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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여행

강화도 전등사, 삼랑성과 정족산사고로 보는 강화도 역사

by 휴식같은 친구 2021.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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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전등사, 삼랑성과 정족산사고로 보는 강화도 역사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절은 전등사입니다.

사찰이 들어선지 무려 1700여년, 일찍이 삼랑성 안에 창건되어 강화도의 역사와 함께 달려온 사찰이죠.

 

오래된 역사만큼 보물 등의 문화재도 많고, 정족산 아래 조선시대 4대 사고인 정족산 사고도 있는  유서깊은 곳인데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아도화상이 신라의 일선군(경북 선산)에 불교를 전파하기 전, 이곳 강화 전등사의 개산조가 되었다는 유서 깊은 설이 있습니다.

당시 절 이름은 진종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삼랑성과 정족사고로 보는 전등사 역사와 해질 무렵 전등사 풍경을 담았습니다. 

 

전등사 주차장 모습입니다.

전등사는 김포 대명항을 지나 초지대교를 넘어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후 5시 반 정도 도착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상태입니다.

 

 

전등사 관람안내

 

관람시간 동절기 08:30~18:00, 하절기 08:00~18:30

휴무일 없음

관람료(입장료) 성인 4,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1,500원

무료관람 조계종 신도증, 강화군민, 7세 미만, 장애인, 유공자

주차장 주차요금 하루 소형 2,000원, 대형 4,000원

 

주차요금도 있는데 입장료가 과하다는 느낌이...ㅜㅜ

 

6시가 가까워진 시각이라 전등사로 향하는 사람이나 내려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 고즈넉하기만 합니다.

숲길을 따라 10~20여분 언덕길과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합니다.

 

전등사 입구인 강화 삼랑성 동문입니다.

이곳에서 입장권을 발권 후 들어가면 됩니다.

 

전등사로 들어가는 문은 두 곳이 있는데, 이곳이 전등사 정문인 삼랑성문이 동문이고 남문이 좌측으로 외돌아 있습니다.

(아래 남문 사진 참고) 

 

 

삼랑성은 정족산성이라고도 부르는데,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있으며, 정족산에 있다 해서 정족산성으로 불립니다.

단군 시대에 쌓았다면 무려 4300년이 넘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삼랑성(정족산성)은 강화산성과 더불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수도 개경과 한양의 외곽을 방어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삼랑성 안에는 고려시대인 1259년(고종 46)에 백승현의 풍수설에 따라 고종은 왕업을 연장하기 위해 성안에 가궐을 지었다는 짓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 사고와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이 있던 것으로 유명한 곳이네요.

확실한 건 살랑성은 고려시대 고종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네요.

 

 

강화도의 성 대부분이 토성인 데 비해 삼랑성은 견고한 석성이라는 점이 특이하며, 성 주위는 약 2㎞, 높이 2.3m∼5.30m입니다.

본래 4개의 성문과 누각이 있었는데, 종해루인 남문은 1976년에 중수, 복원했고, 현재 전등사 입구인 삼랑성문은 당시의 동문이었습니다.

나머지 두 문과 종루는 없어지고 성곽만 남아 있으며, 705개의 화살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모두 파손된 상태라네요.

 

삼랑성 동문으로 들어서면 양헌수승전비가 있습니다.

 

이는 프랑스가 침공한 병인양요(고종 3년, 1866) 때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군사들이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 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도 유명하며, 동문 안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승전비에는 양헌수를 비롯한 367명이 프랑스 군대를 맞아 활약한 당시의 상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삼랑성 남문인 종해루

동문을 통과해 좌측 아래로 2~3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739년(영조 15)에 중수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라 명명했으며, 1764년 다시금 성을 중수했습니다.

최근인 1976년에 남문을 다시 복원하고 종해루를 세웠다고 합니다.

 

전등사 입구에 있는 400년 된 느티나무

1615년 전등사를 대건할 당시 풍치목으로 심은 나무라고 하는데, 오래된 세월이 그대로 나타나는 나무네요.

 

전등사 경내엔 이런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가 엄청 많이 있습니다.

 

전등사 아래 쪽에 자리한 죽림다원

 

아담한 연못과 어울러진 외부, 품위 있고 아늑한 분위기의 찻집 내부는 색다른 느낌을 줘 가족, 연인, 단체가 함께 담소를 나누기 좋은 장소랍니다.

솔바람이란 이름의 솔잎차와 모과차 등 다양한 전통차와 간단한 다과를 함께 즐길 수 있어서, 고즈넉한 전등사를 바라보면서 전통차 한잔 하고 가면 좋겠습니다.

 

전등사 대웅전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세운 누각식 건물은 대조루입니다.

 

대조루의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의 전등사라는 시에서 읇은 시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말에 이미 대조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932년 사찰안의 건물들을 수리하면서 대조루도 다시 지었다고 하네요.

