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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조선왕실 문화유산의 산실, 국립고궁박물관

by 휴식같은 친구 2020.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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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문화유산의 산실,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은 500여 년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역사, 문화의 정수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말 그대로 왕실 문화유산 전문 박물관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와 여러 능, 원에 수장되어 온 조선시대 왕실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죠.

 

광복 60주년이던 2005년 궁중유물전시관으로 개관한 이래 15년이 흘렀는데요.
조선시대 최고 수준의 문화와 정신이 집약되어 있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비해 많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중에서 수천 권에 달하는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일과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고, 왕실의 행사와 규모도 의궤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죠.

 

그럼 조선의 역사를 배우러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1992년 개관 이후 덕수궁 내 석조전에 있다가 현재의 자리인 경

복궁 내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로 옮겨 2015년에 개관한 곳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10:00~18:00 (수/토요일은 10:00~21:00)
휴무일(휴관일) 1월 1일, 설날과 추석 당일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없음 (경복궁 주차장 이용)
경복궁 주차요금은 기본 2시간에 3,000원, 추가 10분당 800원입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은 코로나19로 인해 사전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하루 1,000명, 시간당 100명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현장입장은 시간당 30명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옆 효자로 모습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네요.

 

 

국립고궁박물관은 정문인 광화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고, 사진처럼 서쪽인 효자로에서 들어가는 입구가 있습니다.
제가 방문할 때에는 경복궁 휴무일인 화요일이라 광화문이 닫혀 있어서 서쪽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평일이기도 했고, 날씨가 쌀쌀해서 관람객들은 거의 없는 편이라 바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쌀쌀해지면서 하늘은 파랗게 시원한 풍경이네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바라본 광화문 모습

국립고궁박물관 입구 바로 앞이 경복궁이며, 그 뒤로 청와대가 보이는 북악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입구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하고 QR코드로 인증을 해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고 있다가 거리두기 1단계로 하향된 후 10월 12일부터 개관하고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2층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 2층조선의 국왕, 조선의 궁궐, 왕실의 생활, 기획전시실 등이 있고, 1층에는 대한제국 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B1층에는 왕실 의례, 고궁배움터 등이 있습니다.2층부터 내려오면서 관람하면 되고, 지하 1층은 코로나19로 고궁배움터 등은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의 국왕

조선의 국왕은 하늘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는 초월적 존재로 여겨졌고, 모든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 어버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국왕의 권위와 책임을 상징하는 유물과 기록들이 많이 전하고 있는데요.
그중 어좌, 일월오봉도 등은 진품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에 대한 설명


1392년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고, 1910년까지 519년 동안 27명의 국왕이 왕위를 이으며 지속된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 등 27명의 왕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국왕이 앉았던 어좌 모습

 

조선의 국왕 전시실 모습

 

국왕의 호칭과 어보

조선 왕은 일생동안 다양한 호칭을 부여받았습니다.
태어나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아명, 명, 자, 호 등을 받았고, 왕으로서는 존호, 시호, 묘호, 능호 등을 받았죠.

 

 

국왕의 다양한 호칭 가운데 어보에 새기는 것은 존호, 시호, 묘호, 추상존호 등입니다.
존호는 왕의 공덕을 찬양하는 호칭이고, 추상존호는 세월이 흐르면서 돌아가신 국왕에게 새로운 평가를 부여하며 지은 이름을 말합니다.
시호는 왕의 사후 생전의 공덕을 참고하여 짓고, 묘호는 삼년상을 마치고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올리는 호칭으로 공이 크면 '조', 덕이 크면 '종'이라 붙였습니다.

 

태조 이성계 어진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태조 어진은 복제품으로 함경도 영흥 준원전에 봉안되어 있었던 초상을 사진을 바탕으로 추정,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어진도 오래되어 1872년(고종 9)에 새로 모사한 어진이 모셔져 있고, 구본은 초상을 물에 씻어내고 백자항아리에 담아 진전 북쪽에 묻었다고 합니다.

[전주한옥마을]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경기전

 

영조 어진

 

임금님의 글씨인 어필각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국보 151-3호)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25대 철종까지 역대 왕들의 행적을 기록한 1,700여 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조선왕조실록은 춘추관 외에도 전주, 성주, 충주에 사고를 짓고 총 4본을 보관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 외에는 모두 소실되었고, 이후 강화,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등에 사고를 신축하여 춘추관을 비롯 5곳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습니다.

 

여기에 있는 오대산 사고본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상당수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1932년에 27책이, 2006년에 47책이 환수되어 총 74책의 오대산사고본이 남았습니다.

 

왕실도서관 내부 모습

대표적인 곳이 정조가 만든 규장각인데, 당시 국내 서적 1만 여점, 중국 서적 2만 여점 등 3만여 점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1910년 강제 한일합방 이후 규장각이 해체되면서 조선총독부가 관리했고,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관제

왕 아래 간쟁과 감찰, 자문기관이었던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이 있고, 비서실인 승정원, 사법기관인 의금부, 왕가와 종실을 관리하는 종친부, 그리고 의금부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의 6조가 있네요.

