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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부소산성 - 사자루, 백화정, 낙화암, 관북리유적

by 휴식같은 친구 202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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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부소산성 - 사자루, 백화정, 낙화암, 관북리 유적

 

 

부소산성은 백제 26대 왕 성왕이 웅진 공산성에서 사비로 천도를 했는데요.

사비의 북쪽 부소산 기슭에 왕궁이 세워졌으며, 부소산에 있는 관북리유적을 왕궁으로 보고 있습니다.

 

부여 부소산성에도 볼거리가 많이 있어서 부소산성과 삼충사, 낙화암과 관북리유적, 고란사 등 세 번에 걸쳐 글을 적었습니다.  

부소산성 관람정보와 코스, 삼충사와 반월루 풍경은 아래 글을 참고 바랍니다.

 

부여 가볼만한 곳, 부소산성 입장료와 코스, 삼충사와 반월루

 

부소산성 두 번째 이야기는 사자루와 백화정, 3000 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낙화암 그리고 백제의 사비시대를 연 사비궁으로 알려진 관북리 유적 풍경을 담았습니다. 

 

부소산문에서 출발하여 삼충사, 반월루를 거쳐 도착한 곳은 송월대, 그리고 송월대에 지어진 사자루입니다.

 

사자루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송월대에 있는 누각입니다.

조선시대 임천의 관아 정문(개산루)을 1919년에 이곳으로 옮겨와 사자루라 하였습니다.

 

 

건물 정면의 사자루 현판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이 썼고,  백마강 쪽 백마장강이라는 현판은 김규진이 썼다고 합니다.

건물을 옮길 때 '정지원'이란 이름이 적힌 백제시대의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보물 196호)가 발견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송월대 단풍

 

사자루에서 바라본 백마강

백마강은 부여에서 부르는 금강의 다른 말입니다.

 

부소산이 있는 산맥은 금남정맥이라고 합니다.

금남정맥은 전북 진안에서 북서로 뻗어 계룡산에 이르고, 다시 서쪽으로 뻗어 부여 부소산까지 118km에 이르는 산줄기입니다.

 

 

금남정맥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금강호남정맥이 끝나는 주화산, 왕사봉, 배티, 대둔산, 개태산, 계룡산, 널티, 망월산, 부소산 조룡대에 이릅니다.

 

정맥의 끝이 보통 바다로 끝나는데 금남정백은 부소산에서 끝나며, 부소산은 부여의 진산이며 동쪽 작은 봉에 비스듬히 올라간 곳은 영월대, 서쪽을 송월대라 이른다고 합니다.

 

사자루에서 조금 내려오면 낙화암 앞에 있는 백화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때 이곳에서 목숨을 버린 궁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29년에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갔을 때 성 밖의 호수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라는 시에서 유래합니다.

 

백화정에서 바라보는 백마강 주변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입니다.

 

백마강을 오가는 백마강 유람선

 

백화정 바로 아래가 낙화암입니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의자왕의 3000궁녀가 몸을 던져 죽은 곳이라고 배웠는데, 실상은 많은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낙화암은 백마강을 향해 우뚝 서 있는 큰 바위인데, 바위는 50m 정도 높이의 절벽을 이루고 있고, 강물에 이르러 한 번 꺾인 단이 있습니다.

이 단을 이룬 암벽에 송시열이 낙화암이라고 쓴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낙화암에서 바라본 백화정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가 멸망할 때 궁인들이 화를 피할지 못할 줄 알고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며 이곳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여 타사암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훗날 사람들이 궁인의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고 불렀습니다.

 

공주방향의 백마강 풍경(금강)

 

한 없이 높아 보이는 낙화암 절벽

나라를 잃은 슬픔은 결국 무서운 바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나네요.

 

국가의 소중함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듯합니다.

 

백마강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찍은 낙화암 모습

 

위에 백화정 정자가 보이고 그 아래 절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강으로 내려오면서 꺾인 부분에 빨간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는데 이것이 송시열이 적은 낙화암이라는 글자입니다.

 

백화정 앞에 있는 표지판

다시 부소산성 남문으로 내려가는 것보다 백마강에 왔으니 유람선을 타고 이동하는 것도 좋습니다.

 

 

우측 아래쪽으로 가면 천년고찰 고란사가 있고, 백마강 유람선 고란사 선착장이 있습니다.

 

부여 부소산성, 운치있는 천년고찰 고란사 가을 단풍 풍경

부여 부소산성, 백마강 유람선(고란사 선착장~구드래 선착장) 이용안내

 

고란사로 내려오는 길에 있는 부소산성 후문 매표소

 

백마강 유람선을 타고 구드래 선착장까지 10분이면 도착합니다.

구드래 조각공원을 지나면 관북리 유적이 있습니다.

 

위 사진은 부소산성 올라가는 입구에 있던 관북리 유적입니다.

 

관북리 유적 약도

 

공주의 웅진시대를 청산하고 부여인 사비로 도읍을 정한 이유는 공산성의 좁은 공간으로는 한 나라를 다스리기에 부족하였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비궁이 있었던 이 관북리 유적은 부소산성 남문에서 구드래 선착장이 있는 곳까지 이어져 있어 공산성보다는 몇 배 큰 면적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전방에 보이는 건물은 관북리 유적에 조성한 사비도성 가상체험관입니다.

 

부여지역의 모든 문화재를 접할 수 있는 역사 문화체험 전시장으로 ICT 기술로 재해석하여 1400여년 전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사비도성 가상체험관 관람시간은 10:00~17:00(11~2월은 16:00까지)이며, 휴무일은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과 추석 연휴입니다.

관람료는 어른 및 청소년/군경 1,000원, 어린이는 500원입니다.

 

다리도 아프고 다른 유적지도 가야 해서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부여객사

 

부소산성 입구에 자리한 부여객사는 1704년에 설립된 객사이고, 1869년에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객사란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둔 관사로서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온 관리들이 머물던 곳을 말합니다.

 

부여 관북리 유적지 모습

 

1982년 이래의 발굴조사를 통해 왕궁 건설과 확장을 위해 조성한 성토 대지와 그 위에 만들어진 대형 전각건물 등 기와로 기단을 꾸민 건물터, 남북·동서방향의 도로, 축대 및 배수로, 목곽수조 및 기와 배수관, 연지, 우물터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지 조성 이전에 왕실 수공업 생산지였음을 보여주는 철기, 금 및 금동제품 제작소 등 공방시설과 함께 나무와 돌로 구축한 지하 곳간이 밀접한 저장시설단지 등도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관북리 유적의 연지

연못 내부에서 연꽃의 줄기와 뿌리 등이 발견되어 연지로 추측하고 있는 곳입니다.

 

관북리유적의 발굴로 다양한 유구를 통해 단편적이지만 사비도성에서의 왕궁의 위치와 구조, 그리고 조성 과정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로 구획과 대지 조성으로 이루어진 왕궁의 확장을 통해 사비도성 도시 계획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된 것도 있습니다.

 

앞으로 관북리 유적에서 백제왕궁과 관련한 유물과 유규가 지속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네요.

 

부여현 관아

 

조선시대 관아 건물로 공무를 보던 동헌과 숙소인 객사, 관아의 안채인 내동헌(내아)이 남아 있습니다.

백제시대 주요 유적인 부소산성과 관북리 유적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여현 관아 일대 모습

 

와적기단 건물지

백제시대 공방이 있던 터라고 합니다.

 

너른 관북리 유적에는 곳곳에 건물터와 가마터 등이 발견되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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