는 독립운동하는 이들을 돕고 해방 후에는 홀홀 단신 일본으로 가서 일본을 상대로 모두 회개하고 늬우쳐야 한다고 촉구하고, 아내 우에노 다키 여사는 해방 후에도 한국에서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셨는데 두 분께서 같이 고아들을 돌보실 땐 어쩔 땐 애기 먹일 젖이 없어 도움을 청하다가 문전박대도 당하고 스파이다, 왜놈이 조선애들 돌보는 척하고는 모아서 팔아먹으려 든다 등 별의 별 모함과 모욕을 당했고 모국인 일본에서도 비국민 취급하며 심한 경우 죽이네 살리네 하며 협박까지 일삼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돌보던 아이들 중에 독립운동하는 이들도 있어서 그렇게 뿌듯해하셨데요.^^
    답글

    • 정말 희생정신이 아니라면 타국땅에서 이렇게 돌아가실 일이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아펜젤러는 시신도 못찾았군요.
      앞으로도 이들을 기리며 잘 관리해야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lovelyesther.tistory.com BlogIcon Esther♡ 2020.10.01 18:44 신고

      그 사고로 인해서 조선인 아이와 선교사님의 유해는 불행히도 못 찾았다고 해요.ㅜㅜ
      선교사님들 외에도 미션키즈라고 선교사님들의 자녀들과 그 외에 이 땅에 왔던 이들의 자녀들이 묻힌 구역도 있고 한국 전쟁 때처럼 혼란하여 관리가 제대로 안될 때 미군이나 돈을 지불하고 묻힌 한국인들도 있긴하지만 역사적인 구역인 만큼 관리 잘해야죠.

    • 맞아요.
      타국에 와서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당하신 분들은 내국인 보다 더 잘 보살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