 

조선의 궁궐

국정의 무대이자 국왕을 비롯한 왕실 구성원들의 생활공간이기도 했던 궁궐은 조선시대 최고의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궁궐의 역사와 공간의 구조, 궁궐의 관리 등과 관련된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궁궐 영건 역사와 사용기간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덕궁(경희궁), 경운궁(덕수궁) 등 5대 궁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경복궁 나들이

조선 5대 궁궐 중 임금이 가장 오래 머문 궁궐, 창덕궁의 겨울이야기

조선 최고의 정원, 창덕궁 후원의 겨울이야기

단풍이 예쁜 조선의 5대궁궐 중 하나인 덕수궁 이야기

경희궁(경덕궁) 이야기

동궐도에 보이는 창덕궁과 창경궁 모습

1405년(태종 5)에 지어진 창덕궁은 가장 오랜기간 조선의 역사와 함께하며 정전, 편전, 궐내각사, 대비전 등을 두어 조선왕조의 이상을 담은 궁궐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창경궁은 1483년(성종 14)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창건했습니다.
창덕궁의 동쪽에 연결되어 창덕궁의 부족한 주거공간을 보충해주었고, 대비들의 의례가 주로 행해진 곳입니다.

 

궁궐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던 정전

국정운영의 중심이고, 가장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은 정면 5칸이고, 전면에는 이중의 월대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왕실의 생활 전시공간은 왕실에서 사용한 옷과 가구, 장신구, 도자기 등 수준 높은 공예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당대 최고의 장인들에 의해 만든 의복과 음식, 각종 기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네요.

왕실의 복식은 의례복과 일상복으로 나뉘는데, 의례 시 사용하는 복식은 길례, 흉례, 군례, 빈례, 가례 등 의례의 격식에 맞는 복식을 입었다고 합니다.

 

영친왕비 적의
1922년 영친왕비가 순종을 알현할 때 입었던 적의라고 합니다.

 

궁궐의 침전 공간

 

궁궐에서 사용하던 도자기

 

궁궐 내 생활도구와 궁중 주방

 

1층으로 내려오면 대한제국 전시실로 이어집니다.

 

외세의 압박이 거세지던 무렵인 1897년.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고 국내외에 독립국가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대한제국을 선포했습니다.

대한제국 전시실엔 황제와 황후가 쓰던 자동차, 황실의 사진, 생활공간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은 경운궁(덕수궁)을 제국의 궁궐로 삼고 황제국에 걸맞은 부국강병한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다양한 개혁과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대한제국은 한일 강제합병으로 13년밖에 지속을 하지 못했지만, 우리 역사 최초의 근대국가이자 황제국이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황제 어좌
왕이나 황제가 앉던 의자로 조선시대에는 붉은색이었지만, 대한제국기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으로 칠했다고 합니다.
몸의 전면을 용무늬로 장식했고, 모서리마다 금색 용머리를 끼웠습니다.

 

고종황제의 어새와 함
고종황제가 친서에 사용한 대한제국의 국새와 국새를 담은 함입니다.
국새에는 황제어세가 새겨져 있습니다.

 

고종과 순종  

 

황제국의 상징, 환구단과 환구제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입니다.
중국 사신의 숙소였던 남별궁에 환구단을 건립하고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습니다.

 


이후 왕조의 시조인 태조고황제 등을 비롯한 자양한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환구단 건설과 환구제 시행은 독립된 황제국의 수립을 상징했습니다.
1913년 일본은 환구단 자리에 호텔을 지으면서 현재는 신위를 보관하던 황궁우 등 일부만이 남아 있습니다.

환구단, 고종 즉위식과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한 장소

 

근대기 황실 궁궐 내부 모습

대한제국 시기의 궁궐에는 프랑스, 영국, 중국, 일본 등에서 수입한 서양식 가구와 장식용품들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러한 가구와 생활용품 대부분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자두꽃) 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대한제국 상징 문양

대한제국에는 태극, 오얏꽃, 무궁화, 매 등 내 가지가 주요 상징문양이었습니다.

근대식 연회와 황실 식기

황실의 군예복 착용 모습

대한제국기 군복은 지위에 따라 계급을 나타내기 위한 부착물의 형태가 달랐습니다.


옷소매에 부착한 인자형 계급장의 경우, 원수부의 대원수인 황제는 11줄, 원수인 황태자는 10줄, 대장은 9줄, 부장은 8줄, 참위는 1줄이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사진 속에서도 고종, 순종, 영친왕 등이 황실의 군 예복을 차려입고 위엄을 갖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시실에서 나오면 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가 탔던 어차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순종황제 어차

순종황제(재위 1907~1910)가 탔던 어차로 미국의 GM사가 제작한 7인승 캐딜락 리무진(1918년 제작)입니다.


전체적인 형태가 마차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초기 자동차 모델의 특징을 보여주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20대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순정효황후 어차

영국의 다임러 사가 만든 리무진(1914년 제작)입니다.
전세계적으로 3대만 남아있고, 국내에 현존하는 최고의 자동차로 평가받고 있답니다.


근체에 일이 있어 잠시 들어가서 구경하고 나왔는데, 평소에 접하지 못하는 왕실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시간이라 특별한 관람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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