 

대조루 옆에 세워져 있는 종루

전등사에는 보물 제393호로 지정된 전등사 범종과 근래에 만들어진 범종 등 두 개의 종이 있는데요

이 두 범종을 보관하기 위해 종각과 종루로 이름을 달리하여 두 개의 범종각을 세웠다고 합니다.

 

 

전등사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제178호), 약사전(보물 제179호), 명부전, 삼성각, 향로각, 적묵당, 범종각 등이 있습니다.

중요문화재로는 중국 북송시대의 범종(보물 제393호)과 조선시대의 법화경판(1544)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전등사 경내 모습입니다.

가운데 위풍당당해 보이는 건물이 전등사 대웅전입니다.

 

 전등사 대웅전은 보물 17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입니다.

 

대웅전은 조선 광해군 13년(1621)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지붕 처마  무게를 받치는 구조인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짜여있는 다포양식 건물입니다.

 

 

건물 네 모서리 추녀 밑에는 벌거벗은 사람의 모습을 조각해 놨는데, 미처 찍지 못했습니다.

사진을 확대하면 처마 밑에 나체의 사람이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절을 짓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막 여인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나쁜 짓을 꾸짖어 하루 세 번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며 죄를 씻고,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로 추녀를 받치게 했다고 합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전등사 대웅전 내부는 사진처럼 화려한 내부장식이 돋보이는데, 능숙한 조각솜씨가 조선 중기시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천장은 용, 극락조, 연꽃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부처님을 모신 불단과 불상 머리 위의 닫집(부처님이 설법할 때 사용한 햇빛가리개)을 가리는  장식이 화려합니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대조루 

 

대웅전 옆 부속건물들

좌측부터 명부전, 약사전, 향로전

 

대웅전 앞에도 거대한 풍채의 보호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종무소와 무설전, 월송요가 있는 건물들입니다.

 

대웅전 옆에 있는 건물은 보물 179호인 전등사 약사전입니다.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액사여래를 모시는 법당으로 이것 역시 언제 지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광해군 시절에 지어진 대웅전과 건축양식이 비슷해 서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잇습니다. 

대웅전과 같이 다포양식의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약사전 내부에는 석불좌상, 후불도, 현왕도가 있습니다.

 

천장의 바깥쪽은 꽃과 물고기 조각으로 꾸몄으며, 안쪽은 우물 정자 모양으로 한 다음 연꽃과 덩굴무늬를 그려 장식했습니다.

 

좌측의 현왕탱은 사람이 죽은지 3일이 된 망자를 심판하는 현왕과 권속(부처님을 따르는 대중)을 그린 불화입니다.

그림 하단에는 고종 21년(1884)에 승려 화가인 진철과 궁법이 그렸다고 적혀 있다네요.

 

대웅전 위로 조금 올라가면 삼성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삼성각에서 바라본 대웅전과 향로전, 약사전 등의 모습입니다.

 

전등사에서 서해바다가 보이는 풍경입니다.

멀리 보이는 섬은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인 듯...

 

삼성각에서 좌측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가 있습니다.

정족산 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장사각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이 있던 곳입니다.

 

조선은 초기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등 네 곳에 보관했는데,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본을 묘향산 사고로 옮겼습니다.

다시 마니산 사고를 거쳐 1660년(현종 1)이 이곳으로 옮긴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1910년 국권침탈 후 서울로 옮겨졌고, 지금은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되고 있습니다.

 

전등사 정족산 사고에서 바라본 풍경은 숨겨진 포토존이라고 합니다.

영종도가 보이는 서해바다 풍경입니다.

 

다시 대웅전 옆으로 오면 명부전이 있습니다.

 

명부전에는 보물 1786호인 전등사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이 있습니다.

 

전등사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은 명부전에 모셔진 지장보살 삼존상을 비롯한 31구의 불상을 말합니다.

지장보살은 저승 세계인 명부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며, 시왕은 저승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명의 왕을 말합니다.

 

명부전 옆의 극락전

 

극락전 옆에 있는 보물 303호인 전등사 철종(전등사 범종)

 

전등사 철종은 중국 송나라 때 희주 숭명사에서 무쇠로 만든 중국 종으로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병기를 만들려고 지금의 인천시 부평 병기창에 갖다 놓은 것을 광복 후에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조선에 전래된 경위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종의 몸통 윗부분에는 팔괘가 있고, 그 밑으로 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정사각형 8개를 새겼습니다.

이 정사각형 안에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것과 북송 철종 4년(1097)에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철종 앞에 있는 280년된 단풍나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전등사 선불장, 공양간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장독대 모습

 

전등사 무설전에서는 끝내는 방식, Ending라는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등사는 오래된 역사만큼 보물 등 문화재가 많이 있고, 단군 시대에 만들어진 삼랑성 안에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가 있어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사찰입니다.

볼거리도 많아서 강화도 여행을 하면 꼭 찾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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