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상설전시와 근대한글연구소 전시
용산공원과 용산가족공원에 들렀다가 국립한글박문관에 잠시 들렀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2014년 한글날에 문을 연 한글을 주제로 한 최초의 국립박물관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창의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찬사를 받는 우리의 고유 문자 한글을 널리 알리기 위해 문화관광체육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입니다.
한글날로 지정된 10월 9일은 훈민정음 발간일과 일치하지 않는데,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일자가 정확하게 기록한 문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글날은 한글의 한문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본에 기록된 발간 시점을 전후로 한글 반포일을 임의로 추정하여 지정한 날이라고 하네요.
국립한글박문관의 상설전시 내용과 기획전시로 열리고 있는 근대한글연구소 전시내용을 담았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 건축물 외관은 한글 모음의 제자 원리인 천지인(하늘, 땅, 사람)을 형상화하여 하늘의 켜, 사람의 켜, 땅의 켜를 켜켜이 쌓아 올린 공간에 소통의 매개체인 한글을 담고, 한국 전통 가옥의 처마와 단청의 멋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였다고 합니다.
국립한글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월~금, 일요일은 10:00 ~ 18:00, 토요일 10:00~21:00(30분 전 입장마감)
(한글놀이터 10:10~17:40, 온라인 사전예약 후 이용)
휴관일(휴무일) 1월 1일, 설날과 추석 당일
관람료 :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기본 2시간 2,000원, 30분 초과시 500원
국립한글박물과 야외 잔디광장
4년 전에 한글날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한글날엔 이곳에서 대대적인 한글날 행사가 펼쳐지는 곳입니다.
한글날은 1926년에 조선어연구회에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지 480주년이 된 해를 맞이하여 기념식을 갖고 이날을 제1회 '가갸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듬해인 1927년에 기관지 '한글'이 창간되고, '한글날'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1940년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면서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의 서문에 반포일이 9월 상한으로 나타났으므로 상순의 끝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했습니다.
1949년에 대통령령으로 공휴일로 지정
1991년 법정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로 변경
2006년 국경일로 지정
2013년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
국립한글박물관은 1층에 한글도서관이 있고, 2층에 상설전시실과 카페, 문화상품점이, 3층에 기획전시실과 한글놀이터 등이 있습니다.
상설전시실로 들어가는 계단엔 '고마워 한글'이 적혀 있습니다.
정말 한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정말 고마워, 한글~!"
2층 카페
2층 상설전시실 입구
국립한글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는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1443년 세종은 우리의 문자 ‘훈민정음’을 만들었습니다.
1446년에는 새 문자를 만든 목적과 원리를 밝힌 책 '훈민정음'을 만들었고, '훈민정음'의 머리말에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통해 꿈꾼 새로운 세상이 설계돼 있습니다.
전시장은 '훈민정음' 머리말의 문장에 따라 7개의 공간으로 구성됐습니다.
1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1443년 이전 우리말은 중국말과 나무나 달랐고, 우리말을 적을 글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쓰는 상황이었습니다.
영상실
2부.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세종대왕은 글자를 몰라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였습니다.
글자를 아는 것이 권력이었던 시절에 놀라운 추진이었으며, 이는 세종의 애민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글이 없던 시절의 문자
이두, 구결, 향찰 등 한자의 음이나 뜻을 빌려 우리말을 일고 쓰는 차차 표기를 사용했습니다.
이 역시 한자를 익힌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3부.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1443년 세종은 자음 17자와 모음 11개 글자를 합한 28개의 글자,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습니다.
단순하고 글자의 수가 적어 어느 백성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죠.
세종(1397~1450)을 상징하는 도장
1450년에 만든 세종의 업적과 어진 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새겨 만든 도장이라고 합니다.
한글의 배경과 원리를 설명한 훈민정음해례본
한문본 훈민정음을 우리말로 풀어쓴 훈민정음 언해본입니다.
백성들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
전 세계 문자 중 창제에 관한 모든 기록이 책으로 남아 있는 것은 한글이 유일합니다.
이런 이유로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포함한 한글 활자로 15세기에 만들어져 한글 창제 초기에 사용된 것이라고 합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 28자
한글로 쓴 최초의 시가문학, 용비어천가
한글로 한자음을 정리한 최초의 책, 동국정운
수양대군이 한글로 번역한 부처의 일대기, 석보상정
4부. 쉽게 익혀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한글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민간에 널리 퍼져있던 불경의 가르침을 담은 불경을 한글로 펴냈습니다.
이후엔 유교경전을 번역해 한글로 옮겨 조선의 통치이념을 널리 알리기도 했습니다.
헌종이 서양의 종교를 배척해 내린 말을 한글로 쓴 책
5부. 사람마다
세종의 바람대로 한글은 왕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사용한 글자였습니다.
왕족들이 주고받은 자료, 양반 여성이 억울함을 담은 문서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왕도 노비도 한글로 편지를 쓰다.
한글, 모두의 생활에 쓰이다.
