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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오동 전투, 홍범도 장군 100년만의 귀환

by 휴식같은 친구 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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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오동 전투, 홍범도 장군 100년 만의 귀환

 

 

봉오동 전투의 홍범도 장군이 광복 76주년을 맞아 순국 78년, 고국을 떠난 지 100년 만에 귀환하셨습니다.

여천 홍범도 장군은 백두산과 만주벌판을 누비며 일본군을 토벌한 독립전쟁의 전설, 영웅입니다.

 

1921년 연해주 이주 후 100년 만의 귀환인데요.

2019년 문재인 대통령과 카심 토키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고, 원래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해  2020년 3.1절에 유해 봉환이 결정되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연기되었다가 이번에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국빈방한을 계기로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여천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16~17일 양일간 국민추모제를 실시한 후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고 합니다.

치열한 항일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의 모습을 다시 보기 위해 광복절이었던 어제 영화 봉오동 전투를 다시 한번 봤습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봉오동 전투

 

개봉일 2019년 8월 7일

장르 액션, 드라마

감독 원신연

출연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키타무라 카즈키, 이케우치 히로유키 등

러닝타임 135분

누적관객 478만명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만주지역에서는 독립군의 무장 항쟁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도 1920년부터 항일 전쟁을 시작했는데, 두만강을 건너 일본 헌병순찰대를 공격했습니다.

이에 일본군은 독립군을 추격하면서 삼둔자까지 들어와 그곳에 사는 한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했고, 독립군은 매복하여 커다란 타격을 입혔는데, 이를 삼둔지 전투라고 합니다.

 

삼둔지ㅊ전투로 위기를 느낀 일본은 독립군을 섬멸할 계획으로 두만강을 넘어 봉오동을 향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대한독립군 외에도 최진동이 이끄는 군무도독부, 안무가 이끄는 국민회군 등과 함께 연합부대를 만들었죠.

 

1920년 6월 7일에 중국 지린성 왕칭현 봉오동에서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 이끈 대한북로독군부의 한국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전투가 바로 봉오동 전투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대로 일본군 사망자는 157명, 부상자는 200여 명에 달했으나, 독립군은 4명이 사망하고 약간의 부상자가 생기는 데 그친 대승을 거둔 승리였습니다.

 

여천 홍범도 약력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홍범도는 1868년 8월 27일 평남 평양에서 가난한 농부 홍윤식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가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 동네 부인네들로부터 젖을 얻어먹으며 자랐고, 또 9살 되던 해에는 부친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작은아버지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지내다가 15살이 되던 해인 1883년 나이를 두 살 올려 평안 감영의 나팔수로 입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군교들의 부정부패와 사병들에 대한 학대를 보다 못하고 그중 한 명을 구타하고 탈영했다.

 

이후 황해도 제지소에서 3년간 일하고, 금강산 신계사에 들어가 1년 반 동안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1895년 파계한 후 강원도 화양군에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가 일본의 만행이 이어지니 일본군을 처단하는 봉기를 하기 시작.

 

국내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국내활동이 어려워지자 1908년 만주를 거쳐 연해주로 망명한 이후 의병활동에 총력을 기울인다.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1920년 10월 20일에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서 역시 대승을 거두었다.이때 일본군 전사자는 1,200여 명에 부상자는 2,100여 명이었고, 독립군 측은 전사자 130여 명, 부상자 220여 명뿐이었다.

 

이후 1921년 6월 28일에 군정의회 지도부의 대한의용군의 무장해제를 결정하여  연해주로 이주했다.

집단농장, 협동농장 등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농민층의 생활 향상과 한인동포들의 권익보호에 힘쓰기도 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극동지역 침략이 본격화되자 소련은 한인들의 스파이 활동에 경계심을 품게 되었고, 6년 뒤, 소련 정부는 극동지역에서의 한인강제추방을 결정했고 한인들은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됐다.

 

홍범도 장군도 1937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얀꾸르간 시르다리아 강 건너편의 사나리크 셀소비에트(카잘린스크 구역)에 강제 이주됐다.

병원 경비로, 고려극장 수위장으로 생활하다가 1943년 10월 25일 크즐오라디시 스테프나야거리 2번지에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했다.

 

고려인들은 성금을 모아 공동묘지에 안장하고, 철로 만든 비도 만들어 그의 업적을 기르기도 했다.

 

영화 봉오동전투 줄거리(네이버)

 

임무는 단 하나! 달리고 달려, 일본군을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하라!

1919년 3.1 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진다.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 작전을 시작하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하기로 한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의 해철(유해진)과 발 빠른 독립군 분대장 장하(류준열)
 그리고 해철의 오른팔이자 날쌘 저격수 병구(조우진)는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한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는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하기 시작하는데...
 
 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에 묻혔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니 애국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과,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음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모든 독립운동가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그들이 있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영화 중 전쟁영화로 잘 구성되어 있고, 유해진과 류준열, 조우진의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라 믿고 볼만한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내내 가슴 졸이며 봐야 했고, 특히 마지막 30분은 숨 막히는 장면들이 계속되더군요.

 

 

문 대통령의 제안으로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한이 이루어졌고, 어제는 직접 서울공항에서 맞이했다고 합니다.

늦었지만, 홍범도 장군은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건국훈장을 추서 받고 이제 고국에서 편안히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지 78년, 고국을 떠난 지 100년 만의 귀환을 환영하며, 이제 고국의 땅에서 편안히 영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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