가곡 노랫말 580수를 모아 한글로 쓴 책
전주에서 간행한 한글소설, 열녀춘향 수절가
서울에서 간행한 한글소설, 홍길동전
안성에서 간행한 한글소설, 홍길동전
6부. 날로 씀에
세종이 1443년에 만든 한글은 450년이 지난 1894년에야 공식적인 나라의 글이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공식적인 문서는 모두 한자였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국문의 지위를 빼앗기는 역사의 아픔도 있었습니다.
28자에서 24자가 된 한글의 변화
여린히읗(ᅙ), 반시옷(ᅀ), 옛이응(ᅌ), 아래아(ᆞ) 등 4개의 글자가 잘 쓰이지 않으면서 사라졌습니다.
주시경 선생 등의 조선어학회와 한글 연구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국어와 조선어
한글의 여러 이름들
창제 당시의 훈민정음, 정음
15세기 이후 언문, 언자, 언서
19세기 말 국문
일제강점기에 조선문, 선문
1910년대부터 한글
7부.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한글이 보다 나은 문자생활을 가능케 하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좀 더 나은 삶과 문화를 누리는 세상을 바란 문장은 훈민정음 머리말의 마지막에 쓴 문장입니다.
한글의 발전 역사와 한글의 가로쓰기
3층으로 올라가면 기획전시실이 있고, 그 앞에 한글놀이터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놀이터이면서 한글을 이해하고 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 실감형 체험전 시공간이라고 하네요.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2023년 1월 29일까지 근대한글연구소란 주제의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한글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한글이 지닌 예술 및 산업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1894년 고종이 공문서에도 한글을 사용하도록 선포함으로써 한글은 나라의 공식문자가 되었고, 우리말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졌으며,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 우리말 글쓰기를 위한 공통된 기준도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근대시기 한글의 변화상을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실험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시각, 공예, 패션, 음악, 영상 분야의 19명 4팀의 작가가 4개의 연구실에서 연구결과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근대한글연구소 영상
동서말글 연구실
개항 이후 서양인들은 선교나 외교를 위해 한글을 배우기 위한 사전과 학습서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서양의 문물과 함께 생소한 외국의 인명과 지명, 서양의 말과 글이 들어왔습니다.
이에 영어발음을 한글로 표현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시도되었고, 이젠 동서양, 한국인과 외국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화영의 한글(좌)
유정민의 5개의 기억(긴의자) 아야어여오(책장)(우)
이청청의 낯섦과 새로움 그리고 연결
한글맵시 연구실
근대시기에 들어서서 어떤 모양으로 조합하고 배열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은 가로쓰기와 풀어쓰기를 시도했습니다.
책이나 신문을 인쇄하기 위한 한글 연활자도 점차 다양한 서체로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한동훈의 말의 형태
윤새롬의 어느 날의 조각(우)
권종모의 확을 주름접다 시리즈(좌)
박준무의 무제
한글공작소
우리소리 실험실
소리꾼의 목소리로 전해지던 판소리는 조선후기부터 방각본 또는 필사본 형태의 소설로 유통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판소리계 고소설로 불리는 이 이야기들은 1910년대에 들어 연활자본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춘향전은 옥중가인, 심청전은 강상련, 별주부전은 토의 간 등으로 제목이 바뀌거나 삽화가 들어가고 희곡형식으로 편집되며 다양하게 출판되었습니다.
한글출판 연구실
19세기 말 신식 인쇄기술 발달로 다양한 출판물이 나왔고, 한글 보급도 더욱 활기를 띠었습니다.
저렴하게 대량 생산된 한글 출판물은 대중문화를 이끄는 새로운 힘으로 작용하게 된 것입니다.
신문, 잡지와 문학서 등 한글을 활용한 특색있는 제목과 표지 그림으로 족자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남선미 외 4명의 호외요! 호외요! 호외요! 호외요! 호외요! 새로운 질서와 그 후
이성동의 얽힌
한글로 표지를 장식한 근대 출판물
시집 해파리의 노래, 어린이잡지 아희생활 등
근대 한글연구자, 주시경을 기억하며
주시경은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보급하는데 평생을 바친 학자입니다.
그는 개항으로 서구 문물의 수용과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격변의 시기에 태어났고, 전통학문과 신학문을 두루 익힌 연구자로 국어연구와 강습활동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이론적 체계화, 한자어의 순환, 가로쓰기, 풀어쓰기 등 주시경의 한글연구는 이번 전시의 기획 바탕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주시경 선생 유고
주시경의 업적을 모아 그를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만든 책입니다.
주시경, 국어문법 서문에서
1층으로 내려가면 한글도서관이 있습니다.
휴관일은 국립한글박물관과 차이가 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한글날 제외)에 휴관합니다.
한글이 지닌 문학적 가치를 폭넓게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문 도서관으로 한글과 한글문화와 관련된 전문자료를 중심으로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박물관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을 구경하다 보면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으로 만들어낸 한글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면서 창의적인 글이라고 하는데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주시경 선생의 한글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가지게 되는 전시관람이었습니다.
우리 한글이 유구한 민족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는 모습이 앞으로고 영원히 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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